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미래
조지프 나이 지음, 윤영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하버드 대학의 케네디 행정대학원의 석좌교수이자 전임 학장인 조지프 나이는 리버럴한 국제정치 학자들 가운데 특별한 위상을 갖고 있습니다. 헨리 키신저와 함께 학자이면서 공직에 참여했고, 양자의 위상을 더한다면 키신저보다 더 명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바로 조지프 나이일겁니다. 개인적으로 조지프 나이의 글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요. 얼마전에 서평을 썼던 존 G. 아이켄베리에 이어 큰 기대감을 갖고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원제는 The Future of Power로 지난 2011년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국내에는 2012년 세종서적에서 번역 출판을 했는데요. 아쉽게도 이 책은 현재 절판된 상태입니다. 아마도 이런 종류의 책들은 일반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새 판이 끝나 시중에서 구하기 힘들다는 점은 정말 아쉬운 부분입니다.

조지프 나이는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권력에 대한 범위는 국제정치학, 국가간의 관계, 세계체제, 제도적인 측면에서의 의미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사실 권력의 대표적인 사전적인 해석은 “다른이에게 어떠한 것을 하게 만드는 동인, 힘, 강제력” 정도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선 나이 그가 국제정치학계에 내밀었던 ‘소프트 파워’와 기존의 ‘하드 파워’를 묶어 ‘스마트 파워’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의 자유주의적 현실주의에 수반하는 용어라고 인식되었는데요. 조지프 나이가 흔히 국제정치에서의 신자유주의자라고 평가받는 것으로 봤을 때, 스마트 파워에 닿는 그의 사고는 키신저나 럼스펠드와는 다른 입장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부분은 그가 ‘국제정치에서의 신자유주의자’라고 해서 네오콘으로 알려진 신보수주의자들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다만 권력의 다른 형태인 군사력 투입과 관련되어 그것이 필요할 때는 사용해야 하지만, 그 전까지는 소프트파워 같은 온건한 방법도 사용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그렇지만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소프트 파워 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으로 어느 정도 극단에 이르지 않고 절충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주장들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앞선 서문에서 1970년대 중반 프랑스는 파키스탄에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핵 재처리 시설을 이전하기로 합의했는데, 여기에 포드 및 카터 행정부가 프랑스를 설득했고 결국 프랑스는 이 계약을 철회했고, 이처럼 프랑스의 태도는 설득과 신뢰를 통해 바뀌었다며 여기에서 조지프 나이가 이해하고 있는 권력이란 바로 비물리적인 타협과 설득에 기반한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 권력이 반드시 영향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미국 스스로의 이익과 안보를 위해 물리적 및 비물리적 방법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온건하다거나 우유부단하다는 등의 외부 인식에 개의치 않아야 한다는 일종의 현실주의적 입장도 발견할 수 있는데요. “강력한 행위자들은 약자들을 아예 테이블에 앉지도 못하게 할 수 있으며, 설혹 약자들이 테이블에 앉더라도 이미 게임의 규칙은 자리를 선점한 강자들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고 덧붙이고, 직면한 세계 정치경제적 이슈들을 논하고 해결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결성되었던 G7이 오늘날 G20로 바뀌었어도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이 여기에 초대되지 못할 정도로 국제 정치의 현실 인식이 어떠한지 살펴볼 수 있는데요. 이 글은 이와 비슷한 현실에서 ‘그 권력’이 현재 중국의 대두와 함께 어떻게 변화되었는지에 대해 마찬가지로 찾아보고 있습니다. 1부는 그러한 권력의 종류인 군사력, 경제력, 소프트 파워를 분석하고, 2부는 오늘날 대표적인 권력 이동인 분산과 전이인 개방된 인터넷 시대의 사이버 파워와 미국의 쇠퇴로 해석되는 권력의 전이를 집중적으로 따져봅니다. 이에 반해 미국의 떠오르는 지경학 이론가 피터 자이한은 미국의 쇠퇴는 어림도 없는 주장이며, 잠시 숨고르기를 할 뿐이라고 언급했는데요. 마찬가지로 존 아이켄베리도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중국의 대두라는 시기에서 “중국을 흡수할 만한 개방성, 경제 통합, 역량을 국제 사회는 갖추고 있다”고 그 역시 중국의 급진적 대두와 미국의 쇠퇴에 조심스러운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조지프 나이도 세계의 절반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 유럽과 일본과는 미국이 견고한 동맹 체제로 이 양대 세력이 설사 미국의 영향력을 다소 뒷걸음치는 것으로 만드는 요인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자유세계 및 자유진영의 통합 영향력은 서로 발전된 것이라 봐도 과도한 해석은 아닐겁니다. 