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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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순간 삶이라는 게 얼마나 혹독한지 비로소 알 것 같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하나의 산이 나타나고 또 다음 산이 나타나고, 어떤 기대감에 산을 넘고 마침내는 체념하면서산을 넘고, 그럼에도 삶은 결코 너그러워지는 법이 없다. 관용 이나 아량을 기대할 수 없는 상대. 그러니까 결국은 지게 될 싸움. 져야만 끝이 나는 싸움.

그리고 아프게 깨달았다.
이대로 딸애를 계속 당기기만 하면 결국 이 팽팽하고 위로운 끈이 끊어지고 말겠구나. 이대로 딸을 잃고 말겠구나.
그러나 그게 이해를 뜻하는 건 아니다. 동의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내가 쥐고 있던 끈을 느슨하게 푼 것 뿐이다. 딸애가 조금 더 멀리까지 움직일 수 있도록 양보한것뿐이다. 기대를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또 무언가를 버리고계속 버리면서 물러선 것뿐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딸애는 정말 모르는 걸까. 모른 척하는 걸까. 모르고 싶은 걸까.

언젠가부터 나는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천천히 시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뭐든 무리하게 바꾸려면 너무나 큰 수고로움을 각오해야한다. 그런 걸 각오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좋든 나 쁘든. 모든 게 내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선택했으므로내 것이 된 것들, 그것들이 지금의 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
‘람들이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과거나 미래 같은, 지금 있지도 않은 것들에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리는 동안 허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아까 운지. 그런 후회는 언제나 남은 시간
‘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들의 몫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무엇이든 경험하지 않고 말로만 듣고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일이니까. 특히 힘이 세고 단단한 젊음으로 무장한 지금의 딸애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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