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19p)

 

이 책의 주인공이며 화자인 선 윤재(소년)는  태어나면서부터 그 아미그달라의 크기가 작은 아이다.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느끼지 못한다. (아미그달라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쥐는 고양이가 두렵지 않아 피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에 잡아먹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외에는 극히 정상이다. 의사들이 내린  진단은 '감정 표현 불능증' 또는 '알렉시티미아'였다. 의사들은 뇌의 신비를 벗겨 내는 데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장기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의뢰를 해 왔다. 그러나 그의 엄마는 '내 애는 내가 가장 잘 알아요'라는 말로 제의를 일축해 버린다. 그리고 병원에도 발길을 끊고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사회에 적응하는 방법을 교육한다.  윤재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 적당히 무리 안에 섞여 있는 것이 가능해졌다. 
할머니의 꿈이자 엄마에게 물려주었던 작가에의 꿈 대신 엄마는  주택가 골목에 헌 책방을 차린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은이 책방'이라고 간판을 달았다. 아빠는 윤재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이미 세상을 뜨고 생활고에 시달린 엄마는  할머니(소년의 외할머니)와 살림을 합쳐  함께 살게 된다.
그러던 중 소년의 열일곱 살이 되는 생일인 크리스마스이브에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소년의 생일 축하를 위해서  세 명의 가족은  냉면집에서  냉면을 먹고  한껏 행복한 웃음을 웃으며 나온다.  막 문을 열고 나오다가 엄마는 어떤 남자에게 느닷없는 습격을 당하여 머리를 망치로 4번이나 내리 찍히고  식물인간이 된다. 할머니 역시 그 남자의 칼에 등을 찔리고 그 자리에서 죽는다.
그 남자는  불행의 연속으로 세상을 증오한 사람이었다.
"오늘 누구든지 웃고 있는 사람은 나와 함께 갈 것입니다."라고 일기장에 써 놓고 나온 사람이었다.
엄마와 할머니의  처참한 죽음의 장면을  눈앞에 바라보면서도 소년은 놀라지도 슬퍼하지도 울지도 않는다. 다만   질문만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엄마와 할멈은 뭐가 그렇게 우스워서 깔깔댔던 걸까. 그 남자는. 왜 그랬을까. 왜 더 늦기 전에 누군가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을까. 왜"
혼자된 소년은 평소 엄마가 늘 말했던 '정상적'으로 살기 위해서 고민한다.  하지만 그 '정상적'이란 게 어떤 건지도 알 수 없다. 그리고 어떤 게 정상적인 반응인지도 알 수가 없다.
'B 사감 와 러브레터'책 속에서 러브레터를 훔쳐읽으며 상상 속의 2인 극을 펼치는  사감을 몰래 지켜본  세 명의 여학생은 각자 반응이 다름을 보고 소년은 생각한다.

늘 정답을 제시하던 엄마의 가르침과는 좀 위배됐지만 나는 그 결말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치 이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남들이 꼭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다고 해서 정해진 대응을 할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모두 다르니까, 나같이 '정상에서 벗어난 반응'도 누군가에겐 정답에 속할 수 있지 않을까.(60 P)

 

보험금과 가게 2층에 있는 빵집 주인 심 박사(심재영)의 도움으로  소년은 엄마가  하던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학교에 다니고  땅거미가 지면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 들른다.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는 특별한 아이로 알려지고 그로 인해 학교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는 학부모들의 항의에 의해서 학교를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는다. 보호자 역할을 하는 심 박사는 '정상적'이란 게 '평범'한 것일 거라는 말을 한다.   소년은 '평범'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남들과 같은 것. 굴곡 없이 흔한 것.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평범하게 졸업해서 운이 좋으면 대학에도 가고,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을 얻고 맘에 드는 여자와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그런 것. 튀지 말라는 말과 일맥상통한 것.(74P)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걸 바란단다. 그러다 안 되면 평범함을 바라지, 그게 기본적인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평범하다는 건 사실 이루기 가장 어려운 가치란다. -중략-
박사의 말대로  평범하다는 건 까다로운 단어다. 모두들 '평범'이라는 말을 하찮고 쉽게 입에 담지만 거기에 담긴 평탄함을 충족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게는 더욱 어려운 일일 거다. 나는 평범함을 타고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비범하지도 않으니까.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방황하는 이상한 아이일 뿐이니까. 그래서, 나는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평범해지는 것에.
-학교 계속 다닐래요. (74P)

