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고의 과학 저술상‘ 수상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앨런 와이즈먼의 과학논픽션. 타임지로부터 ˝전 세계가 함께 읽어야 할 올해 최고의 논픽션˝이라는 극찬을 받았고, 전 세계 20개국에 번역 출간되었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에서 영화화를 결정하는 등 출간 이후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지은이인 앨런 와이즈먼은 ˝지구상에서 인류가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지적 탐험을 떠난다. 그리고 인간 없는 세상의 모습이 어떠할 것이며, 인류와 함께 사라질 것들과 인류가 지구상에 남길 유산이 무엇인지를 찾아 나선다.

한국의 비무장지대를 비롯하여 터키와 북키프로스에 있는 유적지들, 아프리카, 아마존, 북극 등 전 세계의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고생물학자 · 해양생태학자 · 지질학자 · 한국 비무장지대의 환경운동가들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만나 인간이 사라진 이후의 세상을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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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이해하는 첫걸음>
: 역사를 통해 중국인들의 본심을 꿰뚫다


중국의 오랜 야망, 이를테면 다시 **강대국으로 우뚝 서서 지난날의 모욕을 씻고 말겠다는 다짐도 여전하다.

외국인들은 중국인들이 마오쩌둥 시대는 물론, 최근까지도 **전제주의 체제를 수동적으로 용인하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곤 한다.

중국인들은 일찍이 기원전 2000년 말에 세워진 최초의 왕조, 상나라 때부터 최고 권력자는 천자(天子)라고 하여 하늘에서 권력을 위임받았다고 믿는다.

천자는 정치적 우두머리이자 말 그대로 ‘하늘의 아들이다. 옛 정신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신의 통치로써 천계와 천계에 속한 힘을 인간계와 이어주는 존재인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 덕분에이 단 한 사람에게 집중될 수 있었고, 백성들은 독재와 수탈도 묵묵히 감내했다………. **적어도 나라가 번성하는 동안은 그랬다!!

**이민족의 침략, 기근, 홍수는 하늘이 국가 지도자를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이때는 **반란을 일으켜 왕조를 멸망시킬 수도있었다.

 중국에서 처음으로 이런 주장을 내세운 왕조가 기원전 1000년경에 일어난 주나라다.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왕조를 세운 정당성을이렇게 내세운 것이다.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하늘이 보시기에 더 이상 나라를 다스릴 자격이 없는 가문은 멸망시킬 수 있다는 논리로 권력의 교체가 이루어졌다.
 
**이런 관념은 중국인들의 집단 무의식에 아직도 뿌리 깊게 박혀 있으며 오늘날의 중국어에서도 그 자취를 볼 수 있다. 

** 한자어 ‘혁명(革命)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하늘의 명을 바꾼다‘는 뜻 아닌가! 비교적 최근이다 할 수 있는 1966~77년의 문화대혁명 때까지도 이런 논리가 통했다.

대중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정보가 널리 퍼진 까닭에 ‘천자‘ 개념에 사라졌지만 **어느 수준까지 권력, 숙명, 희생을 묵묵히 받아들이다가
**‘그 수준을 넘어서면 오래 참았던 만큼 크게 들고일어나 판을
아예 엎어버리는 중국인들의 성향은 변하지 않았다.


45쪽

<황금시대와 혼돈기>


**중국의 역사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와 경제적 풍요, 높은 수준의 과학과 문화를 특징으로 하는 제국과,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극심한 혼돈기가 교차하는 양상을 시종일관 보여준다.

***그런 탓인지 중국인의 의식구조에는 ‘혼란‘을 극도로 기피하는 성향이 있다.

 그리고 중국의 여러 황제들과 지도자들은 바로 이런 심리를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문화대혁명 당시에 홍위병들의 폭력 행위를 주도한 마오쩌둥이 그들의 해산을 명할 때에도 비슷한 논리를 내세웠다.

