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프레이야 > [퍼온글] 사진 한 장을 위해 목숨을 던진 기자 -로버트 카파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다”
-로버트 카파

1913~1954년, 41년의 생애를 산 남자.
어떤 위대한 역사가와 작가도 광포한 야만의 20세기를 이 남자처럼 사실적으로 그리지 못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도 이 남자가 찍은 사진 한 장만큼 전쟁의 참상을 극명하게 전달할 수는 없었다. 또 어떤 방대한 분량의 전쟁문학도 극한 상황에서의 휴머니티를 이 남자처럼 비극적으로 묘사하지는 못했다.

전설적 포토저널리스트, 포토저널리즘의 신화(神話), 가장 위대한 종군기자, 보도사진 에이전시 매그넘의 창립자…. 그 이름 앞에 붙는 형용어들이다. 그가 전 생애를 던져 찍은 사진 140점이 지난 3월 말부터 5월 26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전시되고 있다.

모든 사진기자의 우상이자 영웅이 된 남자, 그의 이름은 로버트 카파(Robert Capa)다. 너무나 유명한 이름. 그러나 로버트 카파는 본명이 아니다. 엔드레 에르노 프리드먼(Endre Erno Friedmann)이 본명이다. 왜 그는 본명을 쓰지 못하고 영어 이름을 썼을까? 여기에 그의 생애를 규정짓는 운명적 역사성이 숨어 있다.

로 버트 카파는 1913년 10월 22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양복점을 하는 가난한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때는 합스부르크 왕조가 지배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이 마지막 숨을 헐떡거리고 있던 시점이었다. 합스부르크 왕조의 중심부는 오스트리아 빈이었고,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그 주변부였다. 또한 그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유럽에 살면서도 비(非)유럽인으로 아웃사이더의 운명을 피할 수가 없었다.

1914년 유럽은 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그가 한 살 때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프로이센(독일)과 한편이 되어 프랑스·러시아 연합군과 전쟁을 벌인다. 그의 유년기 기억은 전쟁의 비참함과 굶주림으로 채워졌다.
1918년, 1차 대전이 끝났으나 그 후유증은 유럽 전역을 강타했다. 생필품 부족은 인플레이션을 낳았고 경제침체로 이어졌다. 경제난으로 인한 실업률 증가는 또다시 유럽 전역에 반(反)유대주의 기독교운동을 불러왔다. 반유대주의운동은 1930년대 들어 독일에서 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다.

그 는 1931년 좌익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헝가리에서 추방되어 독일 베를린으로 건너간다. 베를린대학을 다니며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사진통신사 데포트(Dephot) 암실보조원으로 취직한다. 이것이 프리드먼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그는 암실보조원으로 일하면서도 능력을 인정 받아 소소한 취재를 하게 된다.

1932년, 러시아의 레온 트로츠키가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해 망명길에 오른다. 그 해 12월, 트로츠키가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마침 데포트 통신사에서는 트로츠키의 강연을 취재할 마땅한 사진기자가 없었다. 대신 취재를 나가게 된 프리드먼은 단 한 번의 기회에서 사진 특종을 건져 올렸고, 이로 인해 정식 사진기자로 채용된다.

1933년, 히틀러가 반유대주의 광풍(狂風)에 편승해 권력을 잡게 되자 유대인인 프리드먼은 신변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베를린을 떠난다. 프리드먼은 부다페스트를 거쳐 파리로 들어갔다. 파리는 반유대주의의 영향에서 비켜선 도시였다. 그는 파리에서 세 살 연상의 포르투갈 출신 사진작가 게르타 포호라일(Gerta Pohorylle)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1935년, 프리드먼은 돈을 벌기 위해 ‘로버트 카파’라는 가공의 미국인 사진작가 행세를 한다. 게르타는 프리드먼이 찍은 사진을 미국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가 찍은 것으로 꾸며 신문사에 비싸게 판매한다. 유대인이라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런 식으로 사진작업을 하다 프리드먼은 로버트 카파로, 아내 게르타는 게르다 타로(Gerda Taro)로 아예 이름을 바꿔버린다.

로 버트 카파가 된 프리드먼을 세상에 알린 것은 스페인 내전이었다. 1936년 8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다. 카파 부부는 인민전선 진영에 서서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카파의 생애를 결정짓는 첫 종군취재였다. 당시 세계의 지성들은 프랑코 정권에 맞서 싸우는 인민전선을 지지하면서 앞다투어 참전했다. 앙드레 말로, 어네스트 헤밍웨이, 조지 오웰, 노먼 베순, 파블로 피카소 등이 인민전선 편에 선 지식인이다.

