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자주 들은 말이 후크 고지, 폭찹 고지, 와이오(Wyoming) 라인 등의 말이었다. 연천군 장남면 판부리 사미천 왼쪽인 후크 고지의 후크는 지형이 쇠고리 모양이어서 붙은 이름이고 연천군 천덕산 일대의 폭찹 고지는 지형이 미국식 돼지고기 요리인 폭찹을 닮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와이오밍은 의문이었다. 이 라인은 한국전쟁 당시 미 8군 사령관인 리지웨이 장군에 의해 설정된 연천 - 전곡 - 철원 - 화천의 방어선을 말한다. 리지웨이는 서쪽의 임진강에서 시작해 화천을 지나 양양까지 이어지는 캔자스 라인도 설정했다. 


중요한 사실은 와이오밍이라는 미국의 주명(州名)을 붙인 데에 별 이유가 없고 단지 와이오밍이 캔자스보다 위도상 북쪽에 자리하기 때문이란 점이다. 존 맥피는 북아메리카 대륙을 지질학적으로 탐사한 다섯 편의 작품을 하나로 묶은 '이전 세계의 연대기'에서 지질학자들의 연구방식에는 그들이 어떤 종류의 땅에서 자랐는지가 드러난다고 말하며 이와 관련해 와이오밍의 한가운데서 태어난 지질학자의 삶보다 더 훌륭한 본보기는 없다고 덧붙였다. 


맥피에 의하면 무심히 보고 지나칠 와이오밍 롤린스의 심심한 풍경 속에는 그랜드 캐니언의 웅장한 암벽보다 훨씬 더 긴 시간(26억년)이 펼쳐져 있다.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인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있는 이 주는 데이비드 러브라는 지질전문가로 인해 이름이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지질도가 암석이 아닌 다양한 논문과 보고서를 짜깁기해 시간에 근거해 만든 것들인데 데이비드 러브는 오로지 암석만 보았다. 맥피는 데이비드 러브는 높은 자리에 앉아서 지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현장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인상적인 말은 데이비드 러브와 겨루려면 아주 많이 걸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질학은 이런 학문이다. 철학자 김영민 교수가 니체의 말을 빌려 "오직 걷고 있는 자만이 나와 인연이 있다"고 했거니와 이 선언에서 나를 지질학이라 바꿔도 좋을 듯 하다. 단 여기서 걷기는 필요조건일뿐이어서 그 자체로 결과물을 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 걷더라도 염천(炎天)의 8월은 지난 뒤에라야 가능하리라는 점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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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 - 46억 년 지구의 시간을 여행하는 타임머신 DEEP & BASIC 시리즈 9
얀 잘라시에비치 지음, 김정은 옮김 / 김영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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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번역 책 ‘조약돌 속의 행성'(The planet in a pebble)의 저자 얀 잘라시에비치(Jan Zalasiewicz; 1954 - )의 책 ’지질학‘. 200 페이지가 조금 넘는 얇은 책이다. “이 책은 엄청나게 거대하고 다면적인 주제에 대한 간략한 밑그림이다.”란 저자의 말대로. 저자는 지질학적 기록이란 역동적이고 진화하는 경관의 기록이라 말한다. 우리는 항상 지질학에 둘러싸여 있다. 가령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형태를 잡아서 빠르게 변성시킨 이암(泥巖)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우리는 그런 이암을 벽돌이라 부른다.

 

우리의 일터는 석회와 진흙을 섞어서 만든 거대한 모래성이다. 우리는 그 모래성을 콘크리트 빌딩이라 부른다. 지질학은 사실상 화학, 물리학, 생물학, 지리학, 해양학 등 다른 과학을 아우르는 과학이며 인문학과 예술과도 여러모로 연관이 있다.(20 페이지) 저자는 지질학을 아는 사람들, 지질학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뿐 아니라 아마추어 애호가들까지도 지질학에 대한 충성심과 애정이 대단하다고 말한다.

 

본문에는 지질학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 이름이 나온다. 그는 이탈리아의 자연주의자이자 곤충학자였던 울리세 알드로반디(1522 - 1605)다. 1603년에 시발이 된 지질학이란 단어는 19세기 중반 이전까지 사용되지 않았다. 지질 역사의 장구함을 나타내는 말이 ’지질학적 시간; 깊은 시간‘이란 말이다. 본문에 조르주 퀴비에와 찰스 라이엘의 대립(?)이 나온다. 퀴비에의 격변설 vs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이다. 오늘날 두 사람의 주장은 부분적으로 옳다.(34 페이지, 113 페이지) 아주 오랜 지질학적 시간에 걸쳐서는 대체로 동일과정설이 작용하지만 갑작스러운 재앙이 일어나서 지구 역사의 방향이 크게 바뀔 수 있기에 격변설도 일리가 있는 것이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남미 전역 여행이 다윈에게 과학적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지질시대의 이름 중 트라이아스기는 특별하다. 캄브리아, 오르도비스, 실루리아, 데본, 페름, 쥐라 등은 지역이나 부족 이름에서 유래한 반면 트라이아스는 삼첩(三疊)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구의 시간 대부분은 선캄브리아기에 속하고 우리에게 친숙한 모든 시대는 지구 역사의 12 퍼센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48 페이지)