현재에도 국제 체제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은 중국을 적대국으로 인식해야 하는 것인가와 이 글 6장의 미국의 쇠퇴와 권력 전이에 조지프 나이가 중국을 많은 분량을 할애해 평가하는 것은 바로 “중국의 정치적 변화와 불확실성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라고 확신하며 금세기 중반까지 중국은 전반적인 권력에서 미국을 능가하지 못하리라는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네트워크로 크게 변화된 세계에서 기존의 군사력이나 경제력의 파급력으로 다른 국가들을 국제 사회에 추동하고,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세계 체제에 반하는 의도를 갖고 있는 국가들을 관리하는 것은 분명 수단의 한계는 존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자비한 현실주의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필요할 때 힘의 투사와 군사력의 투입이 있어야하며, 소프트 파워 같은 것은 별개의 보조 수단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제한적인 해석입니다. 사실 그동안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자신의 시장을 열어 유럽을 재건시키고, 많은 동맹국들의 번영에 이바지 한 것은 분명합니다. 피터 자이한 같은 이는 이러한 체제(일종의 미국의 희생으로 받아들이는)가 이제는 변화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결국에는 특히 미국의 광범위한 해군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동시에 아이켄베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중국이나 러시아를 계속 국제 사회에 끌어들여야 하는 점이 앞으로 얼마간의 시간 동안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집니다.

조지프 나이가 주창했던 소프트 파워는 그것을 이용하여 어떤식으로 권력을 획득하는지에 따라 해악이 될 수도 있고, 공익이 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권력은 매번 영향력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어서 중국과 여타 다른 국가들이 다른 국가들을 강제로 이끌어 내기 위해 소프트 파워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글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이버 세계에서의 국가들 혹은 비국가단체에 의한 광범위한 상대를 향한 노골적인 사이버 해킹에 대해 과연 어느 정도의 제재 가능성을 제도로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그것이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다국적 기업과 미국의 공공기관을 해킹한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미국도 이에 못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원자력 발전과 핵무기 보유고에 대한 치명적인 사이버 공격이 비도덕적 수단에 자행된다면 이것은 세계에 큰 절망으로 다가올 수 있는데요. UN은 이와 관련하여 사이버 관습법을 마련하려고 고민중이라는 기사를 보긴 했습니다만 이 사이버 해킹을 단순히 변화된 권력 이동으로만 한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도덕의 결여로만 그치지 않지 않을까 고민입니다.

끝으로 미국의 많은 학자들은 세계 안보에 기여하고 있는 미국의 군사력을 공공재로 여기는 많은 국가들과 미국 내부의 목소리에 다소 혼란스러운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 미국은 고립주의적 전통이 있었고, 최근 두 차례의 전쟁에 개입하면서 막대한 군수 산업의 초과 이익을 감안하더라도 군사비 지출에 거의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서방 국가들과 미국 동맹국들은 이러한 역할을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이 바통 터치를 하는 것을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지만, 이 양 국가들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군사력 증강을 통해 미국에 반대급부를 요구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보입니다. 로버트 코헨은 “패권 이후 시대에 상호 협조와 무임승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 기구를 조직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요. 억압적인 수단의 권력을 상대에 사용하려고 하는 일부 국가에 대하여 온건한 다수 국가들의 ‘스스로 동의하는 소프트 파워’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충분히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는데요. 미국이 캐나다와 전쟁을 할 의도는 전혀 없기에 서로간에 주고 받는 관계가 지속되는 것처럼 상대적인 약소국들이 소프트 파워 자체를 굴욕적인 수단으로만 여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조지프 나이의 이 연구물 자체가 미국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시민들에게도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 정치와 동아시아 외교정책
