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철학사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 지음, 박민수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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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위해 나는 믿는다 credo ut intelligam˝라는 유명한 말은 안셀무스의 입장을 단적으로 표현해 준다.

안셀무스의 유명한 신 존재 증명(존재론적 방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신이란 그보다 더 큰 것은 아무것도 생각될 수 없는 무엇이다. 만약 신이 오직 지성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보다 더 큰 것은 아무것도 생각될 수 없는 무엇보다 훨씬 더 큰 것이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신이 지성에서만 존재한다는 가정은 결국 모순을 포함하며 따라서 그릇되므로, 신은 지성에서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존재한다.

360쪽.

아벨라르의 원칙은, ‘이해하기 위해 나는 믿는다‘ 라는 안셀무스의 신조와 정반대로 ‘믿기 위해 나는 이해한다 intello ut credam‘ 로 표현될 수 있다. 아벨라르는 그의 윤리학에서 외적인 업적보다는 그런 업적을 발생시킨 내면의 심성을 중요시했다. 그의 윤리학적 주거는고대 그리스 문구인 ‘너 자신을 알라‘ 를 제목으로 달고 있다.

실재론자의 공식은 ‘일반개념은 (개별) 사물보다 앞서 존재한다.
universalia ante res 였다. 유명론자의 공식은 ‘일반개념은 개별 사물뒤에 존재한다universalia post res‘ 였다. 

이제 아벨라르의 공식은 ‘일반개념은 사물들 속에 존재한다 universalia in rebus‘ 이다. 이 공식에 따르면, (기욤처럼) 개별 인간이 아니라 ‘인간‘ 이 현실적이고, 개개의 말이 아니라 ‘말 이 현실적이라 주장하는 것은 부조리하다. 보편자의 구체화인 개별 사물들과 개체간의 차이를 비본질적인 것으로 무시해비릴 수는 없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로스켈리누스처럼) 오직 개별자만이 현실적이고 본질적이며 일반개념은 한갓 이름이라 말하는 것도 그릇되다. 왜냐하면 일반개념에 포괄되는 개별 사물들 내에는 본질의 실재적 동일성이 존재하고 이것이 일반개념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단지 일정한 공통적 징표 때문에만 인간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개념은 모든 인간에 존재하는 보편적 인간성이라는 동종의 현실성에 상응한다.

3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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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철학사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 지음, 박민수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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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의미에서 스콜라철학의 방법은, 다음 절에서 상세히 논의될 아벨라르가 개발하고 이를 모범으로 삼아 대다수 스콜라철학자들이 사용한 특수한 방법적 과정을 가리킨다. 이는 일정 견해와 관련해서 그 찬반 논거를 변증법적으로 대질시키는 방법이다. 

이런 이유에서이 방법은 ‘프로 에트 콘트라pro et contra (찬성과 반대)나 ‘시크 에트 논sic et non (예와 아니오 - 이는 아벨라르의 저작 제목이기도 하다)이란 명칭으로 불렸다. 

그런데 스콜라철학의 특성은, 이런 방법적 과정에서 논거들이 ‘현실에 대한 직접적 관찰‘이나 ‘선입견 없는 이성적 고찰‘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한 논거들은 선배 사상가나 교부들의 요구 및 성서 자체의 내용에서 도출된다. 

즉 스콜라철학자는 어떤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선배 사상가들의 모든 참고할 만한 관점을 조사해서 서로 비교하여 그 타당성(내지 권위)을 고잘하고 또 비판적 검증도 마친 후에- 흔히 다양한 견해가 중재되거나 종합된- 결론을 얻어 낸다.

355쪽

여기서는 (우선) 두 가지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보편자에 대해 개별자보다 더 높은 현실성을 부여하는 입장은 ‘실재론Realismus‘이라 불린다. 

이와 대립하는 입장은, 개별자만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하다. 그에 따르면, 보편적 개념은 현실이 아닌 오직 우리의 지성에서만 존재하며 따라서 한갓 이름에 불과하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이 입장은 ‘유명론Nominalismus‘ 이라 불린다( ‘이름‘을 뜻하는 라틴어 ‘노멘nomen‘ 에서 유래한 명칭).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중세의 ‘실재론‘은 오늘날의 언어 사용에서와는 다른 의미, 아니 정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에는 ‘실재론자(현실주의자)Realist라 하면 우리를 둘러싼 시공간의 현실을 믿는 사람을 가리키며, 반면 관념론자(이상주의자)Idealist 라 하면 이 세계를 한갓 ‘현상‘으로 여기고 그 배후의 참된 현실, 즉 이념을 추구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스콜라철학에서 뜻하는 실재론은 오늘날에 관념론이라 불리는 것과 일치한다. 즉 여기서 실재론은 개별 사물보다 보편적 이념에 더 높은 지위와 현실성을 부여하려는 신념과 학설을 가리킨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 아리스토텔레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명료한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따라서 보편 논쟁에 관여한 유파들 모두가 아리스도텔레스를 논거로 삼을 수 있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이 아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본다면 실재론자들은 플라톤과 신플다돈주의로 좀 더 기울었고, 유명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 특히 후기 스콜라철학에서 - 점점 더 유명해지고 높은 평가를 받을수록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3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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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도‘가 말할 수 있다면