 

해저 산맥은 철, 마그네슘 등이 풍부해서 밀도가 높은 화산암인 현무암으로 이루어졌고 육상 산맥은 일반적으로 밀도가 낮고 규소, 알루미늄 등이 풍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62 페이지) 해양지각은 대륙지각에 비해 얇다. 해양지각은 10km 정도, 대륙 지각은 30 - 40km 정도다.(67 페이지) 지각과 맨틀 사이의 경계를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이라 한다. 우리가 지구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어려운 이유는 열과 압력이 상상할 수 없이 높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구의 핵은 태양 표면 온도와 비슷한 섭씨 6000도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다이아몬드가 결정화하려면 적어도 지하 140km에서의 압력이 필요하다. 다이아몬드는 지하 수백 km의 대단히 높은 압력에서 형성된다. 섭입대에서 형성되는 광물 종류의 미세한 얼룩이 나타나기도 한다.(186 페이지) 지진의 p파는 음파와 비슷한 압력파여서 고체와 액체를 모두 통과한다. 흔들리는 움직임으로 전달되는 S파는 고체를 통해서만 이동할 수 있다. 두 지진파가 모두 맨틀을 지난다. 이는 맨틀이 기본적으로 고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고온임에도 맨틀이 고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높은 압력이 광범위하게 암석이 녹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앙해령의 지각이 갈라지는 곳에서는 고압에서 해방된 맨틀 물질이 온도가 상승하지 않아도 녹아서 마그마를 형성하고 이 마그마가 상승하여 해양지각의 현무암이 된다.(74, 75 페이지)

 

지질구조판은 지각으로만 구성되지 않고 맨틀 최상부도 포함한다. 맨틀의 이 부분이 지질구조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구 내부를 통과하는 파동은 온도나 압력, 조성 등이 다른 암석을 만나면 벽에서 튕겨나간 음파가 메아리가 되는 것처럼 반사되기도 하고 굴절되어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76 페이지) 지구 내부는 밀도가 매우 높은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규산염 광물이 지하 깊은 곳에서 더 치밀한 형태로 압축되어 있고 핵의 조성이 니켈 - 철이기 때문이다.(79 페이지) 지구 자기장은 지구의 핵이 철로 된 단단한 막대자석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액체 상태의 철에서 생기는 흐름의 결과다.(81 페이지)

 

저자는 지구가 어려 면에서 독특한 것은 암석 순환의 놀라운 효율성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암석 순환이란 화성암 - 퇴적암 - 변성암의 순환을 말한다.(89 페이지) 1차적으로 화성암이 바람과 비와 얼음에 의해 물리적, 화학적으로 분해되어 퇴적물이 되고 그 퇴적물이 땅속에 묻히고 고화(固化)되어 퇴적암이 되고 퇴적암은 열과 압력이 증가하는 동안 변성되고 결국 녹아 마그마가 된다. 물과 바람은 밀도가 크게 다르지만 움직일 때에는 둘 다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모양의 모래 언덕을 만들 수 있다.

 

화산 쇄설류는 백열광을 내는 화산재, 화산의 사면을 빠르게 내려가는 암석 파편으로 이루어져 있어 결코 가까이 다가갈 수 없고 안전한 거리에서 관찰하려고 해도 소용돌이 치는 짙은 구름에 휩싸여 있어서 내부에서 일어나는 작용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냉각되고 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지난 1억년의 지층 속에 들어 있는 화석 중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는 화석 중 하나는 유공충의 화석이다. 아메바처럼 생긴 해양 단세포동물인 유공충은 탄산칼슘을 분비하여 만든 우아한 껍데기 속에 살면서 물속으로 위족을 뻗어 그보다 더 작은 유기체를 잡아먹으며 산다.(105 페이지)

 

기후와 온실기체의 변화는 규칙적이고 주기적인 양상을 띤다. 이 주기들은 20세기 초반의 세르비아의 수학자 밀란코비치가 예측한 것처럼 본질적으로 천문학적이다. 이런 주기성은 지구 자전축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요동, 지구 자전축의 각도,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 공전 궤도 형태 변화로 인해 나타난다.(108, 109 페이지) outcrop은 일반적인 노두, exposure는 특별한(조사에 쓸만한) 노두를 가리킨다.(124 페이지)

 

