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천천히 그곳을 걷는다 - 카뮈의 집에서 뒤라스의 바다까지 여행자를 부르는 작가의 흔적을 찾아
길혜연 지음 / 문예중앙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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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의 해외여행은 업무로 다녀야 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여행사 상품으로 다니고 있으니 여유 혹은 의지가 작용하기란 참 어려운 여건인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발길이 닿는 대로 혹은 보고 싶은 곳을 찾아가는 여행이 부러운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런 여행에서도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나름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합니다. <마음은 천천히 그곳을 걷는다>는 여유로운 가운데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여행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프랑스 시인 자크 르레베르의 흔적이 남아 있는 파리에서 <연인>으로 기억되는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살았던 트루빌에 이르기까지 10명의 프랑스 시인, 작가들의 삶이 어려 있는 장소를 찾아 그들의 작품에 녹아있는 무엇을 <마음은 천천히 그곳을 걷는다>에 담았습니다. 어쩌면 작가가 프랑스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작가의 생애에 대한 정보나 작품들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었을테니 말입니다.


저자의 방문을 받은 작가는 자크 프레베르, 앙투안 생텍쥐페리, 알베르 카뮈, 에밀 졸라, J.M.G. 르 클레지오, 장 콕토, 프랑시스 잠, 쥘 베른, 에드몽 로스탕, 그리고 마르그리트 뒤라스 등입니다. 프랑스문학에 대한 앎이 많지 않은 저에게는 생소한 분도 있고, 당연히 처음 들어보는 장소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니 읽어보고 싶은 작품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문갑식의 <여행자의 인문학>의 경우에는 문학과 미술을 함께 다루었고, 프랑스와 영국으로 범위를 넓힌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기획입니다. 여행과 인문을 엮는 다양한 시도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제가 주로 하고 있는 단체여행과 인문을 엮는 시도 역시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길혜연작가는 <마음은 천천히 그곳을 걷는다>에 그곳의 분위기에 잘 맞는 시를 소개하고 있어 책을 읽으면서 시를 음미하는 즐거움을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나름대로는 꼼꼼하게 기획된 글이라는 느낌이 듭니다만, 저자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시작하지는 않았다”라고 프롤로그에 적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 역시 처음에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여행을 시작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 돌아보니 문학을 아카데미즘의 울타리 밖으로 끌어내고 싶다는 소심한 불손함이 있었고, 그 불손함에는 좀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되바라진 꿈이 배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라고 설명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로 여행을 빌미로 하여 제가 가본 곳과 연관이 있는 책을 소개하고, 제 글을 읽는 분들이 한번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좋지 않을까하는, 혹은 그곳에 가시는 분들이 여행가방에 넣어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작가적 상상력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장면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장 콕도의 도시 망통을 찾았을 때 발견한 종려나무를 보면서 작가는 롤랑 바르트를 기억해냈습니다. “나무들은 알파벳이라고 그리스인들은 말했다. / 모든 문자-나무 중에 종려나무가 가장 아름답다. / 솟구쳐 오르는 종려잎 같이 흘러넘치는, 명료한 글쓰기에 대해 종려나무는 ‘늘어짐’이라는 주요한 효력을 지닌다.(-롤랑 바르트,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글쓰기를 향하여」중에서)” 그리하여 “내 글쓰기의 종려잎이 드리우는 ‘늘어짐’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늘어짐’은 중력의 법칙에 의한 것이니 내 생관할 바가 아닐 것이다. 내가 중력의 법칙에 개입할 수 없는 것처럼 나의 손을 떠난 글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게 될 테니.(190쪽)”라고 적었습니다. 작가와 그의 글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였습니다.


프랑시스 잠이 치유를 꾀한 피레네산맥에서는 ‘프랑시스 잠의 노새처럼’이라는 싯귀를 적은 김종삼시인을 떠올린 작가는 자신의 젊은 날에 대한 소회를 들려주는데, 작가의 대학시절의 사회분위기와 함께 새겨둘만해서 옮깁니다. “저는 아이들의 조롱을 받으며 머리를 숙인, 무거운 짐을 진 나귀처럼 길을 갑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때에, 당신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렵니다. 삼종의 종소리가 울립니다. - 프랑시스 잠의『새벽 삼종에서 저녁 삼종까지』서문 중에서(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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