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해서 흥미진진한 지리 이야기 - 지구 생태계부터 인종·국경·도시 이야기까지
김성환 지음 / 푸른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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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潮境)은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 기수역(汽水域)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 석호(潟湖)는 바닷물과 민물이 섞인 자연 호수다. 연천에는 이런 곳들이 없지만 점이지대(漸移地帶)인 DMZ, 두 강(한탄강, 임진강)의 합수지점(도감포), 군사분계선과 38도선의 교차지점 등이 있다. 게다가 자연환경 보존과 활용이 균형을 이루는 지질공원이 있다. 연천은 이런 곳이다. 김성환의 애매모호해서 흥미진진한 지리+a 이야기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4화 애매모호함의 가치 중 점이지대 DMZ의 가치와 새로운 미래라는 챕터가 눈길을 끈다. 연천에 필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흥미진진한 지리 + a란 말에서 알 수 있듯 지리 이야기와 사회 이야기, 국제 정치 이야기가 두루 포함되어 있다. 지리 이야기 옆의 + a란 말을 얼핏 읽지 못하고 책을 구입했다. 다시 말해 작은 글씨로 쓰인 지구 생태계에서 인종, 국경, 도시 이야기까지란 부제를 읽지 못했다. 물론 내용면에서 읽을 만하다. 아쉽다는 것은 지리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리교육을 전공하고 고교에서 지리교사로 일하는 분이다. 하나 덧붙일 것은 애매모호해서라는 말보다 중간적이어서나 중립적이어서나 회색지대여서라고 하는 게 어떨까 싶다. 애매가 일본식 한자라는 말이 있으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단 애매와 모호 공히 생경하게 들리는 말이라는 말은 할 수 있겠다. 새겨들을 말은 인종은 과학적 개념이 아닌 사회적 개념이란 말이다. 인종이란 말은 피부색에 따라 계급을 나누고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들을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기기 위한 방편은 물론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의도에 따라 사용되기 시작한 말이다. 생물학적으로 모든 인간의 유전체는 99.9% 일치할 정도로 모든 인간은 동일 종이다. 


제인 구달은 생물다양성을 거미줄 즉 생명의 그물망으로 비유했다. 이에 따르면 거미줄이 하나 둘씩 끊어지기 시작하면 약해질 수 밖에 없듯 동식물의 종도 하나 둘씩 사라지면 지구 안전망에 구멍이 생기고 균형이 무너진다. 그물망이란 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는 목초지에서 초식동물들이 풀을 뜯으면 식물에 닿는 햇빛의 양이 증가해 생물다양성이 증가한다는 말을 통해 전형적으로 음미할 수 있는 사안이다. 초식동물들은 지속적으로 식물을 섭취하여 특정 식물이 너무 크게 자라 태양빛을 가리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45 페이지)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 섞이는 것이 순리라는 의미다. 그런데 국가와 도시, 시골마을, 소도시를 연결하는 도로가 많을수록 해당 지역 언어가 소멸 위기에 처할 위험이 더 커진다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소통은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저자는 언어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은 생물 다양성을 지키는 것 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53 페이지) 햄버거의 시초가 몽골인들의 전투식량인 생고기라는 사실(64 페이지)은 흥미롭다. 


산지도 아니고 평야도 아닌 구릉의 가치와 매력이란 글은 어떤가. 구릉(丘陵)은 언덕의 다른 이름이다. 언덕은 산이라기에는 낮고 평야라기에는 높은 모호한 지형이다. 우리나라는 오랜 지질시대를 거치면서 침식, 풍화작용을 많이 받아 평탄화된 지형이 많다. 구릉은 생물다양성에 기여한다. 2011년 서울 강남 우면산 산사태는 구릉지대를 훼손하고 난개발을 한 탓에 일어난 인재(人災)라 할 수 있다. 제주 오름은 구릉에 가까운 지형이다. 연천의 특산물인 율무는 구릉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다. 


점이지대인 DMZ는 면적이 907km²로 한반도 면적(220, 748km²)의 0.4%를 차지한다. DMZ는 전쟁을 겪은 폐허에서 생물다양성의 보고(寶庫)로 거듭난 공간이기도 하다. 한강 하구 중립지역은 주요 철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주목하는 구역으로 2006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한반도의 동서생태축인 DMZ는 남북생태축인 백두대간과 함께 한반도의 핵심 생태축이기도 하다. 동서생태축은 셋으로 크게 나뉜다. 1) 중동부 산악지형, 2) 한탄강 유역 화산지대인 철원평야와 연천을 포함하는 곳으로 임진강이 있고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겨울을 나는 중서부 내륙지역, 3) 한강과 임진강 하구를 포함해 대규모 습지와 갯벌이 발달한 기수역(汽水域)인 서부지역이다. DMZ 일원은 산악지형인 동부지역부터 하구와 갯벌의 평탄지역인 서부지역에 걸친 동고서저(東高西低)를 이룬다. 우리나라 자체가 동고서저 지형이다.