  **1989년의 톈안먼 사태나 1991년 소비에트 연방 붕괴 당시에도 공산당 선전부는 텔레비전 방송 같은 현대화된 수단을 쓰기는 했지만 여전히 대중의 뿌리 깊은 두려움을 작극하는 수법을 썼다. 

**늘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민주주의를 탄압했고 소련처럼 정치개혁에 나서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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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에 대한 형태의 우위>

이로써 형태가 완성되었다. 남은 것은 채색뿐이다. 회화는 형태와 색채의 두 요소로 이루어진다. 이 중에서 회화의 본령을 이루는 것은 어느 것일까? 이 물음은 17세기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화가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고전미술에서는 **색채보다 **형태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알베르티는 《회화론》(1435)에서 ˝소묘만 제대로 되어도 이미 그 자체로 훌륭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라고 말한다.

물론 색채를 강조하는 흐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바로크 회화는 색채(회화적 malerisch)를 강조하나, 그때조차도 그것을 형태보다.
더 중시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둘이 같은 정도로 중요하다고 보았을 뿐이다.

  색채에 대한 형태의 우위‘라는 원칙은 동시에 고전회화에서 색채가사용되는 방식을 의미한다. 즉, 고전회화에서 색채는 그 자체로서 독립적 가치를 갖지 못하고 주로 형태를 돋보이게 하는 데 사용된다. 

고전회화에서 형태의 소묘가 대상의 윤관을 따라야 하듯이, 채색 역시 대상 자체의 색채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그때 화면에 그려진 가상의 존재는 마치 실물처럼 생생하게 보이게 된다. 알베르티에 따르면, 회화의 기능은 이렇게 아득한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을 우리 눈앞에서 보듯이 생생하게 다시 가져다놓은 데 있다.

***‘재현‘이란 말 속에는 한때 있었으나 present 지금은 없는 absent 것을 다시 있게 한다 re-present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재현으로서 회화는 가상이며, 이 가상은 동시에 아름다워야 한다. 여기서 **‘아름다운 가상‘이라는 고전미술의 본질적 규정이 얻어진다.

25-27쪽

<이스토리아의 시각적 번역>

이제까지 고전미술의 ‘형식‘에 대해, 즉 고전미술에서 그림을 ‘어떻게(how)‘ 그리슨지 알아보았다. 이쯤에서 고전미술의 ‘내용‘으로 넘어가 보자. 고전미술은 ‘무엇을 what 그리려 했을까?

사실 고전미술에서는 형식보다 그 **내용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회화의 목적이 그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정신적 교훈을 전달하는 데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고전미술이 원근법적으로 구축된 공간 속에 소묘와 채색을 통해 실물을 방불케 하는 생생한 묘사를 한 것도 실은 환영 효과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신적 교훈을 더 생생한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고전미술의 중요한 특성이 도출된다. 

즉,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의 시각적 번역‘ 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고전미학을 완성한 철학자 헤겔은 미를 **‘이념의 감각적 현현‘으로 정의한 바 있다. 즉, 미란 정신적 메시지를 물질적 매체에 담아 표현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림으로 번역되는 텍스트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성서와 신화, 그리고 역사가 그것이다. 르네상스 이후의 회화는 주로 성서에 기록된 사건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장면, 혹은 역사적 위인들의 행적을 다룬 것이다.

말하자면 이 세가지가 고전미술의 주요한 ‘제재‘를 이룬다. 이렇게 회화의 제재로 채택된 이야기를 **‘이스토리아 istoria‘라 부른다. ‘이스토리아‘를 흔히 ‘역사 history‘로 옮기곤 하나, 그 말의 원뜻은 ‘이야기story‘에 더 가깝다.

미술사에서 말하는 역사화란 역사적 위인을 다룬 회화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그것은 성서든, 신화든, 역사든, 그 안에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들어 있는 그림은 모두 ‘역사화‘라 불린다.

27-29쪽

이처럼 미술이 문학에, 즉 **이미지가 텍스트에 종속되어 있떤 시대에는 그림의 품격이 주로 그 바탕이 되는 텍스트에서 나오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 결과 그 시절에는 다루어지는 제재의 중요성에 따라 장르 사이에 위계가 존재했다.

