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점점 환해졌다. 무뚝뚝하고 근엄한 표정을 한 레모니 선장은 호박 묵주를 꺼내 알을 세어 가며 기도를 드렸다. 나는 그쪽을 보지도 듣지도 않으려고 애쓰면서 사라져 가는 친구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떠올리려고 했다. 그 친구가 나를 책벌레라고 불렀을 때 불쑥 치밀던 분노의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그 순간 내가 살아온 인생이 그 한마디 말로 집약된 것에 몹시 화를 내지 않았던가? 인생을 그토록 사랑하던 내가 어찌하여 책 나부랭이와 잉크로 더럽혀진 종이에 그렇게 오랫동안 처박혀 있었단 말인가!

그 이별의 날에 나를 들여다볼 기회를 친구가 준 셈이었다. 속이 시원했다. 병명을 알았으니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애매한 것도, 비물질적인 대상도 아니고 이름과 형태를 알았으니 싸움이 훨씬 쉬워진 셈이었다. 그의 표정이 내 안에 조용한 혁명을 일으켰다. 나는 내 원고 나부랭이를 내팽개치고 행동하는 삶으로 뛰어들 이유를 찾았다. 나는 이 새로운 인생에 책 부스러기 따위는 끼워 넣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거기 앉아 묻기만 하네그려. 지랄병이 도졌다니까 그러네. 젊은 양반,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이야기 아시지요?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이를 보고 철자법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당신도 안 하잖소?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이, 인간의 이성이란 게 그런 거지 뭐."

. 산투르를 연주하게 될 줄 알면서부터 나는 전혀 딴사람이 되었어요. 기분이 안 좋거나 돈이 한 푼도 없을 때에는 산투르를 켭니다. 그러면 기운이 생기지요. 내가 산투르를 켤 때 당신이 말을 거는 건 상관없습니다만 나는 들리지 않아요. 들린다 해도 대답은 못해요. 말을 듣거나 대답을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거요."
"그건 왜요?"
"그걸 모른단 말이오? 그게 바로 정열이라는 거요."

문이 열렸다. 바닷소리가 카페 안으로 다시 쏟아져 들어왔다. 손발이 얼고 있었다. 나는 외투로 몸을 감싸고 구석으로 깊이 몸을 웅크렸다. 그 순간의 행복을 음미했다.
‘어디로 간담? 여기선 그럭저럭 지내긴 좋은데. 이 행복이 오래 계속되면 좋으련만.’

언어, 예술, 사랑, 순수, 정열의 의미가 막노동꾼의 입에서 나온 가장 단순한 언어로 내게 전달되었다. 나는 그의 손을 쳐다보았다. 곡괭이를 쥘 수도 있고 산투르를 다룰 수도 있는 손은 굳은살이 박여 터지고 일그러진 데다 힘줄이 솟아나 있었다. 그는 마치 여자 옷이라도 벗기는 것처럼 다정하고 조심스럽게 보따리를 끌러 세월이 묻어 있는 산투르를 꺼냈다. 산투르에는 여러 개의 줄이 달렸는데 줄 끝에는 놋쇠, 상아, 붉은 비단으로 된 술 장식이 매달려 있었다. 그는 큰 손으로 마치 여자를 애무하듯 조심스럽고 정열적으로 쓰다듬고는 줄을 골랐다. 그러다가 큼직한 손으로 사랑하는 여자가 감기라도 걸릴세라 옷을 입히듯 산투르를 다시 보자기로 쌌다.

하지만 산투르 말인데, 그건 좀 다른 문제요. 산투르는 짐승이오. 짐승에게는 자유가 있어야 하지요. 제임베키코,5 하시피코,6 펜토잘리7도 출 수 있죠. 그렇지만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두겠소. 마음이 내켜야 하오. 이점은 확실하게 해 둡시다. 만일 당신이 나한테 연주를 강요하면 그땐 끝장이오.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 말이오."
"인간이라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자유라는 거요."

진흙 덩어리가 동그랗게 되면서 마치 당신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지요. ‘항아리를 만들어야지, 접시를 만들어야 해. 아니 램프를 만들까, 뭐든 만들어야지.’ 사람이라는 건 이런 게 아니겠소? 자유 말이오."."