우리가 우리 주위에 만든 친숙한 세계는 대체로 어떤 방식으로든 지질학에서 유래한다. 집, 사무실, 공장은 모래, 자갈, 이암, 석회암을 재구성해 만들었고 여기에 멋지게 광을 낸 화강암이나 대리암 석판 몇 장으로 장식한 것이다. 이런 건물 중 다수는 내부에 철골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쓰이는 철은 우리 행성의 여명기와 가까운 시절에 형성된 거대한 철광석 퇴적층에서 유래한다.(137 페이지) 화산은 마그마를 끌고 올라오는데 마그마는 맨틀에서부터 운반된 원시적인 물의 일부를 방출할 것이다.(147 페이지) 맨틀 깊은 곳에는 적어도 대양 정도의 물이 용해되어 있다.(14 페이지)

 

지질학의 유명한 선구자들 중에는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하는 시기를 살아가면서 영양적인 측면을 깊이 생각한 인물들도 있다.(153 페이지) 다윈의 스승 존 헨슬로가 대표적이다. 거름이 작물에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화석 거름도 효과가 있는지 실험해 보았다. 효과가 있었다. 지역 농민들에게 이런 선사시대의 자원 활용을 장려했고 윌리엄 버클런드 목사는 이런 천연자원을 더욱 발전시켰다. 버클런드는 배설물 화석에 분석(糞石; coprolite)이란 이름을 붙였다.

 

지구는 매우 매끄럽게 작동하는 다목적 기계 장치다. 지구라는 기계 장치의 특징은 판구조 운동의 끊임없는 작용으로 나타난다.(159 페이지) 이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지각의 재배열이 일어나고 대양이 갈라지면서 백열의 마그마가 지구 표면으로 방출된다. 그 사이 두께 약 200km의 지각판은 비슷한 두께의 다른 지각판을 밀치면서 수천 km를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지구 깊숙이 들어간다.(159, 160 페이지) 우리 행성은 아주 오래되었다. 46억년이라는 지구의 나이는 우주 나이의 거의 1/ 3에 해당한다. 그 시간 동안 지구는 엄청나게 바뀌었다. 사실 하나의 행성이라기보다 다른 행성들이 이어져온 것이다.(181 페이지)

 

BIF(banded iron formation)라 부르는 호상철광층(縞狀鐵鑛層)이 있다. 縞는 명주, 흰빛을 의미한다. 산화철과 규석이 번갈아 쌓인 얇은 지층이 호상철광층이다. 바다속에 용해된 철이 산소와 반응해 산화철로 반응해 침전된 철광이다. 산화철과 규석은 석회석, 점토 등과 함께 클링커를 이루는 요소들이란 점에서 흥미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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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스반테 페보의 성취를 살피려니 PCR, 이집트학, 미라 등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게 된다.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를 해독한 그는 이집트학을 할까 고생물학을 할까 고민했던 인물이다. 이집트학을 택하지 않았지만 미라에 대한 관심이 그의 길을 인도했음이 의미 있는 사안이다. 그는 네안데르탈인의 팔 뼈에서 추출한 DNA를 PCR(중합효소연쇄반응법)로 증폭해 성취를 이루었다.

 

관건은 그토록 오래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정보가 파괴되지 않은 채 이어져왔다는 점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를 만들던 사람들이 한 것처럼 조직을 건조시키면 DNA가 오랫동안 남을 것이라는 추측이 빛을 발했다. 2014년 출간(2015년 번역 출간)된 페보의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를 읽으며 하는 생각이다. 기사도 중요하고 서평도 중요하지만 최선은 책을 완독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좋은 책을 찾고자 애쓰는 마음은 그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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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진화 - 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우리가 우리가 되어 온 여정
이상희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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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진화‘는 고인류학자 이상희 교수가 전작인 ’인류의 기원‘ 이후 8년만인 2023년 국내외의 수많은 문헌들을 참고해 완성한 유의미한 성과물이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를 외둥이라 부른다. 외둥이란 말이 알려주듯 현생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 하나다. 그러나 인류 계통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했다. 저자에 의하면 인류의 진화란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앞으로 행진하는 모습도 아니고 곁가지와 본가지로 갈라져서 울창한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가는 모습도 아닌 갈라졌다가 만난 뒤 다시 갈라지는 강줄기와 같다.

 

인류와 고릴라가 갈라진 것은 800만년전 이전이다.(54 페이지) 침팬지 계통이 인류 계통과 갈라진 것은 500 - 800만년전이다.(115 페이지)(54 페이지의 말은 인류 계통이라 해야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인류는 500만년전 아프리카에서 기원해 300만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다.(52 페이지) 200만년전 호모속이 등장해 아프리카에서 확산해 유라시아로 진출했다.(55 페이지) 기후 변화로 몸집이 큰 짐승들이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로 옮겨갔기 때문이다.(77 페이지) 이때 고인류 호모 에렉투스의 사냥 도구는 아슐리안 주먹도끼였다.

