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시를 만나다 - 옛 그림 속에 살아 있는 시인들의 언어
임희숙 지음 / 이담북스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입니다만, 그림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음악은 잘 몰라도 마음이 움직이는 것 같은데, 그림은 아직까지 그런 경험이 없었던 것 같아서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도 꾸준하게 그림에 대한 공부를 하고는 있습니다. <그림, 시를 만나다>를 읽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그림도 어려운데 그 어렵다는 시가 그림을 만났다고 하니 더욱 궁금해집니다.

이 책은 시인이면서 한국미술사를 공부한 임희숙 시인이 쓴 책입니다. 한국미술사를 공부하면서 현대 시인의 시와 옛 그림이 묘하게도 어울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술가의 사유는 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더라는 데서 이 책이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저자는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작품 20점을 골랐는데, 흥미로운 점은 안견의 ‘몽유도원도’로부터 장승업의 ‘고사세동도’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배치하였습니다. 미술사를 보면 어떤 사조라 하여 그 시대의 미술을 대표하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하는 모양입니다만, 저자가 고른 20점의 작품들이 조선왕조의 시대별로 주제가 비슷한 점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무릉도원의 서정’, ‘왕족 그리고 노비의 관’, ‘두 개의 영혼’, ‘움직이는 진경’, ‘더 가깝게 세상 속으로’ 등의 주제어를 만들고 각각 4점의 작품들을 배치하였습니다.

각각의 작품을 맨 앞에 두고, 작품이 제작된 배경, 화가를 중심으로 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물론, 작품과 관련이 있는 한시(漢詩)도 소개하는 한편, 해당 작품과 잘 어울리는 현대시를 인용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면, 벼랑 끝에 앉아 줄이 없는 거문고를 뜯고 있는 선비를 그린 이경윤의 ‘월하탄금도’에서는 오탁번시인의 ‘그 옛날의 사랑’을 인용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사랑했던 것들을 되돌아보는 내용의 시인데, ‘우리들이 소곤댔던 정다운 이야기는 / 추석송편이 솔잎 내음 속에 익는 해거름 / 장지문에 창호지를 새로 바르면서 / 따다가 붙인 코스모스 꽃잎처럼 / 그때의 빛깔과 향기로 남아 있는가’라는 대목을 인용하였습니다.

‘그 옛날의 사랑’에서 노래한 옛날 시골의 서정은 필자의 추억 속에서도 잠자고 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화가와 관련된 이야기 가운데 인용한 자료가 정확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은 대목이 있어 적어보려 합니다. 이경운이 가지고 있던 거문고를 허목에게 주었다는 이야기를 이익의 성호사설에서 인용하였습니다. 허목의 거문고는 신라 경순왕이 사용하던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진나라 사람이 신라에 전한 칠현금을 왕산악이 개조하여 거문고를 만들었다고 하면서, 이경운의 신라금이 그것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칠현금은 고구려로 전해서 왕산악이 개조하여 거문고를 만들었던 것이고, 굳이 신라금이라고 한다면 우륵이 만든 가야금이 맞을 것 같습니다. 뭔지 몰라도 착오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하면 이정의 ‘풍죽도’를 감상하면서는 오태환시인의 ‘칼에 대하여2’를 인용했습니다. 아마도 거센 바람에도 버티고 있는 댓잎에서 칼을 연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인이 칼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시인이 시를 짓는 작업을 칼을 휘두르는 것으로 비유하였습니다. “시인은 마지막 무사처럼 세상을 칼질한다.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의 목을 치고 드디어는 아름다운 것들로부터 목이 베이진다. 쉿! 그래서 시인의 칼끝은 언제나 시인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이다(102쪽)” 글이 마치 시처럼 읽힙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서화를 설명하는 다양한 글들을 읽어보았지만, 저자처럼 시인의 관점에서 그림을 읽어낸 책은 처음인 듯합니다. 저자가 공산무인도를 처음 보았을 때, ‘텅 빈 숲을 향해 순식간에 발끝이 움직이더니 나로 모르게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170쪽)’라는 대목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