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화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6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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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이후의 나이지리아의 국내 상황을 빗댄 <사바나의 개미언덕>을 통해서 처음 만난 치누아 아체베의 초기작품 <신의 화살>은 영국의 식민지배가 시작될 무렵을 다룬 작품입니다. 지도자의 철학에 따라 부족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우리네 역사의 어느 시점과 비교되는 바가 있습니다.


배경은 영국의 식민지배가 시작될 무렵의 나이지리아의 우무아로입니다. 여섯 마을로 구성된 우무아로 사람들은 옥페리의 배려로 오래 전에 이주해와 정착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울루를 공통의 신으로 모시기로 합의를 하였고, 에제울루라는 대사제를 두어 신의 뜻을 주민들에게 전하도록 해왔습니다. 물론 부족마다의 사제도 있습니다. 옥페리는 일찍이 백인들과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나 우무아로는 전통종교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옥페리와 우무아로 경계에 있는 땅의 소유를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지면서 우무아로 내에서는 전쟁불사파와 평화유지파 간의 갈등이 일기 시작하고, 대사제 에제울루의 조정권고를 무시하고 전투를 벌이기로 결정을 합니다. 선전포고를 하러 갔던 사자가 살해되고 의사조정을 위한 전투가 아니라 사생결단을 내기위한 전쟁이 벌어지지만, 주둔하고 있던 영국 행정관의 개입으로 전투가 중단되었을 뿐 아니라 토지 소유권이 옥페리로 넘어가면서 우무아로 마을 간의 갈등이 고조됩니다.


작품의 감상포인트는 영국이라는 절대적 힘을 가진 세력에 대응하는 방법을 비교해보는 것이겠습니다. 에제울루는 자식들을 보내 영국의 문화, 즉 교육과 종교 등의 속사정을 파악하려고 하지만, 정작 그 자식들은 보고 들은 것을 아버지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독단적인 행동을 벌이므로 해서 아버지를 곤경에 빠트리게 됩니다. 이는 에제울루가 자신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즉 임무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지시하지 않은데서 빚어진 비극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실은 토지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옥페리와 일전을 벌이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식민당국과 우무아로 사이의 힘겨루기로 이해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제울루의 집안 사정이라던가 우무아로의 여섯 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20세기 초반 나이지리아의 전통 사회의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가장을 중심으로 여러 아내와 그 소생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이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엿볼 수 있고, 부족내의 의사결정 과정 등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영국 식민당국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토착민들의 정신에 깃든 진정한 힘을 모두 없애고 새롭게 시작하고자 노력하는 대신 그것들을 활용할 것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정서, 아프리카의 정신, 아프리카 종족의 전체 기반을 파괴해서는 안된다.(106쪽)” 하지만 공공문서 상에 나타나는 공식적인 입장과는 달리,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그리고 행정관들이 토착민을 대하는 자세 등을 보면 우회적으로 전통을 파괴할 기회를 엿본다거나 토착민들을 탄압하고 착취하는 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에제울루는 대사제였지만 자신에게 부과된 임무를 다하려는 생각보다는 피동적으로 대응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신의 화살’은 대사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뱀을 모시는 우무아로에 들어온 기독교에서는 뱀은 인간의 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에 대하여 에제울루의 입장이 분명치 않은 듯합니다. “성스러운 비단뱀을 믿는 질투심 많은 종교의식을 상대로 맞서 싸우는 방법을 인간에 불과한 에제울루가 어떻게 감히 자신의 신에게 알려준단 말인가? 이건 신들의 싸움이었다. 에제울루는 신의 활시위에 걸려 있는 화살에 불과했다.(336쪽)”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작가는 <신의 화살>에 이보족의 전통문화, 결혼, 상례, 농사, 천문 등을 비롯한 세시풍습을 그려 이를 통하여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이는 밀려드는 서구문화에 대응하는 비서구문명의 슬픈 운명처럼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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