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의 몰타 - 지중해의 작은 보물섬
정수지 글.사진, MIROUX 그림 / 책미래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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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떠날 몰타 여행을 준비하면서 읽은 책입니다. 몰타에 관한 책이 그리 많지 않아서 나름 기대가 컸습니다.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면 여행사 상품으로 가는 몰타여행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자유 아래 놓인 자아 그리고 세계의 청춘들과의 만남을 솔직하게 들려주며 책의 주 배경지인 몰타의 실체도 슬그머니 꺼내놓는다.”라고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의 몰타>를 소개합니다. 그러니까 몰타의 실체보다는 세계의 청춘들과의 만남에 방점이 찍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몰타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작가는 몰타의 실체보다도 몰타에서 만난 사람들과 어울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으로 책을 채웠습니다.


작가는 “1985년 부산 출생으로 느닷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시도해 보며 즐기는 게 인생의 낙이다. 2007년 일본영화에 푹 빠져 훌쩍 떠난 도쿄에서는 관광비자를 연장하며 1년간 머물렀다. 2011년 전 재산을 털어 도착한 몰타에서는 세계의 청춘들과 가슴 뛰는 나날을 만끽하며 자신의 내면을 원 없이 따랐다.”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일본, 필리핀 그리고 몰타에 이르기까지 여정에서 치밀하게 준비된 흔적은 별로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매사가 즉흥적이고 그러다보니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일본에 갈 때는 일본어를 배운다고, 필리핀에 갈 때는 몰타를 가기 위하여 영어회화를 배우기 위해서였다는데, 몰타에서도 영어회화를 공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영어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에 관한 정보는 별로 소개하지 않고, 그저 친구들과 술 마시고, 놀고, 유럽의 여러 곳을 짧게 여행하는 잔재미만을 즐겼다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게 영어를 배워서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책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책 속에 담겨있는 내용을 보면 스웨덴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지금은 몰타에서 한국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듯합니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는 우리나라 젊은이들 가운데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는 분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영어회화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이지요. 굳이 외국에 나가서 돈을 써가며 영어를 배우겠다는 생각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세대가 다른데서 오는 차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몰타에 머무는 동안 체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했다는 기록은 없는 것으로 보아 한국에서 모은 돈을 쓰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젊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껴야 한다고 적기는 했습니다만 책에 담긴 내용을 보면 많은 것들의 대부분은 술 마시고 이웃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하고, 몰타의 자연을 훼손하는 일도 불사하는 것이었습니다. 몰타의 역사, 사회, 문화는 물론 몰타 사람들의 진면목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는 듯합니다.


작가가 몰타에서 놀고 즐긴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도 몰타로 떠났다고 하는 것은 보면, 조금은 진중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어쩌다 난 해도 해도 너무 한 딸이었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만, 결국 부모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나를 위해 살고 있는 지금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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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기 안내서 - 더 멀리 나아가려는 당신을 위한 지도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반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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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별렀던 리베카 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를 읽었습니다. ‘더 멀리 나아가려는 당신을 위한 지도들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책에서 솔닛은 개인사를 비롯하여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경계를 허물고 나아가려면 길을 잃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웁니다. 생각해보면 우물 안의 개구리는 길을 잃을 염려가 없습니다. 다만 세상이 넓은 것을 모를 따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틀 안에 갇혀 마음을 다치는 쪽보다는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쪽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은 없습니다만, 새로운 것에 익숙해져 안주하기보다는 그것조차도 새롭게 하려다보니 갈등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솔닛이 들려주는 길을 잃는 상황에 대비하여 길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을 익혀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길 잃기는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나는 기대감에 떨기도 하는 순간입니다.


