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프레이야 > [퍼온글] [스크랩]인터넷이 느려졌을 때 참고하세요

인터넷이 느려졌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1)
인터넷이 느려졌어요!

악성코드에 감염되었다면 인터넷도 느려집니다. 다른 컴퓨터로 악성코드를 퍼뜨리기 위해서 인터넷 자원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악성코드에 감염되어 인터넷이 느려졌는지를 확인하려면, 내 컴퓨터의 네트워크 연결 상황을 확인해 봐야 합니다.

네트워크 연결을 확인하는 방법은 차근차근 살펴본다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시작]-[(모든) 프로그램]-[보조 프로그램]-[명령 프롬프트]를 눌러 도스 창을 띄웁니다.

도스 창에다 "netstat -na"라고 입력합니다. (분량이 많을 경우 "netstat -na | more"라고 입력합니다.)



[정상적인 네트워크 연결 상태]

인터넷이 느려졌다면?

악성코드에 감염되어 있터넷이 느려졌는지를 확인해 보세요. 내 컴퓨터의 네트워크 연결 상황을 확인하면 알 수 있습니다.
[시작]-[(모든) 프로그램]-[보조 프로그램]-[명령 프롬프트]에서 netstat -na를 입력하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MyV3SpyZero


TCP / UDP가 뭐죠?

자~ 이제 netstat -na를 입력한 것만으로도 우리는 보안전문가나 다름없습니다.

이 명령어의 출력결과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일단 "Proto"라고 표기된 부분은 프로토콜(Protocol; 규약)을 의미합니다.

간단히 설명해서 네트워크 상의 PC 들이 서로 통신하는 전송규약을 말합니다.

더 쉽게 설명하면, "내가 이렇게 보내면 이렇게 알아들어라~" 하고 미리 정의하는 약속을 말합니다.

어렸을 적에 친구들과 암호나 은어를 정해서 사용하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규약을 사용하면 남들이 우리가 무슨 이야기 하는지 알기도 힘들고, 우리는 많은 이야기 할 필요도 없이 몇가지 단어들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 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서로 알아듣기 위해서는 미리 정의를 해두어야 겠지요.


TCP라는 규약은 말할 때, 그 사람을 콕 찍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철수야!"라고 먼저 그 이름을 부릅니다.

철수가 "왜?" 라고 대답하면 "내 말 좀 들어봐~" 하고 말을 시작하는 방식입니다.

UDP라는 방식은 그 사람 이름을 부르지 않고 그냥 이야기 해 버리는 방식입니다.

"철수야 놀자~"라고 그냥 철수쪽에다 대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 방식은 확실성은 없습니다. 철수가 주목한 상태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므로 철수가 못 들을 수도 있습니다.

악성코드는 TCP방식을 사용합니다. 보다 확실한 전파를 이용한다고 할까요?

악성코드는 TCP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철수야? 영희야? ..."등등의 이름을 쭈욱 불러댑니다.

그중에서 누군가가 "왜?"라고 대답한다면 그 사람에게 악성코드를 퍼뜨리게 됩니다.

때문에 이 TCP 부분만 주의깊게 보면 됩니다.


Local Address / Foreign Address는 뭐죠?

다음 줄인 Local Address 부분입니다. 이것은 내 컴퓨터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IP주소:포트번호"로 나타납니다.

그 다음 줄은 Foreign Address 입니다. 내 컴퓨터와 연결된 다른 컴퓨터입니다.


State는 뭐죠?

State를 보면 내 컴퓨터와 연결된 컴퓨터가 어떠한 상태인지를 알 수있습니다.

- LISTENING : 귀를 기울인다는 뜻입니다. 내 귀(포트)를 열어놓고 통신에 귀기울이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 SYN Sent : 이것은 "철수야~"하고 누군가를 부르고 난 후 그 대답을 기다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악성코드에 감염되었을 때, SYN Sent 상태가 많습니다.)
- ESTABLISHED : 상대방으로 부터 "왜?"란 답을 듣고 통신이 맺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 Time Wait : 중간에 말을 쉬거나, 말을 다 듣고 통신을 끝내기 위해 잠시 기다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자~ 지금까지 "netstat -na"를 입력한 결과 화면에서 각각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아봤습니다.

이제 이러한 결과 값이 어떤 상태일 때 악성코드 감염을 의심해야 하는지를 다음 편에서 알아보겠습니다.

인터넷이 느려졌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2)

네트워크 연결 상태가 어떤 형태일 때에 문제가 있는 건가요?

앞 편에서 악성코드에 감염되어 인터넷이 느려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내 컴퓨터의 네트워크 연결 상황을 확인하는 방법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럼 네트워크 연결 상황이 어떤 모습이 때에 악성코드 감염을 의심해야 하는지 궁금하실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악성코드는 TCP 방식으로 "철수야? 영희야? ..."등등의 이름을 쭈욱 불러댑니다.



[악성코드에 감염되었을 때의 연결 상태]


위와 같은 형태가 악성코드에 감염되었을 때에 보여지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입니다.

특징을 뽑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포트"라는 말은 통신이 이루어지는 통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1. TCP 포트의 연결이 많다. (여러 사람을 동시에 부른다는 의미입니다.)
2. Local Address의 포트가 순차적으로 보인다. (내 컴퓨터의 포트가 많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3. Foreign Address의 IP주소가 순차적으로 보인다. (여러 사람을 주욱 나열한다는 의미입니다.)
4. Foreign Address의 포트번호는 대부분 135, 139, 445, 6667 포트 등으로 일정하다.
(악성코드의 일반적인 특징입니다.)


