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찌어찌 해서 역사책 읽기에 흥미를 붙이고 있다. 그 역사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눈에 띄는 부분이 천명(天命), 정당화, 이데올로기적 선전 등에 관한 내용이다.

강대국인 은(殷)나라를 상대해야 했던 주(周)의 문왕이 은의 주(紂)왕의 군대를 무찌른 후 은나라 사람들을 찾아가 자신이 주(紂)왕을 친 것은 당신네 조상들의 천명을 받아서였다고 주장한 것은 은나라 백성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는데 이 과정에서 좌묘우사가 나왔다.(장인용 지음 ‘주나라와 조선’)

그런가 하면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1392년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천명(天命) 사상을 만들어 새 국가 건설의 명분을 퍼뜨리려던 중 고구려 성좌도 탁본을 보고 뛸 듯이 기뻐하며 이를 돌에 새길 것을 명해 만들어진 석각(石刻) 천문도라는 내용(박석재 지음 ‘하늘을 잊은 하늘의 자손’)도 같은 차원의 글이다.

천명을 내세운 것이기보다 정당화라 하는 편이 맞지만 죽은 지 125년이나 지난 정몽주(끝까지 조선 건국에 반대한)를 조선의 문묘(文廟)에 모신 것은 그의 학문을 고려(考慮)해서가 아니라 고려(高麗)에 대한 정치적 신념(충성)을 시대정신으로 활용하기 위한 반정(중종 반정) 세력의 계산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최연식 지음 ‘조선의 지식 계보학’)도 그렇다.

무령왕릉 발굴을 계기로 박정희가 고고학 발굴을 민족주체성 회복이라는 통치 이데올로기 선전에 마음껏 활용했다는 분석(김태식 지음 ‘직설 무령왕릉’)도 그렇다.

한 신문에 외부 필진(대학 교수)이 쓴 대통령의 가야사 연구 관련 글이 실렸다. 필자는 정권이 역사를 장악하려 할 때 왜곡되지 않은 적이 없다는 주장을 했다.

이 필자는 참여정부, 그리고 그 직후인 2008 ~ 2009년에는 개혁군주로서 정조가 주목을 받았고 정권이 바뀐 후에는 실패한 혁신가로서 광해군의 생애와 그의 비참한 최후가 거론되기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가 든 정조 부각 사례(참여정부에서 지시한 것인지 방송에서 알아서 그렇게 한 것인지 모르지만) 외의 다른 사례는 모두 부도덕하거나 정통성에 문제가 있는 정권이 저지른 일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1968년 광화문 광장에 이순신 동상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새로운 전통과 위인 만들기에 골몰하고 충효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한편 국민국가로의 통합을 꾀한 박정희,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집권한 이방원의 역사를 통해 정권의 정당화가 가능하다고 믿은 신군부 등...

가야사 복원을 통해 영호남의 화합을 이루라는 대통령의 주문은 정권이 역사를 장악하려는 시도가 결코 아니다.

혹시 그 필자는 교과서를 국정으로 만들려는 것을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이 필자가 박근혜의 국정 교과서 강행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는지 몹시 궁금하다.)

그러나 가야사 연구를 지시한 것은 교과서를 국정으로 하겠다는 것과 차원이 다르고 더욱 지금 정권은 집권 과정이나 정체성 등에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정권이다.

논의에서 벗어난 감이 있고 적절한지 더 논의해야 하지만 ‘교수신문’에 실린 철학자의 글에서 이런 부분이 눈에 띈다.

“한국 고대사 연구자들이 어떤 연구를 수행할지 오직 고대사 연구자 자신들만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문가의 오만이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어느 정도 한국 고대사에 대한 전문성이 요구된다고 고집할 수 있겠지만 문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회의에 참석한 많은 이들이 그 정도의 전문성은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판단한다.”

앞에서 거론한 부분이지만 정조에 대해 최근 이런 주장이 제기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정조의 왕권 강화 정책이 (오히려) 세도정치를 초래했다는 것이다.(‘정조와 정조 이후’ 수록 오수창 글 ‘오늘날의 역사학, 정조 연간 탕평정치, 그리고 19세기 세도정치의 삼각 대화’)

노무현 정권이 사라진 것에 맞추어 그런 주장을 한 것은 아니겠지만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면밀히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고 역사는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정치의 주요 파트너이기 때문이다.(공부의 부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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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6-14 14: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종환 의원의 입각에 앞서 앞으로 문화부
장관이 될 인물에 대한 역사 검증 논란으로
시끄러운 것 같습니다.

여전히 사학계의 기득권층은 재야사학계의
주장을 야사로 일축하고 있죠. 특히나 고대
사 부분에 있어서는 정말 무엇 하나 뚜렷한
증빙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정설을 정하기
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만의 역사가 아닌 일반인들도 가
까이 다가설 수 있는 그런 역사 서술을 합
의하는 그런 건설적인 방향으로 논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7-06-14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상식과 합리에 바탕한 역사관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식민사관도 극복하고 역사 교육의 이상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써주신 글에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