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루공 마카르 총서, 이와나미<岩波> 총서, 갈리마르 총서 등.. 두서 없이 생각나는 총서들이다. 이 가운데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를 말하고 싶다. 19번 폴 뒤 부셰의 '바흐; 천상의 선율'에서 내가 들은 것은 바흐(Bach)란 말이 동유럽 방언으로 순회음악가를 뜻한다는 말이다. 시냇물이 아니라.

 

138번 주느비에브 브레스크의 '루브르; 요새에서 박물관까지'에서는 이런 말을 들었다. "태초에 이름이 있었으니 루브르(Louvre)였다. 이 지명의 직관적 혹은 음성학적 규칙에 따른 기원은 어느 문헌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라틴어로는 루파라 혹은 루페라이고 프랑스어로 로브르 혹은 루브르라고 부른다. 색슨족 말로 성채(城砦)를 의미하는 로워의 변형일까? 혹은 나병환자 수용소를 뜻하는 레프로즈리(leproserie)의 변이형일까? 아니면 접미사 아라(ara)로 끝나는 미지의 골족 어근을 지닌 리비에르(riviere; )에서 온 걸까?

 

아니면 떡갈나무를 뜻하는 루브르(rouvre)의 첫 번째 철자 rl로 바꾼 것일까? 늑대 사냥개라는 의미의 루페리아(luperia)를 생각해볼 수 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무시무시한 개과의 짐승들에게 해를 입은 곳과의 관련성이 더 커보인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괜한 것은 아니다. 19세기 고성이나 선조 샤를마뉴 대제가 거주했던 성채 혹은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에 대항하기 위해 세운 요새와 관련해 떠올려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어원과 관련해 두 책이 중요한 말을 했다고 해서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의 일반적 특성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있어 보인다. 나는 성채 또는 요새설()을 지지한다. 언어가 아닌 물적 토대에 기인한 언어이고 가장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자 백상현은 '라깡의 루브르'에서 루브르를 의미 있게 활용했다. 그는 루브르가 늑대가 출몰하던 곳에 있었기에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이라 말하며 프로이트의 주요 환자였던 늑대인간을 거론했다.

 

늑대인간이란 늑대를 무서워해 붙여진 이름이다. 요지인 즉 늑대인간이라 불린 그 소년의 기억은 조작, 편집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잘못된 기억도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다.

 

백상현의 의도는 정신분석이 개인사 박물관(조작, 왜곡되었기에)에 메타고고학(환자의 인생이 이미 건설해놓은 개인사 박물관의 유물들을 고고학적 탐사를 통해 다시 배지하고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기에)을 행하듯 박물관 자체의 존재 의미를 묻는 것에 있었다.

 

'정신병동으로서의 박물관'이란 부제를 가진 이 책의 목차는 강박증의 박물관, 히스테리아의 박물관, 멜랑꼴리의 박물관, 성도착(性倒錯)의 박물관 등으로 구성되었다. 물론 루브르가 늑대와 무관하다 해서 박물관에 대해 메타고고학적 작업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미술사가 캐롤 던컨은 루브르는 왕의 소장품이 공공미술관으로 바뀐 최초의 사례는 아니지만 그 변형은 정치적으로 가장 의미 있고 영향력 있는 것이었다고 말했다.('미술관이라는 환상' 60 페이지)

 

루브르를 늑대와 연관짓는 것은 루브르의 루가 늑대(낭창; 狼瘡, ; 이리 랑)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루프스라는 자가면역질환을 설명하는 것과 맥락이 같다. 루브르를 성채 또는 요새와 연결짓는다면 늑대와 연결지을 수는 없다.

 

이보아처럼 '루브르는 프랑스 박물관인가'라는 책을 통해 루브르를 문화재 약탈과 반환의 역사로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나는 왕의 소장품을 보관하던 곳이었다가 공공미술관으로 바뀐 루브르를 왕립도서관이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비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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