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세 번째 시간에 장 선생님은 내가 어떤 연유로 정신분석을 공부하는지 궁금해 했다. 그래 내가 '다음 시간에 짧게 정신분석에 대해 이야기 할까요?‘라고 말하자 장 선생님은 기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첫 시간에 홍준기 교수의 라캉, 클라인, 자아심리학을 읽고 있다고 말한 것이 내가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사람이 된 발단일 것이다. 사실 공부랄 것도 없는 것은 나 혼자 좋아 느슨하고 비경제적으로 관련 책들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그 분야의 책을 읽게 된 동기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는데 딱히 왜 그 세계에 입문했는지 나로서도 확정짓기 어렵다. 굳이 말하자면 호기심 때문이고 전이(轉移)나 역전이(逆轉移) 등의 개념에 막연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전이 즉 착오(錯誤)가 진실에 이르는 길일 수 있다는 점도 역설적인 매력으로 느껴졌었다. 그런데 제시카 벤자민을 설명한 임옥희 교수에 의하면 전이는 환자가 보여주는 강력한 무기이다.

 

이성적이고 권위적인 분석가에 복수하고 싶은 환자가 분석가를 사랑의 대상으로 격하시킴으로써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사랑의 전이를 통한 환자의 저항이다.(’페미니스트 정신분석이론가들‘ 149 페이지)

 

이런 새로운 앎이 좋다. 어떻든 지금의 내 입장에서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점은 정신분석 학파가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이론을 만드는 고투를 거쳐야 학파를 형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멜라니 클라인, 줄리엣 미첼, 줄리아 크리스테바 등의 정신분석가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런 점 때문이다. 멜라니 클라인의 정신분석은 개인은 물론 사회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해주었고(’헬조선에는 정신분석‘ 204 페이지)

 

줄리엣 미첼은 부모 아이의 수직 관계가 아닌 동기간 관계의 중요성을 중점적으로 부각시켰고(’페미니스트 정신분석이론가들‘ 46 페이지)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사랑을 전제로 한 분석에서만 분석받는 사람이 자신의 욕망, 타자에 대한 욕망, 죽음을 포함한 성욕 등을 말할 수 있다고 본(’페미니즘과 정신분석‘ 213 페이지) 정신분석가이다.

 

물론 이 난삽한 설명을 쉽고 간결하게 만들어야 언제든 장 선생님에게 내 정신분석 공부의 동기를 책임감 있게 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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