**그 서열의 맨 위에 있는 것이 ‘역사화‘다. 아무래도 그림 안에 이야기가 들어 있는 편이 도덕적 교훈이든, 종교적 교훈이든 정신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유리할 게다.

역사화의 바로 아래를 차지하는 것은 ‘인물화‘다. 비록 이야기가 없더라도 초상이나 자화상은 적어도 인물의 외간을 통해 **내면의 정신성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빈치의 모나리자, 렘브란트의 자화상.

인물화 아래에 있는 것은 *‘풍경화‘다. 풍경화 아래로는 정물화가 있다. 고전주의자들은 소유욕을 저급한 욕망으로 여겼다. 그런 그들이 정물화 못지 않게 경멸한 것이 바로 풍속화다. 네덜란드의 풍속화는 먼 훗날 도래할 대중민주주의 시대의 예술적 전조였다고 할 수 있다.

30-32쪽


<쿠르베와 사실주의 1>


과거의 미술은 자신을 **‘아름다운 가상‘으로 이해했다. 이 고전적 이념을 무너뜨린 것은 쿠르베의 사실주의였다.

사실주의는 19세기 과학적 실증주의, 사진술의 발명, 그리고 1848년 혁명이 낳은 예술이었다.

**과거의 미술이 신화나 성서 속의 허구를 그렸다면, 쿠르베는 자신이 눈으로 직접 목격한 민중의 **‘현실‘을 그리려 했다.

과거의 예쑬이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쿠르베와 같은 사실주의자들은 미술의 목표를 **‘진실‘에서 찾았다.

진실이 늘 밝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현실의 추하고 어두운 모습마저도 만약 그것이 현실이라면, 기꺼이 작품 안에 받아들이려 했다.

35쪽.

<쿠르베와 사실주의 2>


**미술에 현대성이 관철되는 과정은 ‘아름다운 가상‘이라는 고전적 예술 이념이 무너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고전미술의 붕괴는 **19세기 중엽에 사실주의와 더불어 시작된다. 이는 미술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사실주의를 미술 이념으로 내세운 것은 외려 쥘 샹플뢰리 (JulesChartpileury, 1821~1889)나 에드몽 뒤랑티와 같은 문필가들이었다. *문학의 영역에서 사실주의 운동은 스탕달과 발자크의 소설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후,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1857)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같은 시기에 미술에서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사실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Courbet, 1819~1877)다.


아름다운 가상의 파괴

*사실주의는 한마디로 고전적 예술 이념에 대한 **안티테제라 할 수 있다. 19세기 초반 예술의 주류로 행세하던 것은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미술이었다. 

**전자는 차가운 이성을, 후자는 열정과 상상력을 강조하지만, **두 흐름 모두 ‘아름다운 가상‘ 이라는 고전적 예술 이념을 공유하고있었다. 

신고전주의는 신화 , 성서 · 역사라는 전통적 제재(이스토리아)를한 반면, 낭만주의는 상상을 자극하는 기이하거나 이국적인 사건에 집착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두 흐름 모두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였다. 


37쪽


당대의 현실을 전유하여 작품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로 사실주의의 정신이다. 사실주의자로서 쿠르베가 추구한 것은 **눈앞의 현실을 생생히 묘사한 **‘살아있는 예술‘이었다.

쿠르베는 그저 예술의 왕국에서 ‘화가‘로 머물지 않고 현실의 세계에서 **‘인간‘이 되려고 했고, 그 결과 작품은 상상으로 그린 ‘가상‘에서 벗어나 **‘현실‘의 충실한 기록에 가까워진다.

고전적 예술 이념에 따르면, 예술의 존재 이유는 ‘아름다움‘에 있다. 그렇기에 과거의 화가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이상화 idealization하고 했다. 다시 말해 대상을 보이는 대로 모방하되 그것을 수정하여 **‘이상적 아름다움‘으로까지 끌어올렸다.