플라톤은 그쳐야 할 곳에서 머무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라 말했다. 소동파는 “나의 문장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과 같아서 땅을 가리지 않고 모두 나와 평지에 차고 넘쳐서 하루에 천리라도 어렵지 않게 흘러간다. 산과 바위와 더불어 굽이쳐 꺾임에 이르러 부딪히는 사물에 따라 모습을 부여하기에 제대로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바는 당연히 흘러야 할 곳을 항상 흐르다가 마땅히 멈추지 않을 수 없는 곳에서 항상 멈춘다는 것뿐이다. 그 밖의 것은 비록 나라고 해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갯벌은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겨 침수되고 썰물 때는 땅처럼 드러나는 바닷가의 벌판이다. 갯벌은 하천에 의해 흙모래 공급량이 많고 조차(潮差)가 크며 수심이 얕고 해안선이 복잡한 곳에서 발달한다. 우리나라 동해안은 성질이 다른 한류(寒流)와 난류(暖流)가 만나는 조경수역을 이룬다. 무지개를 보면 알 수 있듯 자연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계선상의 아름답고 다양한 색을 거느린 곳이다. 


BBC에서 흔히 쓰이는 비유가 있다. 세상은 시소에서 수레바퀴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수레바퀴의 바큇살처럼 이해관계가 360도로 퍼져 있다는 의미다. 저자는 지방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산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너무 서울, 넓게 보아 수도권 중심의 나라다. 자연의 경계가 그라데이션(gradation)적이듯 즉 단계적으로 차이를 드러내듯 인간이 구분해서 정한 경계는 필연적으로 애매모호성을 띤다. 


갈라파고스 제도(諸島)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후쿠오카 신이치는 갈라파고스 제도는 지구의 동적평형 위에서 위태로운 균형을 잡으며 존재한다고 설명하며 지금도 여전히 지리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움직임의 한복판에 있다고 썼다.(‘생명해류’ 139 페이지) 갈라파고스를 소유한 에콰도르는 어떤가.(에콰도르에서 갈라파고스는 1,000km정도 떨어져 있다.) 적도를 지나는 13개 나라 가운데 에콰도르는 대표적이다. 이 나라의 수도 키토는 북반구 별과 남반구 별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193 페이지) 해발고도가 2, 850미터로 높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호주 수도가 캔버라로 정해진 이유다. 캔버라는 시드니와 멜버른 사이의 중간 위치에 있는 이점 때문에 어부지리격으로 수도가 되었다. 적도에 걸쳐 있는 갈라파고스의 수도 키토가 해발고도가 높아 남, 북반구의 별을 모두 볼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순리다. 


호주 수도로 캔버라가 정해진 것도 자연의 순리일까? 역리(逆理)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캔버라는 이점이 많기에 수도로 정해졌다. 단 자동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세상에는 오류, 비상식 등이 가득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인간 또는 사회는 자연이 아니지만 자연을 따라야 한다. 가장 시사적인 글은 전략적 모호성이 절실한 대미(對美), 대중(對中) 관계라는 말이다. 흑백논리의 이분법적 접근이 아닌 균형 감각을 유지하면서 두 강대국 사이에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리외교를 전략적으로 펼쳐야 한다.(23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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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책을 읽다가 잠시(?) 산에 대한 책을 읽는다. 두루 아는 것일 테지만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란 개념이 생각난다.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고 해석되는 말이다. 나는 어진 사람은 산처럼 조급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처럼 순발력 있다는 의미로 읽는 것을 선호한다. 어진 사람은 변화에 민감하지 않아 긴 호흡으로 사람을 사귀는 유형의 사람이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처럼 순발력이 있어 변화를 선도하는 유형의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정약용(丁若鏞)이 다산(茶山)과 열수(洌水)라는 호를 쓴 것은 흥미롭다. 정약용은 열수라는 호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나도 열수라는 호가 더 마음에 든다. 나는 어진 인성과 거리가 멀고 지혜 이전의 지식 추구에 힘을 쏟는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제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도감포 인근의 임진강 주상절리에서 해설을 할 때 강 지도를 활용했다. 예성강, 임진강, 한탄강, 한강, 북한강, 조강 등이 나오는 지도였다.

 

정약용은 북한강이 한강으로 흘러드는 현 남양주 마재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18년의 유배 생활을 마친 후 그곳에서 18년의 삶을 살았다. 정약용은 6살 때 연천 현감으로 부임한 아버지 정재원(丁載遠)을 따라 연천에 와 몇 년의 삶을 살았다. 그런 그가 정조 타계 6년전인 1794년 연천, 적성, 마전, 삭녕을 돌아보는 암행어사 직을 수행한 것은 인연이라 할 수 있다. 태풍전망대에 가면 삭녕 우화정에 관해 쓴 그의 시가 게시되어 있다. 우화정은 겸재, 창애, 청천의 임술년(1742) 뱃놀이의 시작점인 만큼 물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전기한 물의 아름다움을 논한 책은 물과 아시아 미()라는 책이다. 학자 관료인 사대부가 중국 지성계의 흐름을 주도한 11세기 후반 물길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강변의 모습을 횡으로 긴 장권(長券)에 그린 산수화가 유행했다는 글이 눈에 띈다. 물론 이런 유형의 그림에서 주가 되는 것은 물이다. 정약용은 예성강을 저수(), 임진강을 대수(帶水)로 표현한 분으로 물과 관련이 깊다.