서정건.유성진.이재묵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 정치 과정의 연구 및 동시에 미국 외교 행위 과정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에 의한 한국, 중국,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짚어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한국정당학회에서 주관하고 경희대학교 출판 문화원에서 2017년 출판한 일종의 연구 논문집인데요. 집필진으로는 서정건, 유성진, 이재묵이고 모두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연구자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 책의 주된 출판 목적은 2016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앞으로 동아시아지역내의 미국 외교정책이 이전과는 다른 어떤 변화된 점이 있을지 진단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 핵문제가 차기 미국 행정부의 지대한 관심사이자 해결이 시급한 사안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결말의 6장을 비롯한 총 6개의 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근래의 미국 정치외교 과정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씽크탱크와 미국 의회지도자들 및 각 행정부의 외교관련 관료들을 독자들이 알기 쉽게 이념과 당적, 정치관 등을 잘 분류해 일반 독자들이 보기에도 관련 부분에 있어서 비교적 상세한 이해를 돕고 있는 점은 다른 여타 국제정치학 및 외교 논점을 담고 있는 글들과는 다른 차별화 된 유익한 점이라 생각됩니다. 그런 점에서 1장과 2장은 국제정치학의 이론과 전통적인 미국 외교 정책을 잘 비교해 우리가 미국 외교정책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살펴볼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그동안 한미 관계가 1950년 한국 전쟁에 대한 군사 원조 및 경제적 원조를 미국이 지원함으로써 전통적으로 후견-피후견 관계로 알게모르게 고착화 되었는데, 이 점의 반증 논리로 5장에서는 “미국의 주요 정치 엘리트들이 한반도를 미국의 국익을 수호하는데 있어 주요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최근 시카고국제문제협회가 조사한 엘리트 의견 조사에 경험적으로 뒷받침된다.”고 밝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화당과 민주당 행정부의 지도자들이 미국의 안보를 가장 먼저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과거 냉전 시기의 일본이 갖는 미국의 안보적 특수성과 오늘날 G2 시대에 중국 부상과 관련해서도 미국에게 일본은 이러한 안보 지렛대를 제공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더욱이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이 일본의 위치는 미국의 아시아 동맹의 핵심축 (linchpin) 이라고 여기며, 미국의 관료와 지도자들이 앞으로 한미일 삼각 동맹을 원하는 것은 바로 미국의 안보와 경제 및 지역 균형 정책에 바로 자신들의 이익이 달려 있기 때문일 겁니다.

미국은 닉슨 행정부 이후로 헨리 키신저의 주도아래 특히 현실주의적 입장을 근 20여년 동안 유지시켜 왔습니다. 그 이전에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미국 외교 정책의 기조였으나, 때로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세계 확대를 기조로 삼는 민주평화론자들과 신보수주의자들 (네오콘)이 있었고, 고립과 개입을 넘나드는 잭슨주의자들과 과격한 윌슨주의자 등 굳이 이념과 이론으로 분류를 하자면 위와 같지만. 근래 출현한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완전하게 새삼스러운 이론적 틀이 아니라 원래부터 미국이라는 국가가 세계 패권과는 상관없이 자국이해적인 측면이 원래 강했고, 많은 국제정치학자들이 현실의 국제 무대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추동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아직도 국제정치가 얼마간의 온정주의가 바탕이 된 낭만적이고 이상의 사고로 해석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행한 일이 아닌가 판단해 봅니다.

사실 이 책의 가장 큰 핵심은 “미국 외교 정책 결정 과정에서 대통령과 정당, 이익 집단 등 중 국내적 정치적 행위자들의 선호가 어떻게 구성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인데요. 국제 정치 무대에서 안보를 비롯한 세계 질서 유지라는 조정자로서의 미국의 존재는 특히 군사동맹에 의거 일정 부분 안보를 의지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러한 미국의 외교 정책 추동의 요인들에 대해 정말로 막대한 연구 자금을 들여서라도 투입해야만하며, 국제정치학자인 존 미어샤이머가 강하게 비판한 ‘미국 의회에 대한 이스라엘 로비’ 수준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대미 지렛대가 될만한 수단들을 갖춰 놓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와 같은 측면에서 오늘날에도 일본이 대미 종속이 심화되고 있고, (실체가 있는지 없는 모를) 대일본 중국 위협 상쇄를 위해 일본이 러시아와 가까워지려고 한다면 미국이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이 글에서의 판단은 국가의 외교에서 얼마만큼 다른 대안을 만들어내고 비편향적인 수단들을 갖춰내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게 해줍니다.

그리고 더 엄밀히 분석한다면 과거의 미국이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이상을 위해 마냥 국제 사회에 노력한 국가는 아니었습니다. 이란-콘트라 사건도 그렇고 파나마와 그레나다에 군대를 투입한 것이나 쿠바 피그만 침공 등 베트남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의 군사작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 여부에 따라 할일은 해왔던 국가입니다. 이것이 패권을 가진 국가의 자율성이라고 받아들여서는 안되며 오직 자국의 안마당과 지역내의 안보를 위해 수단을 동원한 것이죠.