1936년 9월, 카파는 인민전선 진영의 코르도바 전투를 취재한다. 인민전선 병사가 참호에서 뛰쳐나와 돌격하는 순간 머리에 총을 맞고 뒤로 쓰러졌다. 이 찰나의 장면이 카파의 카메라에 잡혔다. 이 사진이 미국의 화보잡지 ‘라이프’에 실리면서 로버트 카파의 이름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이 한 장의 사진으로 로버트 카파는 전쟁 사진작가로 이름을 굳혔으며, 이 사진은 20세기의 전쟁기록 사진 중 가장 뛰어난 사진으로 평가 받게 된다.

1937 년 7월, 카파는 잠시 파리에 가 있었고 게르다는 혼자 전선에 남아 사진취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게르다가 후퇴하던 공화파의 탱크에 치어 즉사한다. 이 소식을 듣고 카파는 보름 동안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때 카파 나이 스물넷. 한창 젊은 나이였지만 이후 카파는 평생 독신을 고집했다. 카파는 수차례의 스페인 내전 취재를 통해 피카소와 헤밍웨이를 알게 되고 죽을 때까지 우정을 나누게 된다.

1938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카파는 중국 대륙으로 발길을 돌린다. 카파는 6개월간 중국 대륙을 누비며 중일전쟁을 취재해 일본군의 만행과 잔학상을 세계에 알렸다.
1939 년 9월,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카파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다. 헝가리 국적을 갖고 있던 카파는 미국 입장에서 보면 적성국(敵性國) 시민이었다. 미국 당국에 의해 카메라를 압수당할 처지에 몰리기도 했다. 위기를 넘긴 카파는 1942년 미국 잡지 ‘콜리어스’와 계약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연합군에 종군하게 된다.



잉그리드 버그만의 연인… 1954년 베트남전서 지뢰 밟고 사망

카파는 1943년 연합군의 북아프리카 탈환·시칠리아 탈환·나폴리 해방을 거쳐 이탈리
아 반도 전쟁을 취재한다. 2차 대전은 종군사진기자 카파의 명성을 또 한번 드날리게 했다. 연합군의 승리를 결정 지은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해안 상륙작전 취재였다. 연합군의 상륙작전 동행취재에 선발된 기자는 20명이었다. 이 중 사진기자는 네 명이었고, 로버트 카파가 여기에 포함되었다. 카파는 2차 대전 종군기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필맥)를 남겼다. 카파는 오마하 해변에 상륙하는 미군 제1파 부대와 함께 상륙용 주정(舟艇)에서 뛰어내렸다. 카파는 총알이 쏟아지는 그 순간을 이 책에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바닷물은 너무 차가웠고, 해안까지의 거리는 아직 100m 이상 남아 있었다. 내 주위로 총탄이 날아들어 물을 튀겼다. 나는 제일 가까운 철제 장애물을 향해 내달렸다. 병사 한 명도 나와 동시에 그 장애물 뒤로 뛰어들었다. 몇 분간 우리 둘은 장애물을 나눠 썼다. 그는 소총에서 방수포를 떼어내고는 연기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해안을 향해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 그제야 안전하다고 생각한 나는 나처럼 장애물 뒤로 움츠리고 숨어 있는 다른 병사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아직 이른 새벽이었기 때문에 선명한 사진을 찍기에는 좀 어두운 편이었다. 그러나 회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히틀러의 정책참모들이 디자인한 초현실주의 작품 같은 장애물 뒤에 작게 움츠린 병사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면 매우 효과적일 것 같았다.”

이때 카파가 찍은 사진은 모두 106장이었으나 ‘라이프’지 암실직원의 실수로 대부분 쓸 수 없게 되고 10장만 살아 남았다.
카파는 1945년 초 또 한번 목숨 건 취재를 감행한다. 미군 제17 공수단 대원과 함께 낙하산을 타고 독일로 침투한 것이다.
1945 년 6월, 카파는 파리에서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을 만나 2년간 연인으로 지낸다. 버그만은 딸을 둔 유부녀였으나 카파에 빠지고 만다. 종전 후인 1946년 카파는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버그만의 권유로 잠시 할리우드에서 영화 일에 관여하기도 했으나 곧 회의를 느끼고 영화에서 손을 뗀다.

