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반생기
양주동 지음 / 최측의농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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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측의 농간판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敎檀(..교단) 四十年(사십년)回憶(회억)'이란 부제를 병기하지 않고 제목만을 명기한 책이다.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결합한 저자만의 글쓰기를 수필이란 장르로 한정짓지 않기 위해서이고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사실 혼동의 소지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저자 무애(无涯) 양주동(1903 - 1977) 선생님(이하 저자)은 우리나라 최초로 신라 향가 25수를 해독한 국어학자이고 우리 고어를 의식적으로 글쓰기에 활용한 분이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몇 어찌'란 글을 통해 그 분의 성향이나 스타일을 알 수 있었거니와 깔끔한 노란 색 표지가 인상적인 전집 형태로 새 단장되어 나온 책을 보니 읽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저자의 책은 술의 힘에 편승해 써내려간 문학 책이 아니라 깊고 거침없고 정교한 사유가 압권인 책이다. 저자는 문학을 자신의 평생의 기호(嗜好)라 말한다. 자칭 한문학 중독자, 신학문 중독자인 저자의 글은 종횡무진 지식의 보고(寶庫)들을 섭렵한 내공에 기인한 유서 깊은 것이다.

 

()()() 세 방면을 겸수(兼修)한 저자의 끝내의 귀의처는 국학 곧 국문학의 사학(斯學)이었다. 저자는 열한 살 때 동네 야학숙(夜學塾)의 숙장겸 선생 역할을 수행했다.(: 글방 숙) 저자는 이때 학비 일체는 숙장(塾長)인 자신이 부담하고 월사금은 없고 속수(束脩: 입학할 때 내는 돈) 대신 한 달에 술 한 병을 지참할 것을 요구했다.

 

구학(舊學)의 대가가 신학(新學)을 접할 때 어려움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삼인칭(三人稱)이란 말을 처음 듣고 논어에 나오는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의 그 삼인행인가, 아니면 좌전에 나오는 삼인점 종이(三人占 從二)‘의 그 삼인점인가 궁구했다고.(삼인행 필유아사는 세 사람이 가면 반드시 스승이 될 사람이 있다는 의미이고, 삼인점 종이는 세 번 점을 쳐서 두 번 나온 괘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신학문 중 수학을 가장 좋아했다. 앞에서 몇() 어찌()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은 공간 속 도형이나 대상들의 치수, 모양, 상대적 위치 등을 연구하는 수학의 한 분야(측량과 관계된)geometry를 중국에서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기하 시간에 저자는 안기하(安幾何)로 통하는 안일영 선생이 대정각(맞꼭지각)은 상등(相等: 같다)하다는 문제를 증명해내는 것을 보고 놀라 근대문명에 지각(遲刻)하여 ”, “도장만 찍다가 드디어 봐라, 어떻게 되었느냐?”의 망국을 당한 내 나라도 대개 시골뜨기나 자신 같은 무지의 과정의 소치였구나! 오냐 기하를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는 가위로 실제 각을 만들어 대정각이 같다는 것을 증명한 저자와 달리 수식만으로 깔끔하게 증명해낸 안일영 선생이 자신의 도출 과정을 가리키며 봐라,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은 데서 나온 말이다. 저자가 이름을 날린 것은 약관 20세의 와세다대 초년급 학생으로 춘원 이광수의 중용과 철저‘(동아일보 수록)를 반박하는 철저와 중용‘(조선일보 수록)이란 글을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였다.

 

춘원(1892 1950)은 저자(1903 1977)보다 11살 연상이다. 열 살 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저자는 자신의 기주벽(嗜酒癖)과 한때의 경음(鯨飮: 고래가 물을 마시듯 술을 많이 마심)은 모두 전가(傳家)의 내력이라 말한다. 저자는 기주(嗜酒: 술을 즐김)했는데 술과 관련된 중국 고전들로 자신의 처지를 대변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듯 단지 술만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

 

시회(詩會)가 발전하면 주회(酒會)가 되고, 시회는 번번이 시루(詩樓)로부터 주막으로 옮겨짐이 항례였다.(135 페이지) 저자는 청춘은 한창 서럽고 인생은 그저 외롭고 사랑도 차츰 권태로워졌기에 술이 자꾸 늘어만 갔다고 한다.(138 페이지) 저자가 술과 글로 어울린 사람들은 나도향(1902 1926), 이은상(李殷相: 1903 1982), 염상섭(廉想涉: 1897 1963) 등이다.

