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발굴한 고려사 금요일엔 역사책 2
문경호 지음, 한국역사연구회 기획 / 푸른역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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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발굴한 고려사‘는 고려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사회 현실과 내 개인적 호감을 반영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주목할 첫 번째 내용은 바다와 강은 곡물이 화폐 역할을 하던 시기에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던 중요 공간이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고선박(古船舶)을 연구하는 역사학자다. 침몰한 배는 화려한 도자기에서 느끼는 감동과 다른 유형의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보란 듯 곧게 자란 나무들은 목재로 잘려나갔지만 구부러진 나무들은 둥글고 곧게 다듬어져 돛대가 되었다는 말을 한다.

 

본문에는 출수(出水)된이라는 말이 여러 차례 나온다. 홍수를 뜻한다고 사전에 나오지만 저자는 침몰한 배에서 물건이 건져진 것이란 의미로 썼다. 그런데 저자는 출토(出土)라는 말도 몇 번 썼다.(53 페이지, 197 페이지) 국내에서 처음 출수된 고선박은 1323년 원나라에서 고려를 거쳐 일본으로 가다가 침몰한 것으로 알려진 신안선이다. 도자기와 공예품 27, 000점, 동전 약 28만톤(800만개), 불상을 만드는 고급 향나무(자단목) 1, 100여점 등 박물관 한 개 규모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저자는 출수된 물품들 중 빗<즐; 櫛>과 장기알을 이야기하며 그 가운데 빗을 예로 들어 조선사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가령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도우러 온 명나라 군대가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왜군이 얼레빗이라면 명군은 참빗이라는 말이 회자되었다는 말을 한다. 얼레빗은 엉킨 머리를 초벌로 빗는 빗이고 참빛은 초벌로 빗은 머리를 곱게 빗거나 이를 훑는 데 쓰던 빗이다. 저자는 거란의 2차 침입 때 강조가 적을 얕보고 장기를 두다가 성이 함락되어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거론한다. 강조는 서북면 도순검사로 목종을 폐위하고 현종을 옹립한 장군이다.

 

저자는 무신들의 물자 수탈이 증가하면서 의도적인 파선이 늘어났을 수 있다는 추정을 했다. 조선 시대에 출발할 때부터 이미 세곡을 빼돌리고 고의로 조운선(漕運船)을 침몰시킨 예가 종종 있었던 사실에 근거한 추론이다. 조(漕)는 선박을 이용해 서울에 조세를 상납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운(漕運), 조전(漕轉), 조만(漕輓) 등은 같은 의미다. 고려 후기 조운을 가장 힘겹게 한 것은 왜구의 침입이었다. 왜구는 단순히 노략질을 하던 도둑이 아니라 일본 남조(南朝)의 정예군이었다.

 

왜구의 침입이 거세지자 우왕은 1376년 조운을 금지했다. 고려의 조운이 재개된 것은 1388년 위화도 회군 이후였다.(82 페이지) 이성계 일파가 조운을 재개한 것은 경제기반 확립을 위한 조치였다.(161 페이지) 고려 정부와 개경의 관리들은 지방에서 나는 생산물을 쉴 새 없이 수도로 실어날랐다. 무신정권이 1232년 강도(江都)로 천도(遷都)한 후 1270년 개경으로 환도(還都)할 때까지 39년이나 몽골에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삼남에서 강도로 이어지는 뱃길이 보존되었기 때문이다.(91, 92 페이지)

 

고려의 대몽항쟁 기간은 연구자들에 따라 30년에서 40년까지 다양하게 설정되지만 그 기간 내내 전쟁이 지속된 것은 아니었다. 몽골의 고려 침입 목적은 고려를 정복하기 위해서이지만 고려가 남송 및 일본과 연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몽골은 고려를 맹렬히 공격했다가 홀연 군사를 되돌리곤 했다. 고려 농민들은 몽골의 침입을 피해 산성이나 섬으로 집단 이주하여 몽골에 맞서면서도 틈틈이 생업에도 종사해야 했다. 그렇게 농사짓고 물질을 하여 마련한 곡물과 어물이 배에 실려 강도로 보내졌다.

 

고려에는 동강(東江)과 서강(西江)이 있어 조운선이 모두 그곳으로 모였다. 충주 일대에서 남한강을 따라 내려온 곡식은 동강(임진강)으로, 서남해 지역에서 올라온 조운선은 서강(예성강)의 광흥창에 짐을 풀었다. 우리나라 지형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큰 산과 강이 많아서 이동하거나 물자를 운송할 때 수레보다 선박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했다.

 

1279년 남송을 멸망시킨 쿠빌라이가 일본에 사신을 보내 항복을 요구했다. 일본은 두 차례 파견된 원의 사신을 살해했다. 여몽 연합군은 두 차례 일본 원정에 나섰다.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은 태풍, 그리고 일본의 강력한 저항으로 실패로 끝났다. 일본은 당시 여몽연합군에 타격을 입힌 태풍을 신풍(神風; 가미카제)이라 불렀다. 여몽연합군의 사령관이 김방경이었다. 숭의전에 모셔진 16공신 중 한 분인 김방경은 충렬왕 대의 공신이다. 삼별초를 토벌했고 일본 원정을 위한 고려와 몽골(원나라)연합군의 사령관 역할을 했다.

