기형도 산문집을 읽다. 짧은 여행의 기록. 느낌이 많다. `짜쉭` 스물아홉에 신춘문예 당선이라니. 그럴 만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관심사에 목매다는 것이니까. 다른 이들보다 좀 나은 것은 그는 그렇게 자신의 삶으로 시를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스물아홉 살, 어느 삼류 극장에 앉아 조용히 숨을 거둔, 그 짧은 여행의 마지막 눈빛은 어떠했을까.

김광석, <미처 다 하지 못한>,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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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먹는 법 - 든든한 내면을 만드는 독서 레시피 땅콩문고
김이경 지음 / 유유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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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 여백에 메모를 하라는데, 정작 이 책엔 여백이 별로 없다. 다른 유유 책들과 달리 책 날개도 없다. 아무튼.
이 책에서 가장 와닿은 내용은 자기 안에 질문이 있을 때 책을 읽으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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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인간의 활동을 위한 도구다.
도시는 더 이상 이 기능을 제대로 다하지 못하고 있다. 쓸모가 없다. 도시는 인간의 몸을 소모시키고, 그 정신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나날이 늘어간 가는 도시의 무질서는 우리를 불쾌하게 만든다. 도시의 타락은 우리의 자존심을 해치고 품위를 깎아내린다.
도시는 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 더 이상 우리와도 맞지 않는다.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 중에서 믿는 것이 더 낫다.
행동하는 것과 와해되는 것 중에서 행동하는 것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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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물리학 - 복잡한 세상을 꿰뚫어 보는 통계물리학의 아름다움
김범준 지음 / 동아시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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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 교수가 쓴 <세상 물정의 물리학>을 읽었다.

'세상 물정의 OOO' 제목은 2013년 <세상 물정의 사회학>이 제일 출간되었고, 다음이 이 책(2015년 9월), 그 다음이 <세상 물정의 경제학> (2015년 11월)이다. 출판사는 제각각이다.

책을 열면 맨 앞 추천사를 <세상 물정의 사회학> 저자 노명우 교수가 썼다. (책 제목이 비슷한 인연?)


저자가 직접 연구한 내용들을 책으로 엮었다. "자녀 교육비로 살펴본 '승자독식' 사회의 결말"과 같은 내용에서는 물리학으로 세상 물정을 이해하고 사회에 메시지를 던진다. 대한민국의 '승자독식' 사회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를 다루는 내용 밖에도 호기심에서 시작한 재밌는 주제들도 여럿 있다.

"프로야구팀 이동거리 차이를 최소화"한다는 주제나, 윷놀이 전략으로 "없을까 잡을까?"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다만 윷놀이 연구에서는 말판을 단순화시켜 했다는 게 아쉽게 느껴진다. 완벽한 전략이라 볼 수 없지 않은가?) 주식투자에 관한 내용도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만한 주제.

주제들을 짧게(10페이지 내외) 다루는데다 내용이 어렵지 않아 '통계물리학'이라고 지레 멀리할 필요 없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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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민주화를 만났을 때 - 노태우 경제의 재조명
이장규 외 지음 / 올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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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김종인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프레시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에게 경제민주화를 기대한 것은 과욕이었다, 국민들에게 미안하다’고 한 적 있던 김종인이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을 맡으며, 민주당을 쥐락펴락 한다. 


그가 누군지 궁금해져 노태우 정권의 경제 정책에 대한 책을 꺼내 보았다.

기자 출신, 이장규 씨가 쓴 <경제가 민주화를 만났을 때>라는 책에서 김종인에 관한 내용들을 발췌했다. (그간 다른 글에서 읽은 것과 일치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흥미로운 인물임에는 분명했다.


노태우 정부의 경제팀은 어떻게 짜여졌을까. 당시로서는 자타가 인정하는 경제참모였던 김종인을 새 경제팀의 중심인물로 지목했다.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그는 1985년 노태우 당선자가 민정당 대표로 있을 때부터 경제 가정교사 역할을 했고, 그 후로도 두터운 신임을 받아 왔다. 더구나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의 경제분야를 담당해서 새 정부의 정책을 설계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소외당하고 만다.



전두환 대통령한테 경제정책 면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인물로 경제수석 김재익을 꼽는다면, 노태우 대통령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로는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보건사회부장관과 경제수석을 지냈던 김종인이 가장 근접할 것이다.


... 김종인도 노태우가 민정당 대표시절 차기 대통령 준비를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경제 가정교사로서 특별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김종인은 개인적인 성격이나 일하는 스타일 면에서 노태우에게는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자기주장이 강했고 노선이 분명했다. 20대부터 할아버지를 도와 정치판을 체험했기에 정치적 판단도 빨랐다. 이런 점에서 경제정책에 백지나 다름없는 노태우의 머릿속을 일찌감치 장악하고 있었다...


(1990년 3월 18일 새로운 경제팀을 구성하고 김종인이 경제수석 자리에 들어가면서)

김종인은 대통령에게 "이건 꼭 지켜 주셔야 합니다"라며 다음 4가지 사항에 대한 다짐을 받아낸다.

첫째, 화급한 현안인 부동산투기 억제에 총력을 기울이게 해 달라.

둘째, 대통령이 주식시세에 대해서 너무 관심을 갖지 말아 달라.