 

전기한 산에 대한 책은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이다. 저자 최원석은 우리 겨레는 산의 정기를 타고나서 산기슭에 살다가 산으로 되돌아가는 삶의 여정을 살았다고 말한다. 산에서 시작해서 산으로 될아가는 삶의 여정 곳곳에서 우리는 물을 만나 어울리며 감탄한다. 바다라는 뜻과 자궁이라는 의미를 갖는 수메르어 mar, 바다라는 의미와 무엇을 낳다/ 잉태하다란 의미를 갖는 일본어 우미(うみ)를 보며 나는 물과 생명이 연관이 깊다는 사실을 음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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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런 바라드 컴북스 이론총서
박신현 지음 / 컴북스캠퍼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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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런 바라드를 안 것은 박준영의 ‘철학, 개념’을 통해서다. 바라드는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에 기반하여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것은 불충분함을 넘어 그릇된 것이라 말했다. 바라드가 제시한 대안은 하이젠베르크의 스승 보어에게서 나온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아닌 보어의 상보성 원리이다. 바라드는 물리학 박사 출신의 철학자다. 신유물론 페미니스트로 분류된다. 바라드는 몸이란 단순히 세계 안에 자리잡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몸과 환경은 내부 작용으로 함께 구성된다는 것이다. 인간 몸을 포함한 모든 몸은 본질적인 경계와 속성을 지니지 않고 내부 - 작용의 개방된 역동성을 통해 특정한 경계와 속성을 획득하게 되는 현상이다.


바라드에게 세계와 우주, 공간성과 시간성도 내부 - 작용의 역동성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현상이다. 바라드는 과거와 미래가 서로를 통해 거듭 재형성된다고 본다. 바라드에게 개방성은 존재론적 비결정성과 직결된다. 바라드는 비결정성이 물질의 존재뿐 아니라 비존재론의 열쇠라고 설명한다. 바라드가 제시한 보어의 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려는 자연의 일부다. 보어에게 사물은 본질적으로 확정된 경계나 속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또한 언어는 본질적으로 확정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보어는 주체와 객체 사이에 본질적 차이가 있다는 데카르트적 믿음과 뉴턴 물리학의 재현주의에 의문을 제기한다. 보어가 양자이론의 인식론적 의미에 집중하는 데 그쳤다면 바라드는 보어의 통찰에 함축된 중대한 존재론적 차원들을 탐색한다. 보어가, 이미 존재하는 인간 관찰자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인간중심적 한계를 지녔다면 바라드는 보어의 통찰력 안에서 중요한 포스트모더니즘적 함축을 탐색해 발전시킨다. 바라드는 양자이론이 미시세계뿐 아니라 거시세계에도 적용된다고 본다. 바라드에 따르면 양자물리학의 일반적 관념은 없다. 


바라드는 양자물리학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은 명시적으로 정치적인 물리학이라고 말한다. 이는 물리학은 이미 중립적이지 않으며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바라드는 2007년까지 양자역학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다가 2012년 이후 양자장론을 면밀히 다루기 시작했다. 양자장론으로 확장된 얽힘과 기억, 미결정성과 무한성, 무와 진공에 대한 바라드의 사유는 더욱 심화된다. 바라드는 이런 물리학의 통찰을 바탕으로 윤리, 정의, 역사에 대한 성찰과 전망을 제공한다. 바라드는 양자역학을 일반 독자들에게 이해시킬 언어를 찾느라 이미 충분히 힘들었는데 양자장론을 설명하는 데에는 더욱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바라드에게 실험하기, 이론화하기, 알기, 측정하기, 관찰하기는 모두 물질적인 실천들이며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적인 참여다. 바라드는 보어의 양자이론 외에도 푸코의 담론 - 권력 지식 실천이론,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수행성 이론을 또 다른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는다. 바라드에게 현상은 관계의 원자다. 이러한 현상들이 현실을 구성한다. 바라드가 만든 내부 - 작용이란 말은 핵심적 개념이다. 이는 얽혀 있는 행위성들의 상호적인 구성을 의미한다. 이는 상호라는 말 대신 내부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세계는 이런 내부 작용의 역동적 과정이며 우주는 내부 작용으로서 계속 생성중이다. 


행위적 실재론에서 분리는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의 본질적 특성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차이, 물질화하는 차이다. 바라드에게 존재의 기본 단위는 본질적 경계와 속성을 지닌 독립된 사물이 아니라 현상이다. 현상은 영원히 다시 주름 잡히고 다시 형성된다. 바라드는 개별 행위성이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 작용을 통해 창발한다고 설명한다. 행위성들은 개별 요소들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적 얽힘의 관계 속에서 구별된다. 실험실에서 행하는 측정이 내부 - 작용의 예다. 


바라드는 기구들(apparatuses)이 단순한 관찰도구가 아니라 물질이 되는 경계 - 그리기 실천이며, 세계의 특정한 물질적 재현이라 본다. 바라드에게 공간적 분리가능성 대신 행위의 분리가능성과 행위적 절단이 객관성을 위한 조건이 된다. 행위적 실재론에서 물질은 고정된 물체가 아니다. 물질은 내부 - 작용하는 생성중인 실질이고, 사물이 아니라 행위이며 행위성의 응결이다. 바라드에게 몸은 물질적 담론적인 현상이다. 다른 모든 몸처럼 인간 신체는 내부 - 작용의 개방된 역동성을 통해 특정한 경계와 속성을 획득하는 현상이다.


인간은 자신이 참여하는 물질적 담론적 실천을 통해 내부- 작용하며 함께 구성되는 주체로서 나타난다. 여기서 인간 주체는 기구의 외부적 관찰자도, 기구의 작동에 개입하는 독립된 주체도 아니며 단순히 기술의 산출물도 아니다. 불가사리의 동족인 거미불가사리는 뇌도 없고 눈도 없지만 전체 골격이 하나의 커다란 눈을 형성하고 있는 동물이다. 거미불가사리의 골격계는 죽 늘어선 마이크로렌즈들, 표면 위에 정렬된 작은 방해석 수정 돔들로 구성되어 있다. 널리 퍼진 신경계의 일부로서 빛을 모으고 집중시키는 이것들은 일종의 합성 눈으로 기능한다. 