 

어느 날 책방으로 한 남자( 윤권호 교수)가 찾아온다. 그 남자로 인해 소년은 괴물 친구 '괴물(곤이의 별명)'을 만난다. 괴물은 윤권호의 십삼 년 전에 잃은 친 아들이다. 우연히 찾게 된 아들의  원래 이름은 '이수'였지만 아들 자신은 새로 만들어진 '곤이'라는 이름을 좋아한다. 그동안 좋지 못한 환경에서 생활해온 탓에 많이 거칠어진 곤이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반항적이고 난폭한 아이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잃어버린 아들로 인해 병약해진(죽기 전에 아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아내를 위해 윤 교수는 윤재를 친아들이라고 하며 죽어가는 아내에게 소개한다.
같은 학교, 같은 반으로 만나게 된  윤재와 곤이. 둘은 모두 불행한 가족사를 안은 아이들이다.
곤이의 반항과 난폭함은 극에 달하고  특히 윤재에 대한 패악 질은 더욱 기승을 부린다. 그런 곤이에게, 또는 곤이 때문에  윤재는 죽음의 순간을 넘나드는 폭력을 당하지만   여전히  공포도 미움도 슬픔도 느끼지 못한다. 오직 자기의식대로만 행동할 뿐이다.  동병상련일까. 그러던 그들에게도  우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몰랐던 감정들을 이해하게 되는 게 꼭 좋기만 한 일은 아니란다. 감정이란 건 참 얄궂은 거거든. 세상이 네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달라 보일 거다. 너를 둘러싼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모두 날카로운 무기로 느껴질 수도 있고 별거 아닌 표정이나 말이 가시처럼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지, 길가의 돌멩이를 보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대신 상처받을 일도 없잖니, 사람들이 자신을 차고 있다는 것도 모르니까. 하지만 자신이 하루에도 수십 번 차이고 밟히고 굴러다니고 깨진다는 걸 '알게 되면',  '돌멩이의 기분'은 어떨까.(137P)

한 가지 질문에도 백 가지 다른 답이 있는 게 이 세상이란다.(139P)

그런데 그날따라 의문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말이 저렇게 아무렇게나 쓰여도 되는 걸까.(149P)

곤이는 무척 울었다.
-아무런 두려움도 아픔도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싶어.(208P)

너무 멀리 있는  불행은 내 불행이 아니라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러면 엄마와 할멈을 빤히 바라보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그날의 사람들은? 그들은 눈앞에서 그 일을 목도했다. 멀리 있는 불행이라는 핑계를 댈 수 없는 거리였다. 당시 성가대원 중 한 사람이 했던 인터뷰가 뇌리에 떠다녔다. 남자의 기세가 너무 격렬해,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했다고.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210p)

사람의 머리란 생각보다 묘한 놈이거든. 그리고 난 여전히, 가슴이 머리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란다. 그러니까 내 말은, 어쩌면 넌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란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야.
박사가 웃었다.
-자란다는 건, 변한다는 뜻인가요.
-아마도 그렇겠지. 나쁜 방향으로든 좋은 방향으로든.(214-215p)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것 따윈 애초에 없는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219P )

 

청소년과 어른. 아니 초등 고학년부터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읽으면 빠져들만한,  성장소설이면서  흥미와 철학적  영양가가 가득 담긴,  얇지만 결코 얇지 않은, 그런 소설이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공감되는 구절. 여운이 남는 울림들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화두들이  신기하게도 평소 내가  던졌던  화두들과 일치했다.
그래서일까  잠시도 책을 놓을 수 없이  끌려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정상적'이란 거, '평범'이란 거. 그것이 뭘까.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느껴도 행동하지 않고 공감하면서도 쉽게 잊는다면   '감정 표현 불능증'과 다를 것이 무얼까
*어떠한 삶이 비극적인 삶이고 어떠한 삶이 희극적인 삶일까.
*같은 상황에서는  반드시 같은 반응을 해야 할까.
*정상에서 벗어난 답은 모두 틀린 답일까.
*사랑이란 것이 그렇게 함부로 말해도 되는 걸까.

정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책.  독서모임에서도 같이 읽고 싶은 책이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219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