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몸 안에 있다 - 의사이자 탐험가가 들려주는 몸속에 감춰진 우리 존재와 세상에 대한 여행기
조너선 라이스먼 지음, 홍한결 옮김 / 김영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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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몸은 전체적으로 보면 복잡하게 생겼다. 둥근 머리에 대략 원통 모양의 네 팔다리, 뾰족뾰족 튀어나와 무슨 모양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뼈, 그러나 우리 몸은 간단히 둘로 나눌 수도 있다.
바깥쪽과 안쪽이다. 바깥쪽 삶은 피부 겉면에서 시작하여 외모, 대화, 공기, 자연, 타인 등 일상의 영역을 아우른다. 대부분의 사람은평생 바깥 세계에만 관심을 두고 살지만, 의학 교육은 안쪽의 삶에중점을 두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무슨 병세가 나타나면 그제야 몸속에서 일어나는 미지의 작용에 덜컥 겁을 내면서 관심을기울이곤 한다. 우리 몸속은 수술할 때나 크게 다쳤을 때가 아니면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지만, 그곳이야말로 인체의 주역이다.

나는 신체 부위 하나하나를 공부해나갔다. 구조와 기능을 세세히 암기했고, 고무 같은 느낌의 보존 처리 표본을 살펴봤고, 세포구조를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병들었을 때와 건강할 때 각 기관이어떻게 작용하는지 숙지했고, 고된 선다형 시험을 거치면서 그 상세한 스토리를 읊어내고 나면 다음 기관으로 넘어갔다. 의대 교육은 각종 장기들과의 스피드 데이트(한 장소에서 여러 이성을 돌아가면서 잠깐씩 만나보는 미팅 방식옮긴이)였으며, 나는 모든 장기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수축과 일그러짐을 반복해야 한다. 음식물이 기관에 접근하여 곧 숨을막을 것 같은 순간, 여러 근육이 연동하여 후두라고 하는 기관 상단부를 들어 올린다. 곁에서 보면 목의 울대뼈가 위로 씰룩거리는동작이다. 이때 기도의 열린 입구가 혀 밑에 밀착되면서 후두덮개가 마치 맨홀 뚜껑처럼 후두를 틀어막는다. 그러면 음식물이 기도를 안전하게 피해 식도로 넘어갈 수 있다. 음식물이 지나가고 나면후두는 다시 내려와 원위치인 목 중간쯤으로 돌아간다.

음식물을 삼키려면 5개의 뇌신경과 20여 개의 근육이 협력해야한다. 목구멍의 위험천만한 구조를 보완하려다 보니 이렇게 복잡한 기전이 됐지만, 중대한 문제의 해법치고는 너무 거추장스럽고복잡한 방식이라 탈이 나기 쉽다. 특히 먹으면서 말을 할 때는 식도와 기도를 동시에 열려고 하니 오작동이 일어나기 쉽다. 해마다질식해서 사망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도 이상하지 않다.

기침은 흡인으로 탈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한 우리 몸의 중요한기전이다. 코에 재채기가 있고 위장에 구토가 있다면, 폐에는 기침이 있어서 불필요한 이물질을 몸 밖으로 밀어내는 구실을 한다. 기침은 유아에게도 나타나는 반사작용으로, 민감한 기관과 기관지에 이물질이 닿으면 자동으로 촉발되는 반응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흡인을 하게 되며, 기침은 우리 몸이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흡인을 해소하려는 행동이다. 건강한 사람의 경우 기침은 꽤 효과적이어서,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갔을 때 기침이 발작

완전히 타인인 내가 의사로서 할 일은, 생을 마감하는 인체의 고통과 아픔을 덜어주듯 가족 간의 갈등을 중재하고 달래는 것뿐이었다.
목구멍은 음식물과 공기를 흡입하는 곳일 뿐 아니라, 폐에서 내쉬는 공기가 후두를 통해 목소리로 바뀌는 곳이기도 하다. 목구멍을 통해 우리는 생각을 표현하고, 수잔처럼 의지가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들은 소망을 피력하기도 한다. 의사로서 내가 할 일은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고, 특히 환자가 더 이상 스스로를 대변하지 못할 때는 더욱 그렇다. 삶의 마지막 시기에 병원에서 침습적의료 행위에 고통받을까 봐 두려운 사람은, 어떤 치료를 금할지를명시한 사전의료지시서에 서명해두어야 한다.

