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스타일 - 지적생활인의 공감 최재천 스타일 1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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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자연스러운 스타일(문체)을 보면 상당히 놀라고 반가워 한다. 왜냐하면 작가를 만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인간을 만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일이 이제 직업처럼 되고, 얼떨결에 ‘교과서에 등장하는 작가‘까지 되어 버린 나는 이렇듯 ‘자연스러운 스타일‘의 글을 쓰고싶다.

 오래전부터 내가 부르짖고 다니는 게 있다. ‘현명한 인간‘ 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를 버리고 ‘공생인‘ 즉, ‘함께 사는 인간‘ 이라는 뜻의 호모 심비우스 Homo symbious를 채택하자는 것이다. 

현명을 빙자한 무차별적인 경쟁보다 서로 손잡고 함께 가는 것이 진정한 현명함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지극히 계산적인 공생을 말하는 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공생은 ‘공감‘을 바탕으로 하기에 그 온도는 뜨겁고 그 힘은 더욱 강력할 수밖에 없다.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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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사 - 개정판
S.P.램프레히트 지음, 김태길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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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티노스의 철학은 무엇보다도 온갖 형태의 이원론을 배격하는데 그 특징이 있다. 있는 것은 오직 하나의 존재 계열, 실로 여러 단계의, 그릭 온갖 종류의 존재물들을 포함하는 거대한 존재 계열뿐이라는 것이다.

이 전계열이 의존하고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의 존재의 근원이 되는 것은 플로티노스가 보통 ‘일자‘라고 부른 한 중심원리이다.

148쪽.

플로티노스가 신비주의자였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의 신비주의는 신피타고라스 학파나 그노시스주의자들과 같은 신비적 종파들의 신비주의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결코 유한한, 그리고 가시적인 세계를 물리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유한하고 가시적인 세계 속에 무한하고 불가시적인 것이 재림해 있음을 느끼는 신비주의였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일자는 초월적인 것이다. 일자는 미(美)에 있어서 초월적이요, 선(善)에 있어서 초월적이며, 존재의 완전성에 있어서도 초월적이다. 

그러므로 일자는 그것의 무한성의 불충분한 표시(이것을 우리는 유한한 것들 속에서 찾아볼수 있는데)보다도 훨씬 더한 것이다. 

사람은 과연, 마침내는 유한한 현실세계를 넘어서 ‘초월적 일자와 합일‘하는 경지로 올라가기를 희망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플로티노스는 역시 진지하게 일자는 내재적이기도 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일자는 무한성이 나타날 수 있는 데까지 유한한 것 속에드러나 있다. 

일자는 이 유한하고 가시적인 세계의 특색을 이루는 낮은계의 미, 낮은 단계의 선, 그리고 낮은 단계의 존재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149쪽.


일자는 완전한 존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후의 논자들의 말을 빌리면, 그 결과로서 생기는 ‘존재의 충만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유한한 존재가 있는 한, 그것도 역시 일자와 마찬가지로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불완전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요, 따라서 그것은 오직 불완전하게 선하고 아름다울 뿐이다. 

비존재(非存在)는 일자와 대립하는 또 하나의 존재가 아니다.
비존재는 일자의 존재성이 감소되어 가는 관념상의 한계, 그것도 결코 완전히 도달될 수 없는 한계를 말하는 것이다.

 플로티노스는 비존재를 ‘물질‘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가 사용한 이 말은 플로티노스를 연원으로 하는 전통 속에서 많은 혼란을 야기시켜 왔다. 그 까닭은 ‘물질‘ 이라는 말이 대부분의 사상 체계(데모크리토스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체계 또는 이원론적 사상 체계와 같은)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플로티노스가 말한 뜻의 물질은 전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것은 실재적인 존재로서는, 혹은 독립적인 것으로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플로티노스의 용어상의 물질은 동시에 일자 자체를 제외한 모든 것의 한 모습이요, 필연적인 양상인 것이다. 왜냐하면 일자를 제외한 모든 것은 완전한 존재가 못되는 것이요, 다시 말하면 플로티노스가 말함직하고 또 실제로 말한 바 있는, 일자 이외의 모든 것은 물질적 제한을 받거나, 또는 존재와 비존재와의 혼합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질성(物質性)이라는 것은 유한한 것들과 그것들의 근원인 일자와의 사이의 상대적 거리를 표시하는 존재성(存在性)의 감소를 가리키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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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고전예술 편 - 미학의 눈으로 보는 고전예술의 세계 진중권의 서양 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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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인과 달리 고대인은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올림포스 산정에서 신들과 더불어 세계를 영원한 모습 아래 내려다보는 것이 그들의 이상이었다. 르네상스는 이 고대적 믿음의 부활인지도 모른다.

사람을 ‘영원의 상 아래에서‘ 본다는 스피노자의 합리주의적 인식론은 곧 세계를 신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저 날개 달린 눈이야말로 ‘신의 눈‘이 된 ‘인간의 눈‘이 아닐까?

화가 개개인의 주관적 능력을 떠나, 사물을 정확히 재현하는 ‘객관적‘ 시각은 없을까? 만약 그런 보편적이면서 객관적인 시각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사물을 ‘영원의 상 아래에서‘ 보는 신의 눈에 가까울 것이다.

89쪽.


중세 예술이 초월적 세계를 가시화하려 했다면, 르네상스 ‘화가의 임무‘는 가시적 세계를 재현하는 데 있었다.

회화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우리 눈앞에 데려다주고, 이미 몇백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일지라도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처럼 생생하게 보여주는 신적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원격현전 tele-presence의 능력을 알베르티는 ‘신적인 힘‘이라고 부른다.

97쪽.

회화의 임무가 가시적 세계의 재현으로 바뀐 이상, 초월적 빛을 상징하던 금이 화면에 남을 이유도 사라진다. 물감으로 연출한 색채와 광휘는 초월이 아니라 세속에 속한다.

물감으로 빛과 금의 효과를 낼 때, 화폭의 내부는 철저히 시각적 가상이 된다. 그림 속의 빛과 금은 진짜가 아니라 물감에 불과하다. 이로써 실재와 가상, 사물과 기호는 철저히 분리된다.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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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투쟁기
김흥식 지음 / 그림씨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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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
雜學 - 여러 방면에 걸쳐 체계가 서지 않은 잡다한 지식이나 학문.

박학
博學 - 배운 것이 많고 학식이 넓음. 또는 그 학식


무선無線은 실이 없다‘ 라는 뜻이니, 과거 책을 실로 꿰매 만들던 방식과 비교해 실을 사용하지 않는 제본 방식이라는 말이다. 

실로 꿰매는 대신 접착제로 붙인 것으로 가격이 싸다. 한편 무선 제본과는달리 양장洋裝 제본은 두꺼운 표지를 덧대어 만든 제본 방식으로,
‘서양에서 들여온 제본이라는 뜻일 것이다.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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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이 무조건적으로 지급되면 사람들이 여러 일자리 제안에 대해 거부하는 것도, 응낙하는 것도 더 쉬워진다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시켜야만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기본소득은 사람들이 갈수록 더 수동적이고 무기력해지는 현재의 상태를 대충 묻어두고 넘어가기 위한 편리한 도구로서 의도된 것이 아니며, 그런 상태를 장려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점 또한 널리 알려야 한다. 

또 현재와 같은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에 불필요한 노동자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두려는 것도 아니다. 기본소득은 모든 남성과 여성이, 스스로의 삶에 지닌 열망과 계획에 부합하는 의미 있는 직업에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줄 필수적인 도구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똑똑히 알려야만 한다.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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