끝으로 앞으로 작게는 동아시아 지역과 크게는 세계 안보에 있어서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사항은 북한 핵문제가 만약 이대로 해결이 가능하다면 순위에서 빠지게 되고, 이어 과거 지위를 회복하고 싶어하는 중국과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가 테러 단체에 탈취당할 위협이 높은 파키스탄의 정국 불안 가능성 정도 일겁니다. 저는 특히 파키스탄의 핵무기가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테러 집단에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 있는 것이 이 파키스탄의 대량 살상 무기입니다. 이게 과연 막연한 기대감 말고 실제적인 관리가 될 것인지믄 앞으로 20여년 과정에서 면밀히 지켜봐야 되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처럼 다른 일면으로 보면 소장 학자들이라고 봐도 무방한 이 연구가 진전된 논의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점은 칭찬받을만한 부분이겠죠. 다만, 한가지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2016년 미국 대선을 트럼프와 샌더스 양 극단주의의 대결로 여기서는 이해하고 있었는데요. 크게 아쉬운 부분입니다. 포퓰리즘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만한 분들이 이런식으로 판단한 것은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그리고 중간에 한미일 삼각 동맹과 관련해서도 너무 미국 쪽의 이해만을 받아들여 한일 양국간의 영토 및 역사문제를 가볍게 보는 것으로 여겨지는 점도 마찬가지로 뭔가 고민이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본 없는 자본주의
조너선 해스컬.스티언 웨스틀레이크 지음, 조미현 옮김, 김민주 감수 / 에코리브르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공동저자 중 한명인 조너스 해스컬은 영국 브리스틀 대학교와 런던 비즈니스 스쿨에서 강의하고 미국 다트머스 대학에의 객원 교수를 역임한 바 있는 저명한 경제학자입니다. 이 책의 소개와 기사를 조금 찾아본 결과로는 조너선 해스컬은 특히 영국 정부와 공공기관 등과 여러 연구를 해온 연구자로도 알려져 있더군요. 마찬가지로 공저자 중 다른 사람인 스티언 웨스틀레이크 역시 케네디 장학생으로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및 정부학을 연구한 학자입니다. 이 렇게 신자본주의에 관한 해박한 연구서는 2018년 출판되었고, 원제는 Capitalism With Out Capital 입니다. 국내에도 마찬가지로 작년에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우선 일찍이 앨런 그리스펀은 앞으로의 세계 경제가 첨단 기술과 정보 통신 산업이 주도하는 경제로서, 이것을 신경제 New Economy라 명명한 바 있습니다. 즉 이러한 자본주의 패러다임 변화의 시대로서 과거의 자본을 유형의 자산이라고 정의한다면, 앞으로는 유형이 아닌 아이디어, 지식, 예술적 컨텐츠, 소프트웨어, 브랜드 및 네트워크와 관계 등을 일컫는 무형 자산이 주가 되어 선도하는 신자본주의에 대한 개념과 상세한 전망을 담은 연구가 바로 이 글입니다. “지난 몇 십년간 형체가 없는 것들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며 마침 이 글의 주제가 어떠한지 대략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사실 이 책의 2부 5장 : 무형자산, 투자, 생산성 및 장기 불황과 6장 : 무형자산과 불평등 확대를 주목해 읽게 되었는데요. 자본이 축적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많은 경제학자들이 증명하는 것으로 이런 차원에서 오늘날 소득의 불평등에 이 무형자산에 따른 불평등이 또 다른 요소로서 가능성을 보이지 않나 싶었는데, 대략 제 추측이 옳았습니다. 일단 무형 자산은 4S 즉, 확장성, 매몰성, 스필 오버, 시너지 효과 등의 대표적 속성을 갖고 있고, 이들과 관련해서 저자들은 스필 오버와 시너지와 관련된 부분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스필 오버란 무형 자산과 관련된 기업과 각 주체들의 투자들이 일종의 서로간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으로 동종 산업 뿐만 아니라 상이한 업종 간에도 의미있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네트워크와 자동차라는 자산을 통해 발전한 우버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이들 무형 자산에 관련된 일차적인 결과가 도출되는 것은 오늘날 IT 산업의 발전과 함께 이 무형 자산이 놀랄만한 성장을 해왔다는 점입니다. 자본주의가 고도화 됨에 따라 노동의 역할이 중요해 질 것이라는 전통주의적인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의 예상을 넘어 이 무형 자산의 증대는 전통적인 노동의 역할을 변질시키고 결과적으로 자본창출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요소를 갖고 있는 노동자들이 아닌 결핍이 내재되어 있는 다수의 노동자들이 더욱더 불평등의 길로 내몰릴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엘리트들과 사회 현실에 소외되어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현재의 노동시장의 패러다임 변화가 결국 저자들도 일정 부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결론에 이르고 있습니다. 