우리 몸의 구조는 자궁 속에서 배아가 생겨나면서 미시적으로형성된다. 우리는 누구나 세포로 이루어진 평평한 원반으로 태아의 삶을 시작한다. 원반은 수정 후 몇 주 만에 동그랗게 말려서 원통모양이 된다. 이 원통이 인체의 기본 얼개를 이룬다. 한쪽 끝에입구가 있고 다른 쪽 끝에 출구가 있는 관 형태다. 우리 몸은 여기서부터 성장하여 모습을 갖춰가며 구조적으로 엄청나게 복잡해진다. 그렇지만 처음의 관 모양 구조는 평생 그대로 남는다. 성장한우리 몸은 앞쪽에 음식물과 공기가 들어오는 입구가 있고 뒤쪽에출구가 모여 있는, 호화롭게 장식된 하나의 관에 지나지 않는다.

목구멍의 생김새는 이 관 모양의 구조에서 기인한다. 배아가 발달함에 따라 앞쪽에 있던 하나의 입구가 나란히 붙은 두 개의 관으로 나뉘어 각각 음식물과 공기를 맡으면서, 질식이나 흡인의 위험이 그때부터 상존하게 된다. 우리 몸은 이를 보완하고자 입구로들어오는 물질을 잘 가려내기 위한 얼굴과 뇌를 만들어내고, 삼키기·기침·구역질 등 보호 기전을 발달시킨다. 그 같은 보호 기전은거의 항상 제구실을 한다.
태어나서 첫 숨을 쉬는 순간부터 공기와 음식물은 목구멍에서정확하게 나뉘어 들어가며, 목구멍의 이 아슬아슬한 곡예는 평생동안 이어진다.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지 않게 하는 것은 우리 몸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에 속하지만, 뇌졸중이나 알츠하이머로 쇠약해진 환자의 목구멍이 더는 곡예를 지속할 수 없게 되면 몸은흡인과 함께 제 수명을 다한다. 흡인은 그런 환자의 가장 흔한 사망 원인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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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도래할 미래는 당신 안에서, 당신 자신으로부터 창조될 것이다.
그러니 내면을 바라보라. 비교하지도, 평가하지도 말라.
타인의 길은 당신이 갈 길이 아니다.
타인의 길은 당신을 속이고 유혹하겠지만당신은 자기 내면에 있는 길을 걸어야 한다.
-카를 융, ‘레드북

10대 후반에서 30대에 이르는 시기를 ‘쿼터라이프‘로 정의하고, 자기만의 삶이라는 작품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쿼터라이퍼가 겪게 되는 다양한 어려움을 이해하기 쉽게설명하고 명쾌한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말한다, "타인에 대한 경청에앞서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경청하라"고.

저자는 자신이 믿는 것과 타인이 믿는 것을 세심하게 분리해내라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경청하라고 강조한다. 그래야 무엇이 진정한 자기 자신이고 아닌지 알아내기 수월하고, 상황이 모호하거나 순응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을 때 그 갈등 속에서 자신이 어떤 입장인지 알아낼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타인에게 집중하느라 정작 자신에 관한지식 쌓기를 거부하거나, 자신의 욕구를 지켜내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은 모순이다.

룸메이트부터 친구, 데이트 상대, 동창, 동기, 동료까지, 주변의 또래들은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나보다 더 심하게 앓는 친구들도 있었다. 심각한 병을 진단받거나 자살 위험 때문에 보호관찰 중인 경우도 있었다. 나보다 훨씬안정적인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실존적인 고민에 빠져자기 인생의 기반을 무너뜨리자고 마음먹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 모든것에 무슨 의미가 있지? 라고 자문하며 마음 끓이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단단한 확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사실 우리 가운데 독립적인 삶에 필요한 수많은 것들, 이를테면 구직법이나 돈 관리, 세금 납부, 데이트, 섹스, 대인관계, 요리, 청소 등에관해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리가 잘 지내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고, 잘 지내고 있다고 우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의 정신적인 위기, 우울, 불안에 관해서는 다들 쉬쉬하면서 우리가 겉멋만 들었다고 농담했다.