 

술은 염상섭과, 글은 이은상과였다(나도향의 본명은 나경손, 호는 도향, 필명은 빈이었다.) 저자에 의하면 염상섭은 시에 자못 흥미가 없었음에 대하여 자신은 소설의 경계를 아주 몰랐다. 염상섭이 끙끙거리며 열심히 퇴고(推敲)해 쓴 치밀하고 끈기 있는 문장을 저자는 트리비얼리즘이라 평했는데 정작 그런 저자는 구상한 소설을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저자는 이를 일러 버선 한 켤레도 꼼꼼히 말아보지 못한 시골 색시가 서울 마누라의 저고리 깃, 섶 솜씨를 비평하는 격이라 말한다.(150 페이지) 저자는 그리도 자긍(自矜)이 심하던 시를 중단하고 평론과 잡문에 종사하다가 신라가요 연구에 전()하였다고 한다.(179 페이지) 저자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우연히 읽고 선생도 일찍이 자신처럼 객기를 이국에서 잠깐 부린 일이 있었거니와 만일 선생이 자신의 글을 읽는다면 후생이 가외라 했을 것이라 말한다.(208 페이지)

 

저자는 1921년에 일본에 갔다가 중간에 지진으로 인한 재해 때문에 1년을 휴학하고 1928년에 와세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6년 공부 기간을 개인의 영화나 일신의 이해를 꿈에도 계교(計巧: 여러 모로 빈틈없이 생각하여 낸 꾀)해본 적이 없고 오직 겨레를 계몽하고 지도하고 향상하여 독립과 해방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한 시간들이었다고 말한다.(228 페이지) 충분히 공감한다.

 

저자가 회월 박영희, 필봉 김기진, 빙허 현진건, 노산 이은상, 금동 김동인, 서해 최학송 등 유명 문인들과 어울린 모임 가운데 시조의 현대적 의의에 대한 토론이 가장 인상적이다. 저자는 시조의 정신을 살리자는 쪽이었는데 일부에서 봉건 시대의 이데아라고 주장했다. 두 진기한 발언이 있었다.

 

김동인(金東仁: 1900 - 1951)은 시조라는 것은 도무지 무슨 수작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김동인은 시조를 개수작, 당치도 않은 객설이라 칭했다. 저자는 이에 자신이 한 시조혁신론의 평범, 진지한 일석의 변을 듣고 도리어 일종의 반발감을 느껴 잠깐 역설적인 독설을 농()한 모양이라 말한다.

 

신경향파의 작가 서해 최학송은 시조 집어치우라는 말을 했다. 저자는 술에 취해 한 그 말을 시조() 집어 치우고 술이나 마시자는 소리인지 시조 같은 유한 문학을 아예 현대문학에서 집어치우자는 뜻인지 알지 못하겠다는 말로 마무리한다.(314 페이지)

 

저자는 서해의 그날 밤 진의는 아마 영원한 비밀이겠으나 자신은 그것이 이념적, 위치적으로는 사회파에 기울어지고 인간적, 체질적으로는 민족파에 친근한 그의 딜레마적 입장에서 고민된 나머지 취중에도 궁여의 일책으로 고심 안출(案出)된 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314 페이지)

 

저자는 뜻 밖에도 H. G 웰스의 타임머신을 이야기한다. 사연인즉 소동파가 술을, ()를 낚는 갈구리라 칭한 것을 살짝 고쳐 술은 현실을 잊게 하는 에테르, 시간을 줄이는 비행기라 말하며 (시간 단축술을 논한) 웰스가 술이라는 간단한 틀의 축시(縮時: 시간 단축)적인 기능을 작품에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가 자신과 같은 주도(酒徒: 술꾼)가 아니었기 때문으로 실천적인 경험과 착상이 부족한 탓이니 섭섭한 일이라 말한 것이다.(351, 352 페이지)

 

저자는 문재(文才)도 뛰어나고 그 만큼 아량(雅量)도 크다. 저자의 아량을 문재에 기반한 아량이라 할 수 있다. 초나라 왕이 명궁(名弓)을 잃자 신하들이 찾아보기를 청하자 왕이 초나라 사람이 잃은 것을 초나라 사람이 얻었으리니 찾아서 무엇하겠는가, 라 말했다. 이를 들은 공자가 왕의 생각이 크지 못함을 아까워 하였다. 왜 사람이 잃은 것을 사람이 얻었으리라고 말하지 못하는가, 라 말했다.

