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곡 대산세계문학총서 90
윌리엄 워즈워스 지음, 김숭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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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영국의 서북부 호수지역에 있는 원더미어와 글라스미어 지방을 여행하였습니다. 그때 호수를 둘러싼 아름다운 풍광을 생각하면서, 이곳에서 주옥같은 시를 썼던 윌리엄 워즈워스의 생각을 읽고 싶었습니다. 요코가와 세츠코가 쓴 <토토로의 숲을 찾다; http://blog.joins.com/yang412/15152542>와 알랭 드 보통이 쓴 <여행의 기술; http://blog.joins.com/yang412/13104741>을 이미 읽고 호수지역의 풍광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만, 막상 가보니 과연 그렇구나 하는 생각과 실망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호수를 둘러싼 야트막한 야산을 흘러내린 곡선이 너무 부드러워 절로 시가 쓰여질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워즈워스를 비롯하여 내셔널 트러스트 사람들이 지켜내고자 했던 호수지역이 이제는 물밀듯이 밀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더 이상 한적하지만은 않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한 몫을 했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워즈워스의 눈을 통해서 고즈넉했던 호수지역의 분위기를 되새겨보기 위하여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http://blog.joins.com/yang412/15164580>를 읽었지만,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에 <서곡>까지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서곡>에는 윌리엄 워즈워스의 삶의 족적까지도 느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서곡>에는 워즈워스가 유년기로부터 프랑스체류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을 통해서 느낀 점을 모두 14권의 시에 담았습니다. 유년기에서부터 시를 썼던 것은 아니고 28살이 되던 해부터 전기적 시를 쓰기 시작해서 평생을 매달렸다고 합니다. <서곡>은 그 무렵 유행하던 성장소설에 대응한 일종의 성장시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시 영역에서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되는 셈인가요?

마들렌 조각이 떨어진 홍차 한 모금에서 유년시절의 기억을 되살린 프루스트처럼 워즈워스는 청명하고도 평화로운 어느 가을날, 은빛 구름이 떠있던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 풀잎에 반짝이는 햇빛, 그리고 그늘 속에 가려져 또 다른 그늘을 드리우던 숲에 고요함이 감돌 때, 한 골짜기를 떠올렸고, 그 골짜기에 있는 언젠가 본 듯도 한 오두막의 문 앞으로 곧장 가기로 마음먹었다고 노래합니다. 그 오두막은 유년시절 살던 곳이었을 것입니다. 주체할 수 없는 상념에 매달리는 시인의 특성에 따라 마음에 떠오르는 자신의 지난날을 기록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이 하게 될 일이 ‘어떤 영국적 주제도, 밀턴도 노래하지않고 남겨둔 어떤 오래된 낭만적 이야기를 택하게 되겠지’하고 예견하면서 말입니다.

‘골짜기를 휘감아 도는 안개의 은빛 화환, 혹은 공중에 걸린 구름 빛깔로 얼룩진 잔잔한 물의 평원으로부터 순수한 감각의 기쁨을 들이마시며ㅣ 천지창조만큼이나 오래된 미(美)와의 무의식적 교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하니 워즈워스는 타고난 시재는 호수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을 얻어 화룡점정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전적 시라는 한계와 번역되어 재해석된 시라는 제한점으로 인하여 <서곡>에 실린 시들은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에 실린 시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만, 그래도 곳곳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순수하게 표한한 구절들이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곡>이자전적 기록에 머물지 않는 것은 떠올린 기억을 토대로 하여 사유한 결과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순전한 과거의 회상’과 ‘이후의 명상에 의해 변화된 과거’ 사이에서 혼란을 겪기도 한 것 같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어떻든 <서곡>은 세 단계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정신적 성장의 단계, 두 번째는 무기력과 절망이라는 정신적 위기로 성장과정이 산산조각 나는 단계, 세 번째는 마침내 시인이 다시금 고결함을 회복하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발전된 위치에 이르게 되는 단계 등입니다. 이런 과정은 워즈워스가 마음의 멘토로 모셨던 밀턴이 ‘인간에게 이르는 하느님의 길’을 설명한 서사시 <실낙원>에 비교하게 되는 것은 본인 스스로 밀턴의 위대한 전통의 계승자로 자처한 것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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