 

고려, 조선시대에 운하 시공 역사가 있다. 운하는 굴포(堀浦), 하거(河渠) 등으로도 불린다. 고려 시대에는 서산과 태안 경계, 부평에서 김포까지 굴포를 시도했고 조선 시대에는 서산과 태안 경계, 태안의 의항, 안면도 등지에서 굴포를 시도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제작한 지질도에 따르면 운하 굴착이 시도된 태안과 서산의 경계는 모래와 토지, 자갈 등으로 이루어진 충적층과 석질이 단단한 흑운모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 흑운모 화강암은 굴착이 어렵다. 당시 사람들은 불을 지펴 돌을 익힌 다음 정으로 깨트리는 방식으로 바위를 제거했다. 구간이 길면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었을 것이다. 시공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고려와 송은 광종대에 국교를 맺었고 거란 침입 이후 문종 대에 국교를 재개했다. 국교 재개 후 송은 고려 사신을 예우하는 데 매우 극진했다. 1084년 고려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밀주 판교진에 고려정을 건립했고 1117년 명주에 고려사라는 관청과 영빈관을 설치했다. 1085년 동주 지사로 부임하던 소식(蘇軾)은 화려하게 지어진 고려장을 보며 오랑캐에게 모든 것을 대주어 백성들은 노비가 되었다고 한탄했다.

 

소식이 이렇게 고려정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송은 당시 3용(冗)의 폐단(弊端)이라는 구조적 문제로 만성 적자에 시달렸다.(冗은 쓸모 없을 용이다.) 3용의 폐단이란 무리한 군대 증강 즉 용병(冗兵)의 폐단, 지속적으로 늘어난 관리로 인한 용관(冗官)의 폐단, 무리한 재정 즉 용비(冗費)의 폐단 등이다. 3용의 폐단으로 인한 만성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신종이 왕안석을 부재상으로 삼아 1069년부터 1076년까지 신법을 추진했으나 사마광, 소식 등 구법당의 반대에 부딪혀 중단되었다. 이때 농민들은 흉년이 지속되면서 기아에 허덕였다.

 

그러나 송 정부는 빈민 구제보다 고려 사신 접대에 더 정성을 기울였다. 송이 고려를 두텁게 대우한 데에는 신법당이 추구한 연려제요(聯麗制遼) 정책이 있었다. 고려와 송이 연합하여 해마다 막대한 세폐(歲幣)를 받아가던 거란을 견제하자는 것이다. 고려 또한 송으로부터 들어오는 문물들이 필요했기에 겉으로는 거란을 상국으로 섬겼지만 송과의 교류를 은밀히 이어갔다. 신법당의 정책이 눈엣사기 같았던 소식의 눈에 고려의 이중 외교가 곱게 비칠 리 없었다. 구법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요구는 지속되었다.

 

소식은 거란이 송과 고려의 관계를 알고 있다가 훗날 트집을 잡는다면 난처해질 것이라 경고했다. 고려인들은 소식(蘇軾; 소동파)을 크게 사랑했다. 몽골군의 대대적인 침입(제3차)으로 전 국토가 전화에 휩싸인 와중에 소동파의 문집(‘동파문집’)을 발간(경향신문 기사 참고)했을 정도다. 언급한 기사는 소식을 혐한파라 칭했다. 혐고파나 혐려파라 해야 하지 않을지? 어떻든 소동파가 고려를 혐오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단편적이다. 이중적 정책을 편 고려와 손잡고 거란을 견제하기 위해 송나라 백성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고려 사신들을 과하게 대접한 현실을 비판한 것이라 해야 하지 않을지?

 

저자는 조선이 국제적 고립을 자초한 것은 조선의 중화주의 탓이라 말한다. 조선은 명나라를 무너뜨린 청을 정벌하여 중화의 전통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자신들이 중화의 계승자임을 자처했다. 조선에서는 중국을 통해 전해받는 물자와 문명조차도 배격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조선은 명이 멸망한 후 명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그 땅에 살았는데 명과 청은 완전히 다른 나라라 인식했다.(192 페이지) 사람이 물건을 나르는 것을 1이라 하면 말은 2, 수레는 10, 선박은 30이라는 주장이 있다.

 

저자는 19세기 말까지 포구마다 빼곡이 정박해 있던 그 많은 배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라고 묻는다. 개항 후 30년이 되지 않아서 국내 선박들은 일본이 들여온 증기선에 그들의 기능을 빼앗겼다. 외국 자본으로 가설한 철도가 포구와 포구를 잇게 되면서 선박의 기능은 더욱 약화되었다. 경강 상인들을 비롯하여 포구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선상들이 몰락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저자는 선상의 몰락과 함께 맥이 끊긴 조선 기술을 이야기하며 박물관이나 유명 관광지에 복원된 황포돛배들은 국적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지적한다. 고려 시대 해양사를 재조명하자는 것이 저자의 결론격의 이야기다. 흥미롭게 읽히는 책, 바다에서 발굴한 고려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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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24-01-17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재밌네요. 고려거란전쟁 덕분에 확실히 고려사에 관심이 커진 거 같습니다. 고선박 연구자시라 해서 책 내용이 지엽적이고 딱딱할 줄 알았더니 조운선 침몰같은 국내 문제부터 당시 지정학적 정세까지 종횡무진이네요. 소동파가 고려를 싫어했고 그 이유가 신법당과의 갈등과 지나친 고려 사신 접대와 당시 국제관계 때문이었고...리뷰를 훑다가 처음부터 정독했습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4-01-17 07:02   좋아요 0 | URL
네.. 얇은 책이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치밀하고 재미 있어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저자의 다른 책도 찾아 읽고 싶어집니다. 감사합니다..
 


DMZ 접경 지역 기행 시리즈를 쓴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DMZ 연구팀의 일원이었던 조배준 교수가 첫 단독 저서인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근대 자본주의 정신은 무엇인가’를 냈다.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DMZ 연구팀은 지난 2020년 연천 지질해설사들을 대상으로 16주 일정으로 통일인문학 강의를 했던 팀이다.