셋째, 물류비용 해결을 위해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대폭 늘리도록 해달라.

넷째, 재벌에 대한 구조조정 추진을 적극 지원해 달라.



김종인은 노태우 대통령에게 단순한 아랫사람이나 경제참모의 선을 종종 넘어섰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외교 전반에 걸쳐 대놓고 상의에 응하고 코칭하는 입장이었으며, 또한 대통령의 군 출신 핵심측근인 이춘구나 안무혁 등과도 가까운 사이였다. 또한 대통령의 친인척 및 특수관계자들과 직접 각을 세우고 '맞짱'을 뜨는 일도 불사했다. 대통령의 동서이자 상공장관까지 지낸 금진호가 무역협회장으로 가는 것을 끝까지 막았으며, 숨은 실력자 이원조나 사돈인 최종현, 신명수와 부딪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북방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대통령의 이름으로 총지휘를 하는 바람에 김종휘 외교안보수석과 외무부로부터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심지어는 노태우 대통령이 다음 정권을 김영삼에게 넘겨주기로 결심하는 과정에서 가장 줄기차게 반대한 인물이 김종인이었다. 


우선 정책 차원에서 김종인은 업종전문화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재벌들의 문어발식 사업영역 확장에 제동을 걸었다. 삼성이 자동차사업을 새로 벌이겠다는 것을 막았고, 현대의 카프로락탐사업 진출을 허용치 않았다. 특히 재벌들이 수출해서 번 돈으로 부동산을 사들이는 바람에 투기가 더 기승을 부린다는 판단에 따라 재벌 소유 부동산의 강제매각 조치를 밀어붙였다. 금리는 내리고 주가를 올리는 정책 또한 앞장서서 반대했다.


답답한 나머지 정주영 현대회장은 직접 경제수석을 찾아가서 회유책을 구사했는가 하면, 사돈이자 재벌총수인 최종현, 신명수 등이 금진호, 이원조와 합세해서 김종인을 압박해 나갔다... 대통령은 결국 불편을 견디지 못하고 김종인을 내보낸다. 그가 청와대를 떠나자, 삼성의 자동차사업 허가를 비롯해 그가 그동안 깔고 앉아 있던 문제들이 줄줄이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5.8부동산매각 조치가 정부와 재계연합군의 단체전 전쟁이었다면, 정부와 재계에서 1명씩 나서서 맞붙은 개인전을 꼽으라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김종인 경제수석 사이의 대결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정주영 회장이 불쑥 찾아오자 회의 중이던 김종인은 그를 30분 넘게 기다리게 했다. 당시 정주영은 카프로락탐(나일론의 원료) 사업에 참여하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김종인 경제수석이 걸림돌이 되자 직접 찾아온 거였다. 첫 만남은 덕담 위주로 이야기가 오가고 "조만간 술자리나 한 번 하자"며 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저녁 술자리도 별 성과 없이 끝나자 낮시간에 롯데호텔에서 만나자고 했다.



"김 수석은 올해 나이가 몇입니까. 50대 초반 아닙니까. 나는 70대인데 105살까지는 일하고 125살까지 살 겁니다. 경제수석 더 해봐야 불과 몇 년인데, 앞으로 적어도 50년은 더 살 것 아니요. 나하고 좋은 관게를 맺으면 도움이 될 겁니다."

"저는 대통령을 모시고 있는 비서입니다. 제가 지금 정 회장님과 마주 앉은 것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경제수석이라는 내 직책 때문이 아닙니까. 나이로 따져도 제 아버지뻘 되시는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곤랍합니다.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그런 게 아니고, 나는 한번 신세지면 영원히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말씀에 많은 공무원들이 다치는 겁니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김종인의 메모를 근거로 재구성한 것이고, 상대방이었던 정주영 회장은 타계했으므로 어차피 일방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과 노태우의 재판 과정 등을 통해 돌이켜 보면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나중에 대통령선거에 나서게 된 정주영은 심지어 어느 공식 기자회견 장에서 "김종인이 때문에 내가 정치할 것을 결심했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그에 대해 응어리가 맺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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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ology 2016-03-23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흥미롭네요.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boooo 2016-03-26 22:04   좋아요 0 | URL
ㅎㅎ 흥미롭습니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궁금합니다.

雨香 2016-03-23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핫한 김종인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공천과 관련해 비쳐지는 모습과는 다른 면이 있군요

boooo 2016-03-26 22:04   좋아요 0 | URL
네. 잘 알지 못했는데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들이 많더군요.

별족 2016-03-24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새 막 인문학명강-동양편,을 마친 참이라, 동양인에게 이런 식의 태도가 가능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가 남편한테 욕을 욕을 먹었습니다. 공자가 자신의 뜻을 펴려고 유랑한 것처럼, 김종인도 그런 게 아닐까, 이 글을 읽고 그랬거든요.
자기가 펼쳐보려는 뜻이랑 권력이 결국 충돌하는 순간에, `권력을 잡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과정에서 뜻을 잠시 밀어뒀다가 결국 그 뜻을 놓치는 게 아닐까, 그런 거요.

boooo 2016-03-26 22:06   좋아요 0 | URL
`뜻을 잠시 밀어 뒀다가 결국 그 뜻을 놓치는 사람`, 분명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거의 대부분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