반명에 사실주의 화가들은 현실을 이상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묘사하려 한다. 그래서 사실주의 회화는 첫눈에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아름답기보다는 외려 어딘지 *우중충해 보인다.

사실주의자들에게 예술의 존재 이유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실‘에 있다. **그들은 현실을 미화하는 것을 뻔뻔한 ‘허위‘로 여겼다.

고전주의의 이상화 요구를 배척했기에 쿠르베는 종종 비평가들에게서 ***‘추‘를 옹호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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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감각의 수용자이자
뇌이며 기록 장치다.

/ 폴 세잔

(도입부)



<들어가기: 고전미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라도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의 차이는 금방 알아차릴 게다. 고전미술에는 *식별할 수 있는 대상이 있고,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에게 그 **대상은 감각적 쾌감을 주고, 그 **메시지는 정서적 감동을 준다. 반면에 20세기 현대미술에는 종종 알아볼 만한 대상이 없다. 도대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기 위해 눈을 제목으로 돌려봤자 소용이 없다. 거기에는 ‘무제‘라고 적혀 있기 일쑤여서 쾌감이나 감동은커녕 외려 짜증이 나곤 한다.

 어쩌다 미술이 이렇게 변했을까? 현대미술이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미술사의 이 급진적 변화는 실은 19세기 중반부터 차근차근 준비되어 왔다.

  이른바 ‘고전미술‘의 이념은 *19세기 중반에 여기저기서 거센 도전을 받게 된다. 여기서 **‘고전미술‘이라 함은 르네상스에서 고전주의(classicisme)를 거쳐 신고전주의 (néoclassicisme)로 이어지는 서양미술사의 주류를 가리킨다.

 물론 주류에서 벗어나려는 흐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마니에리스모(manierismo), 바로크(baroque)나 로코코(rococo), 혹은 낭만주의(romantisme)를 생각해보라. 하지만 이 일탈마저도 전체적으로 보면 여전히 고전미술의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500년 동안 지속되던 이 강고한 고전미술의 이념이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미술의 현대성(modernity)‘이 이미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을 살펴보려면 먼저 무너진 그 ‘고전미술‘의 이념이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썩 좋은 구분법은 아니나 일단 **회화를 ‘내용‘과 ‘형식‘으로 구분해 보자. 

미술의 ***‘내용‘은 크게 *‘제재(subject)‘와 *‘주제(theme)‘의 두 요소로 이루어진다. 제재‘가 그림의 소재라면, ‘주재‘는 그 그림을 전달하려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한편 회화의 **‘형식‘은 크게 ‘형태(form)‘와 ‘색채(color)‘의 두 요소로 이루어진다. 화면에 형태를 그리는 것을 ‘소묘‘라 하고, 거기에 색을 칠하는 것을 ‘채색‘이라고 한다. 이제 고전미술의 ‘내용‘과 ‘형식‘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17-8쪽

<원근법적 공간의 구축>


먼저 형식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르네상스 이후 500여 년에 걸쳐 서양미술을 지탱해온 기본적 규약은 **‘원근법‘ 이었다. 원근법은 한마디로 **2차원 평면에 3차원 공간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중세 미술의 화면은 어디까지나 2차원 구성의 ‘평면‘이었다. 하지만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x, y축에 새로 z축을 추가하여 평면 위에 3차원 공간의 깊이를만들어내려 했다.

 원래 원근법은 건축가 *브루넬레스키 (FilippoBrunelleschi, 1377~1446)가 건축주에게 앞으로 지어질 건물의 완성된 모습을 미리 보여주기 위해 개발한 투시법이다. 이 기술은 그의 나이 어린 제자이자 친구인 *마사초(Masaccio, 1401~1428)에 의해 처음으로 회화에 도입되기에 이른다.

중세의 장인들은 **중요한 인물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인물은 그보다 작게 그리곤 했다. 묘사하는 대상의 크기를 *심리적으로 결정한 셈이다. 

반면에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거리에 따라 대상의 크기를 **기하학적으로 축소시켜 나갔다. **중세의 장인들이 세계를 ‘아는 대로‘ 그리려 했다면,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보이는 대로‘ 그리려 했다.

