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에이지즘에 반대한다 - 새파랗게 젊은 것과 고집불통 노인네가 모두 당하는 차별
애슈턴 애플화이트 지음, 이은진 옮김 / 시공사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40대 초반에 직장을 옮기기 위하여 면접을 여러 차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나이가 어려서...’라는 이유로 미역국을 먹었습니다.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최근에도 면접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나이가....’라는 이유가 붙는 느낌입니다. 이번에는 많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맡을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 아니라 나이에 방점이 찍히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제 나이에 <나는 에이지즘에 반대한다>에 공감한다면 속셈이 무엇이냐는 싸늘한 시선이 되돌아올 것 같기도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개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것은 읽는 사람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1969년에 로버트 닐 버틀러가 처음 사용한 에이지즘(연령차별)은 성차별이나 인종차별과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사람의 나이에 근거한 차별 및 고정관념으로 정의합니다. 버틀러는 나이든 사람이나 나이 드는 과정에 대한 편견, 차별적 태도, 제도적 실체와 정책 등으로 정형화 혹은 영속화하는 것 등 연결되는 세 가지 요소를 조합하여 연령차별을 정의하였습니다.(Wikipedia. Ageism 참조) 나이가 드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연령차별은 불가피한 일이 아닙니다.


<나는 에이지즘에 반대한다>의 저자 애슈턴 애플화이트는 미국자연사박물관에서 일하면서 세상 모든 에 관심가지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 저자가 연령차별을 해소하는 일에 쌍지팡이를 짚고 나선 것입니다. 일단 “나는 한 번도 나이를 속인 적이 없다. 큰소리로 또박또박 ‘예순셋이에요’하고 말하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다.(7쪽)”라는 들어가는 말부터 마음에 쏙 듭니다. 그리고 보니 저와 동갑이군요. 일찍 머리가 세기 시작한 저는 염색을 하면 훨씬 젊어 보일 것이라는 말을 들어왔지만 염색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연령차별에 눈을 뜨고, 나이 듦에 대하여 좀 더 미묘하고도 정확한 시각을 수용하도록 촉구하고, 격려하고, 행동에 나서도록 독려하기 위하여 이 책을 썼습니다.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처럼 연령차별 역시 ‘권력을 손에 쥔 집단이 자기들보다 훨씬 어리거나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들을 억압하거나 착취하거나 침묵시키거나 단순히 무시하기 위해 손에 쥐고 있는 권력을 사용할 때 발생한다.(20쪽)’라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알량한 힘을 자랑하기 위하여 선량한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양성평등이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동성애자들도 자신의 정체성에 자긍심을 가지며 장애인 역시 장애사실을 감추지 않는 세상입니다. 나이는 장애가 아닙니다.


저자는 연령차별의 문제점을 짚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나이 듦의 실체, 나이 듦에 따른 정신과 육체의 건강, 그리고 성의 문제를 각각 나누어 다루고, 나이 들어 일을 하는 것, 문제해결을 위한 협력, 죽음에 즈음한 시기의 문제 등을 다루고 마지막으로 연령차별을 넘어서야 하는 까닭을 설명합니다. 나이 듦과 관련된 문제를 다룬 2장부터 8장까지는 주제에 대한 문제를 제시한 다음,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제목으로 문제의 해결방안을 제시합니다.


연령차별의 문제점을 정리한 제1장 ‘연령차별이 왜 문제인가’에서 저자는 중세까지만 해도 어느 사회에서든지 소수의 나이든 사람들은 그 사회의 선생이자 문화의 보존자로서 대단한 존경을 받았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이 시절 나이든 사람들은 사회에 필요한 소중한 기술과 정보를 간직한 자로 사회적 지위를 유지했던 것입니다. 로마제국의 원로원이나 신생 미국의 장로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19세기를 지나면서 사회가 개방되고 인쇄, 통신매체를 통하여 정보가 급속하게 늘었을 뿐 아니라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나이든 사람들의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20세기 중반 일었던 청년문화를 통하여 ‘젊음에 대한 숭배’가 자리 잡게 되면서 나이든 사람을 기피하고 심지어 혐오하는 사회적 현상이 대두되었습니다. 늙어감을 거부하는 현상은 노인산업이 급성장하는 부대효과도 창출해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늙어버린 자신을 확인하게 되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심하면 혐오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젊어지는 느낌’에 취해 있다 보면 우리 내면과 주변에서 활개 치는 연령차별을 알아채지 못하고 이에 맞서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되는데, 심지어는 수명을 단축시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나이듦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평균 7.5년이나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저자는 나이듦에 대한 몇 가지 어처구니없는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낱낱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1. 노인들이 사회를 뒤덮을 것이다. 최근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현상에서 기인한 것으로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베이비붐세대가 고령화되면서 일고 있는 현상에 불과하며, 앞으로 젊은 인구가 급증할 수도 있습니다. 2. 병들고 노쇠한 노인들을 돌보느라 나머지 인구가 옴짝달싹 못 할 것이다. 노인인구가 사용하는 의료비의 급증에서 나온 믿음으로 의료비 급증의 원인은 기술변화였다고 합니다. 3. 젊은이들을 희생시킨 대가로 노인들이 이득을 본다. 이는 세대간 갈등을 부추겨 이득을 챙기려는 정치적 속셈에서 나온 주장이라고 합니다. 일자리 경쟁에 관하여도 같은 일자리를 두고 세대를 초월하여 경쟁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4. 사회보장 기금과 메디케어 기금이 바닥났다. 미국의료서비스가 엉망인 이유는 장수 때문이 아니라 의료체계에 있다는 설명입니다. 즉 급성기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된 메디케어를 장애와 만성질환 환자를 관리하는 체계로 개편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5. 우리에게는 장수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 하지만 정부지출과 복지예산에서 노인을 위한 예산의 비중은 너무 작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 또한 정책실패를 노인들에게 전가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이가 우리 자신이다.’라는 제목의 제2장은 나이듦에 대한 인식을 주제로 합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정년을 연장하기로 하였습니다. 일각에서는 정년을 연장할 일이 아니라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사실 나이보다 젊어 보이거나 늙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이듦은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특정한 연령을 기준으로 하여 젊다, 늙었다라고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버려야 할 것입니다. 하던 일을 놓고 물러난 노인들이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존재라고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이 오히려 빠르게 몰락하는 길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저자는 ‘아흔 살의 나를 생각한다’라고 했습니다. 노년을 생각하면 반사적으로 따라오는 두려움을 없애주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무수히 많은 방법을 터득하여 노년을 잘 준비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3장 ‘나이든 뇌가 뭐 어때서’는 나이듦에 따라오는 인지기능의 감퇴에 관한 내용입니다. 나이듦을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지기능장애, 즉 치매 때문일 것입니다. 치료법 또한 아직 완전하지 않고 이러저러한 예방법 역시 분명한 것은 없습니다. 나이들면서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을 치매의 전조라고 생각하면서 두려워하기도 합니다만, 기억력이 떨어지면 메모하는 습관으로 보완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치매를 병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입니다. 치매는 병이 아니라 다양한 원인으로 나타나는 증상일 뿐입니다. 치매의 가장 흔한 원인인 알츠하이머병은 나이보다 빠르게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것이지만, 결국 나이듦에 따른 변화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다행히 인지기능이 저하되는 속도를 느리게 해주는 약물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요양시설 등 사회적 지원체계가 강화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그리 두려워할 일도 아닙니다.


