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위의 딸 열린책들 세계문학 1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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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황금개띠' 란다. 그래선지 TV에선 영특하고 늠름한 누렁이를 찾아 호들갑을 떤다. 인공지능에 지배당할지도 모른다며 불안해 하는 21세기 과학문명사회에서 무술년이니 개띠니하는게 다 무슨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중국에의 문화 사대주의 운운하기도 그래서 그냥 우리의 전통문화나 미풍양속이거니 생각한다. 올 여름은 아무래도 보신탕은 삼가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오랜만에 독후감을 쓰게 되었다. 연말이라 올해 실적 마무리며 내년 사업계획서 작성 등 업무때문에 바빠서? 아니다. 술 좋아해 그냥 연말분위기에 편승, 연일계속되는 음주로 책을 가까이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일 술마시는 버릇이 들어 지난 크리스마스연휴나 이번 연휴기간내내 아침부터 한잔하고, 자고 일어나 또 마시는 생활을 하기도 했다. "새해에는 보다 건강하고, 복많이 받으세요!"라는 카톡이나 문자를 보며 그래 새해엔 건강 챙겨야지! 하면서도 쓴웃음을 짓게 된다. 이 쓴웃음의 의미는 지난 1년간 눈치보며 밥벌이하느라 고생한 나자신에 대한 포상이라는 위안과 술이 주는 이 알딸딸한 쾌감을 버리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하다.


이 책  [대위의 딸]은 술마시는 틈틈히 지난 열흘간 읽었던 뿌쉬낀의 유일한 장편소설(200쪽도 안된다)이다.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수기형식인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러시아 귀족청년 뾰뜨르 안드레예비치 그리뇨프가 군대에 들어가는 길에 날품팔이 길안내자에게 수고의 대가로 토끼털 가죽외투를 선물로 주게 되는데, 나중에 이 길안내자인이 반란의 수괴인 뿌가쵸프[푸가초프의 반란(1773년-1775년)]로 밝혀진다.이때의 인연으로 나중에 주인공 그리뇨프와 연인 마리야 이바노브나(대위의 딸)가 죽을 고비에 처해 있을때, 뿌가쵸프가 살려주게 되는데. 결국 반란의 실패로 뿌가쵸프는 처형되고,그리뇨프와 마리야는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이다.


뿌쉬낀이 죽기 1년전인 1836년 완성된 이 소설은 예까쩨리나 여제의 치세때인 1773년 뿌가쵸프반란을 모티프로한 역사,모험,연애소설이랄 수 있겠다. 러시아 민담과 낭만주의 영향도 있는 듯하다. 번역자의 역량이 합쳐져서 그러겠지만, 이 소설은 지금의 현대소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유려한 문체와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다.


또한 뿌쉬낀은 이 소설에서 인물의  생생한 성격창조에 성공한 듯 보이는데 개인적으론 이 소설에서 '사벨리치'라는 주인공의 하인이 인상적이다.능청스러우면서도 충직한 하인의 모습. 


"자,자, 사벨리치! 이제 그만 화를 풀게,내가 잘못했네.""에이 참 뾰뜨르 안드레이치 도련님!"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저는 저 자신한테 화를 내고 있는 거랍니다. 모든게 다 제 잘못이지요. 어쩌자고 도련님을 여관에 혼자 두고 나갔을까요!"(22쪽)


"뾰뜨르 안드레이치 도련님!"사벨리치가 내 뒤에서 등을 쿡쿡 찌르며 속살였다. "제발 고집 부리지 마세요! 그래 보았자 뭐 좋을 게 있다고요? 침 한번 탁 뱉고 저 악당놈(아뿔사!)...아니 저분의 손에 키스하세요."(99쪽)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도련님?" 사벨리치가 내 말을 가로 막았다. "제가 도련님을 혼자 가시게 할 것 같습니까? 꿈에라도 그런 생각일랑 마십시오. 정 가시겠다면 걸어서라도 쫒아가겠습니다. 도련님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134쪽)


다만 아쉬운 점은 무슨 이유에선지( 정치적인 이유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마지막 결말이 너무 성급하게 서둘러 마무리된 듯한 느낌이다. 주인공의 감옥생활과 뿌가초프 재판 과정, 그들의 의견이 피력되는 장면이 이어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래야 소설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튼 소설은 지나친 우연으로 성급한 결말에 이르게되는데 마리야가 공원 산책중에 예까쩨리나 여제를 만나 수감된 그리뇨프의 사면을 청하고 선처를 받게 된다는 내용이 그렇다.(실제로 푸시킨을 사면해준 황실의 은덕에 대한 찬양?) 또 하나 덧붙여 언급할 것은 이름에 대한 것인데, 지명과 인명이 러시아어 원음에 가깝게 번역해서인지는 몰라도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이름과 상당히 달라 어색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예카테리나, 푸시킨,모스크바,페테르부르크,푸가초프" 등이 'ㅌ' 가 'ㅉ'로 'ㅍ'가 'ㅃ', 'ㅋ'가 'ㄲ'로 옮겨씌여 있는데, 이러한 문제는 러시아어 뿐만 아니라 독일어 번역에서도 나타난다.


 최근엔"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젊은 베르터의 고뇌"로 나오고 있다. 일제 잔재의 영향에서 벗어나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는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긴 하지만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데는 다소의 노력이 필요할 듯 싶다. 내겐 너무 익숙한 술과 담배...끊지는 못하더라도 올해는 건강을 위해 좀 줄여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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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1-03 2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여제가 결말을 부르는 데우스(deus)인가 봅니다.. ㅎㅎㅎ

제 글에 항상 ‘좋아요‘ 눌러주고 댓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의 목표 꼭 달성하길 바랍니다. ^^

sprenown 2018-01-03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사이러스님!
저는 올해 특별히 계획하는 목표는 없구요, 그냥 아프지 않고 이렇게 일주일에 책한권 정도 읽고 살수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사이러스님, 건강하시고 복된 한해되시기 바랍니다

항상 겸손하신 태도와 좋은글을 통해 많은걸 배웁니다.^^.

AgalmA 2018-01-08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prenown님 안녕하세요^^
송구하게도 님 글을 처음 읽는데 재밌는 문체시네요.
실례가 아니길 바라며 러시아 소설의 수다스러움(러시아 소설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사벨리치, 뾰뜨르....‘ 이름 어감마저 수다스럽게 느껴지는^^;)과 잘 어울리세요ㅎㄱㅎ
어쩌다 들른 김에 새해 인사 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술, 담배와의 열혈 사투! 승리하시길-_-!

sprenown 2018-01-08 2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고맙습니다. 문체운운할 수준이 아닙니다.간신히 읽고, 겨우씁니다.agalma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