18쪽

 중세의 장인들이 그림을 *‘신학적 관념의 표현‘으로 여긴 것과 달리,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그것을 *‘가시적 세계의 재현‘으로 여긴 것이다.

**이들이 가시적 세계를 재현하려 한 것은 물론 그 세계가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중세인들은 현세를 경멸하는 경향이 있었다.

중세의 화면은 *다수의 이질적 공간들의 짜깁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안에서는 묘사된 대상 하나하나가 제 주위에 저만의 공간을 품고 있어 그것들이 화면 안에서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반면에 원근법적 화면은 **단 하나의 시점으로 구축되기에 그 안에는 단 하나의 *등질적 공간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많은 대상이라도 서로 충돌하는 일 없이 그 안으로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들어갈 수가 있다.

 **르네상스 회화의 가장 큰 특징은 이처럼 대상을 그리기 전에 일단 원근법을 이용해 공간부터 구축하고 들어간다는 점에 있다. 이는 향후 500여 년 동안 회화에서 거의 헌법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19쪽

<비례론과 고전미>


이로써 시각적 재현의 원리가 밝혀졌다. 일단 재현의 원리가 밝혀진 이상 
(**그리드를 이용해 전사를 하든, 실과 송곳으로 윤곽을 따든, 혹은 카메라오스쿠라의 영상 위에 덧칠을 하든) 
화면 위에 묘사 대상의 윤곽을 옮겨놓는 일은 순수 기술적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회화의 원리가 전부 밝혀진 것은 아니다. 고전미술의 목표는 그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정확히 묘사하는 데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전주의는 자연주의(naturalisme)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자연주의‘가 그저 사물을 정교하게 묘사하는데 머물렀다면, 고전주의‘는 그 수준을 넘어 사물을 **이상적 아름다움으로 끌어올리려 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이후 미술은 **‘자연의 모방‘이라 불려졌다. 여기서 ‘자연‘은가시적 세계 전체를 가리키는 동시에, 특히 인간의 신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고전미술의 목표는 인간의 신체를 모방하되 그것을 *이상적 아름다움으로 끌이올리는 데 있었다.

 인간 신체에 이상적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해 르네상스의 작가들은 먼저 이상적인 신체의 비례를 발견하려 했다. **피타고라스 이래로 ‘미‘의 본질은 수적 비례관계에있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알베르티나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그리고 뒤러와 같은 르네상스의 작가들이 비례론의 연구에몰두했던 것은 그와 관련이 있다.

신체를 이상적 아름다움으로 끌어올리는 데에는 현실에서 아름다운 모델을 발견하여 그대로 모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현실의 모델들은 어딘가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고대의 조각가 페이디아스는 헬레네 상을 만드는 다섯 명의 모델을 사용했다.

물론 각각의 모델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취해 현실의 그 어떤 신체보다도 아름다운 여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 아이디어를 소리나는 대로 읽으면 ‘이데아‘가 된다.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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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 모르는 사람들을.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늘 몰락한 자들에게 매료되곤 했다. **생의 어느 고비에서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참혹하게 아름다웠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그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텅 빈 채로 가득 차 있었고 몰락 이후 그들의 표정은 **숭고했다. 나를 뒤흔드는 작품들은 절정의 순간에 바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들은 왜 중요한가.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세계는 그들을 파괴하지만 그들이 지키려 한 그 하나는 파괴하지 못한다. **그들은 지면서 이긴다. 성공을 찬미하는 세계는 그들의 몰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 덕분에 세계는 잠시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들은스스로 몰락하면서 이 세계의 완강한 일각을 더불어 침몰시킨다. 

**그 순간 우리의 생이 잠시 흔들리고 가치들의 좌표가 바뀐다. 그리고 질문하게 한다. 어떤 삶이 진실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삶인가. 이 질문은 본래 윤리학의 질문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몰락은 하나씩의 질문을 낳고 그 질문과 더불어 새로운 윤리학이 창안된다.

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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