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문학기행 - 러시아 문학의 뿌리, 시베리아를 가다
이정식 지음 / 서울문화사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대만작가 잔홍즈는 ‘독서는 여행의 시작이다’라고 했습니다. 책에서 읽은 글귀가 그곳으로 떠나는 동기가 되는 경험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아직 그런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만, 여행지와 관련된 책을 읽고 여행지에 대한 추억과 그 책에 대하여 조금 더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기도 합니다.


아시아대륙의 북쪽 끝을 차지하고 있는 시베리아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아마도 영화 <닥터 지바고>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언젠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눈 덮인 시베리아를 가로지르고 싶기도 합니다. <시베리아 문학기행>은 그 여행에서 챙겨가기에 안성 맞춤한 책이 아닐까 합니다.


이정식 작가에게 시베리아는 특별한 곳이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푸시킨, 도스토엡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등 러시아의 대문호들이 작가적 상상력을 풀어낸 그 곳을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베리아가 우리 민족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는 장소였다는 사실도 찾아낸 것입니다.


여러 차례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싣고 춥고 황량한 동토를 여행하면서 러시아 대문호들이 영감을 얻은 사건들을 되짚고 그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따져보기에 이르렀습니다. 더하여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한 춘원 이광수의 소설 <유정>이 탄생한 배경도 뒤쫓고 있습니다.


시베리아가 러시아문학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기게 된 사건의 시점은 1825년 12월 14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원로원광장에서 열린 니콜라이1세의 대관식에서 벌어진 혁명이었습니다. 차르체제를 전복하고 농노제도를 철폐함으로써 새로운 러시아를 건설하자는 취지로 모인 러시아의 귀족과 청년 장교들이 혁명을 일으켰지만 당인 진압되어 불발된 혁명입니다. 이들을 ‘12월 당원’으로 표현되는 데카브리스트라고 하는데, 12월의 러시아어 데카브리에서 온 것으로 ‘12월에 혁명을 한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데카브리스트들은 사형을 당하거나 시베리아로 유배되어 강제노역을 하게 되었던 것인데, 데카브리스트의 부인들 가운데 일부가 어렵게 나라의 허락을 얻어 유형지로 달려가 귀족으로서의 특권까지 버려가며 남편을 돌보았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러시아의 대문호들은 데카브리스트들을 둘러싼 사연에서 영감을 얻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써냈던 것입니다.


이런 사연이 깃든 시베리아에 관심을 둔 사람들을 위하여 작가는 먼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호수까지 가는 여정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고종황제의 특명을 받은 전권공사 민영환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탄 최초의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이어서 시베리아의 전설이 된 데카브리스트 11명의 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들이 살던 집을 직접 방문하여 대문호들에게 영감을 준 시베리아 유배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전합니다. 그리고 푸시킨,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그리고 체호프 등 러시아의 대문호들의 작품에 얽힌 사연들을 정리해냈습니다.


푸시킨의 경우 데카브리스트인 친구가 많았던가 봅니다. 그들의 불행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의 시를 지어 위로했다고 합니다. 외가쪽에 데카브리스트가 있던 톨스토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고, 데카브리스트들이 유배형을 마치고 귀환할 무렵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이들의 삶을 추적하여 작품에 녹여냈던 것입니다. 그 대표작이 <전쟁과 평화>입니다.

의사이자 작가였던 체호프는 악에 대한 무저항, 비폭력성을 추구한 톨스토이주의자였습니다. 그런 그 였지만,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데카브리스트의 유형지였던 사할린을 여행하고 돌아와서는 무저항주의에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부분은 춘원 이광수의 시베리아행의 족적을 뒤쫓아 소설 <유정>이 탄생한 배경을 설명합니다. 춘원의 시베리아행은 독립운동과 연관이 있습니다만, 미국행이 좌절되면서 국내로 돌아와서는 동지들과 함께 투옥된 다음에 노선을 달리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문학에 눈을 뜨는 기회가 되었고, 기회가 되면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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