바라드는 거미불가사리의 시각 시스템이 육체화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거미불가사리는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눈이다. 그 자체가 시각화하는 기구이며 살아 숨쉬고 변형하는 광학 시스템이다. 거미불가사리는 몸이 만들어지고 다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거미불가사리는 주변 환경 속에서 얻을 수 있는 빛에 반응해 착색을 변화시킬 수 있다.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빠지면 신체 부분을 끊어버리고 다시 재생시킬 수 있다. 이는 육체가 세계 안에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일부며, 사물이 아니라 수행성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육체화는 세계 안에 구체적으로 위치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역동적 구체화 속에서 세계의 일부가 되는 문제다. 아는 것은 인식론적인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아는 것은 세계에 대한 특정한 참여이고 존재론적인 수행이다. 우리에게도 아는 것과 존재하는 것은 얽혀 있는 물질적 실천이다. 아는 것은 직접적인 물질적 참여이며 세계의 일부로서 세계와 내부 - 작용하는 실천이다. 바라드에 의하면 기구는 특정한 물질적 담론적 실천이다. 기구는 중요한 차이들을 생산한다. 기구는 물질과 의미를 형성하고 현상을 생산하며 그 일부가 되는 경계 - 만들기 실천이다. 


기구는 세계의 물질적 형성/ 역동적인 재형성이다. 기구는 그 자체가 현상이다. 기구는 내재적 경계를 지니지 않고 개방된 실천이다. 기구는 세계 속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역동성과 공간성, 시간성을 재형성한다. 바라드는 몸 경계가 자명해 보이지만 본질은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특정한 신체적 수행의 반복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바라드는 우리가 어떤 가장자리를 자세히 보면 우리가 보는 것은 빛과 어둠 사이의 선명한 경계가 아니라 일련의 빛과 어둠의 띠들 즉 회절 패턴이며 이는 물리광학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말한다. 


바라드는 도나 해러웨이가 표현했듯 만들어진 신체가 아닌 만들어지는 신체를 이야기한다. 바라드는 어떻게 신체가 세상 안에 자리 잡고 위치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신체가 세계와 함께 또는 세계의 일부로서 구성되는가 즉 세계 안의 존재가 아니라 세계의 존재인가를 논증한다. 바라드는 몸의 물질성에 집중하면서 물질 자체가 얽힘을 수반하며 얽힘이 물질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회절(diffraction)은 바라드가 사용하는 방법론적 접근 방식을 은유하는 중요한 물리적 현실이다. 회절에는 물리학적으로 심오한 암시가 담겨있다. 회절은 파동들이 겹칠 때 결합하고 파동들이 어떤 장애물들과 만날 때 휘어지고 퍼지는 방식과 관련된다. 연못에 던져진 돌이 일으키는 교란이 겹칠 경우 파동들이 서로 간섭한다고 말하고 창조된 패턴은 회절 패턴이라 한다. CD 표면 위의 무지개 효과는 회절 현상이다. 공작 깃털, 나비 날개 위 무지개빛도 회절 효과다. 고전물리학에 따르면 오직 파동만 회절 패턴을 만든다. 입자는 그렇지 않다. 


양자물리학은 어떤 상황 아래서는 물질도 회절 패턴을 만든다고 말한다. 단지 빛뿐 아니라 물질은 어떤 상황들에서는 입자 행동을 나타내고 다른 상황에서는 파동 행동을 나타낸다. 이를 파동 - 입자 이중성 역설이라 한다. 인식론과 방법론에서 반영(reflection)과 회절(differection)은 서로 대조되는 광학적 은유다. 해러웨이는 회절을 반영이라는 낡은 은유에의 대안으로 제안한다. 반영과 회절은 공히 광학적 현상이지만 반영은 반사하기와 동일성에 대한 것인 데 반해 회절은 차이의 패턴들에 주목한다. 


과학적 사실주의는 과학적 지식이 물리적 실재를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믿는다. 사회적 구성주의자들은 지식을 자연보다는 문화의 반영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반영성은 세계를 멀리 떨어져서 본다. 반영성은 반복적인 모방일뿐이다. 반영적 방법론은 원본과 일치하는 복사물, 사물을 왜곡 없이 반영하는 언어를 믿는다. 회절적 방법론에서 내부와 외부의 절대적 분리는 없으며 주체와 객체는 미리 존재하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내부 - 작용을 통해 창발한다. 바라드에게 회절 패턴은 경계의 비본질적인 본성, 경계의 반복적인 재형성, 차이들의 얽힘을 의미한다. 


회절은 주체와 객체, 자연과 문화, 인간과 비인간, 유기체와 비유기체, 인식론과 존재론 사이의 본질적 분리가능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현상이다. 회절은 경계의 확장성과 영속성의 한계를 표시한다. 회절은 사소한 차이들을 존중하는 방법론이다. 바라드에게는 시간과 공간도 현상이다. 시간과 공간은 내부 - 작용으로 생산된다. 우리는 우주의 물질적 생성의 행위자적 일부이므로 우리가 실행에 참여하는 절단이 중요하다. 바라드는 내부 - 작용이 언제나 특정한 배제를 수반하며, 배제는 결정론의 가능성을 저지해 열린 미래의 조건을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내부 - 작용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반복적으로 재구성한다. 가능성들은 가만히 정지해 있지 않는다. 가능성들은 그 실현 속에서 좁혀지지 않으므로 지금은 배제되었지만 가능했을 수도 있는 새로운 가능성들이 열린다. 가능성들은 재구성되고 재구성하고 있다. 우리는 우주의 중간에서 만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우주와 교섭하고 우주와 의견을 조율하면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책임지는 겸손한 자세를 지녀야 한다. 