1947년 카파는 카르티에 브레송, 데이비드 세이무어 등과 함께 보도사진 통신사인 매그넘(Magnum)을 설립했다. 1948~1950년 중동전쟁을 취재했고, 1950년 파리로 돌아온 뒤로는 3년간 매그넘사 대표로 일했다. 1949년과 1951년에는 피카소의 사생활을 보도하기도 했는데, 이때가 카파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다.
1954년 카파는 일본을 방문하고 있던 중 ‘라이프’지로부터 인도차이나 전쟁을 취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카파의 친구들은 베트남행(行)을 만류했다. 이미 낙하산 침투 취재까지 한 경험이 있는 카파는 이런 말을 남겼다.

“삶과 죽음의 확률이 반반이라면 나는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려 사진을 찍겠네.”
카 파는 1954년 5월 24일 북베트남에서 프랑스전투 부대원을 따라 취재하던 중 타이빈에서 지뢰를 밟아 폭사한다. 1차 대전의 전운(戰雲)이 감돌던 1913년에 태어나 종군기자로 다섯 전장에서 10년 이상 최전선을 지켰던 카파. 그의 마지막은 그의 생애만큼 영웅적이었다. 카파는 전쟁 혐오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죽음으로 그 피날레를 장식했다.


/ 조성관 주간조선 차장대우(mapl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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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프레이야 > 죽음을 보내고 나서
파니 핑크 - 할인행사
도리스 되리 감독, 마리아 슈라더 외 출연 / AltoDVD (알토미디어)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유명하다 싶으면 뒤로 일단 물리는 버릇이 있어 이제야 이 좋은 영화를 보게 되었다. 에디뜨 삐아프의 샹송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첫장면부터 매력적이며 귀엽고 발랄한 아가씨 파니 핑크가 등장하고 그녀의 독백을 들어보면 그녀가 고민하는 문제와 해결의 실마리가 언뜻 보이는 것도 같다. 이후로 카메라는 빠르게 파니를 훑어간다. 해골모양의 귀걸이, 죽음의 사신이나 쓸 것 같은 검은 중절모, 게다가 ‘죽음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자신의 주검이 들어갈 관을 정성껏 만드는 모습. 관뚜껑은 특별하게도 유리로 만들었다. 침울하고 단절된 분위기의 허름한 아파트와 그녀의 방, 삭막한 분위기의 엘리베이터는 파니의 이야기를 위해 장소를 제공하는데, 공항검색대 앞이 그녀의 현실이라면 이곳은 그녀가 무의식중에 소망하는 환상의 공간이 된다.


자신이 생각해도 자기를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여자, 남자친구랑 좋지 않은 일로 헤어져 4년째 솔로이며 앞날에 대한 불투명한 인식으로 하루하루 그저 시간만 보내는 것 같은 무능력한 여자. 파니는 이 모든 것을 엎을 수 있는 한 마디, “대화를 나눌 사람이 필요한 사람”으로 자신을 명명한다. 아주 사소한 말건네기를 할 수 있는 대상이 그리운 것이다. 영화는 외로운(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인간의 불치병인 고독을 해결할 수 있는 단서로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다. 자주 언급되는 주제이지만 진부하지 않고 경쾌한 리듬을 잃지 않는 장점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두 주인공의 캐릭터가 충분히 매력적이다. 나는 오르페오를 파니와 나란히 두고 싶다. 오르페오는 파니가 스스로 타자화한 자기 자신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파니라는 애인없는'여성'을 주인공으로, 오르페오라는 '흑인'혼혈남성을 그 친구로 내세운 점은 상대적 약자들끼리의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맞춤이지 싶지만, 척 보아도 저울은 심하게 오르페오쪽으로 기운다. 파니는 자신이 오르페오에 비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점차 깨닫게 된다. 유명세를 타며 포르노작가와 소설가 사이를 오가는 어머니, 모자라지는 않는 돈, 나쁘지 않은 직장, 그 외에도 오르페오가 파니에게서 최고로 꼽는 것은 ‘좋은 피부색’이다. 늘 못 가진 것에 대한 불만만 가득하고 자신의 고통만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못하고 마음을 나눠줄 줄도 모르는 파니에 대하여 오르페오는 쉽고도 간단한 말로 질책한다. 두사람이 나누는 교감의 정점에서 나란히 앉은 벤치 앞으로 펼쳐진 너른 호수의 물이 시간이 멈춘 듯 정지해 있다. 시간은 물리적인 개념이 아니라 마음의 태엽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다.