 

200만년전은 전기 구석기 시대가 시작된 시기이고, 20만년전은 중기 구석기 시대가 시작된 시기이고, 3만년전은 후기 구석기 시대가 시작된 시기다.(96, 97 페이지) 올도완 문화, 아슐리안 문화, 무스테리안 문화는 전기 구석기 시대와 중기 구석기 시대에 나타난 문화다.(98 페이지) 호모속의 고인류가 추위를 견딘 것은 현재 호모속의 유일한 후손인 호모 사피엔스가 추위를 견딘 방식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몸으로 견뎌내고 문화로 견뎌낸 것이다.(55 페이지)

 

인류가 털옷을 입고 불을 이용해 추위를 견뎠다는 가설이 있다. 이는 그들이 그러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을 것이라는 논리에만 근거한 것은 아니다. 털에 사는 몸니의 존재가 방증하는 바가 있다. 그것은 털이 없는 인류가 사냥한 짐승의 털을 옷으로 입었다는 데에 근거한 이야기다.(인류가 사냥을 한 것은 고기 때문만이 아니라 털, 가죽 등을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최초로 불을 사용한 흔적을 남긴 고인류는 호모 에렉투스다.(59 페이지)

 

고인류를 수식하는 이름은 사어(死語)인 라틴어로 쓰인다. 하지만 화석을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삶은 역동적이다. 가령 하나의 종이 생식이 가능했던 관계에서 생식이 불가능한 다른 종으로 갈라지는 과정이 그렇다. 물론 갈라짐이란 어느 순간 무가 칼에 의해 갈라지는 것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차츰 유전자를 섞지 않는 방식이 이어지며 다른 점이 쌓여간 결과다. ’인류의 진화‘는 고인류들의 그런 역동적인 면모를 만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저자에 의하면 고인류학의 역사는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얼마나 특별하지 않은지를 밝혀온 역사이기도 하다.(24 페이지)

 

영어 단어 가운데 opposable이란 단어가 있다. ’마주 볼 수 있는’이란 의미의 단어다. 반대어는 nonopposable이다. 엄지 손/ 발가락이 나머지 손/ 발가락들과 마주 볼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알다시피 인간의 발은 엄지가 나머지 발가락들과 마주 볼 수 없을뿐 아니라 다른 발가락들 끝과 닿지 못한다. 손은 가능하다. 엄지 손가락이 다른 손가락들과 맞닿지 못한다는 것은 나무를 움켜쥐고 나무 타기를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중 가장 유명한 루시(아파렌시스) 화석의 어깨뼈 관절은 사람처럼 옆을 향하지 않고 위쪽으로 향하고 손가락뼈는 굽었다. 이를 보고 루시가 나무 타기에 최적화된 존재였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조각만 남은 루시의 어깨뼈로는 방향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고 손가락뼈가 굽었다고 꼭 나뭇가지를 휘감은 동작에 최적화된 것이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루시는 직립했지만 두뇌는 침팬지 정도였고 몸집은 유치원생 정도였으며 치아는 컸다.

 

직립하면 손이 자유로워짐에 따라 도구를 만들 수 있게 된다. 도구를 만들었다면 치아를 덜 사용함에 따라 치아가 작아졌을 것이다. 다윈은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인류의 특징을 큰 머리, 두 발 걷기, 도구 사용, 작은 치아로 보았다.(39 페이지) 이 네 가지 특징은 서로 어우러져 밀접한 연관 관계를 맺는다. 직립함에 따라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도구를 만들었고 도구를 만들기 위해 큰 머리가 주는 지능이 필요했고 도구를 쓰게 됨에 따라 큰 치아가 필요 없어진 것이다. 도구를 쓰지 않았다면 치아가 컸다는 의미다.

 

참고할 거리는 치아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클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많이 씹는다고 더 커지지도 않고 덜 씹는다고 작아지지도 않는다는 말(89, 90 페이지)이다. 고인류 역사에 몸집이 큰 거인족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다만 현생인류의 어금니보다 더 큰 어금니를 가졌던 화석종은 있다. 이 경우 큰 몸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먹거리의 질이 낮은 척박한 환경을 나타낸다.(73 페이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의무적 직립보행(오직 두 발 걷기만 가능한 상태)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메리 리키가 탄자니아의 라에톨리(책에는 래톨리라 나옴)에서 발자국 화석을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책에 나온다.(30 페이지) 이어 라에톨리 발자국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두 발 걷기를 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는 말이 나온다.(36 페이지) 혼란스러운 것은 라에톨리는 탄자니아이고 아파르(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화석이 발견된)는 에티오피아란 점이다. 검색을 해보니 366만 년 전에 생긴 발자국 화석 다섯 개가 발견된 곳이 라에톨리 A 지역이고 2년 후 A 지역에서 1km 정도 떨어진 G 지역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일명 루시)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 에티오피아 아파르에서 아파렌시스의 무릎뼈 화석이 발견되었고(29 페이지) 탄자니아 라에톨리에서 아파렌시스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것이다.