위의 그림을 보고 현재 이 컴퓨터의 상황을 설명하자면, 어떤 프로그램이 내 컴퓨터의 모든 수 많은 통로를 열어 다른 임의의 사용자의 135번 포트로 신호를 보내고 그 신호에 대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쉽게 말하면, 내 컴퓨터는 이미 악성코드에 감염이 되어 있고, 이 악성코드가 내 컴퓨터를 이용해서 다른 컴퓨터에 마구 접속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정도면 인터넷 속도는 매우 느려지게 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개념이 있습니다. "방향이 어느 쪽인가?"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이렇게 네트워크 연결이 많은 경우 외부에서 내 컴퓨터로 마구 접속을 시도하는 것인지, 내 컴퓨터에서 외부로 접속을 시도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부분은 오히려 간단합니다. "포트가 다양한 쪽에서 포트가 일정한 쪽으로"가 화살표의 방향입니다.

위의 그림에서 보면 내 컴퓨터의 포트는 다양하고 연결된 외부 컴퓨터들의 포트는 일정합니다.

이것은 데이터가 내부 →외부로 나가는 것이고, 외부로 무언가를 퍼뜨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 "외부 →내부" 일 때에는 악성코드에 감염된 것이 아닌가요?

그럼 아래와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요?



자, 위에서 정리한 악성코드 감염시의 특징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1. TCP 연결이 많다. →맞습니다
2. Local Address의 포트가 순차적으로 보인다. →아닙니다
3. Foreign Address의 IP주소가 순차적으로 보인다. →맞습니다
4. Foreign Address의 포트번호는 대부분 135, 139, 445, 6667 등으로 일정하다. →아닙니다


2번과 4번의 경우가 다릅니다. 그럼 데이터가 움직이는 방향을 살펴봅시다.

"포트가 다양한 쪽에서 포트가 일정한 쪽으로"가 화살표의 방향이므로 이것은 외부 →내부로의 수많은 접속이 이루어 지고 있는 경우입니다.

때문에 이것을 악성코드에 감염된 경우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악성코드는 수많은 임의의 사용자에게 접속을 시도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는 내 컴퓨터가 일종의 서버로 사용되어 여러 사용자들이 내 컴퓨터에 접속해서 어떤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 발생하는 결과입니다.

그림을 보면 내 컴퓨터에서 80번 포트가 열려있습니다. 80번 포트라는 것은 주로 인터넷을 할때 사용되는 포트입니다.

따라서 이 결과는 내 컴퓨터가 웹서버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포탈 사이트의 웹서버에서 netstat 명령어를 입력한다면 위와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될것입니다.


자세히 살펴봤지만 정상인 것 같은데요?

네트워크 연결상태가 정상임에도 인터넷 속도가 느려졌다면 다른곳에서 원인을 찾아봐야 합니다.

프록시 서버 설정 때문에 인터넷이 느려질 수도 있습니다.

"프록시 설정 검색중..." 이라는 문구가 인터넷 익스플로러 왼쪽 아래부분에 나온다면 프록시 설정도 확인해 봐야합니다.

프록시 서버라는 것은 기업체나 관공서 같은 곳에서 사용하는 설정입니다.

개인 사용자인데도 이러한 메세지가 나온다면 프록시 설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있지도 않은 프록시 서버를 찾느라 인터넷 속도가 느려지는 것입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도구]-[인터넷 옵션] 항목에서 프록시 서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연결탭을 누르고 버튼을 누릅니다.



체크가 되어있는 것이 있다면 모두 해제합니다.


그래도 마찬가지인데요?

만약 프록시 설정과도 관련이 없는 경우라면, 인터넷 회선 제공업체로 문의하시는 게 좋습니다.

간혹 네트워크 유지보수 공사로 인해 속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네트워크 장애가 있다면 인터넷 회선 제공업체에서 해결을 해줄 것입니다.


자~ 지금까지 작업관리자 창시작프로그램, 그리고 nestat 명령을 통해 인터넷이나 시스템이 느려졌을때 악성코드로 인한 현상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을 알아보았습니다.

이 정도만 확인한다면, 어느 누구의 컴퓨터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라도 악성코드로 인한 현상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컴퓨터의 오류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상증상이 악성코드로 인해 발생한 것이 분명할 때에는 바로 백신프로그램을 실행시켜 악성코드를 치료해야합니다.

또한 악성코드와 관계가 없을 때에는, A/S를 받아보거나 프로그램의 제조업체로 문의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가장 빠르고 현명한 방법입니다.

 

출처 : Tong - Ŀøυё 진이님의 ☆*PC의 모든것*☆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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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프레이야 > 불멸의 연인

 

제법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인데 다시 보았다. 연기파 배우 게리 올드만이 베토벤으로 열연했다. 괴팍해 보이고 섬세하면서도 열정 가득한 표정을 주름 하나까지도 잘 지어냈다. 역사적 인물을 영화화할 때면 인물의 모든 면을 다루기엔 제약이 있다. 어느 곳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조금은 달라지겠거니 하고 보게 된다. 베토벤의 작품들을 영화 전반에서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볼륨을 높여서 보았다. 특히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의 선율이 듣기에 참 좋았다. 오케스트라는 헝가리의 유명한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가 담당하고 요요마가 첼로 협연을 했다고 한다.