 

이에 저자는 공자의 생각이 크지 못하다. 왜 자연은 얻고 잃음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왜 하필 사람이리오?라 말했다.(368 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두 가지 지적 결함을 이야기한다. 하나는 독일어를 통 모르는 것, 다른 하나는 아주 음치(音癡)인 것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와 릴케, 카프카의 여러 작품을 원어로 읽어보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라는 것이다. 또한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도 아무 영감이 없었음이 괴로운 일이었다고 말한다.(431 페이지)

 

저자는 1923년 일어난 관동대지진을 말한다. 당시 저자는 휴학중이었다. 저자는 이를 천운(天運)으로 돌린다.(442 페이지) 저자는 위방불입 난방불거(危邦不入 亂邦不居: 멸망할 듯한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으며 정치와 풍속이 어지러운 나라에는 머무르지 않는다: ’논어태백편), 화염곤강 옥석구분(火炎崑崗 玉石俱焚: 곤강에 불이 나면 옥과 돌이 모두 같이 불탄다. 재난이 있으면 선한 자 악한 자 구분 없이 모두 다 죽을 수 있다는 의미.)이란 경전 내용으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한다.

 

저자는 자신의 스무 살 직후 청춘기의 글벗이요 애인이었던 K와의 인연을 꺼내기도 한다. 재래의 봉건적 가족 제도에 의한 친권 중심의 도덕관에 대향하여 연애와 결혼, 이혼의 개인적인 자유를 믿고 주장하고 그대로 실천에 옮겨 조혼(早婚)에 의한 결혼을 솔선 파기하는 등 진보적 행태를 보임으로써 일본 유학생회에서 제명 논의가 있자 저자는 스스로 모임에서 탈퇴한 뒤 고별 연설을 겸하여 한 바탕 문학 강연을 시험했다.

 

연애지상주의, 자유 연애 등을 주제로 게거품을 물었는데 그 열변을 들은 K가 찾아왔고 저자는 그녀를 제자 겸 애인으로 두었다. 저자에 의하면 그녀는 참으로 지식욕이 엄청나고 감수성이 날카로운 만큼 연애에 대해서도 미상불(未嘗不: 아닌 게 아니라) 뜨겁고 용감하였다.(458 페이지)

 

저자는 뜻하지 않은 한 불행한 일로 그녀와 헤어진 날 비가 와 날이 음침한 탓도 있었겠으나 대낮인데도 시야가 컴컴하여 길이 온통 보이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아마 내가 K를 무던히 사랑했던가 보다. 그 빛나는 눈, 참새 같은 몸매, 훤칠한 이마, 그 재주, 그 소박함, 그 정열, 그 영리, 또 그 까불음 모두 다 좋았다.”(462 페이지)

 

K는 소설가 강경애(1907 1943)이다. 강경애는 병으로 일찍 타계했다. ‘인간 문제등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불문과에서 춘원이 자신과의 논쟁에서 물과 밥 같은 평범, 건실함의 문학으로 칭한 영문학과로 적()을 옮긴(474 페이지) 저자는 문학행동과 술 마시기에만 몰두하며 날뛰다가 졸업 3개월 전에 논문을 쓰게 되었다.(490 페이지)

 

토마스 하디의 소설 기교론을 주제로 한 논문인데 하디의 전작과 평론의 참고서들을 부랴부랴 구해 단시일내에 모조리 섭렵, 독파하고 결국 논문을 완성한 뒤 고국에서 온 아내와 함께 논문을 나누어 정서(淨書)해 마감 10분 전에 제출까지 했다.(493 페이지) 저자는 논문에서 (하디를 염두에 둔 바에 따라) 운명론, 염세주의 따위는 당초부터 엄밀한 의미로서의 문예상의 이즘이 아니며 형식에서 출발하여 내용에 미치고 드디어 그 총체에 도달함이 문예 비평의 모든 행정(行程)이라는 말을 했다.(500 페이지)

 