제4장 ‘젊음이 아니라 건강이 중요하다’는 나이듦에 따른 신체건강의 변화를 주제로 합니다. 저자는 나이듦에서 중요한 것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젊음 유지’보다 ‘건강 유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우리사회에 불고 있는 동안열풍은 나이듦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산업체의 속셈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이상현상에 불과합니다. 장수하는 집안도 있습니다만, 저자는 유전자가 장수에 기여하는 바는 크지 않다고 말합니다. 소식(小食)을 하면 장수할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122년을 살아 공식기록으로 가장 오래 산 프랑스의 잔 칼망할머니는 단 것을 좋아했고, 싸구려 적포도주와 기름진 음식을 즐겼으며 77살까지 담배를 피웠다고 하니 장수는 마음먹기에 달린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2010년 뉴욕타임스에 실린 ‘백세인들의 비결’이라는 기사를 보면 그 비결이란 운동, 절제, 가족 간의 유대, 사회적 유대 등, 생활양식이었습니다.


백세인들은 자신이 건강하고 행복한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계속 일을 해왔으니, 복 받은 거죠. 일을 시작하세요. 명랑하게 사세요. 그리고 재미를 느낄 만한 걸 찾으세요. 태도가 전부예요.(175-176쪽)”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알려진 ‘연령차별에 찌든 고정관념을 거부하라!’라는 생각을 가지기를 저자는 바라고 있습니다.


제5장 ‘섹스는 끝나지 않는다’는 나이가 들면 성욕도 사라질 것이라는 편견을 다룹니다. 사람들은 결코 섹스를 그만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몸과 함께 변화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섹스에 발기나 오르가슴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면 성교의 우선순위를 다시 매겨야 한다는 것인데, 나이가 들수록 성적자극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삽입이 이루어지지 않는 모든 종류의 성관계를 포괄하는 간접성교는 성관계를 더 오래 지속하게 해주고 상대와 대화를 나눌 여지도 많아집니다.


제6장 ‘더 유능한 일꾼이다’에서는 나이가 들어 일을 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나이 든 미국인들은 일을 해도 욕을 먹고 안해도 욕을 먹는다(231쪽)”라고 합니다. 일을 하면 젊은 사람들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비판받고, 일을 하지 않으면 젊은 사람들에게 부담을 준다고 욕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이든 근로자들은 앞서도 말한 것처럼 젊은 근로자의 일자리와 경쟁관계에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근로소득을 사용하게 됨에 따라 젊은 근로자들의 고용이 증대되는 효과를 창출한다는 설명입니다. 과거 열심히 일한 근로자들이 여생을 편하게 보낸다는 의미의 은퇴는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될 것입니다.


제7장 ‘꼭 혼자서 헤쳐 나갈 필요는 없다’는 나이가 들수록 고립이 위험하다는 점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사회 연결망이 나이든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요소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서로 돕는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다만 협소한 관계보다는 다양한 연령의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권유합니다. 세대 간의 갈등을 풀어내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도움을 주는 사람도 소소한 기쁨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도움을 청하게 되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제8장 ‘생의 마지막 문턱에서’는 삶을 마무리하는 단계를 이야기합니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입장이 바뀌면 황소가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을 인용하여 나이를 먹을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원하는 바를 미리 정리해두기를 권합니다. 제9장 ‘연령차별을 넘어서라’에서는 앞에서 설명한 것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나이듦에 대한 편견을 불식하고 차별을 철폐하라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어렵고 힘든 일을 맡길 수 없다는 생각도 편견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가진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그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쓸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가 큰 손해를 보는 일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