베토벤이 병으로 죽은 1827년에서 시작하여 절친한 친구 쉰들러에 의해 그의 과거를 회상하며 격변의 시대, 격정의 인물에 빨려 들어간다. 유서에 남긴 ‘나의 천사, 나의 모든 것, 나의 분신’ 이라는 여성을 찾아 헝가리까지 가는 쉰들러에 의해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 과정에서 세 명의 여인이 드러나고 바로 그 정답의 연인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귀족의 여인이 아니라 가구제조공장의 딸이다. 어느 정도 복선이 깔려있었지만, '희극은 이제 끝났다'는 베토벤의 마지막 말이 쓴 웃음을 남긴다. 사랑의 오해와 질투와 끓어오르는 정염이 안타까웠다.


베토벤은 음악가로서 가장 민감해야 할 부분의 장애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극복하고 인간 승리의 본보기로 존경 받는 인물이다. 공화주의자였던 그가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한 걸 보고 그에 대한 음악적 헌사를 지워버리고 그냥 ‘영웅’으로 제목을 달았다는 사실을 비롯해, 그의 혁신적이며 과감한 사상도 특기할 만하다. 베토벤은 아홉 가지 교향곡 모두 귀족들만이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는 점에서도 새로운 시대정신을 지녔던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베토벤의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전문을 읽고 가슴이 울렸던 기억이 있다. 비엔나로 온 이탈리아 백작의 딸 줄리에트와 헤어진 후가 이 유서를 썼을 즈음인데 영화에서는 이 유서가 나오지 않았다. 그랬다면 베토벤의 인간적인 고뇌와 숨겨진 고통 그리고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했던 그의 다정함과 인간애를 좀 더 엿볼 수 있었을 것이다. 비장함 뒤에 감겨 있었던 폭풍의 소용돌이가 느껴지는 글귀들.

 



영화는 그런 면모보다 지나치게 격정적인 성격과 유년의 아픈 기억과 신체적 장애로 인해 형성되었음직한 부정적인 성격을 부각하는 듯 했다. 그가 언제부터 청력을 잃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고 하는데 줄리에트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동기도 그의 장애였으니 대략 짐작은 할 수 있다. 그가 월광소나타를 연주하며 피아노 뚜껑에 귀를 갖다 대고 음파를 느끼는 장면과 그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당신의 아이를 가졌어요.’라는 연인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하는 장면이 가장 안쓰러웠다.


모차르트와 같은 신동으로 유명세를 타게 하려던 아버지의 뜻에 잘 따르지 않자 모질게 학대 받던 장면은 정말 가슴 아프다. 어느 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맨발로 잠옷을 입은 채 달아나 캄캄한 호수에 몸을 누이고 하늘을 보고 누운 루드비히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수많은 별빛 속에 잠겨있었다. 슬프면서도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환희의 송가’와 함께 나오는데, 1824년 그의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하며 초연을 하였을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끝나자 우레 같은 청중의 박수소리를 못 듣고 계속 오케스트라 쪽을 보고 서 있는 그를 한 연주자가 돌려세워 주었고 청중들 중에 많은 사람이 젖은 눈가를 닦았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청중이 모두 기립박수를 보내고 나이 든 베토벤은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지휘를 하며 베토벤은 별빛 속에 누워있었던 그 때를 회상하며 감격스런 표정으로 눈시울이 젖어든다.


베토벤의 실제 불멸의 연인은 사촌이라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좀 다르게 나온다. 그 역할을 한 배우, 개성 있는 얼굴이었다. 요한나 테르 슈테게 라는 배우였다.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쉰들러가 추적해간 두 번째 연인으로 나온다. 아름다운 얼굴로 회고하기를 자신은 진정 루드비히를 사랑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전원의 눈부신 풍경, 고풍스러움과 화려함을 보여주는 실내장식과 가구 등, 하나하나 볼거리가 많았다. 무엇보다 전편에 깔리는 베토벤의 음악을 듣는 게 덤이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무척 존경했다고 한다. 그가 누워있을 때 찾아오기도 했고 베토벤이 죽은 후 이듬해 그도 슬픔을 못 이기고 죽음을 맞았다. 베토벤이 쉰들러에게 하는 대사에 그의 경탄스러운 음악철학 같은 게 담겨있다. 음악은 위험한 것. 음악은 작곡가의 그때 그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에 음악을 듣는 사람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작곡가는 들을 사람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곡을 쓴다고. 그러니 고스란히 작곡가의 마음에 빠져야하고 그렇게 되어야 그 음악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음악은 사람에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이 말은, 음악적 야망을 꿈꾸었던 쉰들러가 그걸 접고 베토벤을 존경하며 평생 비서역할을 자청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진정한 예술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게 했다.


문득 드는 생각, 글은 어떤 것인가. 글은 음악만큼 위험한 것일까.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읽는 사람을 염두에 전혀 두지 않고 쓰는가. 베토벤의 음악처럼 위험할 정도로 매료되는 강한 중독성의 글이면 정말 위험한 것인가. 독자의 취향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독자의 눈치를 살피며 다듬느라 '위험한' 글 한 편 쓰지 못하니, 베토벤 같은 영웅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되지 싶다. 영화 제목 ‘불멸의 연인’은 고통 속에서도 불멸의 음악을 낳은 Ludwig Van Beethoven(1770-1827) 에게 바쳐도 좋을 이름이다.