개인의 노력 만으로 이러한 무형 자산의 요소를 습득하고 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불명확하며, 장기 불황 시대에 각 관료주의와 정부가 유아 계층을 비롯한 청소년 교육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선험적 주장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판단해봅니다.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많은 선진국들은 그렇지 않은 국가들에 비해 무형 자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R&D 라는 측면도 정확히 수치를 계산할 수 없는 이 무형 자산의 스필 오버와 시너지 효과를 갖는 수단으로서 저작권과 특허에 관련한 보장에 많은 국가들이 힘을 기울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부분을 반증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수한 경영과 높은 성과라는 강한 문화를 가진 기업들”은 앞으로도 자본 산출에 다른 수단인 무형 자산에 힘을 쏟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지 않은 기업과 국가는 더욱더 도태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적게 나마 인지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공동 저자들의 이 연구물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광범위한 금융에 대한 설명도 담겨져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요. 사실은 금융과 이를 뒷받침하는 네트워크에 대한 설명으로 한정되어 있어서 저처럼 실망감을 맛보고 싶지 않은 분들께는 이 책을 강하게 추천드리기는 어렵겠습니다. 다만 제4의 혁명과 신경제와 같은 최신의 정보 및 자본주의의 변화된 모습을 지식으로 얻고 싶은 분들은 구매와 일독을 권유드려봅니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의 통계와 상세한 도표, 최근 발표된 여러 경제 논문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최신 경향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군요.

엄밀하게 따져 본다면 전통적인 유형의 자산과 여기에 언급된 무형의 자산이 서로 만나서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이지 앞선 양자의 경계가 명확하게 분리되어 완벽하게 자본주의의 흐름이 변화되었다고 보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물론 전통적인 제조업 수준의 상품 생산과 그것을 시장에 공급하는 것만으로는 기술의 발전 시대에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분명할 겁니다. 다만 무형 자산을 수치화하려고 하고 그 파급을 예측해보려고 했다는 점은 충분히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2019-12-20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내용을 정밀하게 분석해서 나열하고 정리해서 결과를 말해주니까 어느정도 책을 고르는데 도움이돼네요. 긴글쓰신다고 수고많으셨습니다.ㅎㅎ

베터라이프 2019-12-20 23:26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하는데 어쩔수 없이 어떤 부분은 주관적이고 편파적이 되기도 하네요 ^^ 하여튼 감사합니다
 
일본의 한국식민지화 - 담론과 권력
Alexis Dudden 지음, 홍지수 옮김 / 늘품(늘품플러스)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 코네티컷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이자, 특히 일본제국주의 시대와 관련된 동북아 역사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 온 알렉시스 더든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학자입니다. 지난 2015년, 일본 종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 내 역사학자 성명을 이끈 공로로 만해평화상을 받은 이력이 있는데요. 당시에 일본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과 함께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바가 있습니다. 그녀의 ‘일본의 한국식민지화’라는 이 글 또한 그러한 연장선상에 있는 연구라고 생각되는데요. 다만 이 책에 대한 서지 정보가 확실히 잡히지 않아 구글링을 하게 되었는데, 출판 연도가 2004년으로 나와 있지만 정보가 정확한지는 약간 불명확합니다. 이 점 양해 말씀 드립니다. 국내에는 출판사인 늘품플러스가 2016년 번역 출판하였습니다.

