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을 만드는 것은 가장 게으른 방식이다. 내면을 향한 칼끝을 바깥으로 향하는 것이다. 어떤 사회 이슈든 양극단에 치우친 이들의 이해하기 힘든 공격성과 적개심에는 이 같은 ‘투사Projektion’의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 부와 권력을 한 손에 쥐고도 여전히 적을 만들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이들이다. 그러다 죄다 한 방에 훅 간다. 열등감은 외부로 투사하여 적을 만드는 방식으로는 결코 극복되지 않는다. ‘적’은 또 다른 ‘적’을 부르기 때문이다. 타인들과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한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속에 깊이 박힌 대못’처럼 그저 성찰의 계기로 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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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관계 과잉’의 삶을 수시로 ‘탈맥락화’해야 내 삶을 창조적으로 만들 수 있다. 타의에 의해 ‘탈맥락화’되는 순간에도 그리 당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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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걱정이 습관처럼 되어버린 이가 주위에 참 많다. 잘나가는 사람일수록 그렇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 한들 밤마다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성공인가. ‘96퍼센트의 쓸데없는 걱정’에서 자유로워야 성공한 삶이다.
˝자주 웃고, 잠 푹 자는 게 진짜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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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담론적’이어야 하고 삶은 ‘단언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불안하지 않다. 자꾸 ‘담론적’이 되어 흔들리는 섬에서의 내 미래를 안도현 시인의 시 「바닷가 우체국」을 다시 꺼내 읽으며 위로한다.
시는 이렇게 끝난다.
“길은 해변의 벼랑 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 / 훌쩍 먼바다를 건너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 파도 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 넣거나 /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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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는 걸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와 같은 문장들이 아주 인상적이다. 이런 글을 마주치면 몹시 설렌다. 단언적이기 때문이다. 시나 소설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바로 이 같은 단정적 표현들 때문이다. 삶의 무게에 주눅 든 개인들은 감히 할 수 없는 통찰적 선언들을 작가들은 앞뒤 안 가리고 과감하게 내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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