 

라에톨리에 발자국 화석이 남은 것은 기적 같은 일이 연속으로 일어난 결과다. 1) 화산이 폭발해 화산재가 두껍게 온 세상을 덮었다. 2) 비가 와 화산재가 뻘 같은 진흙이 되었다. 3) 그 위에 발자국이 남았다. 4) 햇빛이 진흙을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만들었다. 5) 여진(餘震)이 발생해 화산재가 발자국을 덮었다. 석기는 최초의 도구다. 최초의 도구는 나무, 가죽, 뼈 등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 보이지만 돌 만큼 단단하지 않아 대부분 썩어 사라졌을 것이다.(42 페이지)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고인류가 의도를 가지고 돌을 깨서 모양을 만들면 깨진 면에 특별한 자국이 남는다.(43 페이지)

 

호모속이 아닌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과 함께 올도완 찍개가 발견되었다. 올도완은 응고롱고로 분화구 주변의 화산에서 분출한 화산재가 쏟아지곤 했던 탄자니아의 올두바이에서 유래한 문화 이름이다. 저자는 석기와 함께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석기를 만들어 사용한 주체인지 동물처럼 도축된 것인지 쉽게 알 수 없다고 말한다.(44 페이지)(학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찍개를, 에렉투스가 주먹도끼를, 네안데르탈인이 창을, 사피엔스가 활을 사용한 것으로 본다.)

 

1996년 약 250만년전에 살았던 고인류 화석종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가, 칼자국이 난 동물 뼈와 함께 발견되었다. 그들이 석기를 만들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사용한 것은 분명하고 나아가 (사용했기에) 제작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석기를 만드는 것은 알맞은 원석을 고르는 일부터 시작해 단계를 상상하고 가상의 세계인 완성품을 상상하는 일까지 고도의 인지 능력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동물들의 이빨 자국 위에 석기 자국이 난 것은 동물들이 한 차례 먹고 뼈만 남은 사체를 돌로 만든 도구로 쳐 뼈 안의 골수를 빼먹은 결과로 추정된다.(45 페이지)

 

에렉투스가 사용한 아슐리안 주먹도끼 (칼) 자국 위에 다른 동물의 이빨이 난 것은 에렉투스가 도구를 이용해 사냥하고 도축하는 포식자의 위치에 섰음을 의미한다.(45 페이지) 사냥은 두 발 걷기, 도구의 제작과 사용, 어머어마한 두뇌 용량이라는 인류의 특성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적응이다. 사냥으로 얻은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 덕분에 두뇌가 커질 수 있었다.(75 페이지) 그렇다면 인류사에 사냥과 육식이 등장한 시기는 언제인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 화석종과 함께 동물 뼈에 남은 칼자국이 발견된 260만넌전으로 비정한다.

 

물론 당시 쓰인 도구는 찍개로 이는 살아 있는 짐승을 잡는 도구라기보다 사체 처리에 쓰인 도구였다. 고인류학자 앨랜 워커는 고인류 화석 뼈의 염증의 원인이 그들이 비타민 A가 축적된 육식동물의 간을 너무 많이 섭취하여 생긴 비타민 A 과다증이라 발표했다.(78 페이지) 화석 자료에 의하면 호모 에렉투스가 등장하는 시기와 맞물려 돌날 흔적이 새겨진 동물 뼈가 증가(79 페이지)했지만 호모 에렉투스 이후 돌날 흔적이 남겨진 동물 뼈가 계속 증가하지도 않았다.

 

저우카우텐에서 호모 에렉투스 화석과 함께 발견된 동물 뼈에는 짐승 이빨이 난 후에 고인류의 돌날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뛰어난 사냥꾼이 되었지만 여전히 다른 짐승이 먹고 지나간 찌꺼기도 먹었다는 의미다.(79 페이지) 앨랜 워커와 다르게 비타민 A 과다증이 벌집을 너무 많이 먹은 결과라는 말도 있다.(81 페이지) 최근에는 동물성 먹거리를 얻기 위한 행동으로서 사냥이 남성의 전유물이었고 여성은 채집을 통해 식물성 먹거리를 확보했다는 경제 분업 가설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육식만이 아니라 곤충 등 다양한 동물성 먹거리와 씨앗, 구근류, 해산물 등도 두뇌 용량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된다.(83 페이지)

 