나는 직장을 그만뒀고, 기분이 좋았다. 나와 어울리는 곳이 어디인지는 아직 몰랐지만, 그 회사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왠지 그런직감이 들었다. 사회심리학자 케네스 케니스턴이 일찍이 말했던 것처럼, 인간은 "자신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더 나은 삶‘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할 수 없을 때도". 나는더 나은 삶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게 정확히 무엇이고 어디서 구할수 있는지 아직 알아내지 못했을 뿐이었다.

. 『영혼 돌보기 Care of the Soul』라는 책의 제목에 흥미가 생겨 재빨리 읽기 시작했다. 가톨릭 수도사에서 심리 치료사로 전향한 저자 토마스 무어는 삶에 인지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직감과 존재를 통해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같은 종류의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고,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카를 융의 회고록 『기억, 꿈, 사상』을 추천받았다. 서점에서 그 책을 집어 들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바닥에 놓인 매트리스에 앉아 꼬깃꼬깃한 적갈색 표지를 바라보다가완전히 몰입해 읽었다. 밑줄을 긋고 여백에 별을 그리고 체크 표시를했다. "내 온 존재는 미지의 무언가를 찾아, 시시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해줄 그것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비로소, 누군가가 나를 똑바로 바라봐주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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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25년(1749) 8월 15일자에는 "임금이 홍화문의 누(樓)에 나아가 왕세자(사도세자)를 거느리고 사민(四民)에게 진휼을 시행했다"며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아! 푸른 하늘이 나에게 부탁한 것도 백성이요, 조종(祖宗, 선대 임금)께서 나에게 의탁한 것 또한 백성이다. 지금 보고(抄)한 바를 보니그 수효가 아주 많고, 문루에 나아가서 보니 마음에 더욱 측은하고 불쌍하다. (…) 다섯 걸음밖에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억울함을 호소할길 없는 백성이 이와 같이 많은데도 백성의 부모가 되어 오늘날 처음보게 되니, 어찌 백성의 부모 된 도리라고 하겠느냐. (・・・)저 푸른 하늘이 나에게 명해 임금이 되게 한 것은 임금을 위한 것이아니고 곧 백성을 위한 것이다. (・・・) 백성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백성을구제하지 아니하면 민심은 원망할 것이요, 천명도 떠날 것이니, 비록임금이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필부에 불과할 것이다.

또 ‘조선왕조실록』 영조 33년(1757) 1월 28일자 기사에는 이렇게 전한다.
오늘 홍화문에 나아가 나의 백성들의 굶주려 누르스름한 얼굴빛과갈가리 해진 옷을 입은 몰골을 보았는데, 이로 미루어 먼 지방에서 가난해 의지할 데 없어 구렁에 뒹구는 모양을 직접 보는 듯했다. (……) 아!
우리 주자, 사도세자)는 내 말이 늙은이의 잔소리라고 하지 말고 무룻 대리(代理)함에 있어서 반드시 백성을 우선으로 삼아 내가 30년 동안 미치지 못했던 정치를 보좌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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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본디 외지고 고립된 곳이며, 사람이많이 사는 골짜기와 달리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공기는 희박하면서도 더 맑고, 물길은 더 깨끗하다. 인간의몸과 집단 활동에서 발생하는 오물과 폐수가 모두 아래로 흐르기때문이다. 높은 산에 오른다는 것은 속세의 타락과 일상의 아귀다툼에서 벗어나는 행동일 수밖에 없다. 뇌의 더 높은 층으로 올라갈수록 육체의 원초적 ·동물적 작용에서 벗어나 고매한 정신에 가까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에 취하는 행위를 통해서도 때로는 삶을 바라보는 나름의 관점에이를 수 있다. 히말라야의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거나 뇌의 높은 층에서 바라보면, 일상의 문제는 대수롭지 않고 사소해 보인다. 그러므로 높은 곳은 사색과 명상에 더없이 적합한 장소다. 고도가 뇌를압박하는 현상도, 어쩌면 뇌라는 지상의 거처에서 마음을 해방하려는 사람에게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산속의구도자들은, 산소부족을 발판 삼아서 더 높이 떠오른‘ 상태에 이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로리가 그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를 공개했다. 흰색 플라스틱 통에서 반들거리는 분홍색 살덩어리를 꺼냈다. 사슴의 뇌였다. 큰 오렌지 정도의 크기로, 내가 몇 년 후 의대에서 해부한 인간의 뇌가멜론 정도 크기인 것에 견주어 훨씬 작았다. 로리는 땋은 머리가주름진 뇌의 표면에 닿지 않게 주의하면서 뇌를 양손에 살포시 받쳐 들고 수강생들에게 보여주었다. 축축하고 냄새 나는 날가죽을고급스러운 가죽 원단으로 변신시키는 데 필수적인 재료가 바로
‘뇌라고 했다. 이를 ‘브레인 태닝brain tanning‘이라고 하며, 무두질공법의 하나다. 선사시대에서 미국 식민지 시대에 이를 때까지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 방법으로 부드러운 가죽을 만들어 옷을 해입었다.

