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인 러시아 - 경제연구소의 인문학자가 들려주는 러시아의 역사.문화.경제 이야기 줌 인 러시아 1
이대식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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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많이 쓰지 않지만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말이 있다. 이장,동장,면장할 때의 면장?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면장은 기초지방자치단체의 말단 행정기관장인 面長이 아니라 면할 면免,,담 장牆을 쓰는 면장이다. 논어 양화편에 나오는 말이라는 데 눈앞의 담처럼 캄캄한 상태,무지한 상황를 벗어남을 뜻하는 말이겠다.


"경제연구소의 인문학자가 들려주는 러시아의 역사,문화,경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최근 푸시킨의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 과 [니진스키 영혼의 절규]라는 전기물을 접하면서 러시아 문학작품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실상 작품의 배경이 되는 러시아 라는 나라에 대해 나 자신이 매우 무지하다는 각성에서 찾게 되었다. 확실히 나 같이'러시아 면장'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러시아 역사나 문화,예술,종교(러시아 정교)에 대한 기초지식을 습득하면서 흥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맞춤한 책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밥벌어 먹고 살고 있는 저자 이대식으로서는 경제적으로 우리 기업의 러시아 진출을 돕고,블루오션을 찾으려는 노력을 진전시키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목적이 될 터여서, 이 책은 깊이 있고, 분석적인 역사,문화 해설서의 역할을 하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독자가 러시아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도록 러시아 입문서로서의 기능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인데, 꽤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다.게다가 19세기 러시아문학을 공부한 이력에 부합하게 저자는 러시아문학과 예술분야의 서술에서 특히 상당한 필력을 과시한다. 


내가 좋아하는 도스토옙스키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

"여기서 도스토옙스키는 이름이 아니라 성이다. 가문의 선조가 '도스토예보'라는 마을을 소유했기 때문에 이 지명에 '~의 사람'이라는 형용사 어미 '스키'가 결합되어 '도스토예보 사람' 즉 '도스토옙스키'라는 성씨가 만들어졌다.레오나르도 다빈치에서 다빈치가 '빈치 마을 사람'이라는 뜻인 것과 유사하다. 이탈리아에서 '다'에 해당하는 것이 러시아에서는 '스키'다. 우리에게 익숙한 차이콥스키, 칸딘스키 등이 바로 러시아 성씨들이다."(18쪽)


저자는 도스토옙스키가 모서리집에 살았던 이유는 빚쟁이들에게 쫒기던 그가 시야확보를 통해 쉽게 도망가기 위해서라든지, 속기사로 일하다가 도스토옙스키와 만나 그의 동반자이자 구원자가 된 아내 안나 스니트키나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서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 푸시킨,톨스토이,체호프,파스테르나크,솔제니친.그리고 유명화가 이반 아이바좁스키<아홉 번째 파도>,니코 피로스마니<여배우 마르가리타>,카지미르 말레비치<검은 사각형>,마르크 샤갈<도시 위로> 의 삶과 예술혼,대표작에 대해 재미있으면서도 가슴아픈 에피소드를 함께 소개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가는 그의  글솜씨가 일품이다.


러시아어로 '아름답다'를 독자가 절대 잊지 않도록 상상력을 발휘하는 저자. 그의 비법을 보자.

"솔로몬을 유혹했던 시바의 여왕이 환생하여 러시아를 정복하기 위해 러시의 솔로몬이라 할 만한 표트르 대제를 방문합니다. 하루종일 온갖 교태로 황제를 유혹한 후 드디어 밤이되자 표트르의 침실에 슬그머니 들어온 시바의 여왕.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대제에게 최후의 결단을 묻습니다.'폐하, 불 끌까요?' 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표트르대제는 이렇게 대답하지요. '끄라시바야!'"