알렉시스 더든이 이 책에서 밝히고자 하는 점은 이렇습니다. 1차대전 발발 이전의 제국주의 시대에서 야만국은 마땅히 문명국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계몽적 통치’에 대한 해석과 이를 바탕으로 일본이 근대화 된 군사무기로 팽창에 나서지만, 그것보다 “권력 다툼에서 군사력만이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넘어서 일본이 이 시기의 국제법과 국제조약 및 외교용어들을 조선과 청나라에 능수능란하게 교묘한 술수로 사용하며 팽창주의의 합법성을 얻으려고 한 이면을 파헤치고자 쓴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금 장황하지만 결국 요점은 “이른바 문명 국가들은 야만적인 국가들을 합법적으로 정복하고 통치할 수 있다”는 당시 식민지 제국주의 국가들의 이론적 잣대인 계몽적 통치와 이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조선을 병탄하고, 당시의 조선을 야만국으로 규정한 일본의 외교적 술수에 대한 분석이 주된 요점입니다.

일본은 1853년 미국 매튜 페리 제독의 흑선에 의해 소위 불평등 개항을 강제로 맞게 됩니다. 당시의 일본 식자들은 이러한 굴욕적인 불평등 조약이 후에 일본이 기준에 맞는 힘을 되찾게 될 때 극복할 수 있다고 여겼지만, 그것보다도 도쿠가와 막부가 붕괴하고 일왕이 전면에 등장하는 정치적 격변의 시기와 부분적 근대화를 통한 국력을 신장한 경험으로 자신들의 제국주의 시대를 열게 되는데요. 물론 저는 이 점을 옹호하고자 저런 수사를 붙인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알렉시스 더든의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짤막한 평가인 “일본제국주의 역사 속에는 한국, 중국, 그 밖의 도처에서 강제로 이주당해 공장과 군막사에서 노동자로, 성노예로 착취당한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가슴 복잡한 이 문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지금도 일본의 대다수의 지식인들과 무지한 시민들은 2차대전 이전의 아시아에 대한 침략행위가 일본제국이 종말을 고함으로써 끝났다고 동시에 그 책임이 소멸했으며, “일본의 팽창주의 산물인 제국이 붕괴된 후 반세기가 지난 현재,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 서로 다른 방법을 이용해 마치 입을 맞춘 듯 서로 도와가며 역사적 과오를 정화하하려고 하고 있다”고 저자 역시 비판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 글의 시작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의 진화론적 사회학에 입각해 유럽 제국주의의에 의한 식민통치를 번영이라 여기고 이 왜곡된 평화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여기고 있던 당시의 시대상이 저자인 더든의 글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일찍이 E. H. 카는 1차대전 이전의 이러한 이상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인 평화 분위기가 끔찍한 대전의 원인이었다고 여기는 것에 한편으로 동의가 될 만큼 이들은 자신들을 문명국이라 자처하면서 번영의 시대라고 여기고 있었죠. 가까스로 신흥국의 반열에 들어선 일본은 자신들도 역시 열강의 틈바구니 안에 들어가길 원했습니다. 여기에는 제레미 벤담이 고안한 international 인터내셔널, 국제 및 국제주의와 국제법과 관련한 당시 동아시아에는 생소했던 이들과 관련된 연구를 일본인들이 끊임없이 지속해 왔고 이것이 단순한 상업행위를 통한 교역을 야만과 비야만을 구분하는데 그치지 않고 도로 조선과 청나라를 야만으로 규정하는 데 교묘히 쓰였다는 점에서 통렬한 감정이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이 시기의 정한론과 조선 병합의 목적을 추구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이 러시아와의 전쟁에 말려들어간 이유도 이와 같이 인도주의적 원칙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얼마나 교묘한 언술에 지나지 않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기들 손으로 더러운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이완용과 송병준 같은 부역자를 이용해 추잡한 짓을 벌인 일은 일본인들이 과연 인도주의와 정의를 입에 담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저는 이 미국의 여류 역사학자의 이 연구에서 특히, 일본이 당시 조선을 의사-독립국으로 여긴 점이 관심을 끌었는데요. 조선이 법적으로 청나라 속국이었던 것은 명백했지만 독립국으로서 조선 국왕이 자주권으로 통치하고 있었으나 이 중국 대륙에 의한 전통적인 동아시아 정치적 관계를 잘 알고 자신들도 그러한 범주안에 속해 있던 일본이 그것을 모른척하면서 조선을 독립과 자주권을 주장할 수 없는 국가로 술책을 부린 것은 1870년대 초 일본에서 불던 정한론으로는 전부 설명할 수 없는 노골적인 야욕이라고 해야할까요. 저자도 분명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강화도 조약으로 시작해 1910년 말장난에 불과한 대한제국 병탄을 한일합방으로 포장하기까지 면밀한 정치외교적 과정을 꼼꼼히 갖춰나가면서 당시 열강국들로부터 승인받으며 대한제국 편입을 마무리 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욕심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1943년 미드웨이 해전 패배 후 미국과의 단독 강화 시도를 통해 만주와 대만, 한반도의 지배 만이라도 유지하려고 했던 일본제국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바로 3장이 일본의 동아시아 침탈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국제법과 국제용어 해석과 이론 습득에 나선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조선 사법권 박탈과 관련된 프랑스인 구스타브 봐소나드의 일화가 쓰여져 있는데요. 저자인 더든이 이런 사례까지 조사한 것은 한국 학자들보다 더 치밀한 연구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한국의 국사학계가 당시 메이지 유신에 대한 천편일률적 해석과 일본의 근대에 대한 지속적인 폄하를 해오고 있는데요. 