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과도공간(過渡空間; espace transitionnel) 즉 심리변화가 일어나는 장소로 이곳에서 정신세계와 외부세계가 서로 만나면서 변화가 일어난다.˝

창조적 독서 치료사 레진 드탕벨의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에 나오는 말이다.(80 페이지)

과도공간이란 영국의 소아과 의사/ 아동 정신분석가인 도널드 위니캇이 말한 중간 대상과 같은 말이다.

[과도(過渡)라는 말은 지나침을 뜻하는 과도(過度)로 잘못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으니 전이(轉移) 또는 천이(遷移)라 하면 어떨까? 더 어려운가?]

어떻든 중간 대상이란 유아가 일차적 애정 대상으로부터 감정을 분리해가는 과정에서 특별히 애착을 갖는 부드러운 담요, 수건, 장난감 등의 물건을 가리킨다.(결국 버려야 할 것들 즉 애착을 거두어들여야 할 것들이다.)

도널드 위니캇은 멜라니 클라인, 월프레드 비온 등과 함께 병리현상을 일으키는 환경문제와 사회문제를 동시에 주목하면서 프로이트 정신분석 이론과 임상을 수정, 확대, 재구성한 정신분석가이다.(‘헬조선에는 정신분석‘ 196 페이지.. 홍준기 교수 글)

(이 정도의 글이 우리의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듯 하다. 최신 논의가 그렇게 빨리 반영되기는 어렵겠지만 아쉬운 부분이다.)

잠시 미국의 미디어 학자 닐 포스트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인쇄 시대의 개막과 함께 독서 능력을 갖추고 책을 읽은 성인과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한 어린이 사이에 질적 차이가 생겼다고 말하며 그렇게 책을 읽지 못해 지식이 제한된 사람들을 가리키기 위해 어린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책은 심리변화가 일어나는 과도 공간이라는 드탕벨의 말과, (과거에)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 여부가 어른과 어린이를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는 포스트먼의 말 사이에는 묘한 차이가 있다.

정신분석을 옹호할 필요가 내게 없지만 지난 토요일(11월 18일) 나는 심리상담사를 만난 자리에서 현대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로부터 소스(source)를 취해 그로부터 거듭 벗어나고자 하는 학문이라는 말을 했었다.

책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지성을 만들어주는 바탕이지만 평생에 걸쳐 창조적으로 배반해야 하는 대상이 아닐지?

책이란 강을 건너면 버려야 하는, 붓다가 말씀하신 뗏목과 같은 것이란 점이 내 생각이다.(˝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는 기형도 시인의 말은 뗏목을 버리기가 두려웠다는 말로 볼 수 있다.)

누구든 그것이 인생(c‘est la vie)이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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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진행된 파워포인트 수업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는 길이다.

백** 강사님의 강의는 인상적이었지만 나는 4일 중 하루를 빠졌고 그나마 전체적으로 머리가 아파 집중하지 못해 특별히 생각나는 부분이 없다.

그래도 전체적인 흐름을 알았으니 혼자 연습하고 연습하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홉 명의 수강생 중 남자는 나 하나였다.

수업 중 스스로를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 소개한 분과 충정로역까지 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봉 7000의 직장을 포기하시고 85세까지 운영하실 계획으로 ‘장**의 지구여행‘이라는 회사를 세웠다는 63세의 분이다.

여행이란 인생 여행을 의미하는 메타포이다. 영어도 배우고 있고 엑셀 등 컴퓨터 활용 능력 과정도 마치셨고 파워포인트도 배우고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과에도 응시하는 등 치열하게 사시는 분이다.

그 분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들으시더니 궁 스토리텔링을 전각 중심이 아니라 왕의 하루를 전하는 것으로 구성해보라고 하셨다. 감사한 일이다.

내가 오늘 만난 그 분은 느슨한 내게 자극이 되는 분, 새 목표를 갖게 하는 분이었다고 기록해야 하겠다.

짧은 강의(하루 3시간씩 총 4회; 12시간)였지만 마치고 나니 허전함이 생겨 종로의 대형서점에 들러 책을 샀다.

프랑스의 창조적 독서 치료사 레진 드탕벨의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이다.

늘 그렇듯 이 책도 내게 큰 도움을 줄 책이다. 치료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고 소설도 쓰는 여성 독서치료사라는 저자의 네임 벨류 때문이다.

치유받은 것 이상으로 다른 분들께 치유를 제공할 자료인 이 책에 빠져 잠시 시름을 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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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사회(大同社會)는 삼황오제(三皇五帝) 즉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 여와씨(女媧氏)의 삼황, 황제헌원(黃帝軒轅), 전욱고양(顓頊高陽), 제곡고신(帝嚳高辛), 제요방훈(帝堯放勳; 요 임금), 제순중화(帝舜重華; 순 임금)의 오제가 통치하던 시대를 말합니다.