러시아어로 아릅답다는 말이 바로 '끄라시바야'이다(23쪽) 


참고로 고맙다는 '쓰빠씨바' 란다. ㅎㅎ. 이렇게 능청스럽고, 재미나게 러시아의 문화와 전통, 역사를 설명해주는 이 책에서 단연 내 눈에 띄는 대목은 얼마전 [니진스키 영혼의 절규]를 읽어서 인지 세계 최고인 러시아 발레를 소개하는 부분이다. (영국 로열발레단, 프랑스 파리 오페라 발레단 등 다른 대표적 발레단의 단원규모가 100여명에 불과한 반면 러시아의 볼쇼이발레단과 마린스키 발레단은 단원이 2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러시아 발레는 도대체 어떻게, 언제부터 세계최고가 된 것일까?


"사실 발레는 본래 러시아가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기원한 것으로,1400년대 이탈리아귀족들이 영주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 앞에서 직접 춤을 추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1547년 피렌체의 공주 카트린 드 메디치가 프랑스 국왕 앙리2세에게 시집가면서 프랑스로 전해졌고,이로부터 한세기가 지난후 태양왕 루이14세에 의해 본격적으로 꽃피우게 된다.루이14세는 늙어 뚱뚱해져 춤을 출수 없을 때까지 직접 발레공연을 할 정도로 발레광이었다. 그의 명령으로 1661년 세계최초의 왕립 발레학교가 세워져 전문 발레 무용수가 등장했다."(154쪽)


이때부터 프랑스 파리가 명실상부한 세계 발레의 메카로 군림했는데, 발레공연을 처음 접한 로마노프왕조의 2대왕이자 표트르대제의 아버지였던 알렉세이왕이 공연에 완전 매료되었으며 이어 계몽군주 표트르 대제는 유럽의 무도회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무도회를 개최하면서 귀족들은 반드시 자신의 딸과 동반출석 하도록 법으로 정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러시아 황실은 러시아 발레의 발전을 위해 1738년 왕실 발레학교을 열고, 오직 세계 최고의 발레전문가만을 지도자로 초청하여 교육시키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역시 문화나 예술이라는 것은 국가가 긴 안목으로 집중적인 투자를 해야지만 최고 수준에 도달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처럼 근시안적인 예술,문화,교육정책으로는 그 길은 요원해 보인다. 참고로 발레에 뜻이 있는 자가 있다면 우리 한국인의 짧은 다리를 탓하지 말지어다. 니진스키 역시 다리가 짧은데도 이러한 신체적 결함을 훌륭한 테크닉과 뛰어나 감정표현으로 이겨냈으니말이다.ㅎㅎ.


이 책 한권 읽고, 러시아 면장했다고 말하기는 쑥스러운 노릇이다. 이 매력적인 나라에 언제 여행을 가볼까? 그런데 워낙 추워서...ㅎㅎ.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 발레공연 관람은 고사하고,  이 겨울,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 등 러시아 대문호의 고전들이나마 꼼꼼히 읽으면서 인생에 대해 좀 더 깊이있게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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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7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prenown 2017-12-17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한동안은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식이라는 게 편견,오류투성이인 경우가 많지요...책의 경우도 그런것 같습니다. 막연히 읽었다고 생각하는, 대충의 줄거리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고전들...이 참에 처음부터 제대로 꼼꼼히 읽어볼 생각입니다.^^.

cyrus 2017-12-18 1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냥 무턱대고 러시아 소설 읽기를 도전하다가 낭패를 봤어요. 역시 러시아 문화를 잘 모르면 러시아 소설의 매력을 느낄 수 없어요. ^^

레삭매냐 2017-12-20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빵~ 터져 버렸습니다.

표트르 짜르의 그 한 마디, 끄라씨바야~!
옴마 멋져 부러

아, 단순한 문화보고서가 아니라 경제연구소
출신 연구자가 러시아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참고서로 마련했나 보네요. 대단합니다.

sprenown 2017-12-20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로 저자분이 로쟈님과 같은과 동기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