저자는 가을 날 황혼에/ 줄나무 길을 혼자 걷다가/ 신을 만나면, 나는 그에게 말씀하리라 - / 당신을 찾지 않을 만한/ 굳센 힘을 제게 주소서같은 존 골즈워디의 시를 읊곤 했다.(509 페이지) 저자는 대학 3개년 전 과목 성적의 4/5가 갑()이어야 취득할 수 있는 고등면허를 위해 나머지 학기에서 모두 갑을 얻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공부에만 매진 목표를 이루는 등 몰입하는 대단한 힘을 보이곤 했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오로지 불후의 문장에 야망을 두었던 바 시인, 비평가, 사상인이 될지언정 학자가 되리란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그런 자신으로 하여금 국문학 고전 연구에 발심(發心)케 한 것은 일본인 조선어학자 오구라 신페이씨의 저서 향가 및 이두의 연구라 말한다.(557 페이지) 우리의 문화가 언어와 학문에 있어서까지 완전히 저들에게 빼앗겨 있다는 사실이 저자에게 통절(痛切)함을 안겨주었다.(558 페이지)

 

저자의 글은 현란한 한자어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독학무사(獨學無師: 스승 없이 홀로 배운 것), 독서불구심해(讀書不求甚解: 책을 읽을 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그대로 접어두고 그 뜻을 깊이 연구하지 않는 것), 염운(拈韻: 운자를 뽑는 것), 촉각시(燭刻詩: 초에 금을 그어놓고 촛불이 거기까지 타들어가기 전에 짓는 시. 짧은 시간 안에 짓는 시), 학숙(學塾: 글방),

 

후생가외(後生可畏: 후학이 두려워 할 만하다는 뜻으로 논어 자한(子罕)편이 출처이다.), 일일지장(一日之長: 하루 먼저 세상에 태어났다는 뜻, 나이가 조금 높음을 이르는 말.), 시참(詩讖: 우연히 쓴 시가 자신의 앞날을 예언한 격이 되는 경우), 기주벽(嗜酒癖: 술을 즐기고 좋아함), 경음(鯨飮: 고래가 물을 들이키듯 술을 몹시 많이 마심), 일람첩기(一覽輒記: 한 번 보면 다 기억한다는 뜻),

 

중인개취아독성(衆人皆醉我獨醒: 모두 술에 취해도 자신만은 깨어 있음을 이르는 말로 굴원의 어부사(漁父詞)‘가 출처), 궁즉통(窮卽通: 궁하면 통한다는 뜻으로 주역(周易)‘이 출처), 겁나(怯懦: 겁이 많이 마음이 약함), 치의(緇衣: 승려), 치문(緇門.. ()는 검은 비단 치자로 치문(緇門)은 물들인 옷을 입은 사람들의 세계(世界)라는 뜻으로 승도(僧徒)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일지반해(一知半解: 하나쯤 알고 반쯤 깨닫는다는 의미. 지식이 충분하게 제 것으로 되어 있지 않거나 많이 알지 못함을 이르는 말), 필흥(筆興: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일어나는 흥취) ..

 

문주반생기는 대단한 책이다. 발간 60년이 다 된 책인데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주는 것이 놀랍다. , , 학문, 우정, 사랑.. 이 모든 것이 책에 담겨 있다. 천재이지만 필요할 때 놀랍게 몰입한 사정은 노력의 힘을 일깨운다. 오래 된 문주반생기를 한글 세대들이 이해하기 편하게 새로운 감각과 주해(註解) 등으로 새롭게 단장한 최측의 농간(출판사)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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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취사(靈鷲寺), 홍련(紅蓮) 등은 의미가 깊고 살강살강, 찰강찰강 등은 재미가 있다. 이 말들로 시를 지은 사람이 마산 출신의 김수영(1967 - ) 시인이다. ‘영취사 홍련을 보았느냐고‘란 제목의 시.

김수영(1921 - 1968) 시인 뿐 아니라 김수영(1967 - ) 시인도 있다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당연한지 모르겠지만 검색을 하면 거의 김수영(1921 - 1968) 시인에 대한 자료만 뜬다.

199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수영 시인에 대해 알고 싶어 조선일보에 가서 ‘1992년 신춘문예‘라 치니 반칠환 시인(1964 - ) 이야기가 나온다.(반칠환 시인은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이다.)

동화작가이고 숲해설가이기도 한 반칠환 시인은 ˝감수성 짙은 문학적 해설˝을 하는 분으로 알려졌다.