화식(火食)은 영양학적으로 대혁명이었다. 소화흡수력이 높기 때문이다. 인류는 농경이 자리잡으면서 인구 폭발을 겪었다. 곡물로 만든 이유식 덕이다. 이유식 덕에 모유 수유 기간이 줄어 수유 기간 정지되었던 배란이 다시 시작되어 임신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89 페이지) 인류가 확실히 화식을 한 것은 후기 구석기 때로 추정된다.(90 페이지)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호모 에렉투스도 화식에 의존했을까? 비싼 장기 가설에 의하면 아니다. 비싼 장기 가설은 에너지가 많이 드는 두뇌와 소화 장기를 모두 크게 만들 수 없었다는 설이다. 한쪽을 크게 하면 다른 한쪽은 작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두뇌 대신 소화 장기를 택했다. 호모 에렉투스의 사냥법은 사냥감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몇날 며칠을 뒤쫓는 것이다. 사냥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고기를 씹고 소화하는 일에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쓸 수 없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불을 이용하여 음식을 익혔다면 시간을 적게 들여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의 몸집과 두뇌가 커지는 데에 화식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살던 호모 에렉투스 중 일부가 플로레스섬에 고립되어 섬 왜소화로 머리와 몸집이 작아진 새로운 화석종 호모 플로레시안스가 되었다면 그 시기는 공교롭게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의 토바 화산이 폭발한 75000년전과 맞물린다.(131 페이지)

 

4-5만년전 인도네시아에서 벽화를 그린 고인류는 누구였을까요? 호모 플로레시안스일 가능성도 있다.(103, 104 페이지) 1미터 내외의 작은 키, 호모 사피엔스의 1/4에 불과한 400cc의 두뇌 용량을 가진 그들이 벽화를 그렸다면 추상적인 예술에도 큰 머리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는 충격적인 결론이 나온다.(104 페이지) 저자는 21세기에 주목해야 할 것은 호모속이 보여주는 두뇌 용량의 증가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라 말한다.(140 페이지) 21세기에 밝혀진 팩트는 우리 안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147 페이지)

 

네안데르탈인의 두뇌 용량은 호모 사피엔스의 그것에 비해 크다. 하지만 두뇌 세포가 현생인류처럼 촘촘하게(빼곡하게) 배열되지 않아서 인지 능력이 현생인류보다 못하다는 해석이 대두되었다. 그들의 큰 두뇌 용량은 추운 지방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이었다는 해석도 나왔다.(151 페이지) 네안테르탈인에 대한 연구가 점점 진행되면서 우리가 바라보는 네안데르탈인의 모습도 변했다. 물론 이는 단순히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라 단편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다양하고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153 페이지)

 

저자는 현생인류가 복수(複數)의 기원점과 복수의 조상 집단을 가지고 있다는 가설이 의외로 많은 자료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고 말한다.(173 페이지) 20만년전 남아프리카 오카방고에 살던 고인류도 30만년전 서아프리카에 살던 고인류도 40만년전 유럽에서 살던 네안데르탈인도 우리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아프리카 기원설이 정설로 굳게 자리잡았지만 고인류학 역사에서 손꼽히는 중요한 화석인 자바인 화석과 베이징인 화석으로 인해 아시아 기원론이 대두되었었다.(179 페이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구석기는 주로 석영으로 만들어졌다. 석영은 사람이 의도를 가지고 때리거나 떼어낸 자국과 자연적으로 생긴 자국을 구분하기 어렵다. 인류가 만든 석기라는 증거가 분명하지 않다는 의미다.(203 페이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화석종 중 가장 유명한 루시 화석은 머리뼈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몸뼈에서 얻은 두 발 걷기에 대한 정보는 두 발 걷기가 인류 진화 역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했다는 가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데 중요 역할을 했다.(232 페이지) 새로운 자료가 새로운 문제의 답을 찾는 데 기여하지만 기존 자료가 새로운 문제를 제시하기도 한다.(233 페이지) 저자의 책에서 핵심적인 것들은 무엇일까?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언급에서 나온 단편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다양하고 입체적인 모습의 필요성, 그리고 갈라졌다가 만난 뒤 다시 갈라지는 강줄기와 같은 인류 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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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공룡시대에 산다 - 가장 거대하고 매혹적인 진화와 멸종의 역사 서가명강 시리즈 31
이융남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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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공룡시대에 산다’. ‘공룡학자 이융남 박사의 공룡대탐험’ 이후 23년만에 나온 책이다. “오랫동안 나의 책을 기다려준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빚을 갚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하는 저자. 내가 공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질해설이 계기가 되었다. 늦은 입문(?)인 셈이다. 물론 내가 맡고 있는 한탄강 영역은 공룡과 직접 연관이 없다. 하지만 중생대가 하나의 연결점이 되었다.

 

연천에 중생대 지질공원인 동막리 응회암이 있고 좌상바위가 있다. 그리고 재인폭포 주변에 8000년전 생성된 응회암이 있다. 공룡 화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2억 3000만년전인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후기의 것이다.(234 페이지) 공룡은 6600만년전인 백악기 소행성 충돌 등이 원인이 되어 멸종했다. 공룡이 처음 출현한 당시 지구의 산소 농도는 오늘날보다 훨씬 낮았다. 고생대 말 페름기의 시베리아에서의 화산 대폭발로 인한 결과다.