- Immortal Beloved / 1995 / 버나드 로즈


- 2007년 내가 본 아홉 번 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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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프레이야 > 산책

 

아침부터 빗줄기가 내린다. 겨울비는 차가운 공기 때문인지 오히려 더욱 촉촉하고 따뜻하여 가슴에 스미듯 내린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나무 냄새가 짙어진다. 영화 <산책>은 푸르른 나무 냄새가 시원하게 콧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면서 차츰 근심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다. 장면 하나하나가 방금 깨끗이 세수를 하고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 같다. 전혀 꾸미지 않고 수수하니 말쑥한 얼굴로 웃고 있는 얼굴에 몸에서는 비오는 날 스미듯 배어나오는 나무냄새가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사람을 연상한다.

 



이정국은 1997년 최진실, 박신양이 나온 ‘편지’를 만든 감독이다. 2000년에 나온 ‘산책’을 처음 본 건 몇 년 전이었다. 작년에 히트한 <라디오 스타>의 분위기처럼 착한 사람들의 소박한 이야기가 생각지도 않은 감동을 몰고 오는 영화다. 지금은 티비에 나오지 않는 김상중(영훈 역)과 싱그러운 매력이 있는 박진희(연화 역)가 주연을 맡았다. 그 외에도 영훈의 오랜 친구로 세 명의 조연이 나오는데 한 명은 양진석, 두 명은 이름을 모르겠다. 티브이에서 낯은 익었지만.


산책은 영훈의 죽은 어머니가 생전에 바라던 것이다. 남편과 함께 손을 꼭 잡고 산을 오르거나 산책을 하고 싶어했다 . 영훈의 아버지(박근형 분)는 그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고 아내를 먼저 보낸 걸 자책하며 초라한 모습으로 산을 혼자 헤매고 다닌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연민으로 괴로워하는 영훈은 말도 꺼내보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아픈 기억까지 가슴에 묻고 홀로 산다. 그를 말해주는 건, 지금은 12기 후배가 배출된 대학 노래동아리 창립멤버로서 친구들과 4인조로 해마다 소박한 공연을 해 왔고 노래말과 곡을 쓰는 능력이 있다는 점, 그리고 마음이 무지 따뜻하고 느긋한 성격이라는 점이다.

 



사소해 보이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여러 인물들의 아픔을 호들갑스럽지 않게 보여주면서, 작은 계기로 스스로 치유해가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 감동은, 마치 숲에 들어가면 자연치유의 느낌을 받는 것처럼, 물기 머금은 초록공기가 폐부로 스며들어오는 것처럼, 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림자도 없다. 숲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가 숲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을 붙들어 미소 짓게 한다. 마지막엔 윤도현의 목소리로 노래가 나오고 선한 사람들의 평범한 얼굴이 편안하다. 역시 착한 마음은 미덕중에서도 최고의 미덕이지 뭔가. 자신의 삶의 무게가 무겁다고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몸도 마음도 편안한 자세로 이 영화를 보며 마음속의 산책을 해보면 좋겠다. "운전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달리는 게 아니라 어떻게 멈추느냐에요." 라는 연화의 말이 귀에 걸린다.

 



배우들의 연기하지 않는 것 같은 연기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주절거림처럼 보이지만 튀지 않으면서 돋보인다. 숲은 평창의 국유림이다.

 

산책 / 2000년 / 이정국

 

- 2007년 내가 본 일곱 번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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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프레이야 > [퍼온글] [한겨레21] 유시민처럼 철들지 맙시다

유시민처럼 철들지 맙시다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열린우리당의 386 형님들에게 ‘친구 유시민’을 말하다

▣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종이 신문은 외면했지만, 지난주 내내 인터넷에서는 유시민 의원이 스타가 되었다. 요즘은 둘 다 바빠서 통 볼 수 없는 처지지만, 그와 나는 대학 동기다. 유시민군이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그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다. 386 의원들이 벌떼처럼 그의 말투와 ‘싸가지’ 없음을 비난해도 이 기억이 있는 한 나는 386 의원들의 비판을 수긍하지는 못할 것이다. 유시민이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에서 “잊을 수 없는 그 봄”이라 단 한 줄로만 표현했던 1980년 5월의 일이었다.

한홍구와 유시민, 양치기 소년이 되다


△ 유시민을 향한 비판들은 민주당 경선 과정 때 노무현을 향했던 비판과 닮았다.

벌써 25년 전의 일이라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광주 학살이 벌어지기 1주일 전쯤인 5월11일이나 12일이었을 것이다. 이른바 ‘서울의 봄’ 당시의 복잡했던 정세를 여기서 설명하려면 너무 복잡해지니 간단히 넘어가기로 하자. 당시 서울대에서는 학생들이 거리로 나가기에 앞서 학내에서 농성 중이었다.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주기를 고대하고 있던- 그래야 ‘혼란’이 조성되고 군이 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고 생각했기에- 군부에서는 학생들을 자극하기 위해 여러 가지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공작을 벌이기도 했다. 계엄군(10·26 사건 당시 선포된 계엄령은 당시에도 살아 있었다)이 먼저 학교로 쳐들어와 학생들을 잡아갈 거라는 흉흉한 소문도 많이 돌았다.

그날 서울대에서는 300∼400명의 학생들이 철야 농성을 하면서 학교를 지키고 있었는데, 밤 9시가 지나 학생회 사무실로 여러 곳에서 주로 기자라고 하면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밤 군이 출동한다는 긴박한 정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보안사의 역정보였던 것 같다. 나는 그날 무슨 일 때문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학생회 주변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다가 유시민군을 만났다. 그는 당시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으로 그날 당번이 되어 농성을 이끌던 중이었다. 그날따라 복학생 선배들도 4학년 선배들도 보이지 않았는지, 그는 군이 쳐들어온다는데 농성 중인 학생들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의견을 물어왔다. 군이 쳐들어온다는 게 확실한 정보라면 1·2학년이 대부분인 농성 학생들을 빨리 해산시켜야지 별수 있겠는가? 힘든 결정이야 그의 몫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답했던 것 같다. 아무튼 유시민군은 해산 결정을 내렸고, 우리는 학교를 빠져나왔다.