숲해설사 교육기관인 숲연구소에서 숲해설 강의를 한다고 한다.(2016년 11월 23일 월간 산 수록 글 ‘시인의 감성으로 들려주는 나무 이야기‘ 참고)

반칠환 시인은 ˝나무를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숲해설사가 되었다. 숲해설가 공부를 하면서 무척 행복했는데 결핍이 없어졌기 때문에 시가 안 나온다.˝는 말을 했다.

아무튼 김수영(1967 - ) 시인을 오랜만에 생각하게 된 것은 김수영(1921 - 1968) 시인론(전병준 지음 ‘김수영과 김춘수, 적극적 수동성의 시학‘)에서 읽게 된 김수영(1921 - 1968) 시인의 ‘비‘라는 시 때문이다.

..명령하고 결의하고
<평범하게 되려는 일> 가운데에
해초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나부끼는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비‘ 일부)

이 시를 읽고 생각한 시가 김수영(1967 - ) 시인의 ‘영취사 홍련을 보았느냐고‘이다.

누가 묻는다
..지나간 발자국에서도 향기가 날까?

붉은 꽃도 지고 푸른 잎도 지고
흐린 물 속에는 탁발을 나가는 검은 발목뼈들

영취사 홍련을 보았느냐고
바람이 불 때마다 살강살강 찰강찰강
물 밖으로 걸어나가는 젖은 발을 보았느냐고
(‘영취사 홍련을 보았느냐고‘ 일부)

‘비‘는 시인이 아내에게 묻는 형식의 시이고 ‘영취사 홍련을 보았느냐고‘는 시인이 다른 사람의 물음을 회상하는 시이다.

‘비‘를 통해 드러난 김수영(1921 - 1968) 시인과 연인 김현경 여사의 사연은 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사연을 생각하게 한다.

마요르카 섬에서 쇼팽과 상드는 어떤 시간들을 보냈을까? 피아노 독주로 연주되는 곡이지만 그 섬과 인연이 되어 지어진 ‘빗방울 전주곡‘은 쇼팽과 상드가 대화를 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그 섬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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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과 김춘수, 적극적 수동성의 시학 서정시학 신서 44
전병준 지음 / 서정시학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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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金洙暎: 1921 1968) 시인과 동시대 시인들이 누구인가란 물음에 박인환(1926 1956), 김종삼(1921 1984) 시인 등을 답했다. 김춘수(1922 2004) 시인을 빼놓았다는 사실을 안 것은 집에 돌아와서였다. 사두고 아직 읽지 않은 평론집들 가운데 전병준의 김수영과 김춘수, 적극적 수동성의 시학이 있어 펴보았다.

 

저자는 김수영은 참여시, 김춘수는 순수시를 쓴 시인으로 규정하는 것을 안이한 관점이라 비판한다. 저자는 김수영 시에 나타나는 감정의 변화 양상이 개인에 대한 자각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 계기가 되었음을 논의하고 김춘수 시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진 지금까지의 연구를 보충할 몇 가지 요인이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김수영의 시학은 자유로 귀결되고 김춘수의 시학은 무의미로 귀결된다는 관행적 이분법이 극복되었음을 언급하면서 그러나 두 시인의 시에 나타나는 유사성과 변별성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주체와 타자(他者)라는 주제가 두 시인의 시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이라는 것이 저자의 한 진단이다.

 

저자는 감성을 중시한다. 감성이란 이성(理性)의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나 토대임은 물론 타자와의 접촉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라는 것이다.(28 페이지) 한편 감성과 감정을 명확히 정의하지 않지만 저자는 두려움을 예로 들어 감정이 지닌 이성적 요소를 언급하는데 그것은 두려움은 예상되는 위험과 손상에 대한 예측에 바탕하기에 판단의 한 형태이고 그것은 더 나아가 타자와의 관계를 전제한다는 것이다.(30 페이지)

 

타자의 작용과 활동이 주체에게 가해져 주체의 변화를 낳고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주체는 자신의 위치를 변경하고 조정하면서 다시 타자에게 작용하고 활동한다. 이러한 과정을 수동성과 능동성이라는 행위의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수동성이 먼저 작용한 다음 능동성이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38 페이지)

 

타자의 활동을 통해 주체성을 버리고 그런 과정을 거치며 자기 자신의 활동과 작용을 시작하는 주체의 특성을 적극적 수동성이라 할 수 있다. 적극적 수동성의 태도는 타자와의 만남을 새로이 생각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저자에 의하면 김수영 시어의 주요 어휘는 설움인데 기존의 연구들은 설움에 대한 인식이 자기의식의 중요한 계기임을 지적하긴 하였으나 그것이 어떻게 사회에 대한 인식으로 전환되는지를 적절히 밝히지 못한 채 단지 4.19라는 사회적 사건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49 페이지)