그는 바다도 잊고 레몬을 씹는 것도 잊었다. 눈빛이 다시 빛났다.
"그래서요? 당신 손가락은요?"
"아, 그게 돌림판을 돌리는데 자꾸 거치적거리더란 말이오. 이게 끼어들어 내가 만들려던 걸 망쳐 놓더란 말이지요. 그래서 어느 날 손도끼를 들고 그만……."
"아프지 않았어요?"
"무슨 말이 그렇소? 내가 목석인 줄 아시오? 나도 사람이오. 물론 아팠지요. 하지만 이게 자꾸 거치적거리니 자를 수밖에요

그땐 내가 혈기왕성할 때였지요. ‘왜’ 같은 걸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거든요. 사물을 제대로 보고 생각하려면 나이를 먹어야 해요. 이도 좀 빠지고. 이가 하나도 없는 늙은이라면 ‘얘들아, 물면 안 돼. 못 쓴단다’ 하고 소리치기 쉽지요. 하지만 이 서른두 개가 멀쩡하다면……. 젊을 때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어요. 사람을 잡아먹는 야수 같지요."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젊은것들은 양도 먹고 돼지도 먹고 닭도 먹지요. 하지만 사람을 처먹지 않으면 양이 안 차는 모양입니다."
그는 커피 잔에다 담배를 비벼 끄며 한마디 더 보탰다.

"
"보스, 그곳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어요. 참 웃기는 기적 말입니다. 우리는 독립군이 되어 사기 치고, 훔치고, 죽이는 짓들을 했는데, 그 때문에 게오르기오스 왕자가 크레타로 왔답니다. 그리고 자유가 찾아왔어요!"
그는 놀랍다는 듯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보았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굉장히 신비로운 일이란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유를 원한다면 살인을 저지르고 사기를 쳐야 한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정말이지 내가 죽이고 사기 친 이야기를 다 한다면 머리끝이 쭈뼛거릴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형편없이 굴었는데도 자유가 오다니! 하느님이 벼락을 내리는 대신에 자유를 주시다니! 나는 이해가 안됩니다

어느날 내가 조그만 마을로 갔을 때의 일이에요. 아흔이 넘은 것 같은 할아버지 한 분이 바쁘게 아몬드 나무를 심고 있더구먼요.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 아몬드 나무를 심고 계시네요?’ 하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오냐, 나는 죽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거든’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대답했어요. ‘저는 제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요.’ 자, 누구 얘기가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보스?"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때요, 이 말에는 꼼짝 못하겠지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똑같이 험하고 가파른 두 갈래 갈림길이 같은 봉우리에 닿을 수도 있었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사는 거나, 매 순간 죽음을 의식하며 사는 건 어쩌면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왔지만 조르바가 물었을 때는 대답하지 못했다.

"보스, 인부들 신상을 자꾸 물어보고 다니지 마세요. 잘해 주면 발목 잡히기 십상이에요. 보스가 그렇게 다독거리는 게 인부들이나 일에도 방해가 된다고요. 모두가 핑계를 만들어 주는 일이에요. 그렇게 되면, 젠장, 인부들은 일을 제멋대로 하다가 결국 망쳐 버린답니다. 인부들을 보살펴 주는 일은 하느님이 하고 계신다오. 보스가 세게 나와야 인부들도 보스를 존경하고 일도 잘해요. 보스가 물렁하면? 인부들은 일을 몽땅 보스에게 미뤄 두고 나 몰라라 한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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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앞에 ‘앉아‘ 있다니, 너무 좋다! 그림에 적힌 아랍어 문구를 번역한 캡션을 찬찬히 읽는다.
그렇다면 나는 왜 내게 영혼을 준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바로 그 영혼을 고통스럽게 하는 슬픔의 원천을 하늘이 내 안에 만들었는데도

이제 이런 순간들은 예전만큼 자주 오지 않고 그 사실을 인정하며 슬퍼진다. 위대한 그림은 경외감, 사랑 그리고 고통 같은잠들어 있던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메자닌의 골동품들에 대한 호기심과는 다르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냈던 상실감보다 그 구멍을 메운 잡다한 걱정거리들을 더 많이생각한다. 아마도 그게 옳고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ㄴ당신은 지금 세상의 축소판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개펄에서 파리의 센강 서쪽 리브고쉬의 카페에 이르는 드넓은 땅과 그 너머 수많은 곳에서 인류는 정말이지 놀라운성취를 이루어냈습니다. 먼저 그 광대함 속에서 길을 잃어보십시오, 인색하고 못난 생각은 문밖에 두고 아름다움을 모아둔 저장고 속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작고 하찮은 먼지 조각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즐기십시오.
가능하면 미술관이 조용한 아침에 오세요. 그리고 처음에는 아무하고도, 심지어 경비원들하고도 말을 하지 마세요. 모든 것을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면 눈을 크게 뜨고 끈기를 가지고 전체적인 존재감과 완전함뿐 아니라 상세한 디테일을 발견할 만한