그런데 그날 밤 늑대는 오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유시민군과 나는 다음날 아침 7시 조금 넘어 몇몇 친구, 선배들과 함께 학교에서 만났다. 민망하고 쪽팔려 그저 얼굴만 쳐다보며 웃기만 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날 아침 강의실마다 돌아다니며 양떼를 쫓아버린 전날 밤의 소동에 대해 사과와 해명을 하느라 혼이 났다. 그리고 5월14, 15일 가두시위에 이어 유명한 서울역 회군이 있었고, 운명의 5월17일이 왔다. 그날도 나는 무슨 일인지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대낮에는 이화여대에서 각 대학 총학생회장들의 회의가 경찰의 습격을 당해 참석자 대부분이 연행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학교로는 시시각각 군부대의 이동에 관한 제보가 빗발쳤다. 각 언론사 출입기자들도 오늘 밤 상황 발생이 100% 확실하다고 했다.

밤 10시가 다 되어 학교를 나오다가 유시민군을 만났다. 빨리 나가자는 말에 뜻밖에 그는 자기는 학교에 남겠다고 했다. 어떻게 군인들에게 텅 빈 학교를 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일단 피해야지 무슨 얘기냐는 내 말에 유시민군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본의 아니게 양치기 소년이 됐던 그날, 학생회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던 나는 그저 민망한 일로 여겼던 반면, 대의원회 의장인 그는 군인들이 의기양양하게 텅 빈 학교에 주둔하는 광경을 그렸던 것이다. 망해가는 나라에서 황현과 같은 선비가 목숨을 끊은들 그게 대세에 무슨 영향이 있겠냐마는, 황현처럼 목숨을 끊는 선비 하나 없었다면 조선의 망국이 얼마나 더 참담했을까? 유시민군을 남겨두고 통금이 다 되어 집에 들어와 텔레비전을 켜니 긴급 뉴스로 비상계엄 전국 확대의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그 뒤로 나는 현실에서건 역사에서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일을 보게 될 때면, 광주 학살의 전야에 그 넓은 관악캠퍼스의 불 꺼진 학생회관에 홀로 남은 유시민을 떠올렸다. 스물두살 어린 나이의 그는 다가오는 카타필라의 굉음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는 어떻게 '폭력학생'의 대명사가 됐나

유시민군을 다시 본 건 두달쯤 흐른 뒤였다. 전두환 일당의 ‘자비’ 덕에 그는 감옥에 가지 않고 군대에 가게 된 것이다. 유시민군은 합동수사단에서 풀려난 지 며칠 만에 입대했는데, 친구 몇몇과 함께 유시민군을 만났다. 합동수사단에서 엄청나게 고생했다는 소문에 걱정했지만, 생각 밖에 그의 표정은 밝았다. 신경림 선생 시처럼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반갑다고 만나자마자 우리는 낄낄댔다. 철이 없어서였는지 위로해줄 말을 찾지 못해서였는지 우리는 유시민군에게 군대 가서 잔뜩 ‘좇뺑이’ 치라고 위악을 부렸고, 유시민군은 “흥, 인생만사 새옹지마야. 니들은 무사히 졸업할 것 같냐”며 지지 않고 응수했다. 하느님이 계엄포고령을 위반한 죄로 계엄군이 된 불쌍한 유시민군의 소원(?)을 들어주셨는지 우리도 그해를 넘기지 못했다. 1980년 12월에 이른바 ‘무림 사건’이 발생했고, 군대 가는 유시민군을 놀렸던 악동들은 줄줄이 감옥과 군대에 가게 되었다. 유시민군은 친구라도 만나고 군대에 갔지만, 우리들은 수사기관에서 그대로 군대에 직행했다. 그래도 억울할 것은 없었다. 친한 친구들은 그때 다 같이 잡혀서 보안사에서 같은 버스 타고 군대에 갔으니까.