 

김수영 초기 시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감정은 설움인데 이 외에 포괄하는 의미망이 다른 부끄러움 또는 수치심도 있기에 세밀한 접근이 요구된다. 김수영에게 타자와의 관계를 인식하게 하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한 사람이 박인환이다. 김수영에게 부끄러움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한 데서 온 감정인 한편 현실을 극복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부끄러움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인간 실존 그 자체로부터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김수영은 포로수용소 체험을 다룬 시를 발표하지 않았다. 저자는 설움이나 부끄러움을 주체의 입장에서 타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감정으로,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타자의 입장에서 그를 이해하고 염려하는 감정으로 정의한다.(62 페이지)

 

저자는 김수영이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이란 말을 한 것을, 오직 자신에게서 현실을 뚫고 나갈 힘을 찾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하며 이것은 외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내부의 문제에만 골몰함으로써 독단적인 세계를 구성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극과 고통을 제공하는 외부를 통해 스스로 그에 반응하는 힘을 찾았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설명한다.(67 페이지)

 

초기시에서 김춘수가 끊임없이 과거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며 다시는 그 아름다움을 가까이 할 수 없다고 탄식하는 것은 지나간 것에 대한 회상의 형식으로 나타나지만 동시에 계속해서 합일과 매개의 지점을 모색하는 것은 다가올 것에 대한 동경의 형식으로 나타난다.(88 페이지)

 

누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기의식은 타자의식을 경유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적대적인 것과의 만남과 대결을 거쳐야만 자신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가능하다.(109 페이지) 감정의 흐름을 상대에게 건네고 다시 상대의 감정을 되받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활동을 사랑이라 할 수 있다면 그 과정에 대한 주의 깊은 관심을 기울일 때 비로소 사랑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111 페이지)

 

김수영 초기시에 나타나는 사랑은 분리와 적대를 확인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분리와 적대를 증오와 원한으로 만들지 않고 끊임없이 타자에게 자신을 내어놓고 내맡겼으니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놀라운 비약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김수영이 특이하게 보여주는 사랑의 방식이다.(112 페이지)

 

김수영은 자신을 괴롭히던 역사의 폭력과 그에서 비롯되는 비애를 사랑하고 타자를 통한 사유를 실천함으로써 변혁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한다. 외부의 자극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비애에서 절망과 좌절이 아니라 오히려 결의와 변혁을 추출하는 놀라운 비약과 단절이 김수영 시학의 역설적인 면모이다.(113 페이지)

 

4.195.16을 겪으며 김수영의 시는 많은 변화를 거친다.(139 페이지) 4.19가 발발한 직후에 쓰인 시들에서 김수영은 좀 더 분명하고 직설적인 어조로 기존의 정치세력을 비판하고 그에 야유를 보내며 새로운 행동을 요청한다.(136 페이지)

 

김수영은 혁명이 가져다준 짧은 기간 동안의 자유에 환호하며 제어할 수 없는 기쁨을 누렸지만 그와 동시에 금세 위기에 처한 혁명과 자유의 가치에 대해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그가 그토록 자유에 대해, 언론자유에 대해 끊임없이 많은 발언을 했던 것도 결국 문학의 자유, 나아가 인간으로서의 삶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었다.(149 페이지)

 

우연히 찾아온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영구히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준열한 자기비판과 그에 따르는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 이것이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순간 김수영이 깨닫게 된 이치라고 할 수 있다.(149, 150 페이지)

 

4.19 이후 기존 정치세력에 대해 가차 없는 비난을 퍼부었던(156 페이지) 김수영은 5.16 직후 도봉산 기슭의 어머니 집으로 피신, 양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157 페이지) 도봉산 기슭으로 피신한 삶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바이다.(160 페이지)

 

그 시기에 쓰인 시 가운데 누이야 장하고나! - 신귀거래사 7’이 있다. ”누이야/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란 구절이 있는 시이다. 김수영이 이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이 풍자와 해탈 가운데서 위태로운 균형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161 페이지)

 