바라드는 세계 자체가 매우 퀴어하다고 주장한다. 바라드는 만약 자연 그 자체가 퀴어라면 어떨까?라고 질문하면서 퀴어란 자연/ 문화 이분법을 포함해 정체성과 이분법에 대한 급진적인 문제 제기라고 논한다. 바라드에게 퀴어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고정되지 않고 살아서 변화하는 유기체, 욕망하는 급진적인 개방성이라고 할 수 있다. 브루스 베이지밀은 우주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더욱 퀴어하다는 진화생물학자 홀데인의 유명한 말로 시작하며 세계는 각양각색의 동성애, 양성애, 트랜스젠더 생물들로 가득하다고 쓴다. 


번개도 퀴어하다. 번개가 치기 전 지상과 하늘 사이에서 흥미로운 소통, 일종의 더듬거리는 수다가 벌어진다. 하늘에서 스텝리더라는 최초의 몸짓이 뻗어져 나오면 땅은 스스로 위쪽을 향하는 신호로 반응한다. 하늘로부터의 스텝리더가 땅에서 10~100미터 안에 있을 때 땅은 이제 그곳에 거대한 과잉 전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땅 위의 어떤 사물들이 스텝리더를 향해 작은 흐름들을 내보냄으로써 응답한다. 바라드는 “이 하늘과 땅 사이 소통의 교환 속에서 어떤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알게 되기도 전에 이러한 상호 교환이 일어날까? 어떻게 알게 되기도 전에 이러한 상호 교환이 일어날까? 어떻게 땅은 자신의 미래 대화자를 향해 활동하게 될까? 송신자가 전송을 하는 순간에 아직 특정되지 않는 수신자에게 메시지를 전송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고 묻는다. 


노랑가오리의 신경수용 세포 역시 역설적인 소통의 사례다. 노랑가오리의 신경수용기 세포는 신비로운 투시력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메시지가 언제 자신들에게 보내질지 예측할 수 있다. 바라드는 원자보다 더 퀴어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원자의 본성과 정체성은 비결정성 자체다. 바라드는 모든 몸은 세계의 반복적 내부 - 작용을 통해서 물질화되며 물질성의 본질 자체가 얽힘이라고 본다. 바라드는 우리가 외부의 타자를 만짐으로써 타자와 맺는 관계성뿐 아니라 자기 몸을 스스로 만짐으로써 내부의 타자들 즉 우리 몸을 지나쳐간 수많은 다른 존재들에 대해 깨닫게 되는 감수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라드에게 책임이란 응답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바라드는 페미니즘을 물리학에 가져오는 만큼 물리학에 페미니즘을 가져옴으로써 사회 정의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바라드는 느끼고 욕망하고 경험하는 것은 인간 의식만의 고유 특성이나 능력이 아니라고 말하며 물질은 느끼고 대화하고 고통받고 욕망하고 갈망하며 기억한다는 견해가 페미니즘적 참여임을 강조한다. 바라드는 우리 존재가 물려받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가로질러 무수한 타자들과 관계 맺고 있으므로 타자에 대한 책임은 무한히 확장하고 도래할 진정한 정의를 향한 노력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삶과 죽음은 둘이라고 하기도, 하나라고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바라드는 양자 얽힘을 묘사하기에 하나는 너무 적고 둘은 너무 많으며 사이 개념이 새롭게 사유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바라드는 시간과 장소, 존재의 경계들이 결정되더라도 고정된 것은 아니며 현존하지 않는 타자성일지라도 없어진 것은 아니며 언제나 되돌아오고 도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바라드는 산타크루즈의 해변을 산책하며 “지금 여기에 다수가, 그 특수성 안에 무한성이 응축되어 있다. 각 모래알과 흙 한 줌은 시공간을 가로질러 회절하고 얽혀 있다. 책임지는 것,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우리를 관통하는 시공간물질의 두터운 얽힘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라드는 양자장론에 따라 텅 빈 공간은 전혀 비어 있지 않으며 무(無)는 무한한 풍부함이라고 강조한다. 바라드는 양자물리학이 공간적 회절을 넘어서 시간적 회절의 가능성도 연다고 설명한다. 시간적 회절은 비결정성 원리의 결과로서 한 주어진 독립체는 다른 시간들의 중첩 속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입자가 비결정적으로 여러 번 가령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공존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바라드는 모든 이론화는 정치적이며 물리학과 정치는 언제나 이미 서로를 통과해 나아간다고 설명한다. 바라드는 과학은 중립적이지 않기에 어떤 양자물리학 통찰도 무비판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 


