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대비 문제집이 책상 위에 놓여있다. 욕심으로 서평을 써주겠다고 해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이다.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기출 시험 문제집만을 공부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은 문제은행 방식이 아니라 매회 새로 출제되지만 중요한 주제만을 출제하기에 기존 문제들이 조금씩 변형, 반복 출제된다.

문제집을 일별하고 내가 내릴 수 밖에 없는 결론은 역사 지식이 평면적으로 또는 비유기적(非有機的)으로 조각 조각 나열되어 있다는 점이다.(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전북 군산의 한 문화관광 해설사는 “학교 수업시간처럼 역사만 너절하게 나열하면 딱딱하고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지 못”(2015년 7월 26일 오마이 뉴스 수록 임미현 해설사의 말)한다는 말을 했다.

너절하다는 말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새겨들을 말이다. 도대체 조각 조각 난 역사 지식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임미현 해설사의 말을 고려하자면 ‘조각 조각‘은 문제집에만 해당하지 않고 학교 역사 수업에도 해당되는 듯 하다.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가 필요하다. 외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한 한국 학생이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한다.

교수가 갈릴레오에 대해 아는 사람 있으면 손을 들라고 하자 몇몇 학생이 손을 들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 학생은 처음에는 눈치를 보며 손을 들지 않다가 용기를 내어 손을 들었다. 하지만 교수 또는 그 나라 학생들이 생각하는 앎과 우리나라 학생이 생각하는 앎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학생은 갈릴레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했다는 사실, 교황청과 갈등을 빚었다는 사실,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별 이야기) 등의 책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그를 안다고 생각하는데 외국 학생들은 그의 생애, 사상, 업적 등을 스토리로 엮어 몇십 분을 이야기해야 안다고 생각한다.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이다. 글로써 생각을 정리하면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알게 된다.

나는 글쓰기가 말하기보다 편하고 자유롭다. 하지만 이는 내가 글을 잘 쓴다는 말이 아니다.

나의 쓰기는 자주 쑤기가 된다. 죽을 쑤듯 글을 쓰면서 좌절(挫折)도 하지만 그래도 글은 말과 달리 고치고 또 고칠 수 있어 명료하고 간결하게, 정확하게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

죽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밥을 만들어야 하는데 죽 또는 멀건 밥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문제이다.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후에 단편적인 역사 지식을 글로써 하나로 엮어내는 작업을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 주위에서 그런 사람은 보지 못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시험 이전에 이미 글을 쓰고 생각하는 데 익숙했던 사람일 것이다.

시험의 대안(代案)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은 공무원, 기업체, 학교 등을 들어가는 데 필요한 가산점 취득의 도구로 활용되는 측면이 강하다.

나는 보잘 것 없는 역사 지식을 가졌지만 특정 주제나 이슈를 부여받고 글로 써나가는 것에는 자신 있다.

어제 전체를 꿰뚫는 해박한 역사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글을 쓰지는 않는다는 한 야학 교사를 만났다. 놀라운 일이다.

내가 자신 있다고 말한 것은 전술했듯 고치고 뜯어보고 이리 저리 생각하고 다듬을 수 있는 것에 근거를 둔 말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그 과제 수행에 잘 뛰어들지 않는다. 그들이 그 과제를 수행한다면 내 글 솜씨는 아마 하찮게만 보일지도 모른다.(솜씨랄 것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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