김수영은 한국전쟁, 4.19 혁명, 5.16 쿠데타 등을 거치는 한국현대사의 질곡을 겪으면서 시적 기투(企投)를 감행한 끝에 자기를 긍정하고 사회와 역사라는 타자를 용인하기에 이른다.(189 페이지)

 

김수영의 사랑이란 시를 보자.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이 시에서 특징적인 것은 사랑이 나와 너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만남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라는 점이다.(199 페이지) 진정한 사랑은 일상의 고투를 통해서 달성된다. 그것은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 나와 너라는 이질적인 존재가 만날 때 이루어진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로 완전히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존재가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온전히 지니면서 새로운 것을 생성해낼 때 진정한 사랑은 가능하다.(210 페이지) 자유를 시작하는 것, 그것은 창작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일 수도, 정치적 자유를 신장시키기 위한 투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달성될 수 없는 것이었다.(211 페이지)

 

감성 없이 어떤 것도 주어지지 않고, 지성(이성) 없이 어떤 것도 생각될 수 없다.”(28 페이지..칸트, ‘순수이성비판참고)는 글을 생각하게 된다. 김수영은 근대성과 전근대성이 서로 부딪히며 무질서와 갈등을 만들던 시기에 혼란을 넘어설 수 있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식민지를 경험한 한국의 정치적 후진성이 자유를 허용하지 않았고 한국의 문화적 낙후성이 창조적인 혼돈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고통스러운 설움과 비애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212 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연구는 적극적 수동성이라는 관점을 제기함으로써 김수영과 김춘수의 시를 새로이 살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진단하였다고 말하며 자신이 도출한 결론을 시론과 연결시켜 살펴볼 필요성이 요청되거니와 이에 대해서는 후속 작업을 기약하기로 한다고 결론짓는다.(246 페이지) 김수영 강의를 위해 자료 정리 차원에서 읽은 김수영과 김춘수, 적극적 수동성의 시학은 차분하게 읽히는 좋은 책이다.

 

김수영과 김춘수(나는 김수영을 위주로 읽고 리뷰했지만..)를 그들의 삶과의 연계하게 차분한 목소리로 시를 분석하고 설명을 한 노고가 빛나는 책이다. 책이 나온 지 4년이 지났으니 후속 작업이 나올 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두 시인을 비교(했다기보다 같은 논점에 따라 하나로 설명한 것이지만)한 점이 설득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니 같은 유형의 이승규의 김수영과 신동엽같은 책이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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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金洙映; 1921 - 1968) 시인도 있지만 김수영(1967 - ) 시인도 있다. 이 시인은 '영취사 홍련을 보았느냐고'란 시가 좋아 4년 전 블로그에 포스팅했었던 시인이다. 당연한지 모르겠지만 검색을 하면 거의 김수영(1921 - 1968) 시인에 대한 자료만 뜬다.

 

1992(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마산 출신의 김수영 시인에 대해 알고 싶어(우선 한자만이라도) 조선일보에 가서 1992년 신춘문예라 치니 반칠환 시인(1964 - ) 이야기가 나온다.(이 분은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이다.) 시인이고 동화작가이고 숲해설가인 이 분은 "감수성 짙은 문학적 해설"을 하는 분으로 알려졌다.

 

숲해설사 교육기관인 숲연구소에서 숲해설 강의를 한다고 한다.(20161123일 월간 산 수록 글 '시인의 감성으로 들려주는 나무 이야기' 참고) 반경환(1954 - ) 문학평론가가 형이다. 이 분의 숲해설을 꼭 듣고 싶다. 반경환 평론가는 지난 1994년 나온 '한국문연''행복의 깊이'의 저자이다.

 

'행복의 깊이', 대단히 독특하고 도발적이고 신성모독적인 책이다. "나에게 지적인 통찰력과 섬세한 감수성과 예술가의 정신을 가르쳐준 니체와 바슐라르와 김수영 시인에게 이 부끄러운 책을 바칩니다. - 반경환"이란 헌사부터 눈길을 끄는 책이다.

 

"거친 문장과 멋진 미사여구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감을 가지고 실제비평에 있어서도 완벽하게 김현(1942 - 1990)을 극복하고 뛰어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자부한다."는 서문도 그렇다.

 

반칠환 시인은 "나무를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숲해설사가 되었다. 숲해설가 공부를 하면서 무척 행복했는데 결핍이 없어졌기 때문에 시가 안 나온다."는 말을 했다.