도가 말할 수 있으면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름이 이름 지을 수 있으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 없음이란 천지의 시작이고, 이름 있음이란 만물의 어머니다.
그러므로 늘 하고자 하는 것이 없어 그 미묘함을 보고자 한다.
늘 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 그 귀결점을 보려고 한다.
 이 둘은 같은 곳에서 나왔으나 이름을 달리하므로 그것을 함께 현묘함이라고 일컫는다. 따라서 현묘하고 현묘하여 온갖 미묘한 것들이 나오는 문이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故常無欲, 以觀其妙 常有欲, 以觀其3此兩者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妙之門


1장은 노자 사상의 총론에 해당된다. 첫머리 여섯 글자를 통해 노자는 ‘도道‘‘물物, ‘물‘과 ‘명名, 그리고 인人과 ‘물‘의 관계 설정에 고심하면서 명명한다는 것 자체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고,
오히려 그 본질을 해칠 수 있음을 말한다. 

노자는 도 외의 모든 것을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했으니, 의식 작용에 의해서 개념화되고 고정화된 현상계 또한 개별적이고 저차원적이며 변화무쌍한 상대적 세계인 것이다. 노자는 이런 상대적 세계를 ˝유명有名˝의 세계라 불렀으며, 이 유한한 세계 인식은 대상 사물을 의식에 표상함으로써 이뤄진다. 

노자에게 모든 경험적 세계의 인식은 전체적인 진리를 나누고 분별해서 파편적으로 개념화, 의미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현상세계는 본래 저 스스로 그러한 객관적 존재이지만, 우리의 주관적 의식지향으로 의식의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그 자재성과 객관성을 잃어버린 비본래적 존재가 된다.

표현 불가능함을 역설한 노자의 말은 오히려 ‘도‘도 부득이하게 언어에 의해서만 밝혀지고 설명될 수밖에 없다는 역설로 이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노자 자신이 표현 불가능한 진정한 ‘도‘를표현하기 위해 텍스트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노자의 ˝도가도, 비상도˝는 의미에 간섭하는 역할로서의 언어, 중재와 안내를 맡는 언어의 기능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막대기를 물속에 집어넣으면 굽어 보이는 것은 바로 물이라는 물질이 간섭하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언어 역시 존재를 간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노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까? 언어가 존재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주장은 언어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왔을까?  

원문의 ˝상무욕, 이관기묘常無欲,以觀其妙˝는 사물을 이러저러한 그림이나 문자로 표현하지 않고 존재를 직접 파악하는 것이다. 

32쪽

비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작위는 현상의 부분만을 포착하는 ‘불완전한 인식‘과 만족할 줄 모르는 무절제한 욕구에 그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그러한 ˝자연˝과는 정면으로 대립된다.

노자의 관점은 형이하학적인 언어로 최고의 형이상학인 ‘도‘를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자는 언어 회의론자임이 분명하다.

언어가 소통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상식은 노자에게 완서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거짓말이 되며 그런 이유로 노자 언어의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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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노자의 사유세계와 사상 체계

노자는 ‘도‘와 ‘자연‘ 그리고 인생을 이야기했다. 거창하게 말해서,
우주론, 인생론, 정치론이 두루 갖추어진 텍스트가 바로 <노자>다.

노자의 모든 철학은 전적으로 ‘도‘라는 글자로 집약되며, 노자 사유의 근간을 이룬다. 노자는 우주의 본질이 ‘도‘이며 천지만물이 도로부터 탄생한다고 확신한다.
 ‘도‘는 형상도 없고 형체도 없는 황홀한 것으로 천하의 시작이 되고, 만물의 어머니가 되며, 써도 다하지 않고, 취해도 마르지 않는 물가사의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도에 따르는 ‘덕‘은 무엇인가. ‘덕은 ‘도‘의 작용이며 ‘도의 드러냄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는 전체와 부분의 다름이지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만물은 ‘도로 회귀되기 때문에 ‘도가 무궁해야만 만물 역시 끊임없을 수 있다. ‘도‘라는 본체의 운동은 순환 반복하므로 우주만물도 자연적으로 반복하며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노자는 약한 곳에 처하고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은 강함의 기초가 된다고 역설한다.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은 ‘도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고, 그러므로 강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약은 결코 오늘날 통용되는 의미의 유약이 아니다. 노자가 즐겨 사용한 ‘허
‘정‘ ‘비‘ ‘하下 곡 ‘왕任‘ ‘자‘ ‘빈批‘ ‘색‘ ‘퇴‘ 등의 단어는 ‘약‘의 의미를 확장한 것으로 모두 노자 사유의 주축을 이룬다.