 

공룡은 산소를 더 효과적으로 흡입하기 위해 목뼈와 앞쪽 등척추 속에 기공을 발달시켰다. 이런 특징은 후에 조류로 진화하며 기낭이라는 매우 독특한 호흡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기낭은 뼈의 무게를 줄여 몸무게를 가볍게 했다.(255 페이지) 기낭은 새의 가슴과 배에 있는 폐와 통하는 주머니다. 새나 공룡은 숨을 들이 쉴 때 산소가 폐뿐 아니라 기낭에도 채워진다. 숨을 내쉴 때 폐에서 공기가 나가면 기낭의 산소가 폐로 흘러든다. 숨을 내쉴 때도 폐로 산소가 들어가는 구조다. 공룡은 처음 출현했을 때부터 새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254 페이지)

 

악어와 같은 원시적 파충류와 달리 공룡은 다리가 곧게 뻗어 직립을 했고 앞발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인류는 직립함에 따라 앞발이 손이 되었고 공룡은 직립함에 따라 앞발이 날개가 되었다. 새는 깃털이 있고 날개가 있고 두 발로 걸어다니고 항온동물이며 알을 낳는 척추동물이다.(222 페이지) 새에게서 강조되는 것은 깃털이다. 그것은 깃털이 오직 새에게만 있는 특징이었기 때문이다.(224 페이지)

 

그러나 공룡에게도 깃털이 있었다. 지금까지 중생대 공룡으로부터 확인된 깃털 종류는 아홉 가지다. 공룡은 새보다 더 다양한 깃털을 실험적으로 발달시켰다. 공룡의 초기 깃털은 체온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 비행과 무관한 것이었다. 공룡은 하늘을 날면서 비행 깃털을 완성시킨 것이 아니라 하늘을 날기 전에 이미 활공을 더 잘하기 위해 비행 깃털을 발달시켰다.(262, 263 페이지)

 

새에게는 차골(叉骨; furcula; little fork)도 중요하다. 이것이 있어야 날갯짓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237 페이지) 양쪽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의 쇄골과 달리 V자 형태로 가운데가 붙어 있는 새의 뼈가 차골이다. 공룡과 새의 관계에 결정적으로 다시 불을 지핀 사람이 예일대학교의 존 오스트롬 교수다. 그는 조류와 공룡의 골격 공통점이 100가지가 넘고 조류의 골격학적 특징이 공룡의 진화와 함께 오랜 시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화했음을 밝혔다.(240, 241 페이지)

 

공룡에게는 어떤 감각이 발달했을까? 티라노사우루스의 경우 후구(olfactory)라 하는 냄새를 맡는 기관이다. 이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티라노사우르스가 사냥 대신 시체를 먹는 청소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설득력이 낮은 말이다. 티라노사우르스의 다른 골격학적 특징은 활동적으로 사냥하는 포식자의 특징을 매우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209 페이지) 티라노사우루스처럼 육지에서 주로 서식할 때는 후각이 매우 발달해야 한다.

 

하늘을 날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후각보다 더 필요한 감각이 시각이다. 먹잇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새의 머리뼈 중 가장 큰 부분이 눈구멍이고 시력도 인간에 비해 열 배는 좋다. 공룡에서 새로 갈수록 전뇌 부분이 점점 커지고 뼈의 숫자도 줄어든다.(253, 254 페이지) 맨 처음 하늘을 날았던 동물은 새도 아니고 박쥐도 아닌, 공룡과 엄연히 다른 파충류 그룹인 익룡이었다.(223 페이지)

 

중생대에 번성했던 다양한 원시조류들은 공룡과 함께 번성하다가 백악기 말 현대적인 새로 진화했다. 이 현대 새들은 신생대에 들어와 수와 종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275 페이지) 공룡은 변온동물인 파충류에서 항온동물인 새로 전이되는 과정에 있던 동물이다.(274 페이지)

 

공룡을 다루는 학문은 지질학과 생물학이 합쳐진 분야인 고생물학이다. 공룡을 포함한 모든 화석은 지질시대의 지층속에서 발견되기에 고생물학이 담당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서점가의 공룡 책들의 대다수는 유아용 그림책이 차지한다. 교양서적으로서 청소년들이나 일반인들이 읽을 수 있는 공룡 책은 극히 드물다.(13 페이지)

 

고생물학은 공룡이 망치고 천문학은 블랙홀이 망친다는 말이 있다. 대중의 관심을 많이 받는 분야이기에 생겨난 역설적 표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284 페이지) 하지만 이는 제대로 된 경로를 통해 공룡에 대해 알아야 하고 공룡만이 아닌 고생물학의 다른 부분을 두루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로 들린다.

 

저자는 통일이 되면 모두 판상으로 쪼개지는 셰일에 골격과 함께 깃털 자국이 난 중요 새 화석지인 신의주를 가장 먼저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어디를 골라야 하는가?란 생각을 했다. 한탄강지질공원(용암대지)의 시발점인 오리산이 있는 평강군(지질학)일까? 비경을 간직한 DMZ(생태학)일까? 새 화석지인 신의주(고생물학)일까? 숭의전과 연관이 있는 고려의 수도 개성(역사학)일까? 가까운 곳부터 가야 할 것이다.