 

김수영(1967 - ) 시인을 오랜만에 생각하게 된 것은 김수영(1921 - 1968) 시인론(전병준 지음 '김수영과 김춘수, 적극적 수동성의 시학')을 읽다가 만난 ''라는 시 때문이다.

 

..명령하고 결의하고

<평범하게 되려는 일> 가운데에

해초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나부끼는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 일부)

 

이 시를 읽고 생각한 시가 김수영(1967 - ) 시인의 '영취사 홍련을 보았느냐고'이다.

    

누가 묻는다

..지나간 발자국에서도 향기가 날까?

 

붉은 꽃도 지고 푸른 잎도 지고

흐린 물 속에는 탁발을 나가는 검은 발목뼈들

 

영취사 홍련을 보았느냐고

바람이 불 때마다 살강살강 찰강찰강

물 밖으로 걸어나가는 젖은 발을 보았느냐고

('영취사 홍련을 보았느냐고' 일부)

 

''에서는 시인이 아내에게 묻고 '영취사 홍련을 보았느냐고'에서는 누군가가 시인에게 묻는다. ''를 통해 드러난 김수영(1921 - 1968) 시인과 아내 김현경 여사의 사연(사랑의 우여곡절)은 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사연('빗방울' 전주곡은 마요르카 섬에 머물던 쇼팽이 외출한 연인 조르주 상드를 기다리며 지었다는..)을 생각하게 한다.

 

'김수영과 김춘수, 적극적 수동성의 시학'을 읽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읽게 된 김현경 여사의 '김수영의 연인'은 화려한 등장 인물들이 자꾸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리게 하는 책이다.

 

김현경 여사의 5촌 당숙 김순남(1917 - 1983?; 김소월의 '산유화'에 곡을 붙인.. 성우 김세원의 부친), 김현경 여사가 읽었다는 보들레르, 발레리, 김현경 여사의 이화여대 시절 교수였던 정지용, 김순남의 집에 가서 자연스럽게 어울렸다는 임화(1903 - 1953), 오장환(1918 - 1951) ..

 

이 부분에서 윤동주 시인을 떠올리는 것은 발레리, 오장환, 정지용 등과의 공통 인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도 발레리와 오장환의 시를 읽었고 정지용 시인을 스승처럼 여겼다.

 

('김수영과 김춘수, 적극적 수동성의 시학')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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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울 미(美), 아름다울 휘(徽), 아름다울 의(懿), 아름다울 가(嘉), 아름다울 가(佳)..모두 아름다움을 뜻하는 한자들이다.

이 다섯 글자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글자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양(羊)과 대(大)를 합한 미(美)는 아주 먼 옛날 한자가 만들어질 때 인류의 주요 행사 가운데 하나였던 신에게 제사를 드리던 관습과 관계된 글자이다.

[미(美)가 양과 관계된 글자라면 생(牲)은 소와 관계된 글자이다.]

미(美)는 가장 크고 살찐 양 즉 가장 실용적인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인식한데서 비롯된 글자이다.

그런데 휘(徽), 의(懿), 가(嘉), 가(佳) 등 미(美) 외의 글자들의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다. 알려졌지만 내가 모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휘(徽)와 의(懿)는 조선 왕릉 이름에서 볼 수 있다.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의 휘릉(徽陵), 정조의 후궁 수빈(綏嬪) 박씨(순조의 생모)의 무덤인 휘경원(徽慶園; 동대문구 휘경동은 휘경원에서 유래),

경종과 그의 두 번째 비인 선의왕후(宣懿王后) 어씨의 의릉(懿陵)..

경종(景宗)은 懿자와 인연이 깊다. 첫 번째 비는 단의왕후(端懿王后) 심씨이고, 자신과 懿자를 쓰는 선의왕후가 의릉(懿陵)에 묻혔기 때문이다.

가(嘉)는 가례(嘉禮)라는 말에서 만날 수 있다. 왕실의 혼인(婚姻), 책봉(冊封), 진연(進宴) 등을 가례라 한다.

물건이나 충고 등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가납(嘉納)이란 글자에서 가(嘉)를 만날 수 있다.

그럼 가(佳)는? 가인(佳人)이 있다. 아름다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 등을 뜻한다.

이 글자들을 보며 문자에 능한 사람들은 위계(位階)와 세분(細分)에 밝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미와 흥미를 두루 담고 있는 글자들의 향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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