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수요 독서 모임에서 장석남 시인의 물의 정거장을 읽습니다. 장석남이란 분은 주로 시를 쓰고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분입니다. ‘물의 정거장은 출간된 지 19년이 지난 책이지만 시인이 드러낸 서정(敍情)은 여전히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서정이란 사물을 보고 느낀 감정(感情)을 나타내는 것을 말하지요. 물의 정거장은 시인이 대학로인가를 지나다가 본 글귀라고 합니다. 장석남 시인은 물의 정거장이란 글귀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물의 정거장이란 책을 읽고 물의 정거장이란 글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두리번거리며 대학로를 걸었던 적도 있습니다. ‘물의 정거장은 산문집입니다. 우리는 흔히 산문을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글이라 말합니다.

 

반면 시는 aa라 말하지 않고 b라고 말하는 에둘러 말하기의 장르라 말합니다.(에둘러 말하기는 바로 말하지 않고 짐작하여 알아듣도록 둘러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석남 시인은 의미를 얼마나 미끄러뜨리느냐에 따라 시와 산문의 경계가 생겨날 거라 말합니다. 시인은 의미를 미끄러뜨리지 않는다면 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나희덕 시인은 시는 기본적으로 숨김으로써 의미를 드러내는 양식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산문은 있는 그대로 솔직, 담백하게 의미를 드러내는 장르라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산문도 온전히 솔직, 담백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임동확 시인/ 평론가는 문학이란 장르를 들키기를 바라면서도 실상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숨기는 장르라 표현했습니다.

 

정리하면 나희덕 시인은 시는 기본적으로 숨김으로써 의미를 드러내는 양식이라 말했고 임동확 님은 문학은 들키기를 바라면서도 실상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숨기는 장르라 말한 것입니다.

 

산문은 형식적으로는 에둘러 말하지 않지만 인간의 속성을 감안하면 산문도 온전히 솔직, 담백할 수 없는 장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생각을 온전히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말을 글로 100퍼센트 표현할 수 없습니다. 생각과 말, 말과 글 사이에는 갭이 있습니다.

 

나희덕 시인이 자신은 의미를 많이 남겨야 시의 꼴이 이루어지는데 장석남 시인은 의미를 배제하면서도 시가 되기에 그게 경이롭고 부럽다는 말을 합니다. 이에 장석남 시인은 자신은 너무 끔찍한 것, 너무 좋은 것, 너무 행복한 것들은 현실감이 없어서 고개를 돌리게 되며 일부러 그러는 경우도 많다고 말합니다.

 

장석남 시인은 그건 일종의 현실 도피인데 그것이 우리 사회에 좋은 것이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모두가 일괄적으로 한쪽만 바라보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도피적 태도나 성향도 어느 정도 기여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장석남 시인은 물의 정거장은 일정한 주제가 있어서 나온 글들이 아니므로 아무 데나 펴서 읽으면 될 것이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쪽으로 옮기면 될 것이고 그도 아니면 그냥 덮어도 별로 섭섭하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또한 읽다가 스르르 다른 세계로 빠져나가게 하는 글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물의 정거장에는 프랑스의 시인, 철학자, 과학자 바슐라르가 낮달을 하늘에 뚫린 구멍이라 말한 것을 보고 시인이 그렇다면 우물은 땅의 구멍이고 우물과 낮달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리라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것이 스르르 다른 세계로 빠져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시인도 말했듯 읽다가 스르르 다른 세계로 빠져나가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요.

 

시인은 물의 정거장을 무용의 효용 즉 쓸모 없음의 효용이란 말로 설명합니다. 그러기를 바라고 하는 말이지요. 도피적 태도나 성향도 사회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과 통하는 바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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