 

눈 달린 생물은 먹지 않는, 아름답고 강하고 똑똑한 파니의 대단한 자의식에 펀치를 날리며 오르페오는 저 세상으로 가버린다. 아니면 그의 노스탤지어, 아프리카이던지. 마지막 가는 길에 진정한 친구로 남아 병든 그를 돌보며 애정을 쏟는 장면이 뜨뜻하다. 이들처럼, 사랑한다는 말은 이럴 때에 진정 어린 목소리로 나오는 것이었다. 파니는 육체적인 감흥을 돋우는 에로스적 사랑이 허탈하게 깨어지는 체험을 하고 속옷바람으로 시내를 걸어 집으로 온다.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그녀에게 육체는 시들어버릴 피상적인 것이다. 그보다 우위에 있는 사랑, 우정은 그런 공허함을 매워 주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타인을 돌보고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경험을 통해 파니는 처음으로 ‘나’ 아닌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신과 타인에게 엇비슷한 비율로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서 확신이 생기는 순간이다.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한 자신에게 최면을 걸던 문구들 중 목에 걸려 더 이상 자기최면이 진행되지 않던 그 문구가 실현된 것이다.


파니는 죽음에 관심이 많다. 그건 살아있는 자로서 아주 당연하고 올바른 정신 상태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 미리 유서를 써보고 영정사진을 찍고 입관체험도 해보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죽음의 체험을 통해 삶에 더 애착을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파니에게 어느 날 우연처럼 나타난 오르페오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해골의 형상을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어쩌면 악귀를 쫓고자 하는 부적의 의미로 화장을 하듯, 그는 신들린 자 혹은 죽은 자들의 축제를 날마다 홀로 연다. 거리의 카니발이 방에서 재현되는 셈이다. 이 제의성 짙은 축제에 파니와 어린 여자아이가 온몸에 문신을 그리고 함께 하는 시간이 우연만은 아니다. 오래된 내적 열망이 표출되는 순간이다. 심장을 두드리는 음악소리와 함께 아프리카 토속민의 춤을 현란하게 추는 세 사람은 환희의 절정을 맛본다. 멕시코에서는 해마다 10월 31일에서 11월 2일이면 ‘죽은 자의 날’을 연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걷는 거리에서 이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파니가 오르페오를 대하는 것처럼 친근하고 다정하며 편견이 없다.


그를 하늘로 보낸 후, 구름 속에서 숨바꼭질 하는 달을 올려다보며 유머러스한 눈짓으로 말을 건네는 파니. 충분히 사랑스러운 그녀는 이제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 미래를 성급하게 기대하지는 않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갈 것이다. 앞만 보고, 시계는 보지 않고. Non, Je ne regrette rein. Non, Je ne regrette rein......  이 노랫말처럼 지나간 시간은 어느 한 자락도 붙들고 후회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과거는 너의 뒤에 있는 네 모습, 미래는 너의 앞에 있는 네 모습일뿐'이라는 오르페오의 충고는 파니가 스스로 내린 결론이자 소중한 생의 열쇠이기에, 값진 것이다

 

 

- 이벤트 참여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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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홍수맘 > [퍼온글]글쓰기는 '논술'이 아니다.

 

우리 옆지기가 한참 신문을 보다가 "읽어봐, 좋아" 하면서 보여준다. 너무 좋아서 다른 이들도 함께 봤으면 해서 올려본다.

 

[판] 글쓰기는 ‘논술’이 아니다

입력: 2007년 04월 05일 17:50:20

 

 <안도현/ 시인·우석대 문창과 교수〉

 

 

아들아, 고등학생이 되고부터 너의 등에는 논술이라는 짐이 하나 더 얹혔지? 비단을 잔뜩 지고 사막을 건너가는 낙타의 등에 또 한 필의 비단을 얹은 꼴 같아 안쓰럽구나. 하지만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아라. 이 나라에는 지금 논술을 무슨 신이나 괴물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것을 경배나 지탄의 대상으로 삼을 일만은 아니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논술을 요술단지인 양 선전하며 혹세무민하는 자들, 그리고 그 신전에 복채를 갖다 바치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가련하고 어리석은 백성들이 문제일 뿐이다 .