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세요. 감각되는 것들을 묘사할 말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거기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어쩌면 그 침묵과 정적 속에서 범상치 않은 것 혹은 예상치 못했던것을 경험하는 행운을 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예술품의 제작자, 문화, 의도된 의미에 관해 알아낼 수 있는 건모두 알아내세요. 그것은 보통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되면 방침을 바꿔 자신의 의견을내세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우리와 다름없이 오류투성이인 다른 인간들이 어떻게 해석했는지를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메트입니다. 여러분은 예술이 제기하는 가장 거대한 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피력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도 자기 생각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기대어 용감한 생각, 탐색하는 생각, 고통스러운 생각, 혹은 바보같을 수도 있는 생각들을 해보십시오. 그것은 맞는 답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늘 사용하는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메트에서 애정하는 작품이 어떤 것인지, 배울 점이 있는 작품은.
무엇인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연료가 될 작품은 또 어느 것인지살핀 다음 무엇인가를 품고 바깥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렇게품고 나간 것은 기존의 생각에 쉽게 들어맞지 않고, 살아가는 동안 계속 마음에 남아 당신을 조금 변화시킬 것입니다.

많은 경우 예술은 우리가 세상이 그대로 멈춰 섰으면 하는 순간에서 비롯한다. 너무도 아름답거나, 진실되거나, 장엄하거나,
슬픈 나머지 삶을 계속하면서는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예술가들은 그 덧없는 순간들을 기록해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들은 덧없이 흘러가버리지 않고 세대를 거듭하도록 계속 아름답고, 진실되고, 장엄하고, 슬프고, 기쁜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믿게 해준다. 그리고 이곳 메트에 유화물감으로 그려지고, 대리석에 새겨지고, 퀼트로 바느질된 그 증거물들이 있다.
세상이 이토록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고 충만하며, 그런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며,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들을 정성을 다해 만들려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이신비롭다. 예술은 평범한 것과 신비로움 양쪽 모두에 관한 것이어서 우리에게 뻔한 것들, 간과하고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도록일깨워준다. 예술이 있는 곳에서 보낼 수 있었던 모든 시간에 고마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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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는 특별한 유형의 지혜를 관장하는 여신이었어." 학생들에게 말한다. "『오디세이』 읽어봤니? 읽어봤다고? 좋아. 「오디세이』에서 아테나는 오디세우스가 자신감과 영감을 회복해야할 때마다 나타나. 그런 느낌 있잖아... 상태가 별로인 채로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조금 전까지는 불가능하다고 느꼈던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용기가 생기면서 정신이 또렷해지는 느낌. 오늘날 우리는 그 변화가 인간의 내부에서생겼다고 생각하겠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렇게 믿지 않았어. 그들에게 힘이란 모두 외부로부터 비롯한 것이었고, 그 힘은강력하고, 예측 불가능하고, 운명을 좌지우지하듯 사람의 감정을 뒤흔드는 힘이었어. 아테나는 마음을 꿰뚫고 변화시키는 방식 때문에 ‘가까움의 여신‘이라고도 불렸어."
나는 여신의 얼굴을 가리킨다. "아마 마음을 좋은 쪽으로 바꿔놓는 경우가 많았겠지. 그녀를 좀 더 들여다봐, 그리스인들이렇게 생겼을 것치는 아름다움이다.

종교religion‘는 ‘묶음 ligature‘과 마찬가지로
‘ligio‘라는 어근을 갖고 있다. 기본형일 때 ligio는 연결 혹은 어떠한 공동체가 인식하는 근본적인 진실에 다시 집중하고 교감함을 뜻한다. 나는 특정한 종교적 전통을 섬기지는 않지만 종종어딘가에 소속되어 사소한 걱정들 대신 더 근본적인 것들과 교감할 필요를 느낀다. 독실한 숭배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찬미하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미흐라브를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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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입니다.
지역 청년 콘서트 행사장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이라는 나의 질문에, 한 2000년생 대학생이 아무런 고민 없이 대담하게 위와 같이 대답했다. 예상치 못했던 대답 앞에 마주한 나는 짐짓 당황했지만 그런 대답조차 일종의 시대와 세대의 변화라는 생각을 했다.
최근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거나 지역 행사장에서 20대초반2000년대생을 만나면서 가장 크게 든 생각은 일에 대한 생각의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들에게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주 5일 9시부터 6시까지 일하는 전통적인 직업은더 이상의 기본적인 선택지가 아닐 수 있다.