게다가 피부는 똑똑하다. 태양에 꾸준히 노출되는 유일한 신체기관으로, 햇볕을 받으면 색소를 늘려서 저절로 거무스름해진다.
태양의 전리방사선에 DNA가 손상되어 돌연변이를 일으키지 않게 보호하는 작용이다. 반복적으로 마찰을 받으면 두꺼워져 굳은살을 만든다. 앞으로의 마찰에 대비해 자신을 보호하려고 갑옷을입는 것이다. 간은 프로메테우스 신화에 묘사된 것처럼 재생능력으로 유명한 기관이지만, 그런 간도 피부의 회복력과 재생능력에는 한참 못 미친다. 피부에 상처가 나면 세포가 사방에서 몰려들어결손 부분을 메우면서 저절로 아문다.

묶어주는 층도 있고, 케라틴을 생성하는 층도 있다. 표피의 맨 아래층이자 진피에 접한 층에는 줄기세포가 존재한다. 줄기세포는필요할 때마다 분열하여 피부를 재생하고 상처를 메우며, 우리가일생 동안 배출하여 집이며 자동차, 회사에 먼지로 쌓이는 죽은 세포를 대체하는 역할을 한다. 표피를 구성하는 층들이 바로 몇 년전 로리가 가죽을 긁어낼 때 주시하라고 했던 그 층들이었다.

인체의 모든 부위는 피부처럼 층으로 나뉜다. 눈의 흰자위는 네층, 동맥벽은 다섯 층, 장의 내벽은 여섯 층으로 이루어졌다. 얇은대뇌피질도 여섯 층으로 되어 있다. 계층화는 인체의 기본 구성 원리로, 복원력을 높이고 세포의 기능을 더욱 전문화하는 효과가 있다. 체내의 모든 구조물은 아무리 얇고 단순해 보일지라도 양파처럼 여러 겹으로 되어 있다.

두 가지 진단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하나는 표피가 완전히 벗겨져 몸 대부분에 진피만 남는 스티븐스-존슨증후군sjs이라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피부의 바깥층이 소실되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화상 전문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많다. 또 하나는 포도알균열상피부증후군SSSS이라는 것으로, 치명도는 훨씬 낮으며 독소로 인해 표피의 층들을 고정해주는 접착제가 손상되어 발생한다. 그 경우 독소를 일으키는 포도알균 감염을항생제 치료하기만 하면 된다.

피부는 완전히 몸의 겉에 위치한 유일한 기관이지만, 환자의 몸속 건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황달이 있으면 간질환을 짐작할 수 있다. 아랫다리의 피부가 갈색을 띠고 두꺼워지면 만성심부전일 수 있고, 극심한 경우에는 피부가 거의 나무껍질처럼딱딱해지기도 한다. 심지어 몸속에 숨은 암도 부드러운 촉감의 검은색 발진이나 눈꺼풀의 그물 무늬로 나타날 수 있다.

나는 그 모습을 거울로 삼아 내 얼굴 뒤에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내 감각과 지각 회로는 내가 씹었던 모든 음식의 느낌을 비롯해 내 인생의 거의 모든 경험을 포착해왔다. 스비드 요리는말하고 있었다. 나 역시 평생 쌓아온 경험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어떤 생물(큰 생물이든 미생물이든)의 저녁밥이 될 것이며, 내가 만지고본 모든 것은 결국 다진 간처럼 단순한 무언가로 축소될 것이라고

해부학과 생리학이라는 엄밀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살아 있는 양이 아이슬란드의 저녁 식탁에 오르기 위해 치른 죽음은 내가앞으로 의사로서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맞서 싸우거나 마주할 죽음과 다를 게 없었다. 언젠가는 나 자신의 죽음도 똑같은 과정을거칠 것이다. 시신을 해부하면서 내 몸의 구성 요소를 배우고 내몸속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었던 것처럼, 나는 내 평생의 가장철학적인 요리를 탐구하면서 내 몸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내 몸은 음식이었다.