저는 지금이라도 우리 학계가 이것에 대한 면밀한 연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에 많은 학자들은 1905년 태프트-가쓰라 밀약과 1902년 이후 영일동맹이 갱신되면서 인도와 대한제국을 맞교환한 영일 양국의 우호조약에만 신경쓴 나머지 이것만을 알파와 오메가로 여기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정한론에 대한 연구도 이런 차원에서 다시 조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끝으로 오늘날의 일본인들과 일본 정부가 2차대전 종전 이후, 과거의 일본제국과 미군에 의해 민주정치로 개조된 자신들의 현재 정부가 법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과거 제국주의의 유산과는 다르다고 선을 긋고는 있지만 전후 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주의적 입장과 종래의 평화헌법 개정과 관련된 시도에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우려를 금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사과가 국격의 손상이라고 여기는 이들의 태도에서 앞으로 역사 문제 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제까지 일본과 관련된 요건들이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지는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어 보입니다.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이 알맹이가 빠진 협력 운운이 차라리 아예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이 역사 문제가 과연 해결될 문제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는 모두가 답을 짐작하실 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대 그들 - ‘그들’을 악마로 몰아 ‘우리’의 표를 쟁취하는 진짜 악마들
이안 브레머 지음, 김고명 옮김 / 더퀘스트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마치고 뉴욕 대학의 교수를 거쳐 유명한 ‘타임’지의 전 편집장 및 현재 글로벌 정치 리스크 연구 및 컨설팅 기업 유라시아 그룹의 설립자 겸 회장인 이안 브레머의 최신의 세계정치경제 비평서 ‘우리 대 그들’을 일독했습니다. 원제는 Us Vs. Them The Failure of Globalism 이며, 현지에서는 지난 2018년 출간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브레머는 J-Curve 에 대한 개념과 관련된 글로 유명하고, 특히 중국과 관련하여 종래의 중국굴기론을 지지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글들은 국내에도 그동안 번역 출간이 되었는데요, 현재는 일부 책들이 절판된 상태이기도 합니다.

여기 이 글은 크게 실패했다고 보는 세계주의와 세계화에 대한 재조명 및 현재의 실패를 세계화의 문제로 몰고가는 포퓰리즘과 포퓰리스트들에 대한 분석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와 관련한 브레머의 논증 과정에서 보여지는 여러 주장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지만 원칙적으로 오늘날 세계의 포퓰리즘의 대두와 이들의 정치경제적 왜곡 시도는 분명 우리 민주주의에 위협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들 포퓰리즘의 대두에 분노와 경멸과 같은 감정적인 대응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며, 우리가 현실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각각의 체계를 정확히 바라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겠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포퓰리스트들은 “엘리트들이 우리의 삶을 둘러싼 규칙을 정할 자격이 있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밝히며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이 포퓰리스들이 적절한 대안은 제시하지 못한 채, 기존의 엘리트 정치를 전복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측면입니다. 이것을 반증하는 입장에서 “세계 엘리트들의 대부분은 세계화가 불평등의 해결책이라고 믿는다”는 논점에는 개인적으로는 완벽히 동의하기 힘들었습니다만 브레머가 저 말을 확신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떠나서 그 역시 “선진국의 강력한 사회 안전망이 앞으로의 수많은 불평등 문제를 좌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에는 대체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문제는 결과의 불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불평등이다”는 평가도 비슷한 맥락이고, 이 점은 3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대표적인 개도국 12개국의 사례와 결부지어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12개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멕시코, 베네수엘라, 터키, 러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중국으로써 앞으로 세계의 미래와 관련해서도 이들 국가들이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지와 관련해서도 독자들이 주목해 볼만하다고 여겨집니다. 