 

축하 인사를 드렸더니 ‘출간을 어떻게 아셨는지요?’라 하셨다. 내가 책을 사 읽겠다고 하자 읽을 만하지 않은 부끄러운 작품이라고 하셨다. 베버 관련 책이기에 베버의 글에서 영감을 얻어 책 제목을 삼은 한 문학평론집을 소개했다.

 

베버의 글이란 종교 개혁의 문화적 영향은 상당 부분 종교개혁가들 활동의 예상치 못했던 혹은 심지어 원하지 않았던 결과였으며 때로는 그들 자신이 염두에 두었던 것과 동떨어졌거나 심지어 대립되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글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137 페이지) 책 제목은 문학평론가 오문석의 책 ’현대시의 운명, 원치 않았던’이다. 저자 오문석은 자신의 책은 설계 도면 없이 진행된 연구 내용의 사후적 구성물에 가깝기에 굳이 따지자면 원치 않았던 혹은 예상치 못했던 결과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를 훤히 분석해도 미래를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다른 사람의 글에서 쉽게 통찰을 얻는다 해도 그것을 내 삶에 적용해 유의미한 결과를 내기는 어렵다. 원치 않았거나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시인 조지훈의 삶이 아닐지? 조지훈 시인의 경우 수업 시간에 장난삼아 쓴 고풍의상은 등단작이 되었고 심혈을 기울여 쓴 세기말적 탐미의식 및 자의식 계열의 작품들은 제외되었다.

 

기이하지만 묵묵히, 예상을 벗어나는 진폭이 크지 않기를 기대하며 또는 바라며 내 읽기와 쓰기의 루틴을 이어가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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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 - 신앙과 과학의 통합을 추구한 우리 시대 기독 지성 25인의 여정
리처드 J. 마우 외 지음, 캐서린 애플게이트 외 엮음, 안시열 옮김 / IVP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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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의 원제는 ’How I changed my mind about Evolution‘이다. ’나는 어떻게 진화에 관한 생각을 바꾸었나?‘다. 이 책은 신앙과 과학의 통합을 추구한 우리 시대 기독 지성 25인의 여정을 담은 책이다. 주제에 걸맞게 책에는 여러 성경 구절들이 인용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구절은 시편 19편 1절, 7절이다. 1절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이고 7절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다. 관건은 성경과 자연이고 이는 모두 하나님의 진리라는 것이다.

 

25인의 필자들 중 한 분인 4번 논자 데보라 하스마(Deborah Haarsma; 물리천문학부 교수)의 책(‘창조, 진화, 지적 설계에 대한 네 가지 견해‘)이 말해주듯 세상의 기원에 관한 견해는 젊은 지구 창조론, 오래된 지구 창조론, 진화창조론, 지적 설계론으로 크게 나뉜다. 1번 논자인 철학 교수 제임스 스미스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앙과 과학이 만나는 교차로에서 치르는 지적 수고는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함께 산다는(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로새서 1장 17절) 핵심적 확신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문 분야는 과학이 아니라 성경이라 말하는 2번 논자인 스캇 맥나이트(신학 교수)는 과학에 대해 공부하면서 자신은 성경에 대해 덜 과학적으로가 아니라 더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한다. 침례교회 목사인 3번 논자 켄 퐁은 창세기는 언제와 어떻게가 아닌 누가와 왜를 논한 책이라는 말을 한다.(50 페이지) 이는 장로교회 목사인 11번 논자인 존 오트버그가 한 어떻게와 얼마나 오래에 관한 질문들에 대한 탐색은 과학이 담당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말(133 페이지)과 상응한다.

 

켄 퐁은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셨다는 믿음을 촉구하지만 산더미 같은 증거는 그 기적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빅뱅과 진화를 이용하셨음을 보여준다는 말을 한다.(52 페이지) 이는 다시 데보라 하스마의 글을 인용하도록 한다. 데보라 하스마는 예레미야 33장 25절(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이 천지의 법칙을 만들었음을 언급한다. 데보라 하스마 글의 핵심은 빅뱅과 진화라는 도구와 진화적 생물학과 판구조 운동을 이용한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천지의 법칙이란 말이다.

 

데보라 하스마에 의하면 하나님은 진화적 메커니즘과 풍성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시스템을 설계하셨다.(61 페이지) 데보라 하스마의 글이 빛나는 것은 그가 과학적 설명은 우주에 관한 영적 시각을 지워버리기는커녕 사실상 자신을 더 큰 경이(驚異)와 경외(敬畏)로 인도해간다는 고백을 했기 때문이다. 5번 논자인 성서학 석좌 교수 트렘퍼 롱맨 3세는 성경의 창조 기사들은 다윈주의를 논박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라 누가 세계를 창조하였는지에 대한 고대의 개념들을 반박하기 위해 기록되었다고 말한다.(69 페이지) 트렘퍼 롱맨 3세는 아담과 하와의 역사성이 부정된다 해도 성경기자가 소통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약화되지는 않을 것이라 말한다. 메시지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말한다.

