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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나는 결심했다. 절대로, 다시는, 어떤 사람의 정신이나 신체 기능을 근거로 그 사람의 삶의 질을, 그 삶과 살 권리를 판단하지 않겠다고. 당연히 나이를 근거로도 말이다. 나는 수년 동안 나 자신을 포함해서 의료진, 돌보미, 가족과 같은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만족감은 물론이고 바람이나 희망에 관해서도 쉽게 결론 내리는 모습을 자주 봤다. 편견은 존재한다.따라서 우리는 우리 안에서 편견을 찾아내고 용감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솔직한 대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으며,사람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우리 의사들에게 말해주거나 보여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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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G 환자가 도착했어요."
나는 쿵쿵대며 병동에서 내려갔고 커튼을 홱 젖혔다. 환자는 이송용 병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작고, 나뭇가지처럼 비틀린 까만 팔다리는 부서지기 직전인 까마귀 둥지 같았다. 조그마한 몸통은 여섯 살 아이만 했다. 그리고 얼굴에는! 바다처럼넓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고, 갈색 눈은 즐거움으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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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뇌성마비를 앓아서 의사소통이 안 되고, 대소변을못 가려요. 밀착 간호가 필요합니다. 삼키는 건 위험할 수 있고마실 수도 없는 데다가 24시간 동안 영양관으로 아무것도 넣지못했어요. 죄송합니다. 환자는 지금 가고 있어요."
나는 전화를 끊고서 병동으로 가는 이송용 병상이 드나드는 통로의 콘크리트 기둥에 기댔다. 비참한 쪽으로 생각이 흘렀다. 의미가 뭐지? 무슨 의미란 말이야? 왜 그 사람을 살려두려고 애쓰느라 내 시간을 낭비해야 하지? 그 사람은 삶의 질이 아주… 형편없는데. 호출기가 다시 울리고 나는 그 환자에 관한 생각을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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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이 과정에서, 두려움과 편견이 뒤섞여 대화를막는 치명적인 장애물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가 중요한말을 안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우리를 두고 편협하거나 이기적이라고 생각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헌신적인 아내는 남편을요양원으로 보낼지를 성인이 된 자녀와 이야기하는 것이 자기의 부담을 덜려는 욕심처럼 보일까 봐 두려울지도 모른다. 새미는 노인의학 전문의가 더 자세한 사전돌봄계획을 요구하는것이 환자가 응급실과 병실을 덜 찾아오게 만들려는 바람처럼해석될까 두려워한다. 우리 의사들은 모두, 노화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우리를 곧장 탐욕스럽고 인색하다고 여길까 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우리는 편견과 두려움때문에 중요한 대화를 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걸 두려워하면중요한 문제를 전혀 다룰 수 없게 될 때가 많다. 따라서 우리는그 문제를 이야기하는 법을 알아내야 한다. 나는 나이가 아주많은 사람과 그 가족을 오랫동안 돌보면서 이런 문제는 담아둘수록 불행, 걱정, 분노를 일으켜 우리를 짓누른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런 문제는 양지로 끌어와야 우리가 안심할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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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자의 인문 여행
이영민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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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를 알기 위해서는 타인과 다른 집단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일상 속에서는 나와 극명하게 ‘다른’ 존재들을 만날 일이 별로 없다. 여행을 떠나야 낯선 세계 속에 던져짐으로써 나와 다른 존재들을 마주할 수 있다. 가령 인도는 한때 한국 여행자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인 여행지로 떠올랐다. 그곳에서 매일 명상과 요가를 하며 새로운 자신을 만났다고 극찬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마음 수련한 것만으로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일까? 나는 그들이 호텔 안에만 있지 않고 인력거와 자전거, 오토바이와 삼륜차, 크고 작은 자동차의 매연과 경적 소리가 뒤엉킨 거리를 헤쳐 나가 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타지마할 같은 찬란한 경관만이 아니라 시장에 가서 모양, 색깔, 심지어 냄새마저 각양각색인 물건을 만나며 흥미로운 차이를 발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즉 그들이 만난 낯선 일상이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

여행서들을 읽으며 중요한 것이 간과되어 있음을 확인하곤 한다. 여행지에서 낯선 대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지리의 문제가 별로 다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에’ ‘어디로’의 문제가 소홀하게 다루어질 때마다 나는 의문이 든다. 낯선 장소와의 조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과연 성찰이 가능할까? 낯선 장소를 어떻게 만나는지에 따라 성찰의 깊이도 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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