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당신이 꼭 읽었으면 하는 소설'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다. 기대하면서 읽었다.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들의 이야기, 현실을 반영한 소설만큼 황금빛 이야기는 없지만 그래서 더 사실적이다.
<어비>의 화자는 매일 출근해서 성실하게 일하는 것만이 당당하게 돈을 버는 거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화자 입장에서 어비가 먹는 걸 보여주며(먹방) 돈을 버는 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돈을 버는 데에 제대로 버는 것과 제대로 벌지 못한다는 경계가 있을까? 일에 가치를 따지자면 땀 흘리며 버는 일은 가치 있고 먹방을 찍으며 버는 돈은 가치가 없을까?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일반 회사원 연봉을 넘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땀 흘려서 버는 것만이 가치 있는 일이고 일 다운 일이라는 생각은 그저 화자 머릿속에 새겨진 오래된 기준은 아닐지.
<가만한 나날>은 <제 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블로그에 거짓 후기를 남겼던 화자, 자신의 후기를 보고 믿고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했던 사람의 갓난아기는 죽고 큰 아기는 산소치료에 연명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혹시 화자도 피해를 봤으면 도와준다는 글을 '너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되었다'고 오해한다. 이내 그것이 아니란 걸 알고 지금까지 자신이 무엇을 해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저 가상의 인물 하나 정해서 실제로 사용해 본 척 후기 올린 것, 다들 그렇게 하는데 뭐가 잘못된 건지, 심지어 이 직업이 자신에게 맞다고 말해온 날들. 그랬던 직업이 이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부끄러운 일이다.
<기도>에서 언니는 공무원 준비를 '인영'은 과외를 하면서 하루하루는 버티고 있다. 9급 공무원 시험서는 팔지도 않는 신림동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열등감을 느낀다. 더 이상 나아질 것 없어 보이는 미래. 그 미래로 가는 골목에서 자매들은 버티며 살아간다. 많은 청년들이 이렇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겠지.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버티면서.
<저건 사람도 아니다>에서는 요즘 사회에서 요구하는 슈퍼우먼역할을 대신해서 로봇이 도와준다는 이야기다. 일도 잘하고 야근도 하고 아이도 잘 보고 집안일도 잘하는 여성이 있나? 뭐 있을 수도 있겠지만 꼭 그래야 할까? 자기 수명 갉아먹으면서 무리를 해서 살아가야 하는 게 당연한 건 아니다. 슈퍼우먼이라는 말도 필요 없이 여성들에게 많이 붙여진다. 결국 트윈 로봇의 힘을 빌려 집안일의 부담만 덜었던 화자는 회사일까지 맡게 되는데 이후 자신의 설 자리는 없어진다. 회사에서도 완벽하다고 느껴졌던 홍의 추레한 행색을 길거리에서 마주한 화자. 그렇다. 미혼이든, 기혼이든,, 애 엄마든 아니든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간이 되려면 정말로 로봇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를 묻다>는 택시 아저씨에게 콜센터 이야기를 하는 화자. 늘 욕을 먹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 가며 살아가는 콜센터 직원들. 그러다 개인정보 문제가 불거졌고 모욕의 수준은 더 깊어진다. 그 와중에도 네네, 해야 하는 감정 노동자들.. 그러다 어떤 고객의 "괜찮으세요?" 한마디에, 인간 취급하는 그 한마디에, 노동자들은 울음바다가 되어버렸다. 감정노동자, 이제는 멘트에도 '그들도 우리 가족이니 소중히 대해달라'는 둥 일자리 바로 옆에 존중해달라 쓰여있지만 예전에는 잘못된 광고 '손님이 왕이다!'때문에 많이들 가슴속이 많이 죽어갔다. 자살도 많이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