 

6번 논자인 목회학 석사 제프 하딘은 그리스도인들은 과학의 다양한 답안을 고려하면서도 여전히 신실하게 믿음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81 페이지) 7번 논자인 영화 및 TV 프로그램 제작사 사장인 스티븐 애슐리 블레이크는 진화론을 파고들자마자 대번에 추론의 뛰어난 논리적 흐름에 탄복했고 과학적 데이터로부터 이끌어진 합리성에 의표를 찔렸다고 말한다.(92 페이지) 스티븐 애술리 블레이크는 중요한 말을 한다. 우주의 구조와 우리의 삶과 관련하여 무작위적 사건의 발생으로 보이는 미시적 차원이 실은 질서와 안정의 구성 요소라는 거시적 차원이라는 것이다.(94 페이지)

 

8번 논자로 나선 임상 유전학자 프랜시스 콜린스는 진화는 인류 창조를 위한 하나님의 우아한 계획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다. 프랜시스 콜린스 역시 중요한 말을 한다.“하나님이 우주와 그것을 다스리는 법칙들을 창조하셨다면, 그리고 그분이 인간들에게 그 법칙들의 작용을 알아낼 지적 능력을 주셨다면 그분은 과연 우리가 그러한 능력을 무시하기를 바라실까? 그분의 창조 세계에 대해 우리가 발견하는 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이 위축되거나 위협받으실까?”(102, 103 페이지)

 

프랜시스 콜린스가 설명하는 진화창조론은 주목할 만하다.“공간이나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고 그것을 지배하는 자연법칙들을 세우셨다. 하나님은 척박한 불모지로 남을 뻔했던 우주를 생명체들로 채우고자 진화라는 우아한 메커니즘을 통해 모든 종류의 미생물과 식물과 동물을 창조하기로 결정하셨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바로 그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지능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자유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는 특별한 생명체를 만들기로 선택하셨다"(103 페이지)는 것이다.

 

조직 신학 교수 올리버 크리스프는 9번 논자로 나서 자신은 중요한 세 가지 원칙에 의거해 신앙과 진화의 연결성에 대해 숙고했다고 말한다. 1)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 2)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다, 3) 하나님은 신비로우시다 등이다. 올리버 크리스프는 진화와 성경적 기독교는 이따금 특정 시각에서는 갈등 관계에 놓인 것처럼 보일 수 있을지언정 원칙적으로는 반드시 서로 조화로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112, 113 페이지) 올리버 크리스프는 하나님이 자연 선택을 포함한 자연적 과정들을 예정하신다고 말한다.

 

10번 논자인 천문학 박사 제니퍼 와이즈먼은 성경은 우리가 먼지와 같고 자라났다가 곧 시들어 버리는 풀과 같다고 상당히 명쾌하게 선언(시편 103편 14절, 베드로전서 1장 24절)하는 한편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다고 거듭 말한다고 말하며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우주에서 차지하는 작은 시공간에 있지 않고 우리가 존재하며 모든 것을 있게 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이 관계가 영원히 존속한다는 사실에 있다고 전한다. 앞에서 언급한 존 오트버그는 신앙은 책에 적힌 것을 무조건 믿고 이성에 귀를 막는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이 우리 시대에 만연해 있다고 말하며 과학적 증거는 절대 신앙의 합리성과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결론짓는다.(136 페이지)

 

12번 논자인 생물학 교수 데니스 베니머는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는 창세기에 대한 특정 해석이나 문자적 성경 해석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권능과 임재를 체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전학과 교수 프러빈 셋후파티는 13번 논자로 나서 자신에게 진화 창조론은 하나님을 세상의 창조자로 받아들이고 그 창조에 생물학적 진화가 이용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153 페이지) 프러빈 셋후파티는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물리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영(靈), 그분과 교제하기를 갈구하는 마음, 그분이 임명하신 왕 같은 제사장의 직분(베드로전서 2장 19절)이다.(153 페이지)

 

14번 논자인 생물학 교수 도로시 보오스는 자신이 생태학을 연구함으로써 누리는 특권을 넷으로 정리했다. 경쟁, 공생, 자연선택, 적응 등이다. 자신이 이해하는 과학이 자신의 소중한 신념들과 이루는 조화가 내적 통일성을 선사한다고 말하는 도로시 보오스는 자연세계를 더 잘 이해하는 일과 성경을 더 잘 이해하는 일을 수행하자고 제안한다.(163 페이지) 바이오로고스(BioLogos) 편집장인 15번 논자 짐 스텀프는 존 월튼의 '창세기 1장의 잃어버린 세계'라는 책을 읽고 무질서의 꾸러미들이 고립적으로 산재했던 마음속에 질서가 자리 잡히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바이오로고스 재단은 신이 다른 종의 진화를 메커니즘으로 사용하여 세상을 창조했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기독교 옹호 단체다.

 

존 월튼은 ’기원 이론‘(2023년 2월 출간)의 여러 공저자들 중 한 분이다. ’기원 이론‘은 천문학, 물리학, 지질학, 화학, 생물학 등 현대 과학의 성과들 안에서 신학적 의미를 발견하도록 인도하는 책이다. 수학의 분석 도구가 문학의 위대한 사상을 만나자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다고 말하는 짐 스텀프는 존 월튼의 '창세기 1장의 잃어버린 세계'를 통해 구약 본문을 해석할 때 반드시 고대 근동 세계를 고려해야 함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고 전한다.(168 페이지) 짐 스텀프는 존 월튼의 논의에 의거해 바벨탑은 땅의 그 지점으로 하나님을 끌어내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짐 스텀프는 우리 문화에서 진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뛰어난 말솜씨로 진화를 모든 형태의 악과 하나로 묶는 일을 워낙 능숙하게 해낸 덕분에 단지 과학적 증거를 늘어놓는 것만으로는 진화 창조론을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174 페이지) 콜로니얼 교회 담임 목사인 대니얼 해럴은 16번 논자로 나서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믿음은 우리 자신의 무오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말로 포문을 연 뒤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행위는 어떤 학문을 통하여 진리를 추구하든 상관없이 결국 하나님에게로 우리를 이끌어 갈 것이라 말했다.(182 페이지)

 