이들 국가들이 파탄 국가의 길을 걷지 않고, 경제적 평등과 국민들의 삶을 신장시킬 수 있는가에 따라 2020년 이후의 세계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의 이러한 태도는 기본적으로 세계주의와 세계화에 대한 면밀한 확신과 현저히 자생하고 있는 이 포퓰리즘 정치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정치경제적 입장과 수단으로 저자 자신이 설득력을 높이려고 하고 있으나 각각의 논증들이 다소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2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자동화와 기계학습 등이 과연 우리의 노동 시장과 노동력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이 될 것인지는 미래경제학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4장에서는 보호주의의 장벽이라는 화두로 세계화에 반하는 각국의 보호주의 상황을 열거하면서 특히 근래 획기적으로 유입되었던 난민 문제와 이민 문제를 분석하며 특히 중국과 이란 등의 국가 당국에 의한 검열과 같은 자국민에 대한 폐쇄적 보호에 대해 비판하고 있습니다. 뒤에 5장에서 중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후커우 제도를 대비한 ‘사회신용체계’가 조지 오웰이 경고했던 ‘빅브라더의 출현’과 매우 유사하게 언급되고 이러한 중국의 신 평판 시스템이 결과적으로는 모든 중국의 인민이 국가의 감시를 받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애써 그런것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그것의 결과는 어떠할지 우리와 같은 외부인들은 자명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에 중국 정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는 “신용이 없는 자들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어 일반 국민이 하늘 아래 어느 곳이든 마음껏 누빌 수 있는 신용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는 분명한 불가능한 목표에 대해 허울좋은 목소리만 높이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이 앞으로 어떠한 식으로 작동할지에 대해서는 우려할만한 상황이죠.

이렇게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 이란에 사는 사람들과 다른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의 처한 입장이 정치 체제에 따라 현저히 갈립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가 현재 유럽에서 목도하고 있는 난민 문제에 대해 이들을 우리의 사회쳬계 안에서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에 그동안 사회계약론에 기초한 여러 이론들을 살펴보고 새로운 시민들에 의한 계약론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답이 무엇이든 간에 단순히 국가 안보와 더 좋은 삶을 살 기회를 보장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을 문제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을 슬라보에 지젝이 말했던 전통적인 국민국가의 위협 상태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오히려 장벽을 세우고 차별하고, 보호주의적 입장에 서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미국의 티파티 운동과 같이 “미국을 다시 하얗게 만들겠다는 성난 인종주의 노인들과 평범한 애국 시민으로 위장한 돈 많은 공화당 활동가들의 야합”이 포퓰리즘과 포퓰리스트들의 생명력을 더욱 높이고 우리들의 민주주의를 더 위험한 상태로 몰고가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위기는 저자가 마지막 장에서 분석하는 만연한 ‘가짜뉴스’와 이를 바탕으로 ‘선동된 가짜 여론’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제 민주주의하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삶을 건전하고 열심히 사는 것 만으로는 이 토대를 지켜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앞선 장에서 이것과 관련해 저자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이 교육의 제공은 ‘기회의 균등’이라는 민주주의적 가치에 가장 부합되고 시민을 이성과 지식으로 재무장하는 꽤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경제를 시민의 삶을 영위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고 더이상 목적과 수단의 경계가 왜곡되어 우리 시민들이 가치왜곡에 빠지지 않도록 ‘허위의 부르짖음’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동안 세계화와 세계주의의 뒤안길에 비롯된 여러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 비판적이었습니다. 극명한 빈부격차와 심각한 불평등 문제, 심각한 정치 불신이 이 자본주의적 경제 세계화의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포퓰리스트들은 이 세계화가 미국 시민들을 궁핍에 이르게 만들고, 아시아의 개도국의 중산층을 키우는데 일조했다고 비난하면서 세계화 자체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은 강화하면서도 정확한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들은 주로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현실을 왜곡하는 것으로 우리가 중요하게 알아야 될 부분은 이 ‘세계화’를 어떻게 하면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 그 고민입니다. 이미 셰계는 경제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일정 부분의 번영이 이런 가치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다만, 기존의 엘리트들이 자신의 기득권과 부를 위해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매번 강조하는 말이지만, 제도의 재정비와 민주주의의 확대, 평등한 기회를 더욱더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고 여론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또한 중요해 보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