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닫힌 문 창비시선 429
박소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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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책 소개부터 살펴볼까요 ?

창비시선 429권. 2009년 등단 이후 자기만의 시세계를 지키며 사회의 보편적인 아픔을 서정적 어조로 그려온 박소란 시인의 두번째 시집. 시인은 "사회적 약자와 시대의 아픔을 개성적인 어법으로 끌어안았다"는 호평을 받은 첫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창비 2015)로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하며 시단의 주목을 받았다.

시집 독자들은 물론 시 전문 애플리케이션 '시요일' 이용자들로부터도 특히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박소란 시인은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더욱 섬세해진 감수성으로 삶의 순간순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체념의 힘을 빌려 생을 돌보는"(이영광, 추천사) 간절한 마음으로 닫힌 문을 두드리는 온기 있는 말들이 일상의 슬픔을 달래며 오래도록 가슴속에 여울진다.

이 시집을 처음 접했을 때

표지와 시집의 제목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한 사람의 닫힌 문' 과

열쇠 구멍 모양으로 바깥이 보이는 공간.

책 소개에서 볼 수 있는

'간절한 마음으로 닫힌 문을 두드리는

온기 있는 말들이 일상의 슬픔을 달래며'

라는 구절과 참 잘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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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시집을 즐겨 읽지는 않는다. 필요할 때 한 두 편 정도 읽거나, 좋은 시를 어쩌다 발견하게 되면 꼭꼭 씹어 읽어보곤 한다. 하나의 시집을 온전히 읽어본 적은 별로 없다. 그래서 이번에 '한 사람의 닫힌 문'을 읽으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하나의 시집을 쭉 읽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닫힌 문' 서평단을 신청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서평단 모집 포스팅에 실려 있던 <모르는 사이> 라는 시 때문이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말투와 정말로 모르는 사이인 사람을 대하듯 이름이 무엇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보고 싶어하는 화자가 낯설지 않았다.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길을 달려가고 있는 누군가가 듣고 있는 음악과 그가 가진 생각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것.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한다. 그저 '모르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화자는 슬퍼한다. 인사 한 마디 나누지 못하고 헤어져야 하는 현실에 슬픔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그저 옷깃을 스치기만 해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듯이, 서로를 지나치기만 해도 그것이 만남이라면 우리는 수없이 많은 만남과 이별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만남과 이별에 둔감하거나, 그것이 만남과 이별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슬퍼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슬픔은 그저 감정의 소모일 뿐, 현실적으로는 그런 여유를 내기가 쉽지 않다. 슬퍼하거나 상심할 일이 있더라도 얼른 추스르고 일어나 회사에 가거나 학교에 가야한다. 그것이 직장인으로, 학생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은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 나는 소란입니다' 인데, 이 연을 읽고 나도 내 이름을 넣어 말해보았다.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나는 경원입니다." 누군가의 닫힌 문,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한 마디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먼저 손 내밀어 준다면 그 행동에 용기를 얻어 나의 손을 잡아줄 사람이 있을테니까. 그리고 그 사람의 손은 또 다른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테니까. 나는 이 시에서 따뜻함과 온기를 느꼈다. 겨울에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당신이 눈을 준 이 저녁이 조금씩 조금씩 빛으로 물들어 간다고' 라는 구절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눈길을 주었기 때문에 저녁이 빛으로 물들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신 덕분에, 하루를 잘 살아낸 당신 덕분에 저녁이 더욱 빛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른 시들을 소개하고 싶기도 하지만, 나의 마음에 가장 큰 울림을 준 <모르는 사이>라는 시만 소개하도록 하겠다. 시집에 실린 다른 시들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직접 한 자 한 자 꼭꼭 씹어서 읽어주셨으면 한다. 시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읽혀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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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이

당신은 말이 없는 사람입니까

이어폰을 꽂은 채 줄곧 어슴푸레한 창밖을 내다보고 있군요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를 태운 7019번 버스는 이제 막 시립은평병원을 지났습니다 광화문에서부터 우리는 나란히 앉아 왔지요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눈을 준 이 저녁이 조금씩 조금씩 빛으로 물들어 간다고

건물마다 스민 그 빛을 덩달아 환해진 당신의 뒤통수를 몰래 훔쳐봅니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입니까 당신은

오늘 낮에 혼자 밥을 먹었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이 가득한 광장을 혼자 걸었습니다

언젠가 당신은 그곳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난 적이 있지요 밥이나 한번 먹자 악수를 나누고서 황급히 돌아선 적이 있지요

나는 슬퍼집니다

그렇고 그런 약속처럼 당신은 벨을 누르고 버스는 곧 멈출 테지요

나는 다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오늘의 변덕스러운 날씨와 이 도시와 도시를 둘러싼 휘휘한 공기에 대해 당신 무릎 위 귀퉁이가 해진 서류가방과 손끝에 묻은 검뿌연 볼펜 자국에 대해

당신은 이어폰을 재차 매만집니다

어떤 노래를 듣고 있습니까 당신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들리지 않는

그 노래를 나도 좋아합니다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문이 열립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당신이 유유히 문을 나섭니다 당신의 구부정한 등이 저녁의 미지 속으로 쓸려갑니다

우리는 헤어집니다 단 한번 만난 적도 없이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내 이름은 소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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