대니얼 해럴은 신학은 하나님이 손수 하신 일을 드러내는 과학적 발견을 경축해야 하는데 단순히 그럴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184 페이지) 신약학 교수 톰 라이트는 17번 논자로 나서 오늘날 자신이 느끼기에 영국에서는 과학이 하는 말 때문에 믿음을 저버리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말을 했다. 톰 라이트에 의하면 영국에서는 알리스터 맥그래스, 존 폴킹혼 같은 과학자겸 신학자들이 기독교와 과학이라는 두 세상을 슬기롭고도 풍성하게 통합시키는 사고방식의 본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192 패이지)

 

18번 논자인 옥스퍼드 대학교 인류학과 연구원인 저스틴 배럿은 자신이 언제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가 현재로서는 증거에 대한 가장 강력한 해석이라는 최종 결론에 도달하였는지 특정하기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점진적 과정이었다. 저스틴 배럿은 그리스도인이나 무신론자나 우쭐대면 꼴불견이기는 마찬가지라는 말을 한다. 과학과 종교를 가르치는 교수 데니스 래머로는 19번 논자로 나서 종교와 과학 사이에서 흔들린 자신의 여정에 대해 논했다. 진화가 거짓임을 밝힐 과학적 증거를 수집해 진화를 격파할 책을 쓰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 데니스 래머로는 진화의 과학적 증거가 압도적인 현실과 마주쳐야 했다.

 

데니스 래머로에 의하면 과학에서 진화에 대한 논쟁이 없고 진화와 경쟁하는 이론도 없다. 데니스 래머로는 진화가 참임을 가리키는 전이(轉移) 화석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았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데니스 래머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머니의 태에서 배(胚) 발생이라는 하나님의 자연 과정을 이용하여 창조하셨음을 믿는다고 말한다.(211 페이지) 데니스 래머로는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창조주께서 하늘에서 내려와 발생 중인 우리의 몸에 온전한 팔이나 다리를 척척 가져다 붙이는 기적을 행하신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하며 이것도 진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덧붙인다. 데니스 래머로는 과학을 기독교의 원수가 아닌 하나님의 선물로 정의한다.

 

러셀스트리트 교회 담임 목사 로라 트루액스는 20번 논자로 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단 하나의 완고한 이해의 틀 안에 전능자를 감히 가두려고 하는 인간의 오만 앞에서 자신의 마음은 점점 불편해졌다고 말한다.(219 페이지) 로라 트루액스에 의하면 우주의 경이가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인간의 유전 암호와 진화의 시작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면서 인간 기원의 길고도 복잡한 이야기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는 지금은 인간을 포함하는 모든 창조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지는 것들과 교류하면서 감탄과 기쁨의 소리를 외칠 때다.(221 페이지)

 

21번 논자 로드니 스콧은 생물학 교수다. 그는 진화 이론이 사람이 신심을 가질 수 있거나 가져야 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대학원에 들어가 성경 교회라는 모임에 출석하던 로드니 스콧은 그 시기가 놀라운 성장의 시기였던 동시에 약간의 영적, 지적 혼란을 겪은 시기였다고 설명한다. 선택한 직업인 생물학과 신앙이 어떻게 관련되는지와 관련하여 혼란스럽고 부정적인 메시지를 많이 접하던 순간 하나님께서 척이란 사람을 멘토로 붙여주셨다고 말한다. 척은 과학과 신학 모두 인간의 노력과 시도로 이루어지기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결함이 겉보기 갈등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두 학문의 연구 대상인 창조 질서와 성경이 모두 하나님의 작품이고 그렇기에 궁극적으로 서로 조화로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227 페이지) 로드니 스콧은 진화는 하나님이 하셨고 어떻게 하셨는지 정말 모르겠다는 말을 던진다.(230 페이지) 선교학 교수 아모스 용은 22번 논자로 나서 성경을 소중히 여기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은 어떻게 성경이 과학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와 보완적이지는 않더라도 양립가능한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237 페이지)

 

23번 논자인 성경 교사이자 목회자인 리처드 딜스트롬은 하나님은 두 권의 책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말을 했다. 리처드 딜스트롬은 하위문화에는 강력한 자기 준거성이 펴지게 된다고 말한다. 폐쇄적 모임 안에 머무르면서 자기 자신과 생각과 신념이 같은 사람들하고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는 우리들의 관점만이 진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245 페이지) 리처드 딜스트롬은 프리먼 다이슨의 말을 전한다. 다이슨은 ”우주와 그 설계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어떤 의미에서 우주가 우리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는 증거를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는 말을 했다.(246 페이지) 자연과학과 해석학(성경을 해석하는 과학)은 겸손과 상호 의존 자세를 가져야 한다.(248 페이지)

 

겸손과 상호 의존이 부족하면 영혼 없는 물질주의에 빠지거나 자연과학의 발견들과 끊임없이 마찰하는 근본주의에 발목을 잡힐 것이다. 바이오로고스 프로그램 디렉터 캐서린 애플게이트는 24번 논자로 나서 과학을 이해한다고 해서 반드시 무신론을 신봉하게 되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는 말들 들려주었다. 과학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에 매료된 캐서린 애플게이트는 자신의 연약한 신앙의 관(棺)에 마지막 못을 박을 것만 같은 분야는 피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진화였다.(254 페이지) 진화는 생물학의 이론적 토대라는 말(138 페이지)과 비교할 만하다.

