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케스의 서재에서 - 우리가 독서에 대하여 생각했지만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
탕누어 지음, 김태성.김영화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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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에 관한 책을 적지 않게 읽어보았습니다만, 대만의 문화평론가 탕누어가 쓴 <마르케스의 서재에서>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업이 전문독자라고 할 만큼 책읽기에 몰입하고 있다는데, 책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사유하며, 그 사유를 바탕으로 꼭 써야 하는 글을 쓰는 것이 일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책읽기를 권장하면서 그 과정에서 곧잘 부딪히는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책을 쓰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독서를 관통하고 있는 거대하고 본질적인 곤경을 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전혀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를 모색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바로 <백년의 고독>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미로 속의 장군>을 중심으로 책읽는 과정에서 부딪히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논하는 글쓰기를 완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미로 속의 장군>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말대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중심으로 써보지 그랬나 싶었습니다. 흔히 ‘서(書)’와 ‘책(冊)’은 같은 물건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서책(書冊)이라고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지만, ‘서(書)’와 ‘책(冊)’은 분명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서(書)’는 원래 글을 쓰는 것이라는 의미의 동사로 ‘사유와 글쓰기, 편집, 인쇄, 제본’을 거쳐 완성되는 일련의 제작과정을 말하고, 이렇게 해서 생산된 물건이 ‘책(冊)’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책읽기의 동력은 바로 ‘의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의문의 안내에 따라서 책읽기에 독특한 경로가 생겨나는데, 그 펼쳐지는 모습이 나뭇가지 형태-저자는 생물의 진화를 묘사하는 계통수와 흡사하다고 보았습니다-를 이룬다고 합니다.


독서의 지속 문제, 독서의 전체적인 이미지, 독서의 곤혹, 독서의 시작과 그 대가, 독서의 시간, 독서의 기억, 독서의 방법과 자세, 독서의 전문성 등에 관하여 이야기한 다음에, 유년의 독서와 마흔 이후의 독서에서의 차이, 그리고 독서의 한계와 꿈을 이야기한 저자가 지향하는 소설읽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자로서의 생각을 덧붙였습니다. 책읽기과정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담아내기 위하여 보르헤스, 벤야민, 칼비노 등 저자가 특히 좋아하는 작가들 이외에도 수많은 작가들의 생각들을 인용하다보니 488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에 이르고 있습니다만, 그 방대함 속에서 버릴게 하나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사유를 따라가는 것에 더하여, 주옥같은 글귀와 미처 몰랐던 좋은 책을 만나게 되는 이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생각은 불꽃과 같아서 항상 존재하며 완전히 소멸하기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유지하려면 한 권 한 권 책을 땔감으로 태워야 한다.(52쪽)”라는 저자의 생각도 있었고, “한 사람이 나중에 어떤 인물로 자라게 되는지는 그 아버지의 서가에 어떤 책들이 꽂혀 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128쪽)”라는 그레엄 그린의 말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나름대로의 사유에 대한 자신감의 표출이라고 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꽤나 단호한 표현을 서슴지 않는 듯합니다. 조치훈 기사에 대하여 ‘인격적으로 한계가 있지만 바둑 실력은 대단히 탁월했다’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오청원 기사나 임해봉 기사를 꺾은 조치훈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긴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부바르와 페퀴셰>를 집필하기 위하여 읽은 책이 무려 1500권이 넘는다면서 무서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고 한 대목에서는 그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플로베르는 1873년에 194권을 1874년에는 294권을 읽었다고 했는데, 사실 책읽기에 열중하던 시기에 그 정도의 책읽기를 해낼 수 있더라는 체험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책읽기를 사냥에 비유한 ‘수렵에서 농경까지’를 통하여 저자의 책읽기가 진화한 과정을 적은 부록에 이르기까지 정말 좋은 책읽기였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조만간 만들어보려는 사내 독서회에서 첫 번째로 읽어볼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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