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나를 흔들다 - 매혹과 혼돈의 메시지 64
이지형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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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인문학의 저자이기도 한 이지형은 내게 지난 201661일 발행된 Skeptic(월간)음양오행과 사주편에 실린 두 글 가운데 한 글의 필자로 기억된 분이다. ‘음양오행이라는 거대한 농담, 위험한 농담이란 제목부터 흥미로운 이 글에서 필자는 음양론의 현실적 화신(化身)으로 추앙받는 주역(周易)은 무의미한 음양 막대기 6개씩의 조합과 유학자들의 사유가 자의적으로 결합된 무질서한 텍스트이며 적어도 태양 지구 달이라는 천문학적 시스템에 근거를 두고 구축된 음양론보다 훨씬 조악한 이론 체계에 해당한다는 말을 했다.(119 페이지)

 

또한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 어려운 전근대의 이론 체계를 인문학과 지식의 새로운 형식으로 격상시키려 시도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126 페이지) 지난 해 5매혹과 혼돈의 메시지라는 부제를 가지고 나온 주역, 나를 흔들다에서 저자는 주역을 우리가 주목하지 않던 세상으로 열린, 잊고 지내던 우리들의 내면을 들추어주는 64개의 창, 아주 멀리서 우리에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으로 정의했다.

 

책의 부제인 매혹과 혼돈에 대해 저자는 주역은 느릿느릿 이런저런 점사들을 던지다가 어느 한순간 예상치 못한 매혹의 메시지를 내던지지만 그 순간의 매혹은 닫히고 다시 어눌하고 모호한 말들이 펼쳐진다는 말로 설명했다. 미니 태블릿 PC 크기의 라지’(가로 12.5cm, 세로 20.5cm) 크기를 가진 240여 페이지의 책에 64괘가 차례로 등장한다.(정상 크기는 가로 15cm, 세로 22.5cm이다.)

 

64괘의 시작은 건괘 위에 건괘가 자리한 중천건(重天乾)이고 마지막은 감괘 위에 리괘가 자리한 화수미제(火水未濟)이다.(건은 하늘, 곤은 땅, 감은 물, 리는 불, 손은 바람, 태는 연못, 간은 산, 진은 번개를 상징한다.)

 

왜 중천건인가? 그것은 건괘 위에 건괘가 (거듭: )왔기 때문이다. 왜 화수미제인가? 물을 상징하는 감괘 위에 불을 상징하는 리괘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첫 챕터의 제목을 살다 보면 최소한 64개의 상황으로, 마지막 챕터의 제목을 걱정하지 않는다로 설정했다.

 

저자는 불리하지 않으면 유리하고, 유리하지 않으면 불리하고의 관점을 갖지 않기를 주문하며 주역이 신비하고 난해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어느 쪽이든 삶의 상황이 최소 64개는 된다는 주역 설명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편견도 한몫 한다고 말한다.(15 페이지)

 

곤괘 위에 곤괘가 자리한 중지곤괘를 보자. 가장 아래부터 1) 서리를 밟으면 곧 얼음이다, 2) 곧고 모나면서 크다, 배우지 않아도 불리할 것이 없다, 3) 빛을 품어 곧다, 큰일을 할 때 이름은 없어도 끝은 없다, 4) 주머니를 여미듯 하면 허물도 없고 명예도 없다, 5) 황색 치마를 입으면 길하다, 6) 용이 들에서 싸우는데 그 피가 검고 누렇다 등의 설명이 붙는다.

 

저자는 이를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점사(占辭)들을 곤이라는 괘 이름 아래 모아놓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 것이라 말한다.(17 페이지) 일관성이라고는 없는 혼란스러운(자의적인, 연결성이 없는) 설명이다. 저자는 자신이 주역에 유일하게 높은 점수를 주는 부분은 그 연결성도 없는 자의적인 것들을 꾸리고 조합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로부터 찾는다.(18 페이지)

 

저자는 여덟 개의 요소(8 X 8= 64)로 세상을 보는(파악하겠다는) 사고방식을 아름다운 착각이라 말한다. 저자는 그냥 닥치는대로 환경에 적응하다보니 지금의 내가 뒨 것이라며 일이 이루어지는 방식이 원래 그렇다는 말을 덧붙인다.(25 페이지)