이때는 인재를 선발하여 왕위를 넘겨주는 선양제(禪讓制)를 통해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반면 제순중화(帝舜重華) 즉 순 임금으로부터 왕위를 선양받은 우(禹) 임금으로부터는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세습제(世襲制)가 실시되었는데 이를 소강사회(小康社會)라 합니다.(안성재 지음 ‘노자의 재구성‘ 144 페이지)

요순시대(堯舜時代)는 요 임금과 순 임금이 덕으로 천하를 다스리던 태평한 시대를 말합니다. 치세(治世)의 모범으로 삼는 시대입니다.

요순시대(堯舜時代)는 먼 과거의 신화시대가 아니라 현재·미래에 추구해야 할 이상향이기도 했습니다.

동아시아의 유토피아는 ‘없는 곳’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공자는 요순시대는 희희호호(熙熙皓皓)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희희는 밝다는 뜻이고 호호는 희다는 뜻입니다. 만 가지 일이 모두 잘 다스려져 밝고 환하게 티끌하나 터럭 하나만큼의 악이나 더러움도 숨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요순시대(오제의 시대)는 공자가 이상화한 시대입니다.

조선의 경우 섣부른 왕도정치 사상에 따라 인조에게 덕을 쌓아 왕도정치를 펼칠 수 있다면 후금의 위협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간언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덕치를 하면 오랑캐들이 자연히 복종한다는 ‘맹자‘의 기록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다고 본 시독관 엄성(1575 - 1628) 같은 사람이 대표적입니다.(김용만 지음 ‘조선이 가지 않은 길‘ 156, 15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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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11월 18일) 중독치료 전문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는 분을 만났다.(내가 심리상담을 받은 것이 아님) 대화를 통해 나는 그 분이 자격증 공부를 거쳐 심리상담사가 된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대학 전공자도 아니고 미술치료나 명상, 유식(唯識) 불교 등 다른 분야의 지식을 갖춘 분도 아니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대해 묻자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답으로 제시했다. 과거의 사건에 얽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의 말이었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 물었다. 그 분은 답을 하느라고 했지만 정답과 거리가 멀었다. 어설프게 알고 넘어간 뒤 흐지부지 잊은 것이 아니었다. 그 분에게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말은 처음부터 아예 들어보지 못한 지식이었다.

그러니 압축(condensation)을 은유(metaphor)와 연결짓고 치환(displacement)을 환유(metonymy)와 연결짓는 것에 대해서도 모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분은 언어학의 명제이자 문학에서 빈번하게 거론되는 수사인 은유와 환유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듯 했다. 물론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말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 물은 것은 저 분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한 것이었다.

내심 그 분이 그런 물음에 답을 해 이방인들을 안심시키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마음이 내게 있었다. 심리상담은 지식을 전하는 것도 아니고 정신분석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자격증 공부를 통해 얻은 단편적인 지식으로 더구나 문외한의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분에게 홍준기 교수의 ‘라캉, 클라인, 자아심리학‘을 추천했다. 이 책을 권하며 나는 그 분이 우려한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 멜라니 클라인 등에 의해 상당 부분 개선되었다는 말을 했다. 공연한 개입이 아닌가 우려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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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론티어(frontier)와 보더(border)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변경(邊境)을 의미하는 프론티어는 미국에서 개척지와 미개척지의 경계선을 이르던 말이다.

분명하지 않은, 확정적이지 않은, 유동적인 경계를 의미한다. 이와사부로 코소의 ‘유체(流體) 도시를 구축하라‘란 책/ 개념이 생각난다.

저자는 건축이라는 단어로 물리적인 도시 공간을 소유하지 않는 도시 민중이 자신의 역사/ 지식/ 문화를 자신의 신체 안에 새겨넣는 과정을 지칭한다.(난해한 개념이다. 매력적이기도 하면서.)

보더는 확정적인 의미의 국경을 말한다. 이문열 작가의 ‘변경‘이란 제목을 보며 멋있다는 생각을 했을 뿐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생각하지 못했다.

염명순 시인의 ‘국경을 넘으며‘란 시에는 ˝삶의 경계를 지나며˝란 표현이 있다.

시인은 ˝사는 건 끊임없이 경계를 허무는 연습˝이란 말을 한다. 삶은 경계를 허무는 것이니 가변적인 변경들로 둘러싸인 무대이리라.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는 나희덕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너무 늦게라도 놀러갈(허물) 수 있겠지만 어떤 이에게 삶은 허물고 새로 짓기에는 너무 굳어버린 것이 아닐 수 없다.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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