유시민군이 말한 대로 인생만사는 역시 새옹지마였다. “니들은 무사히 졸업할 것 같냐”던 그의 ‘악담’은 부메랑이 되어 그 자신에게 돌아갔다. 친구와 선배들이 줄줄이 엮인 무림 사건이 터지자 이등병이었던 그도 무사하지 못했다. 보안사에 끌려간 그는 밖에서 일을 저지른 우리들보다 더 심하게 당한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군대를 반년 정도 늦게 갔지만, 제대는 오히려 유시민군보다 빨리했다. 전두환 일당의 ‘자비’ 덕에 우리는 제적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에서의 군사 교련 이수로 인한 6개월 복무 단축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반면, 유시민군은 33개월을 모두 채우고 만기 제대한 것이다. 그런데 전두환이 정권을 찬탈한 뒤 처음으로 단체로 군대에 끌려간 우리의 제대를 앞두고 악명 높은 녹화사업이 실시됐다. 나는 정말 운좋게 사단 보안대에 15일 잡혀가서도 프락치 공작을 강요받지도 않고 뺨 한대 맞지 않고 재미없는 정훈서적 읽는 것으로 녹화사업을 마친 반면, 유시민군을 비롯한 많은 친구들은 “일신의 안전을 위해 벗을 팔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당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형태의 억압”을 당해야 했다. 유시민군은 그 자신이 고백한 것처럼 “보안대에 대한 공포감을 이겨내지 못하여 형식적으로나마 그들의 요구에 응하는 타협책으로써 일신의 안전을 도모”하게 되었고, 그 결과 엄청난 양심의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 군대 시절의 유시민. 강제 징집된 그는 군대에서 다시 한번 '무림 사건'에 휘말려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를 일으켜세운 것은 비슷한 시기에 녹화사업을 받은 여섯명의 젊은이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언제까지나 자신의 비겁을 부끄러워할 수 없었던 그는 녹화사업의 중단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고, 1984년 9월 제적학생 복교 조치가 있자 학교로 돌아와 복학생협의회를 조직했다. 그러나 유시민의 복학생 생활은 보름을 넘지 못했다. 이른바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때 참 프락치도 많았고, 가짜 학생도 많았다. 그런데 프락치 공작에서 진짜 무서운 건 프락치가 적에게 물어다주는 정보보다도 프락치 침투에 대한 공포와 적개심 때문에 운동 진영이 스스로 자살골을 넣게 된다는 점이다(시기와 무대는 다르지만, 내 박사학위 논문이 이 문제를 다룬 것이다).

박정희의 유신 시절에는 기관원(우리는 그들을 ‘짭새’라 불렀다)과 전경들이 공공연히 학내에 상주했다. 교정의 벤치란 벤치는 그들이 모조리 점령하고 있었고, 손바닥만 한 빈 공간은 전경들이 족구나 팩차기를 하는 놀이터가 되었다. 전두환 정권 이후 경찰이 이런 식으로 교내에 상주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경찰의 프락치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게다가 졸업정원제가 실시되면서 학생 수가 늘어나 같은 과 학생끼리 서로 얼굴을 모르게 되면서 가짜 학생도 덩달아 많이 늘어났다. 기관원을 사칭하는 가짜 학생에게 여학생들이 교내에서 성추행을 당하는 일이 여러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가짜 학생 또는 학생 신분이 아닌 사람이 적발되면 일단 그가 정보부나 경찰의 프락치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형편이었다. 대단히 잘못된 것이지만, 학생들이 이런 사람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왕왕 폭력이 행사됐다. 그 중의 한명이 몹시 심하게 얻어맞았는데, 당시 학생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한 전두환 정권은 이 사건을 학생운동의 도덕성에 결정적인 손상을 가할 기회로 활용하고자 했다. 마침 그를 직접 폭행한 친구가 복학생이었기 때문에 복학생협의회 의장이던 유시민군이 총학생회 간부들과 함께 구속됐는데, 죄명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이었다.

군사정권하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다들 긴급조치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계엄포고령, 반공법, 국가보안법 등 ‘뭔가 있어 보이는’ 법률 위반으로 감옥에 갔지 ‘폭처법’ 위반으로 감옥에 간 것은 처음이었다.

회심의 반격, 항소이유서

저들도 학생운동을 정치적 법률로만 탄압하면 오히려 영웅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는지 ‘프락치 사건’을 대대적으로 활용하여 학생운동의 폭력성과 과격성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경위야 어쨌든 폭력이 행사되고 사람이 다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학생운동은 꼼짝없이 당하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아니, 사람 좀 친 것 갖고 학살 정권, 고문 정권이 저럴 수 있느냐며 분개하기도 했지만, 남의 허물이 내 잘못을 덮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저들의 선전 공세에 분하고 억울하지만 속절없이 당하고 있을 때 회심의 반격을 날린 것은 바로 폭력과격 학생의 대명사가 돼버린 유시민이었다. 여기 몇줄로 줄여서 소개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명문인 ‘항소이유서’를 통해 유시민은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러시아 시인의 말을 빌려 “조국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로서 학생운동의 도덕성을 옹호했다. 이 글이 어떤 글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종종 “원래 착한 유시민이 군사독재의 모략에 맞서 ‘독한 마음’ 먹고 착한 모습을 보인 글”이라고 농반진반 말하곤 했다.

스물일곱살의 유시민이 쓴 ‘항소이유서’는 그 뒤 칼럼니스트로서, 방송인으로서, 저술가로서의 눈부신 활동에도 불구하고 유시민을 규정하는 꼬리표가 되었다. 그리고 17년이 지난 2002년 여름 그는 “바리케이드 앞에 화염병을 들고 다시 서는 심정”으로 또 하나의 격문을 날렸다. 정규군이 지리멸렬 무너지자 그가 의병의 깃발을 내걸고 뛰쳐나간 것이다. 사람들이 적당히 잊어버려야 역사이야기에 쓸 수 있을 터이지만, 이 일은 너무 가까운 과거의 일인지라 역사에 편입시키기에는 생뚱맞아 보인다. 그렇지만 여의도에 있는 이른바 386 의원들은 집단 기억상실증에 걸렸는지 불과 2∼3년 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 "열린우리당의 젊은 의원들이여, 쉽게 잊혀지지 않으려거든 철들지 말라."