 

너는 어느 날부터 아비가 읽어야 할 아침신문을 슬쩍 가방에 넣고 학교로 가더구나. 처음에는 참 매정한 놈이다 싶었는데 나는 용서하기로 했다. 네가 늦은 밤에 돌아와 꺼내 놓는 신문의 귀퉁이가 꽤 너덜너덜하게 해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지. 교실에서 동무들하고도 돌려 읽는다니 잘한 일이다. 쓰기의 출발이 읽기라는 것을 이제 조금 알아차린 듯하구나.


아들아,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공부, 가장 확실한 공부가 글쓰기라는 것을 너는 잊지 말기 바란다. 글을 쓰는 순간 머리 속의 지식과 지혜는 뼈와 살이 있는 육체가 된다. 피가 도는 체계적이고 유기적인 생명체가 된다. 그러니 논술을 대비해서 책과 신문을 읽는다는 생각 따위는 일찌감치 버리도록 하여라. 글쓰기를 진학과 취업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한 ‘논술광풍’의 기세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


아들아, 너는 부디 글을 잘 쓰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미래에 작가나 전문적인 집필가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논술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글쓰기보다 인생을 즐기고 혁신하는 방법의 하나로 글쓰기를 염두에 두라는 말이다.


글을 쓰는 일은 물론 괴로운 일이다. 예를 들면 이 짧은 칼럼 하나를 쓰는데도 아비는 서너 차례 국어사전을 뒤적인단다. 20년 넘게 글에 매달려 살아온 나도 한 편의 글을 쓸 때마다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그리고 ‘우리 시대 한글 지킴이’로 부르는 이수열 선생님 같은 분의 눈치를 봐야 하지. 이 ‘빨간 펜 선생님’은 신문에 실린 내 글을 보시고 잘못된 문장과 표현을 빨간 펜으로 바로잡아 늘 우편으로 보내주시거든. 글을 쓴다는 것은 이렇듯 배워가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지난달에 독일을 가서 라이프치히 국제도서전을 참관하고 작품 낭독회를 가진 적 있단다. 네 또래 청소년들하고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아이들의 진지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몇 차례 질의응답을 통해서 단순히 외국인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았단다. 그것은 삶을 깊고 넓게 사유하는 자들만이 지닐 수 있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지.


또 하나 감동적인 것은 그 도시의 대학 문예창작학과에 계시는 소설가 강유일 선생의 강의 방법이었단다. 

그이는 지난 학기에 ‘사랑의 해부’라는 주제로 글쓰기 강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 과정은 그야말로 혹독한 글쓰기 훈련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구나. 도서관을 이용한 꼼꼼한 자료수집, 생생한 글을 쓰기 위한 현장답사와 장기간의 여행, 사회 여러 분야의 전문가 초청 특강, 여러 차례의 토론과 합평회가 학기 내내 이루어진다는 거였지. 글을 쓰면서 또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나로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었지.


아들아, 종이와 펜과 알량한 재주만으로 글을 쓰는 시대는 지났다. 글을 잘 쓰려면 너에게 다가오는 괴로움들과 한판 정면승부를 벌여야 한다. 그러니 책을 읽되 부지런히 세상도 읽고, 떠들고 웃되 절망 앞에서 펑펑 소리 내어 울 줄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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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프레이야 > 뜻 모르고 쓰는 우리말

모 독서신문에서 옮깁니다.

늦깎이

본뜻 : 늦게 머리 깍은 사람을 일컫는 말로, 나이가 들어서 머리 깎고 중이 된 사람을 가리킴.

바뀐 뜻 : 본뜻으로도 쓰이지만 요즘은 세상 이치를 남보다 늦게 깨달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간혹 늦게 익은 과일 등을 가리키기도 한다.

보기글 : - "자네 늦깎이로 절에 들어가니 어려운 점이 많겠네, 그려."

               - 마흔 늦깎이로 문단에 나온 박 여사의 글솜씨는 풍성한 입담과 무르녹은 연륜이 녹아들어 해를

                 더할수록 풍요로워지고 있다.

 

개차반

본뜻 : 차반은 본래 맛있게 잘 차린 음식이나 반찬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개차반이란 개가 먹을

           음식, 즉 똥을 점잖게 비유한 말이다.