 

세포 골격 역학 공부 길에 들어선 케서린 애플게이트는 거의 매일 진화에 관한 무지를 마주하면서 진화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캐서린 애플게이트는 무작위적 돌연변이에 따른 자연선택이 진화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가 묻는다. 캐서린 애플게이트는 그리스도인들이 창조 질서의 구조 안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이 하신 일의 증거를 거부하지 않고 창조주이신 놀라운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말을 한다.(257 페이지)

 

풀러 신학교 총장을 역임했던 신학교 교수 리처드 마우는 마지막 25 번 논자로 나서 총장 시절 겪은 흥미로운 사연을 들려주었다. 풀러 신학교의 한 교수가 지적 설계 운동의 한 측면을 비판하는 글을 쓰자 그간 수백만 달러를 누적 기부한 한 부유한 기부자가 학교측에 그 교수에게 종신 재직권을 부여한다면 앞으로 풀러 신학교에 한 푼도 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리처드 마우는 죄송합니다만 정 그렇게 느끼신다면 다른 신학교를 찾아서 기부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란 말을 했다. 느껴지는 바가 많은 이야기다.

 

리처드 마우는 극도로 중요한 이슈를 토론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십자가 아래에 마련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271 페이지) 상징적인 말 같다. 스물 다섯 논자는 하나 같이 열린 사고, 진지한 사고의 담지자들이다. 신앙과 과학 또는 창조와 진화 사이에서 갈등을 겪은 경우도 많지만 모두 지혜롭고 조화롭게 문제를 해결한 분들이기도 하다. 공부도 열심히 하는 필자(논자)들을 보며 지적 자극을 많이 받았다. 아쉬운 점은 창조론과 지적 설계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을 했다면 좋았을 것이란 점이다. 어렵지 않게 주요 논지들을 잘 설명한 글이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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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도성, 권력으로 읽다 금요일엔 역사책 6
권순홍 지음 / 푸른역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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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역사 출판사의 '금요일엔 역사책'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인 권순홍의 ‘고대 도성, 권력으로 읽다‘는 자료 부족으로 인해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마음대로 하려고 가상의 마을 고도를 내세워 서술한 역사서다. 저자는 고도를 古都로 설정한 뒤 거기에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논증들을 덧붙였다.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저자가 윌리엄 조지 호스킨스다. 역사 지리학 분야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 받는 호스킨스는 우리 눈앞에 펼쳐진 인공물은 물론 자연의 풍경까지도 사람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불평등의 기원, 권위의 창출’이란 챕터에서 저자 권순홍은 잦은 전쟁과 교역을 통해 인근의 잉여 소출을 취해 인구가 늘어나고 마을이 커진 고도를 통해 전쟁의 의미에 대해 논한다. 고도의 지도자는 자신의 자리가 하늘이 정해준 자리라고 선언한다. 책에 의하면 사람이 모여 산다는 이유만으로 도시라 부를 수 없다. 계층의 분화, 권력의 출현을 매개로 한 지배계층의 집주(集住)가 필요조건이고 자급자족성을 배제함으로써 필요해진 외부 의존성이 충분조건이다.

 

도시는 차별과 서열화에 근거하는 조직이다. 춘추좌씨전에 의하면 종묘와 선군(先君)의 주(主)가 있으면 도(都)이고 그렇지 않으면 읍(邑)이다. 주(主)는 위패를 말한다. 주대(周代)의 혈연적 종법 질서에서 대종(大宗)은 천자이고 그 지위는 적장자에게 이어지며 나머지 자식들은 제후로 봉(封)해진다. 적장자는 본처를 의미하는 적실(嫡室) 또는 정실(正室)의 장자를 의미한다. 왕의 권력은 설화나 상징이라는 관념적 장치뿐 아니라 무력에 바탕한 강제력이라는 실제적 장치를 통해 행사된다.

 

저자는 구금시설과 공적 세금이 어떤 과정과 배경에 따라 비롯되었는지 설명한다. 고도는 차별과 구분에 따라 운영된다. 처음에 전리품은 주민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었지만 점차 공을 세운 순서에 따라 차등 지급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율령과 불교가 절대적 권력의 장치로 기능하게 되었다. 고구려는 400여년의 집안(集安) 생활을 뒤로 하고 평양으로 천도했다. 국내성은 집안의 도성이었다. 도읍을 옮긴가는 의미의 천도는 遷都라 쓴다.(흥미롭게 옮길 ‘천; 遷‘은 낭떠러지의 의미도 갖는다.)

 

집안 지역의 왕릉급 고분은 도성 경관에서 빠질 수 없는 마루지(識)였다. 마루지는 랜드마크의 순화어다. 저자는 집안 지역과 달리 거대한 고분들이 도성 중심으로부터 멀어져 시야에서 사라진 평양에 대해 그것은 도성 경관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초대형 고분들의 상징적 기능이 필요 없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라 추정한다. 궁금한 것은 집안의 초대형 계단식 적석총을 대신할 평양의 새로운 경관은 무엇일까?다.

 

평양 천도 전후 고구려 도성 경관은 왕릉급의 초대형 고분을 대신한 불교사원의 밀집, 평지 성곽을 대체한 격자형 가로구획으로 마무리되었다.(105 페이지) 격자형 가로구획은 서열을 시각화하는 것이다.(113 페이지) 격자형 가로구획은 지배질서로서 예제(禮制)를 구현한 것이다. 예기(禮記)에 따르면 예란 친소(親疎; 친함과 친하지 않음)를 정하며 혐의(嫌疑; 꺼리고 싫어함)를 결단하며 동이(同異; 같음과 다름)를 구분하며 시비(是非; 옳고 그름)를 명백(明白)하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란 권력의 범주를 규정하는 기본 원칙이다.(115 페이지) 

 

삼국사기 권 18에 광개토왕 2년(392년) 가을 백제가 남변(南邊)을 침입하자 왕이 장군에게 명하여 그를 막았고 평양에 아홉 개의 절을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저자는 이를 후일의 평양 천도와 무관할 수 없는 일이라 설명한다. 전기 평양에는 평지 성곽이 없었다. 물론 성곽의 부재가 경계의 부재나 공간의 평등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고구려 도성은 배타적인 권력 공간으로 궁실(宮室) 및 종묘 등을 내포해야 했다.(96, 97 페이지)

 

성(城)은 군(郡)을 위요(圍?)하기 위한 것이라면 곽(廓)은 민(民)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초기 고구려는 화폐경제가 성장할 여지가 없었다. 더구나 중심지를 위협 받는 외부의 침입을 겪지도 않았다. 곽(廓)이 필요 없었던 이유다. 342년 고구려가 전연의 침공에 대비해 세운 국내성은 집안 평지성일 가능성이 크다. 247년에 조영(造營)한 평양성의 성벽을 공유하는 가운데 더 두텁고 견고하게 새로 쌓는, 수즙(修葺)이 아닌 축(築)일 수 있었다. 수즙(修葺)의 즙은 수선(修繕)의 의미를 갖는다.