추미애·김영환처럼 잊혀질 것인가

싸가지 없고, 독불장군이고, 독선적이고, 말을 함부로 하고, 동지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하고, 당내나 원내에는 지지세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인터넷에서만 극렬 지지세력들을 갖고 있고, 인간이 가볍고, 정통 세력이 아니고… 꼭 3년 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를 두고 나왔던 말이다. 유시민이 노무현이 아니지만, 그에게 가해지는 비판은 너무 신기할 정도로 똑같다. 어떤 386 의원은 유시민을 두고 지지의원이 다섯명도 안 되는데 당의장 경선에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비아냥거리지만, 기억하는가, 노무현이 경선에 나왔을 때는 노무현 본인도 국회의원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그의 곁에는 단 한명의 의원도 없었다. 한때 같은 변호사 사무실에 있었던 천정배 의원이 그나마 노무현을 지지했고, 김근태 후보가 경선을 접은 뒤 그의 캠프에서 옮겨간 이재정 의원이 노무현 후보의 옆을 지켰다.

독자들이 이 글을 볼 때쯤이면 열린우리당 경선도 다 끝났을 텐데 내가 굳이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유시민의 옛 친구라서도 아니고, 정치인 유시민이 당의장이 되는 것을 바라서도 아니다. 열린우리당 경선 과정을 보면서 너무 빨리 어른이 돼버린 386 의원들에게 한편으로는 크게 실망하면서, 그래도 독수리 5형제 세대의 막내인 젊은 그들의 앞날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탄핵 직후 인터넷을 떠돌며 사람들 반 죽도록 웃게 만든 ‘아무개 의원의 탄핵일기’ 한 구절이 생각난다. “잘나가는 정치인 말아먹는 기계… 동전만 넣으면 멀쩡한 인간이 깡통처럼 구겨져나오는 그 깡패 같은 넘 땜에… 그 넘 땜에 폐인된 유능한 정치인이 어디 한둘인가….” 솔직한 이야기로 탄핵에 가담한 민주당에도 참 아까운 인물들 많았다. 지금 그들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지난해부터 노안이 오기 시작해서 그런지 자꾸 나이를 따지는 글을 쓰게 되어 젊은 독자들께 죄송스럽다. 386이나 유시민군이나 나나 이제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데, 386 의원들이 너무 빨리 어른이 돼버려 아직 철이 덜 난 유시민이나 나 같은 사람들이 이제 그분들을 형님으로 모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마저 든다. 의원이 되었기 때문에 어른이 된 것인지, 아니면 숱한 386 중에서도 일찍 어른이 된 의장님, 회장님들만 의원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리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내가 독자들이 이 글을 볼 때쯤이면 열린우리당 경선도 다 끝났을 텐데 굳이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유시민에게 어떤 도움을 주자는 것이 아니다. 유시민을 오래 알고 지낸 사람으로서 386들이 유시민의 어떤 점 때문에 거품을 무는지도 요즘 말로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러나 유시민을 비판하는 386 의원들에게 꼭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유시민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수구에게 날을 세워 싸워봤느냐고….

학생운동의 역사를 볼 때 세대로서의 386은 너무 겉자랐다. 민간인 학살의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1950년대도, 60년대도, 70년대도 학생운동이 너무 많은 짐을 져야 했다. 그러나 광주를 거치면서 과대 성장한 국가기구의 대표선수인 군과 발육이 부진한 시민사회의 대표선수인 학생이 가장 첨예하게 격돌했던 80년대만큼 학생운동에 많은 짐이 지워진 적은 없었다. 90년대 이후 학생운동이 급격히 쇠퇴했다고 하지만, 사실 이는 학생운동 출신들이 다른 분야에 축적돼가면서 다른 부문의 운동이 성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민족민중운동의 상황이 이제 386 의원들처럼 의장님, 회장님 출신의 스타가 나오기는 어려워졌다. 독수리 오형제의 막내인 386들이 김문수, 이재오가 돼서는 안 되고, 추미애나 김영환처럼 나름대로 대단한 활약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잊혀져서도 안 되지 않은가?

철들지 않고 살면 즐겁지요

앞서 태어난 조카는 있어도 앞서 태어난 아우는 없다지만, 조폭 세계에 가면 나이 어린 형님을 모시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한다. <파이란>의 최민식처럼 늙다리 조폭 생활을 하다 보면 젊은 형님에게 굼뜨다고 야단맞기도 하는데, 이런 때 울컥 치미는 말이 있다. “형님도 내 나이 돼보슈.” ‘오지혜가 만난 딴따라’에서 오지혜가 윤민석에게 한 말을 나는 유시민에게, 그리고 너무 빨리 어른이 돼버린 386 모두에게 하고 싶다. 제발 철들지 말고 살라고…. 아는 의사에게서 철들지 않은 걸로 치면 거의 정신병 수준이라는 말을 칭찬으로 알았다는 하종강 형님 같은 분도 있지 않은가? 한국 사회처럼 점잔 빼는 사회에서 나이 들어 철들지 않고 산다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너무 빨리 어른이 돼버린 386 형님들도 이 나이가 돼보신다면, 유시민처럼 철들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즐거움 또한 꽤나 쏠쏠하다는 것을 아실 날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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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프레이야 > 오래된 정원

 

영화에서 '오래된 정원'은 두 사람이 숨어살았던 산골의 집을 말하는 것 같은데 제목이 영화에 그리 접목되지 않는 느낌이다. 소설에서의 대목을 찾아보았다.