바라드는 자신의 양자물리학에 대한 행위적 실재론 해석 역시 정치적 물리학이라고 밝힌다. 바라드는 어떤 물리학인가, 누구의 물리학인가가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바라드에게 시학이란 기존 표현 양식에 따라 측정된 어떤 표현불가능성에 직면할 때 표현을 향한 계속되는 열망과 관련이 있다. 바라드에 의하면 시위자들은 경찰과 직면할 때는 얼음처럼 단단해지고 도시의 협소한 거리를 통해 탈출할 때는 물처럼 유동적이 되고 갑작스러운 군중 시위를 위해서 이슬처럼 모이며 체포를 피하고 또 다른 날 싸우기 위해서 안개처럼 흩어진다. 바라드는 양자물리학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독립체를 사이의 관계가 아닌 관계성의 측면에서 생각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이는 개인들의 존재를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다르게 생각하려는 것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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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본 한반도 - 북녘을 향한 물음에 인공위성이 답하다
임철희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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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온 한반도’라 하지만 과학 책이 아니다. 부제는 ‘북녘을 향한 물음에 인공위성이 답하다‘다. 저자는 2021년부터 인공위성으로 지구의 산림 환경변화를 관찰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미래를 전망하고 있는 국민대학교 교수 임철희다. 인류가 쏘아 올린 인공위성은 지구의 진짜 위성인 달보다 가깝게, 밤하늘의 별보다 많이 지구를 돌고 있다. 지구를 관측하는 인공위성이 가장 많이 활동해야 할 곳이 한반도다. 갈 수 없는 북녘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본 한반도란 제목은 북한은 항공기나 드론으로 관측할 수 없는, 인공위성을 통해서만 관측할 수 있는 곳이기에 나온 말이다. 인공위성 분야에는 시간 해상도란 말이 있다. 공간 해상도가 화소(?素)와 관련된 용어라면 시간 해상도란 인공위성이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같은 영역을 관측하게 되는지와 관련된 용어다. 북한은 1993년 밤하늘의 인공 조명이 밝다가 한동안 어두워졌고 2013년에 조금 나아졌다. 이른바 전력이 부족했던 고난의 행군 시기의 북한의 실상을 증거하는 자료다. 


큰 기근이 찾아온 북한의 1990년대를 고난의 행군 시기라 부른다. 지금 한반도는 그저 공간이지만 어제의 한반도와 내일의 한반도 또한 지켜보고 있기에 시공간이란 저자의 말(프롤로그)이 이해된다. 그런데 내일을 지켜본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저자에 의하면 우주에서 본 야경은 그저 빛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현상을 대변하는 자료다.(40 페이지) 남북 경제협력이나 통일의 경제적 효과를 논할 때 항상 등장하는 단골손님이 북한의 광물자원이다. 마그네사이트 광석 매장량은 세계 1위이고 텅스텐, 흑연 매장량도 세계 10위권에 해당한다.


함경북도 무산광산은 북한 최대의 철광석 부존(賦存) 지역이다. 부존 자원이란 경제적 목적에 이용될 수 있는 모든 천연 자원을 의미한다. 자원의 내수 활용에 한계가 있는 북한에서 철광석 채굴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은 흥미롭다. 북한은 2017년 4차 핵실험으로 유엔 안보리에 의해 모든 광물 수출을 금지당했으나 공해상 선박간 환적 방식으로 중국에 석탄, 철, 철광석 등 광물을 불법으로 수출했다. 선박간 환적이란 한 선박에서 다른 선박으로 화물을 이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 함경남도 검덕지구 광산은 50여개의 광산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전 세계 국가들이 석탄 사용 및 개발을 줄이려 하는데 비해 김정은 정권(2011년 집권)은 석탄 개발을 장려하고 있다. 백두산 천지에서 유일하게 물이 빠져 나가는 협곡을 달문(?門)이라 한다. 여기에서 물이 흘러나와 비룡폭포를 만들고 송화강까지 흘러간다. 백두산은 북서쪽은 중국 영토에 속하고 남동쪽은 북한 영토에 속한다. 최근 창바이산(중국명)이란 이름으로 세계 지질공원에 등재되었다. 


한국전쟁은 산림 훼손 전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북한 자강도의 도 소재지인 강계는 한국전쟁 당시 임시 수도 역할을 한 곳이다. 혜산시는 탈북민이 많이 거쳐 오는 곳이다. 파주 통일전망대에서 보이는 개성은 그로 인해 다른 곳보다 적극적으로 산림을 복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공위성에서 관측하는 온도는 대체로 지표온도를 말한다. 인공지가 많은 도시에서는 지표온도가 대기온도보다 높아 열섬현상 관측의 주요 지표가 된다.


기후변화로 겪는 가장 큰 재난은 수문학적 재해로 나타난다. 가뭄과 홍수가 대표적인데 인공위성은 이런 재난 발생을 대비하거나 피해 현상을 파악하는 데 효과적이다. 북한은 연소율과 열효율이 낮은 취사, 난방 연료와 질이 낮은 석탄을 많이 사용하는 탓에 초미세먼지가 많이 배출된다. 2015년 기준 북한의 에너지 소비량은 남한의 1/25에 지나지 않지만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배출량은 2.6배, 2.3배에 달한다. 


북한의 하수 처리 비율은 14% 정도다. 상류에서 배출된 하수가 그대로 상수원으로 유입되어 식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도시나 공장, 광산 지역 등을 지나는 북한 주요 강들의 오염도는 매우 심각하다. 북한의 강들은 수질이 아주 나쁘다. 북한에도 갯벌들이 존재한다. 사실상 서해안 전체에 갯벌지대가 존재하며 압록강 하구, 청천강 하구 지역이 특히 유명하다. 동해안에도 두만강 갯벌이 있다. 


