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길들여지면, 화폐는 이미 부차적이다. 이 요동치는 시장의 리듬에 신체가 중독되어버린다. 결국 노동이 사라진 자리에 도박이, 그것도 아주 격렬한 ‘머니게임’이 일상을 지배하게 된 셈이다. 따지고 보면 자본은 거의 모든 행위를 중독의 방향으로 이끈다. 쇼핑에 중독되고, 야식에 중독되고, 미드에 중독되고….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일중독, 연애 중독, 관계 중독, 뮤지컬 중독, 헬스 중독 등 삶의 전 과정에 다 ‘중독’이 따라붙는다. 그 모든 중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화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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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은 주말엔 쉰다. 하루 중에도 장을 마치는 시간이 있다. 그나마 일상의 흐름을 보장해준 인간적인(?) 투기인 것. 그에 반해, 가상화폐는 24시간 풀가동이다. 자는 시간, 주말, 휴일 따위가 없다! 잘 때도, 화장실에 다녀올 때도 시장은 요동친다. 누구를 만나고, 뭔가를 생각하고, 휴식을 즐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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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그렇다. 인간의 본질이 과연 노동인가? 호모사피엔스(생각), 호모에렉투스(직립), 호모루덴스(놀이), (언어) 등은 들어봤지만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단어는 잘 모르겠다(나만 모르나?). 그건 인간의 본성 가운데 노동이 절대 핵심은 아니라는 뜻이리라.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귀족이나 양반 같은 상류층 계급은 한결같이 ‘노동에서 벗어난’ 집단이었다. 그래서 정신 활동(‘노동’이 아니라 ‘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고귀한 삶의 척도는 육체적 노동과 물질적 생산이 아니라 정신적 깊이와 지적 확장이라는 의미다. 지금까지 그런 활동은 소수에게만 허용되었지만, 4차산업혁명과 더불어 그런 삶의 가능성이 모두에게 열린 것이다.
그게 대세라면 백수는 더 이상 열등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오히려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자연스러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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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비웃음거리가 아닌 신성한 대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그 옷을 입은 사람의 날카롭게 꿰뚫어 보는 진지한 눈빛과 그 눈빛을 통해 전달되는 참된 생명력이다. 어릿광대가 복통으로 이리저리 뒹군다면, 그의 의상도 그 분위기를 살리는 데 한몫을 할 테고, 병사가 포탄에 맞아 쓰러지면 넝마 같은 군복도 자주색 왕실 의상만큼이나 그에게 잘 어울려 보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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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할 일’이나 ‘되어야 할 사람’이지,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도구가 아니다. 그러니 아무리 입은 옷이 남루하고 더럽다 해도 새 옷을 구하지 않음이 좋을 듯하다.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일하고 먼 길을 항해해 나감으로써 스스로 새로운 사람이 된 듯이 느낄 때, 그리하여 헌옷을 입는 것이 마치 낡은 병에 새 포도주를 담아 두는 듯한 느낌이 들 때, 그때 새 옷을 장만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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