 "우리가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어왔던 가치들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아직도 속세의 먼지 가운데서 빛나고 있어요....당신은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요. 혹시 바위틈 사이로 뚫린 길을 걸어 들어가 갑자기 환하고 찬란한 햇빛 가운데 색색가지의 꽃이 만발한 세상을 본 건 아닌가요.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 주인공 한윤희가 오현우에게 남긴 일기장에 적혀 있는 글이란다.(영화에선 이렇게 나오지 않지만)

2000년 황석영 작의 '오래된 정원'은 읽어보지 못했다. 지금 주문을 해 놓고 앉았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어딘지 께름칙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원작과 비교 아닌 비교를 해 보고 싶은 것이다. 소설가의 눈과 영화감독의 눈이 같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확인하고 싶다. 80년대에 대한 진혼곡 쯤으로 썼다는 원작과 영화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임상수가 바라보는 눈이라 해도 그 시대를 진정 뜨겁고 아프게 살았던 사람들에게 열패감을 줄 수도 있는 영화인 것 같아 보면서도 조심스러웠다. 그런 삶을 살지 못한 내가 오히려 부끄러워지는 영화였다. 영화 속 오현우도 부끄럽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면서도 현우가 실제로 현장에 몸 담는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아 설득력이 떨어진다. 운동권이니 사회주의니 유물론자니 하는 단어들이 툭툭 튀어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길바닥에 버려져 흙이 묻은 막대사탕을 보는 것 같았다. 운동권 후배들이 나누는 토론과 결의의 대사들을 '지리하게 늘어놓는 문어체'로 일축하는 윤희의 시니컬한 대사도 그렇다.



영화는 16년 8개월만에 보호감찰로 풀려나는 오현우가 돌아온, 지금은 부를 얻은 집에서 어머니가 싸서 넣어준 상추쌈을 한 입 가득 물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회상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초반부에서는 현재와 과거가 빠르게 교차하며 과거에 몰입하는 것도 막고 현재에 머물기도 막는 것 같다.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며 담담하게 과거 속으로 한 걸음씩 들어가는 현우. 그런데 중반 이후로 갈수록 현우라는 인물이 생명력을 잃고,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원작과는 별도로, 영화 속에서 '하나의 인물'로 살아나지 못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한윤희의 사진이 끼워져있던 책장의 글귀다. "시를 쓸 수 없었던 시대", 사진을 들어내니 드러나는 글귀, "서정시를 쓸 수 없었던 시대". 80년대를 산 사람 중 이런 이유로 비난 받고 시 쓰기를 포기한 사람도 가까이에 있어, 연민의 여운이 길었다. 이 글귀부터 초반부에서 내가 느낀 감독의 의도에 대한 의혹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었다. 감독이 의도한 게 '그들'에 대한, 아니 그날 이후의 그들 삶에 대한 조소가 아니라 자신의 방식에 의해 그들을 안아들이고 싶은 건 아닌지 싶어 조금 여유있게 보기 시작한다. 한윤희라는 인물, 그녀가 내뱉는 말과 행동, 그들만의 보금자리, 갈뫼에서의 시간을 통해. 특히 현우가 싼 김밥과 담근 술을 들고 높은 산에 올라 아주 오래된,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앉은 이들의 뒷모습을 통해서. 휴식과도 같은 시간을 주는 아주 크고 높은 느티나무 한 그루의 인상이 깊다. 



시위 장면이 현장감 있어 놀랐는데 당시의 필름이 아니라 실제로 연출하여 촬영했다고 해서 좀더 놀랐다. 화염병에 맞아 불 붙은 전경의 모습은 나중에 법대생 여자근로자의 분신투신장면과 대조된다.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고 부들부들 떨며 뜨겁다고 말하는 참혹한 얼굴을 비추다가 영화는 싸늘히 감정을 식히며 돌아선다. 술이나 마시러 가자고 말하는 윤희, 관객은 자꾸 부끄러워진다.

반효정, 윤여정, 박혜숙 등 조연들의 연기가 지진희보다 좋았다. 염정아는 마지막에 삭발을 하고 나온다. 분장이라 해도 두상이 아주 예쁘다. 그녀는 병색 짙은 얼굴을 캔버스에 담았다. 갈뫼의 그 집에서 오래도록 죽을 때까지. 끝장면에서는, 단 하나의 사랑을 옆에 두고 뒤로는 아버지, 딸 은결, 그리고 어머니... 모두 한 가족을 이룬 그림이 오래 비춰지면서 나윤선이 부르는 '사노라면'을 들을 수 있다. 청아해서 더욱 구슬프게 들리는 나윤선 식 '사노라면'이다. 사람들이 다 나갈 때까지 끝까지 듣고 일어났다. 흘러흘러가는 것들, 그 속에 미래가 있다고 믿고 싶다.



옥에 티라면, 오현우가 출소한 시점이 1998년 쯤일텐데 딸 은결이 입고 나온 옷이나 말투가 너무 2006년 식이다. 특히 피식 웃음이 나온 은결의 대사 "완전 멋있네요." 그리고 고등학생 나이일텐데 화장이 진하고 머리스타일도 파격이다. 엄마처럼 씩씩하고 당차게 삶을 사는, 개성있는 인물로 그리는 건지. '외톨이, 외곬수, 고집쟁이...' 라는 말을 서로 나누고 인정하고 나쁘지 않다고 결론 내고, 지나칠 정도로 쿨하게, 처음 만나 다시 헤어지는 이들의 머리 위로 눈이 내린다. 무수한 사람들 틈에서 이들 주위를 맴돌던 윤희의 환영이 뒤돌아본다. 그런데 스치듯 그녀를 본 현우의 마지막 대사에서 확 깨는 느낌이다. '이제 헛 게 다 보이네.'인데 그 어조가 너무 가볍게 농담조다. 임상수 식인가. 차라리 아무 말 없었다면...

 

2007년 내가 본 세번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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