김아영도 곧 동일한 어려움에 처한다. 바로 <SNL코리아> 시즌 4부터 새롭게 등장한 윤가이 때문이다.이 새로운 신입은 헤드폰 형태의 에어팟 맥스를 항상 목에 걸고 다닌다. 에어팟을 착용했다는 이유로 선임들에게서 여러 번 지적을 받은 김아영은 역설적으로 에어팟 맥스를 낀 후배의 행동을 지적한다. 하지만 윤가이는 김아영에게 "노래를 듣는 게 아니라, 단지 패션능률 때문인데 안 되나요?"라고 되묻는다. 극 중에서 ‘너 같은 후배를 만나보라‘는 말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이 단순하게 반복되며 거울치료가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보다는 갈등의 양상과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가령, <MZ오피스>에서 주현영은 김아영에게 PPT를 빨리 달라고 재촉하고, 김아영은 다시윤가이에게 PPT를 요청한다. 여기서 윤가이는 "아~ 그거 지금안 돼요. 어제 오후에 시키신 일이라 상식적으로 지금은 완성하기가 힘듭니다. 원하시면 드릴 수는 있는데 완성도가 좀 떨어지고, 제 자료 퀄리티가 없어 보여서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애초에 선배님께서 저한테 마감 기한을 말씀해 주지 않으셨습니다만"이라며 바른말로 되받아친다. 결국 그의 행동에 김아영은
"내일 드리겠습니다"라고 채념한다.

한동안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한민국 3대 헛소리‘라는 게시물이 떠돌았다. 첫 번째는 연인에게 하는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거야"라는 말이다. 두 번째는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어"라는 말이다. 마지막은? 출근하는 상사가 건네는 "좋은 아침!"이다. ‘굿모닝‘ 정도로 번역될 의례적인 인사가 어떻게 헛소리 취급을 받게됐을까? 그건 ‘회사로 출근하는 아침은 좋은 아침이 될 수 없기때문‘이다.

과거에는 노비가 될 바에는 대감집 (대기업) 노비가 되겠다거나, 관노비(공무원)가 되겠다는 말이 통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똑같은 노비일 뿐이라는 인식이 더 강하다. 왜냐하면 좋은 직장도 100세 인생의 관점에서는 잠시 거쳐가는 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규직조차 조금 긴 임시직인 셈이다.
꿈을 실현하는 일터는 더 이상 없다. 강하게 소속감을 느끼는일터도 없다. 앞으로 2000년대생들에게는 그저 거래가 일어나는 곳에 불과할 수 있다. 노동력을 잠시 빌려주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 평생직장이 아니기에 언제든 거래가 종료되면 다른 거래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저는 사실 월정액 직장인이에요. 사장님은 저를 잠시 구독하고 계신 거죠.

미국의 철학자이자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과의 명예 교수인해리 프랭크퍼트는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저자는 거짓말Lie과 개소리 Bullshit의 차이를 설명한다. 그 핵심적인 차이는 바로 "진실에 대한 관심"이다.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하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것이 사실인지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소리는 진실이 무엇인지에대한 일말의 관심조차 없다. 저자는 이러한 점에서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더 위험하고, 거짓말 보다 더 강력하게 진실된 사회의

‘당기세요’가 써 있더라도, 실제로 문을 밀었을 때 열릴 수 있는 것이다. ‘고정문‘이라고 써 있지만 밀거나 당기면 움직일 수도있는 것이다. 써 있는 그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경험이나, 안 되는게 되는 경험을 해보았다면, 무언가를 일단 뜻대로 해보는 게 꼭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높은 효율‘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생존 방식이기도 했다.

나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컴퓨터, 인공지능에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더 걱정하는 것은 컴퓨터처럼생각하는 사람이다.