 

저자는 위에 산이, 아래에 물이 자리한 산수몽괘의 설명 중 한 번 점치면 알려준다. 두 번 세 번 물으면 모독이다. 알려주지 않는다.”는 구절을 설명하며 선택의 가치를 믿어야 한다는 메시지라고 강조한다. 차선이든 차차선이든 자신의 선책을 밀고 나가면 대부분 무언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주역은 점이나 치는 책을 넘어 계도하려 하고 송나라의 성리학자들은 음양과 주역 64괘에 우주의 원리를 통째 연계시키려 했다.(38 페이지)

 

주역 편찬자들의 갖다 붙이기는 상상을 절하는 수준이다.(40 페이지) 저자는 주역 이해의 관건은 질서 속에 감추어진 무질서를 간파하는 것이라 말한다. 질서는 강박이고 환상이라 말한다.(44 페이지) 저자는 사주의 현란한 기법, 주역의 파란만장한 괘와 효의 스펙트럼도 알고 보면 모두 구라이고 마음 약한 사람을 현혹하는 잡문들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요체는 지난 일을 보살피고 다가올 일을 살피는 것이 가장 정확한 천기누설이란 점이다.(64 페이지)

 

주역은 난세의 책이다. 주나라 문왕이 감옥 안에서 64괘를 만들었다. 문왕은 주나라를 창건하고 은나라의 폭정을 뒤엎기 전 은의 주왕에 의해 세상과 격리된 채 감옥에 살았었다.(66 페이지) 주역은 염려와 근심의 한복판에서 태어난 책이다.(67 페이지) 주역은 은, 주 교체기의 혁명적 상황을 담고 있고 점사에 그런 전운(戰雲)이 완연하다.(147 페이지) 주역은 난세의 책이기에 뒤집힘을 긍정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건이 아래에, 곤이 위에 있는 지천태를 혁명과 변화의 괘로 보는 것이다.(지천태는 소통의 괘로 읽히기도 한다.) 물론 평안을 지향한다.

 

주역의 괘들이 저마다 여섯 개의 효를 늘어놓으며 펼쳐대는 얘기들은 어느 한 방향으로 흐르는 법이 없다. 산화 비(山火 賁) 괘의 경우 주역의 드라마는 아름다움에 대한 경계에서 드러난다.(100 페이지; * ; 클 분, 꾸밀 비) 저자는 주역은 본질적으로 음양의 조합이 아니라고 말한다. 주역은 근본적으로 점사들의 조합이라는 것이다.(102 페이지) 아무리 좋은(나쁜) 괘라도 여섯 번째 효에서 나쁜(좋은) 점사로의 반전을 통해 경계와 의심을 놓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정도가 구성의 일관성이다.(103 페이지)

 

점사와 무관하게 막대 모양 자체로 의미를 갖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산지박괘와 지뢰복괘다. 전자는 아랫쪽 다섯 개의 음의 막대 위로 양의 막대 하나가 위태롭게 걸쳐져 있는 형국이다. 지뢰복괘는 양의 막대 하나가 자신을 덮은 음의 막대 다섯 개를 전복시킬 태세다.(103 페이지) 곤궤 아래에 진괘가 자리한 지뢰복괘는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는데 새로운 시작이 가능함을 알리는 부활의 괘이다.(107 페이지)

 

지뢰복의 상서로운 양기를 발견하려면 어둠과 좌절과 막막함을 견뎌야 한다.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엿보았다고 흥분하거나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아직 가냘프기에 지극히 조심스러워 해야 한다.(108 페이지) 동지(冬至)는 해가 길어지는 날이어서 반전 즉 지뢰 복의 상징이기도 하다.(109 페이지) 진괘 위에 간괘가 자리한 산뢰이괘는 말을 삼가고 음식을 절제할 것을 가르치는 괘이다.(117 페이지)

 

저자는 점사에 따라붙는 주역의 해설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관심 둘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119 페이지) 저자는 주역 해설자들이 64괘를 상하경으로 나눈 뒤 주역의 세계가 이중적이라 말하며 상경(上經)은 천도(天道), 하경(下經)은 인도(人道)를 다룬다고 설명하는 것은 한마디로 웃기는 이야기라 말한다.(131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64괘의 구분은 무질서한 것이다.

