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회 관람 후기를 쓰는 과제를 위해 내가 고른 전시는 2017년 서울 세계건축대회(9월 3일 – 7일) 기념 특별 전시회인 ‘자율진화도시’전(展)이다.

건축대회는 끝났지만 시작일과 같은 9월 3일 시작되어 11월 2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회는 계획과 진화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갖는 전시회이다.

말이 어렵지만 자율진화도시란 외부로부터의 개입 없이 문제점들을 스스로 찾아 낼 수 있는 지속가능한 도시이다.

자율진화도시전이 중점을 두는 분야는 예술이다. 물론 도시를 보는 틀은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지리학자이자 사회이론가인 데이비드 하비처럼 도시를 계급현상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비는 도시를 잉여 생산물이 사회적, 지리적으로 집적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거주 형태로 본다. 그런 그에게 도시화는 언제나 일종의 계급현상이다.

그런데 글을 쓰는 과정에서 관념적인 데에 경도(傾倒)되는 내 성향 때문에 힘들었다. 이와사부로 코소 이야기이다.

그는 도시를 거리의 꿈틀거림, 웅성거림, 시끌벅적함을 통해 춤을 추는 움직이는 신체 즉 유체(流體)로 정의한다.

또한 건축을, 건물을 세우고 도시를 구획하는 것이 아닌 물리적인 도시공간을 소유하지 않은 도시 민중이 자신의 역사, 문화, 지식을 자신들의 신체 안에 새겨 넣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이 부분을 절대시간, 절대공간을 상정한 뉴턴과 시공간의 관련성을 알린 아인슈타인의 차이, 세상을 고정불변의 실체로 보는 존재 중심 시각과 연대(連帶)와 연기(緣起)의 관점으로 보는 사건 중심 시각의 차이 등으로 설명하려 했었다.

하지만 주제에 맞지 않거나 논의가 추상적이면 과감하게 잘라야 한다. 그래서 외부란 용어가 자연계와 도시 이론에 다르게 적용되는 점을 부각시켰다.

자연과학에서는 외부로부터 물질과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는 계를 고립계 또는 폐쇄계로 정의하지만 도시론에서는 외부로부터의 개입 없이 문제점들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는 지속가능한 도시를 자율진화도시라 말하는 것이다.

고립 또는 폐쇄와 자율은 함의가 완전히 다르다. 지난 19일 나는 ‘자율진화도시’전(展)이 열리는 서울시립미술관에 있었다. 이예승의 ‘초시공간(超視空間)‘이란 작품을 30분간이나 바라보았다.

나는 이를 면벽(面壁) 수도(修道)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 역시 나의 관념지향적인 벽(癖: 버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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