해마다 8만 마리 이상의 물새가 서식하며 동아시아 ~ 대양주(EAAFP) 철새 이동 경로 파트너십으로 등재된 청천강 하구의 문덕 갯벌은 2008년 람사르 습지에 등재되었다. 나선 철새보호구 또한 람사르 습지로 등재되었고 금야철새 보호구는 동아시아 ~ 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 파트너십으로 등록되어 있다. 북한에서도 간척이 많이 이루어져 갯벌 환경파괴가 우려된다. 북한의 식량문제로 인한 갯벌 간척은 오랜 시간 이루어지고 있다. 평안북도 신미도 주변 외에도 북한 서해안에는 수많은 간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인공위성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갯벌은 해산물 공급처를 넘어 수많은 생명의 보고, 탄소 저장고, 새들의 서식지다. 갯벌이 간척되고 나면 되돌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전 세계가 북한이란 작은 나라를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북한의 잦은 군사도발과, 하지 말라는 핵무기 개발을 계속 시도하기 때문이다. 영변은 북한의 대표적 핵시설단지다. 그 외에도 북한에는 우라늄 농축시설, 우라늄 광산, 원자로, 핵폐기물 저장소 등 핵과 관련한 다양한 시설들이 전국에 위치한다. 


북한 핵 연구의 고장이 영변이라면 핵실험의 중심지는 풍계리다. 핵실험과 핵무기 개발의 주원료인 우라늄 채굴은 평산광산이 대표적이다. 경수로 냉각수로 인해 겨울철 구룡강의 얼음이 녹는 현상과 열적외선 관측에서 원자로 온도가 높게 관측되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영변은 여전히 바쁘다. 풍계리는 해발 2,205미터의 만탑산을 비롯 기운봉, 학무산, 연두봉 등 해발 1천 미터 이상의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암반 대부분이 화강암으로 핵실험 이후 발생하는 각종 방사성 물질의 유출 가능성도 크지 않아 핵실험 장소로 낙점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은 풍계리 핵실험장이 백두산 지하 마그마 지대와 인접하여 북한의 잦은 핵실험이 백두산 화산 폭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함경남도 요덕군에 위치한 요덕 정치범 수용소의 모습도 보인다. 여느 마을 같은 곳이다. 통일이 되거나 군사적 긴장감이 줄어든다 해도 인공위성의 역할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같은 인공위성에서 관측한 동일 정보도 시각을 달리하면 군사에서 민간용으로 활용도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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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의 역사 - 한반도 정전체제와 비무장지대
한모니까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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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평화기행'의 공저자 중 한 분인 한모니까님의 'DMZ의 역사'. 저자에 의하면 DMZ를 만들자고 제안한 나라는 미국이나 중국이 아닌 영국이었다. 미국 다음으로 한반도에 달려온 영국의 내각과 참모부는 중국군이 참전한 1950년 11월 확전을 막을 방안의 하나로 북위 40도선 정도에서 진격을 중지하고 완충지대를 만들고 이 지대에 공산군이 재침략을 위해 집결하면 공중폭격으로 분쇄하자는 의견을 냈다. 영국 외무부가 구상한 완충지대 범위는 정주~흥남 라인에서 한만(韓滿) 국경까지였다.(1980년대까지 한만국경이라 불렸고 그 이후 북중(북한 중국) 국경이라 불린다.) 

'대한민국 평화기행'의 공저자 중 한 분인 한모니까님의 'DMZ의 역사'. 저자에 의하면 DMZ를 만들자고 제안한 나라는 미국이나 중국이 아닌 영국이었다. 미국 다음으로 한반도에 달려온 영국의 내각과 참모부는 중국군이 참전한 1950년 11월 확전을 막을 방안의 하나로 북위 40도선 정도에서 진격을 중지하고 완충지대를 만들고 이 지대에 공산군이 재침략을 위해 집결하면 공중폭격으로 분쇄하자는 의견을 냈다. 영국 외무부가 구상한 완충지대 범위는 정주~흥남 라인에서 한만(韓滿) 국경까지였다.(1980년대까지 한만국경이라 불렸고 그 이후 북중(북한 중국) 국경이라 불린다.) 


영국은 연합국이 중국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고 미국은 군사적 우월을 자신했다. 미국과 한국은 비무장지대를 만드는 것은 자유진영의 패배라고 강력 반대했으나 대세는 설치쪽으로 흘러갔다. 미국이 비무장지대안을 검토한 것은 자체적으로 비무장지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유엔의 확전 우려와 비무장지대에 대한 지지 분위기 때문이었다. 영국의 군사 전문가 마샬 콘월은 정치적 경계선과 그에 평행하는 두 곳의 중립지대를 설정해 거기에 무기와 군대를 제한하거나 금지시키는 원칙이 필요하다고 하며 그런 비무장지대를 지리적 군축이라 표현했다. 


1950년 10월 중국이 참전했고 1950년 11월 30일 트루먼은 핵무기 사용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인도 등은 핵 사용 및 확전 반대를 표명했다. 12월 중국군은 철수하는 미8군의 뒤를 따라 38선까지 내려왔다. 군사적으로 전황이 유리하던 중국은 정전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비무장지대 설정을 통해 정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미국 및 서유럽 국들과 인식을 같이했다. 4km 폭의 비무장지대를 제안한 것은 공산군 측이었다. 현재의 전선에서 양측이 2km씩 후퇴하고 그 사이의 지대를 비무장지대로 둘 것을 제안한 것이다. 