 

64괘의 구성 원칙을 굳이 뽑아낸다면 짝을 이루는 두 개의 음양 배열을 위아래로 뒤집은 형식이라는 것과 도입부에 건()괘와 곤()괘를 배치하고 마지막에 일의 완성<기제(旣濟)>과 미완성<미제(未濟)>를 뜻하는 괘를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 정도다.(132 페이지) 저자는 주역을 상하경으로 나누는 것은 쓰레기 같은 발상이라 말한다.(133 페이지)

 

주희(朱熹)는 불교가 유학을 무너뜨리려던 상황을 유학(儒學)이 불교를 접수하는 상황으로 180도 역전시킨 학자이다. 그런 그도 주역 점을 따른 적이 있다. 주역의 메시지를 따른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사유를 포기한다는 의미이다.(143 페이지) 세상의 변수는 인간의 능력 이상이다.

 

주역의 괘 하나는 여섯 개의 효()로 이루어지는데 그 중 여섯 번째 효는 괘의 전체 의미와 반대일 때가 많다. 괘가 긍정적이면 효가 부정적이고 괘가 부정적이면 효가 긍정적이다.(170 페이지) 주역은 우주만물을 설명해보겠다는 야심의 체계다.(182 페이지)

 

()이란 단어를 택화혁괘에서 만난다. 이 단어는 무언가를 바꾸는 것 이전에 털과 가죽을 뜻했다. ()가 나무나 구슬의 결이었다가 이치를 뜻하는 것으로 바뀌었듯. 점은 바람이지만 미래에 대한 의혹과 불신의 이면이기도 하다. 때를 맞이해 호변(虎變)하고 표변(豹變)하는 이에게 불안과 공포는 없다.(198 페이지) 혁괘 다섯 번째 양효에 대인호변(大人虎變)이란 메시지가 있다. 미점유부(未占有孚)라는 말도 있다. 점치지 않아도 믿음이 있다는 의미이다.

 

주역은 원래의 점사들을 후대 유학자들의 해설이 감싸 안는 구조다. 열 개의 날개 즉 십익(十翼)이란 멋진 이름이 붙은 해설이다. 하지만 이 십익은 멋지지 않고 몹쓸 때가 더 많다. 저자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이란 단서를 단 뒤 유학은 고도의 처세이고 그 처세의 테크닉을 군자연(君子然)으로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202 페이지)

 

저자는 주역의 매력은 마구 들떠 있는 누군가에게 찬물을 확 끼얹는 데 있지 않을까, 라 말한다.(212 페이지) 주역과 공자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공자는 평생 결실을 얻지 못하고 떠돌다가 돌아와 주역의 해설을 썼다.(216 페이지) 저자는 다른 것 없다며 다만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운명이라 말한다.(233 페이지) 주역 64괘가 그렇다. 없는 것<()>과 있는 것<()> 여섯 개가 수시로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며 건()으로부터 미제(未濟)까지 숱한 상황을 만들어냈다.(245 페이지)

 

저자는 계사전(繫辭傳)은 너무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것 같지만 낙천지명(樂天知命) 고불우(故不憂)라는 말은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걱정하지 않는다, 이 한 마디를 나누고 싶었다는 저자.(246 페이지) ’주역, 나를 흔들다는 인상적인 책이다. 다른 주역 해설서를 읽도록 하자. 논란이 될 요소들이 있지만 흥미롭게 읽었다. 다른 책들을 읽고 비교하며 내 길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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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8-02-28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지형 님 ‘강호인문학‘이 좋아서 이 분 책 몇권 더 읽었었는데,
다른것들은 ‘강호인문학‘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이 책 들인지는 좀 됐는데, 이런 저런 이유에서 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는데,
님의 귀하고 좋은 리뷰를 보니 저도 읽고싶어집니다, 불끈~(__)

벤투의스케치북 2018-02-28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러시군요.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강호인문학을 읽지 못했습니다. 한번 찾아 읽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