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희님. 문학작품 속 갑질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톡으로 그 분께 문의했었다. 재작년 7월이었다. 내 갑작스런 질문에 송희님은 만족할 답을 하지 못해 "죄송해서 어쩌죠?"란 말을 했다. 별 일 아닌데,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송희님은 "죄송해서 어쩌죠?"란 말을 했다.
오늘 송희님의 지인이 송희님이 일주일 전 여고생 딸 하나를 두고 암으로 타계했다는 소식을 송희님의 페친인 시인 여** 님께 메신저를 통해 알려왔다고 들었다. 이제 갓 마흔을 넘긴 너무 이른 나이로 수천 권이 책이 꽂힌 방에서 앉은 채 저 세상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몇 번의 통화와 톡, 알라딘(송희님의 닉네임; 그장소)과 예스(송희님의 닉네임; 언강이 숨트는 새벽)에서, 페이스북에서 주고받은 댓글이 소통의 전부였지만 문학책을 좋아하는 사람 특유의 열정과 번뜩이는 재치가 인상적이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기록을 뒤져보니 지난 2016년 8월 14일 내가 쓴 '스승을 못 만나는 것은 고아나 다름 없다는 말로부터'란 글에 송희님은 "나의 우파니샤드 - 시집 생각이 덜컥 나는군요!^^"란 댓글을 남겼다.
송희님이 우파니샤드란 말을 꺼낸 것은 다음의 글로 인해서이다. <(레비나스의 제자를 자칭한 우치다 타츠루에 따르면) 레비나스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제자가 스승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에는 책을 매개로 한 만남이 만들어내지 못하는 직접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스승 곁에 앉는다는 의미를 가진 우파니샤드적 만남을 연상하게 하는 레비나스적 스승 - 제자 관계가 생각하게 하는 것은 스승 - 제자 관계에서는 고아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다시 최윤의 '회색 눈사람'의 마지막 구절을 읊게 된다. "아프게 사라진 모든 사람은 그를 알던 이들의 마음에 상처와도 같은 작은 빛을 남긴다." 송희님의 알라딘 서재는 2018년 서재의 달인으로 선정된 송희님에 대한 축하 인사와 답을 끝으로 2018년 12월 19일 이후 새 글이 오르지 않은 상태이다.
슬프고 허망하다. 즐겁게 수다 떨 날들을 기약한다고 했던 송희님. 이제 대답을 들을 수 없다. 삼가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