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우연한 시선 - 시인 최영미의 서양미술 감상
최영미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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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전반에 걸쳐 앎이 부족한 편이라서 기회가 될 때마다 공부를 하고는 있지만,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특히 미술은 책을 읽거나 미술관에 갈 기회가 있는데도, 여전히 답답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화가의 우연한 시선>은 그런 이유로 골라들었던 것 같습니다. <화가의 우연한 시선>은 최영미 시인의 미술에 관한 에세이집입니다. 학부에서 서양사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하셨으니 ‘미술을 강의한다’는 것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저자의 말씀대로 이집트의 초상 조각으로부터 현대 미국회화에 이르기까지 서양미술사에 큰 흐름을 따라가고는 있지만, 교과서적인 접근이 아니라 시인이 이들 작품을 보았을 때 받았던 감동을 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합니다. 출판사에서 내놓은 도서정보에서는 시인의 산문집 <시대의 우울>은 ‘아무도 날 쳐다보지 않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여자가 담배를 피운다고 수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없었던 것이다’라고 시작했다고 합니다. 제가 젊었을 때만해도 여성들이 공공의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곱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만, 시인이 젊었을 때만해도 이미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은 평범한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여성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에 대하여 타인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면 지나친 피해의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거나 이 책에 담긴 그림과 조각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시인이 월간 <노블레스>에 연재했던 것들을 묶었습니다.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베르메르, 들라크로아, 모네, 드가, 세잔, 르네 마그리트, 그리고 에드워드 호퍼 등 익숙한 화가들의 익숙한 작품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고, 과문한 탓에 아직은 모르는 화가들의 작품들도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시인의 설명이 운율을 따라 흐르는 듯 시적이라는 느낌은 어쩌면 저만의 선입견 때문일까 싶어서 소개합니다. 기원전 200년 전후에 만들어진 사모트라케 섬의 니케, 즉 <승리의 여신상>에 대한 설명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가슴과 다리를 막아서는 강력한 바람에 의해 그녀의 몸은 아직 공중에 떠 있지요. 바람은 앞으로 전진하려는 그녀를 방해하며 동시에 그녀의 옷에 수백 개의 풍부한 주름을 새겨 놓음으로써 그녀를 드러내는 힘입니다.(28쪽)’

하지만 그럴까 싶은 대목이 없지 않습니다. 같은 작품에 대하여 이어지는 설명입니다. ‘세계를 향해 날개를 펼친 상상력의 원천은 세계시민으로서의 넘치는 자신감이었지요. 도시국가의 작은 울타리를 벗어나 인더스강에서 나일강까지 세계가 더 넓어졌지요.(29쪽)’ 아마도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정벌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이전까지 그리스의 관심사는 소아시아까지였고,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정벌은 그의 죽음으로 결실을 맺지 못하였으니 그리스 예술의 시야가 넓어지는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분명치 않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시인은 서양미술사를 통하여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풍경화라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에게 치인 탓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서 풍경화에 관한 이야기만을 담은 것은 아닙니다. 인물, 정물, 조각 작품 등까지 다양한 그림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내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선호하는 영역 이외에도 다양한 영역을 다룸으로 해서 책 읽는 이들의 다양성까지도 챙긴 셈입니다.

이 책에 담은 이야기들은 어쩌면 시인이 직접 보고서 느낀 점을 적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도 필자처럼 스치듯 지나면서 카메라에 담아오는 방법이 아니라 무언가 분명한 느낌이 끓어오를 때까지 오랫동안 그림을 지켜본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노르망디 지방의 르아브로로 가는 길에 옹플뢰르의 부댕 미술관에서 <흰 구름, 파란 하늘>을 보기 전만 해도 저는 부댕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지요.(130쪽)’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한 점을 보더라도 제대로 보는 방식으로 그림구경(?)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책의 제목처럼 화가의 우연한 시선에 공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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