저자는 도시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은 흥미로운 면이라고는 없는 따분한 일이다. 그 일에 필요한 것은 무지뿐, 그 이상 아무 것도 필요 없다. () 그러나 숲에서 길을 잃을 때처럼 도시에서 길을 잃는 것에는 상당히 다른 훈련이 필요하다.’라는 발터 벤야민의 말을 인용합니다. 물론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와 도시에서 길을 잃었을 때 바른 길을 찾아가는 방법은 크게 다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감각을 키우는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녀의 생각에서 많이 배우는 책읽기였지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의 기억은 세월이 흐르면서 대부분 희미해졌고, 하나의 글로 적을 때마다 그 기억은 버려지는 셈이었다고 합니다. 글로 적는 순간 기억은 그림자처럼 흐릿한 추억으로서의 생을 마감하고 활자로 고정되면서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된다고 했습니다. 물론 어렸을 적의 기억은 세월이 흐르면서 희미해지는데 글로 적기 위하여든 아니든 그것을 떠올리는 순간 기억이 강화되고, 특히 글로 남기게 되면 훗날 읽어서 흐려진 기억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기억을 고정시키는 방법인데 문제는 기억이 늘 정확한 것은 아니라서 끄집어내면서 기억이 왜곡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저자의 다른 작품 <걷기의 인문학>을 보면 저자가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길잃기 안내서>에서도 같은 생각이 드는 대목이 있습니다. ‘나는 가끔 샌프란시스코의 집은 겨울 야영지일 뿐이고 진짜 내 집은 일 년에 두어 차례 서부를 한 바퀴 순회하는 여정 그 자체이며 나는 일종의 유목민이라고 생각했다라는 대목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노마드라는 용어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에 공감합니다. 진정한 유목민은 고정된 여정을 따라 이동하면서 장소들과 안정된 관계를 맺는 것이지 요즘 이해하는 것처럼 정처 없이 떠돌거나 종교적 부랑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개의 화살촉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현기증>과 원작인 프랑스 소설, 그리고 솔닛이 쓴 슬립이라는 이야기가 등장하고,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오이디푸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이레시아스의 실체에 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테이레시아스에 관한 이야기는 <세 길이 만나는 곳>에도 등장합니다만. 솔닛이 전한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중의적인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길 잃기 안내서>를 읽다보면 솔닛의 글이 자유분방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야기는 분명 다양한 공간에서 길을 잃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출발했는데, 어느새 잃는다는 것으로 확대됩니다. 상실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길 잃기와는 달리 슬픈 감정이 곁들여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네 개나 되는 먼 곳의 푸름이라는 글 제목이 사실을 길을 잃었을 때 길잡이가 되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주목해서 읽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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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에마뉘엘 카레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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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북인도를 여행하면서 1시간 정도 요가 수업을 들었습니다. 현지인 선생님이 오셔서 아주 기본적인 동작을 시연하면 따라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이용해서 자세를 유지하는 순간 근육이 파르르 떨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각보다는 고단했던지 다음날 몸살이 나는 바람에 구경에 나서기를 중단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요가를 하면서 힘들었던 탓인지 <요가>는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했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작가 에마뉘엘 카레르는 <나 아닌 다른 삶>으로 이마 만나본 적이 있었습니다. <나 아닌 다른 삶>은 줄리에트라는 이름을 가진 두 여성의 죽음을 겪은 주변 인물들의 반응을 적은 기록문학입니다.


<요가>는 자신의 이야기인 듯합니다. 우울증이 여러 차례 거듭된 바 있던 그는 요가에 대한 기분 좋으면서도 세련된 책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방에 있는 명상원에서 비파사나를 하게 됩니다. 비파사나는 불교나 요가에서 수행하는 직관 명상법이라고 합니다. 부처가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자는 태극권을 비롯하여 요가 훈련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초반에는 명상을 통하여 마음을 다스리면서 산책도 하는 등 일정이 진행되는데, 요가 하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몸으로 행하는 수련은 전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열흘 일정의 명상수련이 이어지면서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작가는 수련을 이어갈 수 없게 됩니다. 이른바 샤를리 에브도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슬람 원리주의의 과격분자 두 명이 풍자 신문 샤를리 에브도 본사 건물에 난입하여 자동화기를 난사하는 바람에 12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당한 사건입니다.