나는 의학 공부를 하면서 해부학에 관한 기본 지식을 넓혔을 뿐아니라, 좋은 음식을 알고 잘 요리하는 법을 알려면 동물의 해부학과 생리학을 알아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해부학과 식욕의 두 세계를 더없이 긴밀하게 묶어준 스비드 덕분에, 추상적인 음식에 얼굴을 부여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음식은 더 선명한 인격성을 띠었고, 음식에 공감하는 것과 음식을 먹는 것은 양립 불가능한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역겨운 것‘에 대한 내 감각도완전히 바뀌어서 식용과 비식용을 구분하는 습관이 재배열되었고, 음식에 관한 인식의 문이 깨끗해졌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인식의 문이 깨끗해지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즉 무한하게 보인다"고 했지만, 그렇게 되면 음식도 있는 그대로, 즉 맛있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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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서 일할 때의 어려움은 무엇보다 글씨가 바른지 비뚤어졌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낮은 곳에 있는사람들에게 부지런히 물어보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물은 빈 곳을 채운 다음 나아갑니다. 결코 건너뛰는 법이 없습니다. 차곡차곡 채운 다음 나아갑니다." "나무의 나이테가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훨씬 단단하다는 사실입니다."
덕분에 나는 무사히 5년을 버틸 수 있었다.

남을 대하기는 춘풍처럼 관대하게 하고자기를 지키기는 추상처럼 엄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을 돌이켜보면이와는 정반대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남의 잘못은 냉혹하게 평가하는가 하면자기의 잘못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합니다.
자기의 경우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불가피한 전후 사정을 잘 알고 있지만,남의 경우는 그러한 사정에 대하여전혀 무지하거나 알더라도 극히 일부분밖에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의 형평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우리는 타인에게는 춘풍처럼 너그러워야 하고자신에게는 추상처럼 엄격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대화와 소통의 전제입니다.
- 신영복, <춘풍추상>,

선생님 말씀대로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스승으로 살아간다. 가르치고 배우는 연쇄 속에서 자기 자신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면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고립무원에서 깨달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부단히 자기 자신을 깨달으며 조금씩 나아져야겠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며 한 시절을 보내다 보면,
언젠가 선생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크기의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작은 기쁨 하나가 큰 슬픔을 견디게 합니다. 우리는 작은 기쁨에 대해 인색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큰 슬픔에 절망해서도 안되고요." 그 말씀은 그동안 들었던 어떤 말들보다 따뜻하고분명한 위로였으며, 격려였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울고 싶어졌지만 꾹 참았다.

어제가 불행한 사람은 십중팔구 오늘도 불행하고,
오늘이 불행한 사람은 십중팔구 내일도 불행합니다.
어제저녁에 덮고 잔 이불 속에서오늘 아침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어제와 오늘 사이에는 ‘밤‘이 있습니다.
이 밤의 역사는 불행의 연쇄를 끊을 수 있는유일한 가능성입니다.
밤의 한복판에서 잠들지 말아야 합니다.
새벽을 위하여 꼿꼿이 서서 밤을 이겨야 합니다.
- 신영복, <오늘과 내일 사이>.

아마 이때가 내 ‘취향’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명징한 이유는 없지만 끌리는 것, 자꾸 찾게 되는 것, 익숙한 것, 그래서좋은 것. 그냥 내 것 같은 느낌과 처음 만났다. 한 사람의 취향은 곧 그 사람이다. 어떤 의도나 목적을 통해 자기 취향을만들어 갈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어느 순간 우연히 마주하게 된 한 곡의 노래,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를 통해서도 ‘개취(개인의 취향)‘는 탄생한다.

"탁현민의 시는 시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내용도 감상도크게 막히는 부분이 없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그의 생각과 감정이 그대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런데 왜 그럴듯한 그의 시가 오히려 그를 주저앉히는 것일까. 탁현민의 시는 한편의 시가 갖추어야 할 우주가 없다. 시인은 저마다의 세계관으로 타인이나 다른 세계와 교신한다. 이때 자신만의 세계관, 자신만의 우주가 없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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