흔히 곡선은 신의 것이고 직선은 인간의 것이라는 말이 있다.
순수한 자연에서는 직선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에 비유할 수 있다. 아날로그는 신호를 연속된 선으로 나타내고, 디지털은 신호를 인위적으로 나누어 나타낸다. 이를 자막에 적용시켜보자면, 우리가 영상을 볼 때 듣는 음성 대사는 아날로그 영역에 속한다. 그리고 이 대사를 자막이라는 문자로 표현하는 것은 일종의 디지털 영역에 속한다.

아날로그 신호인 음성에 비하여 디지털 신호인 자막은 상대적으로 정확하다. 아날로그 신호에 존재하는 외부의 노이즈나 대역폭 등의 방해 요소가 없고, 정확하게 규격화된 기호로 전달한다. 하지만 음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분명한 소리들 사이에서 음성 신호를 가려내고 해석해야 하며, 상대방의 목소리 톤과전후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까지 통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하면 될까?
...
하지만 디지털적 사고방식이 익숙한 디지털 AI 인간은 그보다더 나아간다. ‘하면 된다‘가 진취적이고 감정적이라면, 다음의 문장은 방어적이고도 이성적인 사고방식에 가깝다.

되면 한다.

여기서 라면은 한국인 모두가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범용적 음식이다. 여러 종류의 라면이 있다고 해도 레시피에는 큰 차이가 없다. 오 팀장은 별 생각 없이 습관처럼 물을 넣고 불을 올렸다. 물이 끓고 난 뒤에는 라면 봉지를 열어 면과 스프를 넣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보던 한 팀원이 그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팀장님 진라면을 그렇게 끓이시면 어떻게 해요?" 당황한 오팀장은 "아니 왜… 내가 뭘 잘못했나?"라고 물었고, 팀원은 답답해하며 대답했다. "오뚜기 진라면은 물이 끓기 전에 건더기 스프를
넣어야 한다고요. 제조사가 만든 레시피가 있는데, 왜 마음대로만드세요?"

놀랍게도 이처럼 정해진 것을 따르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중대한 법이나 원칙을 어기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이들은 마치 오류가 난 기계처럼 사사건건 ‘당신이 잘못됐다‘는 메시지를 내뱉는다. 이렇게 극단적인 디지털 사고방식을 지닌 이들은 ‘사이보그형 인간‘에 가깝다.
디지털 AI 인간이 원칙과 시스템에 방점이 있다면, 극단적인디지털 사고방식을 지닌 사이보그형 인간에게는 맞음과 틀림만이 중요하다. 거기에 중간 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이보그형 인간의 등장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갈등의 씨앗을 심고있다. 모든 일에 메뉴얼이 있지도 않고, 설령 있다고 해도 그것을언제나 따르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일 중식은 미정이야.
뭐라고? 금요일에 중국집 ‘미정‘에서 먹자고?
...?
...?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 개인과 프로필의 우선순위가 뒤바뀌는 것이다. 개인을 진실하게 그리는 프로필이 요구되는 게 아니라, 프로필에서 보이는 것처럼 존재하고 처신하는 개인이 되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는 것이다.
프로필성이란 정체성의 진실 여부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정체성이 형성되고 표현되는 방식과 효과에 관한 개념이다.
그래서 우리는 진짜의 프로필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진짜로 구성해서 표현하고 행위하는 ‘프로필 큐레이션‘이 필요하게 된다. 이때 한 인간의 정체성이란 이미 존재하는 본질이 밖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프로필 큐레이션에 따라 연출되어야 하는 것이된다.

기성세대는 소득과 소비를 일종의 선형적인 패턴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만약 누가 밥을 먹고 있지 않고 굶는다면 ‘가난한 아이‘이고, 호텔 식당에서 코스 요리를 먹고 있는 친구는
‘돈이 많은 아이‘라고 여기는 식이다. 하지만 어쩌면 뜻밖에도 그는 10번의 식사에서 돈을 아끼고, 그 아낀 돈으로 1번의 비싼 식사를 즐기는 아이일 수도 있다.