그 사건에서 친구들이 사망하게 되면서 작가는 양극성 장애가 심해지고 결국 생탄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4개월 간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가장 심각한 증상은 심각한 기억력 장애였습니다. 심각한 기억력장애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다. “이게 얼마나 심한지 매일 하루를 시작하는 게 마치 에베레스트산을 등반하는 것 같단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에 접근 가능하며 유용한 기억들을 최대한 긁어모아야 한다. 오늘 해야 할 일들과 전날 한 일에 대한 것뿐 만아니라 자신의 개인사. 심지어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기억들까지 말이다.(275)”


어떻든 4개월 후에 퇴원을 하게 되는데, ‘양호한 일시적 효과, 그러나 신속한 재발이라는 소견이 달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발병 전에 기획했던 이라크의 바그다드로의 취재여정을 포기하게 됩니다. 대신 에게해에 있는 레로스섬에 있는 난민수용소에서 소년들을 지도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프레더리카 모하이와 함께 하는 시간들은 그의 정신건강에 유용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요가에 대한 기분 좋으면서도 세련된 책’, <요가>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정리한 책의 내용을 보면 저자는 나름대로 명상의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무려 열세 개를 적었다고 하는데 저는 몇 개밖에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번호가 붙은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고 있습니다. 제가 찾은 첫 번째는 명상은 우리가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는 시간 동안에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자신의 실제의 모습을, 즉 우리가 <정체성>이라고 부르는 그 마그마를 검토한 것등입니다. 일곱 번째는 집중하기’, 그 외의 정의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니면 스쳐지나갔겠지요. 마지막 열세번 째는 아주 속되고 단순한데, ‘오줌 눌 때 오줌 누고, 똥 쌀 때 똥 싸는 것이라고 합니다.

 

449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는 요가 말고도 작가가 살아온 날, 작가가 읽거나 본 이야기들을 아주 잘 비벼놓았습니다. 작가가 추천한 책들을 한 번 찾아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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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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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푸르스트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를 먹으면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잃어버린 시간들을 되찾게 됩니다. 미각이 오래된 기억을 소환하는 촉매제가 되는 셈입니다. 제 경우에는 폴 모리아 악당의 <Song for Anna>를 들으면 언제나 대학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니 청각이 기억을 소환하는 촉매제임 셈입니다. <새의 선물>은 서른여덟의 중년 여성, 진희는 연인과 점심을 먹다가 쥐와 눈이 마주치자 열두살 적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나옵니다. 그러니까 시각이 기억을 소환하는 촉매제입니다.


쥐와 눈이 마주치면서 혐오감과 증오, 그리고 심지어는 사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극복의 대상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곤 하는오랜 습관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바라보는 나를 분리시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본다.‘보여지는 나에게 내 삶을 이끌어가게 하면서 바라보는 나가 그것을 보도록 만든다. 이렇게 내 내면 속에 있는 또다른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지켜보게 하는 것은 20년도 훨씬 더 된 습관이다.(12)”라고 적었습니다. 두 개의 나를 병립시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 경우는 하나의 내가 내 삶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일찍부터 삶의 이면을 보기 시작한데는 일찍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외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저 역시 어렸을 적에 친가와 외가를 오가면서 생활한 적이 있습니다만, 어린 마음에도 눈치를 보았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 역시 내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눈치가 빨라지고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상대를 곤경에 빠트리기를 서슴치 않는 모습을 보면서 열두살짜리가 그렇게 심한 짓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건, 특히 이승복 소년이 집에 찾아온 공비(共匪)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가 죽음을 맞은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1968년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후반에 등장하는 아폴로 11호가 달착륙에 성공한 것은 1969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도라 도라 도라>가 개봉한 것은 1970년이었고 지방 상영은 그보다 더 늦었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산성이 있고 읍내에서도 조금 떨어진 곳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읍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읍성으로는 고창읍성, 해미읍성 그리고 낙안읍성이 있는데 성안에 주민이 살고 있는 곳은 낙안읍성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고향이 고창인 점을 고려해보면 고창읍성일 수도 있겠습니다.