 

427년 고구려는 평양으로 천도했다. 저자에 의하면 천도에는 국내외적 조건이 두루 관계했다. 저자는 고구려 후기의 도성인 장안성(長安城)에 대해 논한다. 장안성에는 전기 평양 도성에 없던 평지 성곽이 등장했다. 그것은 고구려가 북위 낙양성의 도성 체제를 수용했음을 의미한다. 그 점이 천도의 동인(動因)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전기 평양 도성과 달리 장안성에는 도성 내 성벽에 의한 관민의 공간적 구분이 이루어졌고 추정이지만 높은 담을 통한 방장제(坊墻制)가 시행되었다.

 

방장제란 곽(郭) 안을 벽(墻·장)으로 분할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주민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당나라 장안성의 경우 주민들이 방의 문이 열리는 낮에는 자유롭게 외부에서 활동할 수 있었지만 문이 닫히기 전 모두 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이는 유목민족이 가축을 기르는 것과 유사했다. 저자는 우리의 근현대사는 권력의 폭력성을 처절하게 경험하는 역사였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몇 권의 책이 읽고 싶어진다. 이기봉의 ’임금의 도시‘, 김용만의 ’숲에서 만난 한국사‘, 윌리엄 호스킨스의 ’잉글랜드 풍경의 형성‘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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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매혹이 될 때 - 빛의 물리학은 어떻게 예술과 우리의 세계를 확장시켰나
서민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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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민아 교수는 1 밀리미터 길이의 파장을 가진 테라헤르츠(1초에 1조번 진동하는)를 연구하는 물리학자이자 화가다. 책 전편이 빛에 관한 풍성하고 새롭고 의미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하지만 가장 핵심 구절을 하나 들라면 책 후반부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을 택하겠다. “빛은 생명의 시작이자 끝이다. 빛은 스스로 하나의 물질이면서 동시에 다른 물질을 분석하고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빛은 입자이면서 파동이다. 빛은 시간을 제어하고 공간을 해체한다.”(234 페이지)

 

저자는 여러 차례 과학자와 예술가에 대해 논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은 말이다. “과학은 세상의 이치와 진리를 탐구하는 영역이라면 미술은 그 진리를 말하는 방향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표현하는 영역이다... 과학과 예술은 서로에게 영감의 원천이며 서로의 발전을 응원하는 동반자이기도 하다.”(233 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물리학자이자 화가)을 증명하듯 고전역학과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예술의 영역을 넘나들며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쳤다. 고전역학의 대표 존재는 뉴턴(1643 - 1727)이다. 그는 처음으로 빛 자체에 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흰색으로 보이는 햇빛을 프리즘을 이용해 일곱 가지 색으로 나누었고 그것을 다시 모으는 실험에 성공했다. 뉴턴처럼 데카르트도 빛을 입자로 보았다.(203 페이지) 뉴턴의 입자설 이전에 파동설을 제기한 사람이 있었다. 네덜란드인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다.

 

뉴턴의 입자설은 빛의 반사와 굴절은 설명해도 회절 현상은 설명할 수 없었다. 빛이 파동으로서 갖는 성질을 실험을 통해 증명해 뉴턴의 입자설을 무너뜨린 사람이 토머스 영이다. 그가 한 실험은 두 개의 좁은 틈(슬릿)에 빛을 통과시켜 스크린에 생긴 간섭무늬를 관찰하는 이중 슬릿 실험이다. 영은 검은색 판에 두 개의 길고 좁은 틈을 만들고 한 가지 색의 빛을 두 개의 틈에 통과시켜 맞은편 스크린에 나타나는 무늬를 관찰했다. 실험 결과 여러 개의 줄무늬가 나타났다. 빛이 파동이기 때문에 두 개의 틈을 통과하며 각각 회절 현상을 일으켰고 두 파동이 보강 간섭과 상쇄 간섭을 일으킴에 따라 밝은 선과 어두운 선이 차례로 나타나 빛이 일렁이는 득한 여러 간섭 무늬를 남긴 것이다.

 

괴테(1749 - 1832)는 빛과 우리의 눈 사이의 상호작용을 배제하고 빛과 색의 관계를 정립한 뉴턴의 관점을 기계적이고 결정론적이라 비판하면서 색채는 빛과 사물,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간의 감각에 의해서만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괴테는 뉴턴 사후 태어났기에 한 번도 같은 하늘 아래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둘의 다른 견해 제시는 논쟁이라 하기에 충분하다. 영국인 뉴턴과 독일인 괴테의 대립(?)은 미분을 놓고 갈등을 빚은 영국인 뉴턴과 독일인 라이프니츠의 갈등을 연상하게 한다.