판교에서 중견 IT기업 대표를 지낸 70년대생 김상규 씨는근 최신 아이폰과 맥북,아이패드를 구매한 젊은 사원을 보고 여유가 있는 직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가 그리 유복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아마 다수의 기성세대는 이러한 상황을 마주쳤을 때 합리적이지 못한 소비 습관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이러한모습은 2000년대생들에게는 특별하게 이상한 선택이 아닐 수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합리적인 소비란 모두가 일정한 선으로연결되는 선형적인 소비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곳에 집중적

이제 업계를 막론하고 일종의 공동화현상이 일어나고있다. 흔히 도심 공동화는 ‘도시의 중심부에 상주 인구가 줄어들어 텅 비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런 현상이 영화 산업과 같은 콘텐츠 시장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리고 그 격차가 벌어지는 양극화 현상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적당한 수준의 성과를 내던 다수의 플레이어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도심 공동화는 도심의 텅 빈 그래프의 모습이 마치 도넛과 닮았다고 하여 ‘도넛 현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만약 지금의 ‘소비 공동화‘ 현상이 도심 공동화처럼 나름의 좌우 균형을 이루고있었다면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초합리적 소비의 결과로 그 균형은 깨졌다. 초합리적 소비가 만들어내는 것은 극소수의 승자와 절대 다수의 패자일 뿐이다. 그 결과 시장의 도넛은무너지고 있다.
공동화는 단순히 무언가가 비어 있다는 의미를 넘어, ‘마땅히있어야 할 것이 사라진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산업을 지탱하고있는 주요 플레이어들의 미래는 불투명해졌다. 국내 영화 산업에서 대다수의 영화가 손익 분기점을 중간도 넘기지 못하게 되면서 투자도 줄어들고 있다. 많은 영화의 수익이 주저앉았고, 이에 이미 수십억 원의 돈이 들어간 한국 영화 90여 편이 개봉도못하고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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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비즈니스나 서비스, 심지어 자영업에서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걸 줄이면DT가 아닐까 싶은데 사실은 DX라고 합니다. 영미권에서는Trans를 X로 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대표적으로 과거 학교 앞 추억의 문방구가 지금은 무인문방구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어요. 프랜차이즈 무인문방구 문구야 놀자‘는 단순히 문구를 살 수 있는 가게를 넘어 아이들이 편히 찾을수 있는 감성 문화공간이 되었습니다. 문구야 놀자는 2021년 3월에 처음 가맹점을 모집했는데 2023년 8월 기준으로 225개의 매장과 베트남에 해외매장까지 열었습니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세인데요, 이에 대해 문구야 놀자 측에서 스스로 인기의 이유를다음과 같이 분석했습니다. "아이들끼리 와서 구경하고 무엇을 살지 판단한 다음, 결정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부모의 영향을 받지 않아도 되고 무엇을 살 건지 물어보는 주인이 없다는점이, 초등학생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실컷 아이쇼핑을 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톡톡히 냈다"고요.

잘파세대는 이런 분위기에서 생긴 한 집안의 아이예요. 이아이는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게 됩니다. 집 안에 하나밖에 없는아이거든요. 이 아이를 위해 장난감을 사주고 과자를 사주고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스마트폰을 사줄 사람이 집안에 8명은 존재해요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삼촌, 이모죠 그래서 8포켓이라는 말을 씁니다. 한 명의 아이를 위해 돈을쓸 사람이 8명은 있다는 거예요. 외삼촌과 고모까지 생각해서 10포켓이라고도 하고요.

잘파세대의 조부모와 외조부모는 대개 베이비붐 세대입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그 전 세대와 달리 어느 정도 은퇴자금을 마련하고, 집 한 채는 마련해서 은퇴한 세대입니다. 굉장히 큰 부자는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자녀들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손자,
손녀에게 용돈을 줄 정도의 경제력은 충분히 있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잘파세대의 고모, 이모, 삼촌, 외삼촌 중에는 비혼주의를표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수치는 점점 반이 넘어가는데요, 통계청에 따르면 10년 전에는 결혼에 긍정적인 사람의 비율이 56.5%였는데, 2023년에는 36.4%로 20.1%p 감소했다고 합니다. 결혼하지 않고 비혼인 채로 동거하는 데 대한 긍정 인식은 80.9%나됩니다.

잘파세대는 영상통화를 즐깁니다. 전화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잘파세대가 영상통화는 즐긴다니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통화의 형태가 좀 다르긴 해요. 영상통화를 하더라도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그냥 영상을 연결해 놓고 있는겁니다. 영상통화를 걸어놓고 아무 말없이 자기 공부를 하거나책상 정리를 하거나 합니다. 이들이 영상통화를 하는 이유는 긴밀하게 대화를 한다기보다는 그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 의미도 없는 문자나 사진을 친구들에게 뜬금없이보내기도 합니다. 자신과 친구가 연결되어 있다는 확인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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