1969년에 화자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아마도 은희경 작가가 그해 초등학교 5학년이었지 싶습니다. 그렇다면 <새의 선물>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일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해 저는 중학교 3학년이었기 때문에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건 사고, 혹은 영화, 노래, 심지어는 국민교육헌장에 이르기까지 제가 겪었던 일들이 고스라니 떠오르게 되니 이야기 속에 쉽게 빠져 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말미에 잊고 살던 아버지가 찾아와 주인공을 데리고 가는데서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작가는 후기에서 세상이 내게 훨씬 단순하고 그리고 너그러웠다면 나는 소설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 인생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390)”라고 적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을 살아내면서 세상의 복잡한 내막을 소상히 적어낸 것을 보면 아버지와 함께 살기 시작한 이야기도 만만치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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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 지음, 윤진 옮김 / 엘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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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들어간 기억이란 단어에 끌려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기억한다는 사실은 누구에게 말하지 않는다면 은밀할 수밖에 없는 현상인데 굳이 가장 은밀한이라는 수식을 붙였는지 궁금했습니다. 이 책의 원제목이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La plus secrète mémoire des Hommes)>이나 과연 어떤 기억이 가장 은밀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책을 열자마자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야만스러운 탐정들(Los Detectives Salvajes)>의 한 대목이 소개됩니다. 세상에 나온 책이 어떤 과정을 밟게 되는가에 대한 작가적 추론입니다. 작품이 공개되면 한동안 비평이 나오고 비평이 사라진 뒤에는 독자들이 작품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독자들이 사라져도 작품은 혼자 계속 길을 가는데, 다른 비평이 오고 다른 독자들이 나오는 과정이 계속 이어지다가 궁극적으로는 작품이 홀로 무한한 여정을 이어가다가 어느 날 죽는다는 것. 그 대목에서 로베르토 볼라뇨는 세상의 모든 것이 죽듯이, 언젠가 태양이 꺼지듯이, 그리고 지구가, 그리고 태양계가, 그리고 은하계가, 그리고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이 꺼지듯이.”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이 책은 모두 세 개의 책으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 책에서는 화자인 세네갈 출신의 작가지망생 디에간이 T.C. 엘리만이라는 작가가 발표한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라는 소설이 아프리카 흑인의 걸작! 프랑스에서 본 적이 없는 책! 그로 인해 논쟁이, 프랑스인들만이 그 비밀과 맛을 알고 있는 문학적 논쟁이 일어났다라는 평을 받았다는 사실만 남겨졌을 뿐 책도 저자도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작가와 소설을 뒤쫓는 과정이 소개됩니다.


두 번째 책에서는 화자가 바뀌는데 식민통치를 받던 시절의 엘리만 부모 세대의 유년 시절의 이야기, 엘리만이 파리에 도착해서 책을 출간하기까지의 과정, 표절 논란이 제기된 후에 문단에서 사라진 엘리만의 행보 등이 펼쳐집니다. 두 번째 책의 화자는 엘리만의 여동생으로 밝혀진 시가 D.였습니다. 중간에 엘리만의 어머니로 화자가 바뀌기도 합니다. 세 번째 책에서는 다시 디에간이 화자가 됩니다. 첫 번째 책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고향 세네갈로 잠시 귀국한 디에간은 세네갈의 민중정치에 휘말렸다가 빠져나와 엘리만을 찾는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그가 태어난 마을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엘리만이 자신에게 남겨둔 편지를 받게 됩니다.


화자가 바뀌고 당연히 등장인물이 바뀌는 과정에서 세 가지 이야기를 연결하는 고리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서 혼란스러웠습니다. 또한 등장인물들이 프랑스에서 네덜란드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서는 엘리만이 숙부라고 생각했던 우세누 쿠마흐가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마술사였고, 그의 피를 물려받은 엘리만 역시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만듭니다.


결과적으로 저자가 끌어온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이 꺼지듯이사라진 책은 엘리만의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였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아주 복잡하고 짐작에 불과하지만 충격적일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새겨두었으면 하는 대목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책의 2부 여름 일기의 시작부분입니다. “일기. 내가 널 쓰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가 나를 얼마나 궁핍하게 만들었는지 말하기 위해서다. 위대한 작품들은 우리를 궁핍하게 만든다. 영원히 그래야 한다. 위대한 작품들은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가진 것을 앗아간다. 위대한 작품들을 읽고 나면 우리는 늘 벌거벗게 된다. 더 풍요로워지지만, 가진 것을 빼앗겨서 풍요롭다.(51)” 이 대목은 제가 몇 달 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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