  노자의 사상은 정교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접근할 수도없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탁견과풍부한 인생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단단함이 돋보인다. 

22쪽

노자의 책이 법가인 한비에 의해 절대 군주의 처세서로 재평가된 것은 매우 역설적이고 이례적으로 보인다.

노자의 사상은 법가에 계승되면서 한 문제가 ˝겉으로는 도가, 안으로는 법가˝라고 일컬어지는 통치 유형을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삼국시대를 연 위나라 조조의 정치적 기반을 구축한 강력한 힘으로도 작용했다.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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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4장에 의하면 비극과 희극의 출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두 종류의 시인이 있는데, 각각 그들의 성질에 따라 한 사람은 풍자시를 버리고 희극시의 작자가 되었고, 또 한 사람은 서사시를 버리고 비극시의 작자가 되었다.˝

이들의 극시가 종래의 서사시나 풍자시보다 위대하며 고생했기 때문이다.

비극은 디시람보스(디오니소스 신에 관한 찬가)에서 일어났고, 희극은 이와는 반대로 생식기를 숭배하는 노래에서 발단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예술가는 행동하는 인간을 모방하는 자‘라고 하였다. 예술 활동이 모방이라고 하는 사상은 그리스인의 통념이었다. 

모방의 대상이 행동하는 인간이라면 여기에는 세 가지의 인간이 있다. 잘난 인간, 못난 인간, 동등의 인간이다.

이 중에서 제1의 인간을 대상으로 한 것이 비극이며, 호메로스이며, 또한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였다. 모방이란 형식에서 보면 서술적인 것에 대하여 인물이 현재 행동하고 있는 모습인데, 이것이 바로 극이다.

 극을 드라마(본래는 행위 행동의 뜻)라고 일컫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엄숙한 시혼을 가진 시인은 고귀한 행위와 고귀한 사람들의 행위를 묘사하였다. 극이란 행동하는인간을 모방하는 것이었으며, 비극은 엄중한 소재로 행동하는인간을 다루는 것이었다.


행동이 되기까지에는 선택의 자유와 결의를 전제로 하며, 또한 여기에는 행동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실 속에는 자유가 없다. 신의 지배, 인간의 신적인 의지에는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다는 운명사상은 그리스인의 전통 정신이다.

자유와 필연, 운명과 인간, 신과 인간의 관계를 행위를 매개로 꿰뚫어 보려는 것이 그리스 비극이다.

인간 생활의 심화이며, 이 심화는 일시적이거나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하며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리스 비극을 처음 상연한 것은 기원적 534년 페이스트라토스 시대 디오니소스 제사에서였다. 기원전 5세기, 비극의 상연은 국가적 행사로서 한 번 상연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었는데, 시민 중에서 유력한 이가 모두 이것을 부담하였다.

당시 폴리스는 지금과 달리 시민과 별개의 것이 아니고 일체로 되어 있었으며, 비극의 상연은 다 같이 ‘우리‘의 경연이라고 자처하였다.

희극에서는 코로스 대원의 웃옷으로 인물의 사회적 지위, 직업, 국적을 구별하였다. 여기에 사용한 가면도 매우 복잡하였다.

가면의 주목적은 웃게 하는 데에 있었다. 사람을 비롯하여 신화상의 인물은 말할 것도 없고 거리, 섬, 상선, 구름, 온갖 동물 등을 의인화했다.

그리스 희극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이 웃게 하였으나 그 정신은 ‘현실 사회 비판‘에 있었으며, ‘위정자들에 대한 풍자‘가 위주였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인 「여인의회 (기원전392년 또는 389년)는 당시 사회극으로서 적절한 예이다.
그리스 희극은 3기로 나눈다. 고희극은 기원전 5세기, 아리스토파네스가 이를 대표하며, 중기 희극은 기원전 4세기 30년경까지, 그 이후를 신희극이라고 부르며 이를 대표하는 이는 메난드로스였다. 고희극과 신희극은 전체적으로 보아 서로 매우 다르며, 중기 희극은 양자 간의 과도기에 속한다. 그리스 비극에서는 시기를 나누거나 성질의 차이를 찾을 수 없다. 그리스 비/희극의 쇠퇴기를 따진다면, 대체로 비극은 기원전 4세기 이후이며,
희극은 기원전 3세기 이후이다.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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