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이란 무엇인가 살림지식총서 338
이향 지음 / 살림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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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에 대한 대중의 욕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 번역에 대한 관심도 같이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송준호교수님의 <좋은 문장 나쁜 문장; http://blog.joins.com/yang412/3391769>에서 좋은 번역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하는 점이 있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돌아보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책이 4종류이고, 13종의 전문서적의 집필에 참여해왔으니 적지 않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문서적의 경우에는 번역서도 있을뿐더러 외국자료를 참고해야 하기 때문에 초벌 번역이 필수적이기도 합니다. 번역은 마쳤지만, 빛을 보지 못한 책도 몇 권 책상 어딘가에 처박혀 있기도 합니다. 처음 번역을 할 때는 원저자의 의도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회가 많아지면서 아무래도 가독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외국 서적을 번역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새겨 보겠다는 생각을 너무 늦게 한 셈입니다만, 이향교수님의 <번역이란 무엇인가>를 읽게 된 것은 참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1. 번역이란 무엇인가, 2.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 3. 번역능력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4. 직업으로서의 번역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부터 번역이 필요했을 터이니 번역가라는 직업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쉽게 정의가 가능할 것 같은 ‘번역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저자는 ‘번역은 일의적(一義的)으로 정의가 불가능하다’라고 답합니다. 결국 번역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속한 사회 및 문화에서 결정하는 범주 안에서 번역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번역 개념은 아포리아(aporia)이다’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아포리아란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게 하기 위해 대화의 상대를 궁지에 빠뜨린 소크라테스에서 유래한 그리스어로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의미한다고 합니다.(17쪽)

 

저자는 결국 번역의 정의를 명쾌하게 하지 못한 채 번역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방식으로 번역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번역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정리하지 못하는 가운데 ‘좋은 번역이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나 싶었습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충실성과 가독성이라는 번역문의 충돌하는 두 가지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번역문을 논할 때 ‘아름다우나 부정한 여인’이라는 비유가 빠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17세기 프랑스에서는 원문에 충실하지 않더라도 이국의 작품을 최대한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페로 다블랑쿠르라는 번역가가 유려하고 가독성이 높은 번역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는데, 당시 대학자 메나쥐가 1654년경 “그의 번역은 내가 투르에서 깊이 사랑한 여자를 연상시킨다. 아름답지만 부정한 여인이었다.”라고 비판한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앞서 잠깐 말씀드린 대로 원저자와 독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번역가에게는 ‘1. 독자를 저자에게 데려간다, 2. 저자를 독자에게 데려간다,’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선택은 가독성은 떨어지더라도 독자로 하여금 원문에 다가서는 수고를 하게끔 하는 번역, 즉 원문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최대한 살리는 번역입니다. 두 번째 선택은 원문에 대해 충실하지 않더라도 최대한 가독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하는 번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원문의 성격에 따라서 번역자의 선택이 결정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좋은 번역이란 “다양한 변수를 적절히 충족시키며, 주어진 상황에서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 내는 번역이다. 따라서 가독성과 충실성 개념을 상화 배타적인 것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무엇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관건.(44쪽)”라는 결론에 이르고 있습니다. 호주의 번역학자 핌(Pym)은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좋은) 번역사는 첫째, 하나의 원문을 번역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을 생산해낼 수 있어야 하며, 둘째, 그중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번역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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