양측은 처음 비무장지대 가 32km(유엔군) 또는 20km(공산군)는 되어야 한다고 보았지만 방어의 관리와 효율을 고려하여 폭을 좁혀갔다. 양측은 모두 개성을 차지하고자 했다. 개성 문제는 공산군 측이 38선이 아니라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하는 문제를 수용하게 된 결정적 이유였다. 38선을 고수하면 개성을 남측에 돌려주거나 최소한 비무장지대 안에 두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군사분계선 표식물은 7피트 높이의 금속이나 목재로 만들어진 말뚝 형태였다. 군사분계선은 말뚝 형태로만 표시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흔히 군사분계선은 선이 아니라 1292개의 점이라고 알려졌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300-500미터 간격으로 표식물이 있다고 해도 월경의 가능성은 충분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표식물과 표식물을 연결하는 가는 선이 곳곳에 설치되었다. 물론 이때의 선은 오늘날 철책처럼 공고하게 전면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고 말뚝과 말뚝을 단순히 연결하는 정도였다. 더구나 말뚝과 말뚝을 연결하는 선도 관리가 되지 않으면서 군사분계선을 표시했던 선은 없어지고 말뚝도 훼손되어 갔다. 


군사분계선과 더불어 식별 가능한 비무장지대 남북 경계선도 설치했다. 표지판 형태의 접근 경고용 선이었다. 성근 철조망을 잇는 비무장지대 경계선이 곳곳에 표시되었다. 북. 중측이 주장한 비무장지대 내 질서 유지를 위한 민정 경찰 배치가 받아들여졌다. 민정 경찰이 무기를 휴대할 수 있게 되자 후에 이는 비무장지대 무장화의 시작이 되었다. 북한은 비무장지대에 지하갱도(땅굴)를 만들었다. 1950년대 말 미국의 신형 무기(특히 핵무기) 도입 때문이었다. 북한의 지하갱도는 1974년 연천, 1975년 철원, 1978년 파주, 1990년 양구 등에서 발견되었다. 


1960년대 북측 비무장지대에서 땅굴과 같은 지하 요새화가 진행되었다면 남측 비무장지대는 감시초소 형태의 요새화가 추진되었다. 경계초소 또는 감시초소가 등장한 것인데 이는 관측용인 전초(op; outpost)였다. 일부 전초가 군사분계선에 가깝게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전진배치된 전초가 전진 관측소로 분류되고 군인들이 주둔하면서 경계근무를 하는 초소가 되었다. 그리고 비무장지대 남쪽 경계 즉 남방한계선상에 있는 전초는 관측소(observation post; OPs.)라 불렸다. 이 과정에서 특히 전진 관측소의 요새화가 진행되었다. 이 전진 관측소가 경계초소(guard post; GP)다. 


북측은 1963-1965년 군사분계선 북쪽의 자신들의 초소들을 광범위하게 연결시키는 요새화된 진지를 구축하고 그것을 식목(植木)으로 위장했다. 남측은 경계 강화를 위해 진지를 구축했다. 1960년대 후반 비무장지대가 무장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철책의 설치였다. 이전에도 남북방한계선에 철조망이나 목책이 설치되어 있었다. 끊기거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하던 목책이나 철조망을 포함하여 비무장지대에서는 1967년 후반부터 대대적인 철책 교체 작업이 진행되었다. 지뢰, 트립 플레이와 부비트랩 등으로 강화된 100미터 폭의 이중 철조망이 설치된 것이다. 


미국의 베트남에서의 철책 설치와 같은 시기의 일이다. 철책 공사는 1968년 1, 21 사태 이후 피치를 올려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철책 구축과 함께 대침투체계의 하나로 초목 통제 프로그램이 시행되었다. 고엽제가 살포되었다. 군 경계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철책 주변의 시야를 가리는 풀과 나무를 제거한 곳을 불모지 지역이라 한다. 비무장지대의 자연생태는 군사적 통제 덕분에 확보되었지만 동시에 이를 훼손하는 군사작전 또한 끊임없이 진행되었다. 1966년 비무장지대 생태 연구는 스미스소니언 생태 프로그램의 일부로서 미 공군과학연구실의 지원을 받으며 시작되었다.


철책선 주변 불모지는 사계청소(射界淸掃)라는 이름의 군사적전의 결과다. 비무장지대의 무성한 식물은 자연생태 회복의 상징적 존재이지만 군사작전의 측면에서 보면 시야를 방해하는 요소다. 비무장지대 안에는 두 개의 마을만이 존재한다. 남측의 대성동, 북측의 기정동이다. 대성동과 기정동은 장단(長湍) 사천강(沙川江)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인접한 마을이다. 대성동은 마을에 있는 대성(臺城; 봉화대 주위에 들러 쌓은 성)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기정동(機井洞)이란 한자 표기에서 알 수 있듯 옛날 기계(방아)로 물을 퍼 올린 마을이란 의미다. 행정상 대성동은 경기도 장단군 군내면에 속했고 기정동은 대성군 동면사무소가 있을 정도로 큰 마을이었다. 두 마을 모두 사천강 줄기를 수원으로 이용한 논이 발달했고 서울보다는 개성 권역에 가까운 경제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 대성동 주민의 법적 지위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유엔군 사령관 통제하의 주민이었다. 


한반도 비무장지대는 냉전이 응축된 공간이자 냉전의 전형적인 양상이 담긴 공간이다. 이곳은 세계 냉전의 형성기에 벌어진 열전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것도 중국의 참전으로 한국전쟁의 양상이 한. 중국 국경을 넘어 확전의 조짐을 보였을 때 서방의 강대국들이 전쟁을 한반도에 국한시키기 위해 구상한 것이었다. 70년전에는 정전(停戰)의 조건으로서 정전을 유지하기 위해서 비무장지대의 역할이 필요했다. 이제는 평화의 조건이 되고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 될 비무장지대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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