 

저자는 매년 몽골로 공룡 탐사를 갈 때마다 테리지노사우르스를 발견하는 행운이 오기를 기원하기에 탐사를 준비하는 순간부터 즐겁고 설렌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고생스럽더라도 야외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지? 자연 현상과 물체의 특징을 빠르게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여러 역경을 이겨낼 끈기가 있는지? 관찰한 것을 글로 잘 표현할 수 있는지? 등을 묻는다.

 

공룡학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것 같지만 굉장히 힘든 직업이라며 저자는 좋아할 뿐 아니라 잘 할 자신이 있을 때 공룡학자를 직업으로 선택하라고 말한다. 책에는 중요한 화석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라는 말은 화석에 기초해 만들어진 시대 구분이다. 화석이란 생물 화석이란 말이니 생물의 생과 고/ 중/ 신생대의 생은 같은 것이다. 우리가 고생대와 중생대를 따로 구분하는 이유는 화석 기록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화석이 퇴적암과 관련이 있다면 방사성동위원소는 퇴적암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방사성 동위원소는 마그마에서 광물이 만들어질 때 방사성 원소가 생성되고 마그마가 식어 암석이 되기 시작하면서 붕괴되기 시작한다. 화석은 그 자체로 자연의 귀한 선물이다. 단단한 부분이 있는 생명체가 죽은 후 최대한 빠르게 땅에 묻혀야 한다.

 

뼈를 추스르는 일도 힘든 과정이다. 단단한 지층 속 뼈는 떼어내기 어렵고 너무 부드러운 지층 속 뼈는 훼손되기 쉽다. 삶이란 이런 것이리라. 공룡 알의 생존조건은 자연의 오묘함과 관계되지만 삶의 어려운 조건과도 관계되는 이야기다. 책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밀도와 다양성 면에서 공룡 발자국 산출지수가 세계 최고다. 이는 발자국이 잘 찍히는 호숫가 퇴적층이 많고 발자국이 만들어진 후 지각변동에 의해 암석이 단단해져 발자국이 원 형태를 유지한 채 잘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한반도의 형성 상황을 알 수 있었던 것이 내게는 공룡에 대한 지식 증가 만큼 의미 있었다. 중생대가 시작된 2억 5천만년전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가 붙어있던 남중국과 북한, 강원도, 경상도가 붙어 있던 북중국이 충돌해 하나의 땅덩어리가 되는 과정에서 한반도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90 페이지)

 

큰 지각 변동과 같은 이런 사례는 또 있다. 2300만년 전부터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서서히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동해가 생기고 일본 열도가 분리되었다는 것이다.(135 페이지) IT 업계처럼 매우 빠르게 진화한다는 공룡 연구(285 페이지) 사례는 무엇일까? 고속스캐닝 엑스선 형광법을 이용해 비파괴로 화석 성분을 분석하면 시조새의 깃털과 뼈가 어떤 광물로 치환되었는지 등을 정확하게 볼 수 있고(202 페이지) 주로 광물학에서 사용하는 후방산란 전자회절 패턴 분석기는 주사전자현미경에 부착해 사용하는 기기다.

 

이는 각 광물 입자의 결정 방향을 색깔로 표시해주는 것으로 방해석으로 이루어진 공룡 알 껍데기가 어떻게 배열되었는지 알 수 있다. 붉은 색이 많으면 성장 축으로 곧게 자란다는 것을, 알록달록하면 결정이 곧게 자라지 않고 비스듬히 자란다는 것을 의미한다.(203 페이지)

 

공룡 화석은 발자국에 비해 뼈 화석이 그렇게 많이 발견되지 않았다.(111 페이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공룡 뼈 화석은 머리에서 꼬리 끝까지 완벽하게 보존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2008년 6월 경기 화성에서 발견된 공룡 골격 화석은 그런 선입견을 뒤집기에 충분했다.(115 페이지)

 

드넓은 백악기층이 분포하는 경상도와 전라남도, 충청남도 지역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작은 경기도의 백악기 분지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큰 공룡알 화석지와 새로운 공룡 화석을 발견한 것이다.(117 페이지) 최근 우리나라의 다섯 번째 세계지질공원이 된 전북서해안 지질공원은 위도의 공룡알 화석지가 포함되었다.(133 페이지)

 

탐사의 극한 어려움을 이야기한 저자의 책을 읽으며 갈라파고스를 다녀온 후쿠오카 신이치의 ‘생명해류’를 떠올렸다. 사막 및 육지의 오지 VS 태평양 한복판이라는 구도가 선명하다. 다윈이 공통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는 점까지 두루 흥미로운 이야기를 자연과학 책들로부터 얻는 즐거움이 크다. 오랜 연구와 탐사, 글쓰기의 내공이 어우러진 귀한 책을 편안하게 앉아 읽을 수 있게 해준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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