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3
서머싯 몸 지음, 송무 옮김, 나현정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9.2~9.3


이 책 표지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어쩐지 이 캐릭터가 고갱이 타히티를 배경으로 그렸던 그림과 유사하다는 생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소설 <달과 6펜스>는 서머싯 몸이 고갱을 모델로 쓴 소설이다. 예전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고갱의 작품을 여럿 본 기억이 난다. 그림을 볼 줄은 모르지만 워낙 유명한 그림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계속 눈에 밟히기도 했다. 고갱의 그림 속 모습은 어쩌면 그냥 타히티라는 섬에서는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상적인 모습에 불과할지 모른다. 헌데 이처럼 유명해지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고갱의 위대한 예술성을 증명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이 소설 <달과 6펜스>는 정말 잘 읽힌다. 정말 재미있게 읽힌다. 스트릭랜드를 보며 대체 어떤 인물이지, 나를 화나게 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행동을 할까 궁금해서 자꾸만 읽게 만들었다. 이 소설이 인상적인 것은 모두가 전전긍긍해 하며 생계를 걱정하고 시대적으로 전후 상황에서 황폐한 삶을 살던 때에, 작가인 서머싯 몸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라는 메세지를 던졌다는 점이다. 물론 요즘 같으면 우리가 많이 들을 수 있는 문구이지만 그 시대에는 아마 이런 생각을 하는게 남다른 발상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달과 6펜스>라는 제목은 서로 대조되는 두 대상을 가리킨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고갱을 모델로 한) 스트릭랜드는 영국 출신인데, 6펜스는 이 소설 집필 당시 영국에서 사용했던 화폐이다. 지금은 영국이 5펜스를 사용하지만, 과거 영국이 12진법을 사용했던 때에는 6펜스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기서 6펜스는 물질적 가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매우 작은 값어치이다. 1파운드도 아닌 6펜스를 제목에 넣은 것은 그만큼 작은 물질적 가치임에도 우리는 그것을 잡으려고 무던 애를 쓴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와 대조되는 달, 달과 6펜스는 모두 원이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상징적 의미는 매우 다르다. 달은 여기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를 말한다.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6펜스를 쫓느라, 정작 중요한 달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사실 누군들 안 그러겠냐만은, 나 역시 하고 싶은 것 • 배우고 싶은 것 • 읽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그것들을 다 하려다보면 지금 내가 앞으로 직업을 가질 때 필요한 역량을 갖추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을 소홀히 하게 된다. 하지만 그래, 그런 역량들이 다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이 요구하는 성적, 스펙, 영어점수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또 따로 있는데 내가 왜 그들이 요구하는 표준에 그대로 맞춰야 한단 말인가.... 늦은 밤, 감성에 젖어 공연히 억울해질 따름이다. 때로는 잠깐 쉬어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대학졸업장만을 따기 위해 코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시간들ㅡ 조금만 인생을 길게 보면 안될까. 고갱 같은 예술적 재능은 없기에 스트릭랜드처럼 아예 모든 걸 내팽개치고 그림을 그릴 수는 없겠지만, 나도 ‘달’과 ‘6펜스’의 수평선 그 어느 중간 지점 쯤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조금 더 몰두하면서 소박한 행복을 만들어가는 것... 그래서 그 행복이 동력이 되어, 다시 현실에 돌아왔을 때 지치지 않고 가던 길을 또 이어갈 수 있다면 말이다.

나는 어쨌든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견디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는 문제가 되지 않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육체를 벗어난 영혼이 머물 곳을 찾아 방황하다가, 마침내 머나먼 이국 땅에서 다시 육체의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는 그곳에서 자신을 발견했던 것이다.

진심으로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곳에서 마음 편히 지내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봉 일만 파운드에 아름다운 아내를 얻어 저명한 외과 의사로 사는 건 진정 성공한 인생일까? 그것은 인생의 의미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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