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미모를 자랑하지 않으며 향기를 뽐내지도 않는다./ 다른 누가 어떤 평가를 하든 말든 아무 말이 없다./ 누가 자신의 생을 꺾더라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꽃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시는 이인주(Bernard Lee)님의 꽃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이다. 순수한 마음이 잘 표현된 쉽고 간결한 시이다. 그러나 나는 이 시를 우주의 실상이 반영된 시가 아닌 지은이의 의도가 투사된 작품으로 읽는다.

 

시인은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 가라 하네란 시를 쓴 나옹 선사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았으리라. 그러나 꽃의 말 없음은 생각 없음이 아니고 아픔 없음이 아니리라.

 

꽃들은 벌,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갖은 술수 부리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꽃들은 아름답다. 아니 그렇기에 아름답다고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옹이 선승(禪僧)이었듯 이인주 님이 성직자(카톨릭 신부)인 것이 눈에 띈다.

 

다음의 시를 보자.

 

명사십리 모래알이 많고 많아도/ 제 몸 태우면서 존재하는/ 저 별의 수보다 많으랴// 백 년 전 혹은 천 년 전에도/ 저절로 피어난 꽃이 있었겠나// 뜻 없이 죽어간 나비가 있었겠나// 너도 나도 그래,/ 살고 싶어서 태어난 것/ 살아 보려고 지금 앓고 있는 중이지.”

 

이승하 시인의 생명은 때로 아플 때가 있다이다. 저절로 피어난 꽃이 없듯 뜻 없이 죽어간 나비 역시 없었다는 데에 시인의 의도가 있다. 그래서 생명은 아프다.

 

이인주 신부의 꽃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의 마음으로 살다가 이승하 시인의 생명은 때로 아플 때가 있다를 읽으며 누구나 아플 때가 있음을 되새기자. 그래서 위로를 얻자. 그러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