 

과학사는 논쟁과 대립의 역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빛과 색채에 관한 뉴턴과 괴테의 다른 견해,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격렬한 논쟁(223 페이지) 등이 그런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뉴턴의 입자설은 여러 과학자에 의해 반박되고 다시 증명되기를 반복했다(199 페이지)는 사실도 그렇다. 빛이 입자라면 회절이나 간섭 현상을 설명할 수 없기에 파동설로 기울었다가 빛을 쪼이면 금속판 내부의 전자가 바로 튀어나오는 현상이 빛의 파동성을 설명할 수 없어서 다시 입자설이 힘을 얻는 식이었다.

 

빛은 때론 입자처럼 행동하고 때론 파동처럼 행동하며 그 상태는 확률로만 설명할 수 있다. 절대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상태는 없다. 이는 빛에 대한 최종 결론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론은 보어의 상보성 원리,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다.(211 페이지) 중요한 사실은 하나의 실험에서 입자설과 파동설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는 점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관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힌 이론이다.(164 페이지)

 

이를 코펜하겐 해석으로 설명하자면 빛과 전자와 같은 입자들은 측정 전에는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지닌 중첩 상태에 있으며 그 위치는 확률로만 알 수 있다. 측정하는 순간 입자의 위치는 명확하게 알 수 있지만 운동량은 이미 변했기 때문에 측정치에 오차가 발생한다(213 페이지)는 말을 들 수 있다. 코펜하겐이란 상보성 원리를 제안한 닐스 보어가 살았던 도시명을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빛과 색의 차이도 대조적인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섞을수록 흰색에 가까워지는 빛 vs 섞을수록 검은 색이 되는 색의 대립으로 말이다.

 

빛에 관한 가장 간단한 정의 중 하나는 빛은 전자기파라는 말이다. 전기장과 자기장이 만나서 생기는 파동이 빛이다. 다시 말해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를 유도하며 진행하는 파동이다. 파동은 공간이나 물질의 한 부분에서 생기는 주기적 진동을 의미한다.(122 페이지) 요한 발머의 선스펙트럼, 막스 플랑크의 흑체 복사 이론을 빼놓을 수 없다. 발머의 선스펙트럼은 기체 상태의 수소를 방전시켜 발생한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켜 얻은 것이다.

 

태양광은 여러 파장의 빛을 방출하기에 연속적인 스펙트럼으로 나타나지만 수소는 특정 파장의 빛만 방출하기에 몇 개의 선 스펙트럼으로 나타났다. 특정 파장의 빛만 방출한다는 것은 특정 에너지값만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원자 내부의 전자는 높은 에너지 값을 가진 궤도에서 낮은 에너지값을 가진 궤도로 이동한다. 이때 두 에너지 값의 차이만큼 빛을 방출한다. 흑체는 모든 진동수 영역의 빛 에너지를 흡수하고 자신이 흡수한 에너지를 모두 빛 에너지의 형태로 방출하는 물체를 말한다.(160 페이지)

 

양자(量子)는 헤아릴 수 있는 최소의 물리량을 뜻한다. 물리량이 양자화된다는 것은 최소량의 정수배로 띄엄띄엄한 값을 갖는다는 의미다. 빛은 입자이기도 하다. 파동으로서의 빛이 전자기파라면 입자로서의 빛은 광자다. 저자는 그랜드캐니언을 양자화된 세계의 단면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라 정의한다.(174 페이지) 양자화된 세계에서 빛은 어떻게 움직일까? 전자는 어떤 에너지 계단에서 다른 에너지 계단으로 이동할 때 빛을 흡수하거나 방출한다. 전자는 높은 에너지 계단에 있을 때 들뜬 상태가 되면서 불안정하다. 이 전자는 바닥 상태로 내려가면서 계단 높이만큼의 에너지를 방출한다.

 

원소에 따라 계단의 높이는 정해져 있어서 특정 계단 사이만 오갈 수 있다. 오로라도 에너지 계단의 높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대기권에 도달한 태양풍이 산소, 질소 등의 분자들과 충돌해 만들어지는 들뜬 상태의 분자들이 안정된 바닥 상태로 내려오는데 이들은 에너지 계단의 높이에 해당하는 빛 에너지를 방출한다. 이 빛이 오로라다. 오로라가 주로 초록색인 것은 우리 눈이 그 색에 가장 민감하기 때문이다. 오로라는 위도 60 ~ 80도의 극지방에서 주로 나타나 극광 또는 북쪽의 빛이라 부른다.

 

양자역학에서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여러 과학자가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던 개념은 양자의 중첩성과 불확정성이다. 두 개념은 고전역학에서 당연시하던 결정론과 인과율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중첩성이란 하나의 입자가 모든 가능성의 상태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테라헤르츠, 반타블랙, 포웨히, 고출력 극초단 레이저, 어블레이션 등 이 책에는 낯선 용어들이 많이 나온다.

 

편광(偏光)과 레이저가 기억에 남는다. 편광은 전자기파를 구성하는 전기장이나 자기장이 특정 방향으로만 진동하는 현상이다. 레이저는 자연 상태에서 사방으로 퍼지는 빛을 한 방향으로 모아 세기를 극대화한 시스템이다. 특정과 한(하나)이란 말이 비교를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책에는 여러 화가들이 나온다. 세잔, 쇠라, 피카소 등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저자의 다른 책인‘미술관에 간 물리학자’를 읽어야 하겠다.

 

저자는 ‘빛은 얼마나 작은 틈까지 통과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동력 삼아 다른 과학자들이나 화가들처럼 앞으로도 집요하고 꾸준하게 빛의 정체를 탐구하고 빛의 성질을 이해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 말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그랜드 캐니언을 양자화(量子化)란 개념으로 설명한 저자의 내공에 영향을 받아 다시 지구화학 공부를 성실히 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편광 현미경으로 암석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 역시 빛과 관련한 이야기임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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