바뀐 뜻: 행세를 마구 하는 사람이나 성격이 나쁜 사람을 가리키는 말.

보기글 : - "그 사람 술 먹고 나니까 완전히 개차반이더구만."

               - "건너 마을 김총각은 개차반인 그 행실을 고쳐야 장가갈 수 있을 걸세."

 

고수레

본뜻 : 옛날 단군이 다스리던 고조선에 고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프로메테우스처럼 그 당시 사람들에게 불을 얻는 방법과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 때문에 후대 사람들이 농사를 지어서 음식을 해 먹을 때마다 그를 생각하고 '고시레'를 부르며 그에게 음식을 바친 것이 '고수레'의 유래이다. 그 후, '고시레', '고수레' 등으로 널리 쓰이다가 '고수레'가 표준어로 굳어졌다.

바뀐 뜻 : 음식을 먹거나 무당이 푸닥거리를 할 때, 혹은 고사를 지낼 때 귀신에게 먼저 바친다는 뜻으로 음식을 조금 떼어 던지며 외치는 소리다. 주로 떡을 떼어서 던진다거나 술을 뿌리며 외치기도 한다.

보기글 : - "고사 지낼 때 시루떡을 던지면서 하는 말이 '고시레'가 맞아, '고수레'가 맞아?"

               - "명색이 산신제를 지낸다면서 고수레를 빠뜨리다니 안 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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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프레이야 > 2007년 3월 아이들과 읽은 책

   초등 1.2학년 권장

   김리리 글 / 다림 / 국내창작

   만화를 곁들여 이야기의 줄거리를 눈으로 쉽게 볼 수 했고

   유쾌한 웃음이 묻어나는 아이들의 일상 이야기

 

   초등 2학년 권장

  안나 로장 글.그림 / 교학사 / 외국 창작

  재미있는 소리를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어 발명한 뚝딱뚝딱 아저씨의 이야기

  발명과 발명의 윤리를 배울 수 있고 상상력을 발휘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그림책.

 

  초등 3학년 권장

  신순재 글.그림 / 아이세움 /  인체과학시리즈로 저학년 과학책.

  기발한 그림으로 내용을 더욱 선명하게 설명해주고

  뒤에 있는 깨끔발돋움발에서는 입에 관한 더 많은 숨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시리즈 모두 권하고 싶은 책으로 아이들도 모두 좋아한다.

 

  초등 3학년 권장

  전경남 글 / 문학동네어린이 / 국내창작

  네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아이들이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과 고민을 어른들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아이들의 상상력에 힘입어 재미있게 꾸며썼다.

 

  초등 4학년 권장

  파울 판 론 / 푸른나무 / 외국창작

  집게초등학교 5학년 어느 반에서 일어나는 일로 아이들의 기발한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준다. 따뜻하면서도 통쾌한 기분을 준다.

 

  초등 4,5학년 권장

  에모토 마사루 / 해와나무 / 과학

  물이 물질의 파동을 읽어 기억하려는 힘으로 자신만의 다양한 표정을 짓는,

  물의 결정 실험을 통해 물의 소중함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초등 5학년 권장

  조재도 글 / 푸른나무 / 국내창작

  결핍을 가지고 있는 아이의 마음의 성장을 다루는 훈훈한 이야기

  술술 쉽게 읽히는 게 장점

 

  초등 5학년 권장

  김성화, 권수진 글 / 풀빛 / 과학

  내가 좋아하는 책.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지금부터

  하면 좋을 일들을 구체적으로 말해준다. 옆에서 이모나 삼촌이 들려주듯 조근조근

                               말투도 친근하다. 과학자의 꿈이 아닌 다른 꿈을 갖고 있는 친구들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소양과 준비자세를 배울 수 있다.

 

  초등 6학년 권장

  에롤 브룸 글 / 풀빛 / 외국창작

  하얀 생쥐의 성장 이야기를 통해 사람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타인을 수용하며

  진정한 성숙에 이르는 길을 엿볼 수 있다. 잘 읽히고 감동적이다.

 

  초등 6학년 권장

  황근기 글 / 교학사 / 과학

  이 책도 시리즈인데 법률이야기도 재미있다.

 

 

  중학 1학년 권장

   김현빈 글 / 살림 / 과학

  지구과학 관련 책. 구성이 좀 산만하다.  지구의 내부와 외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의 순환의 역사를 알고 미래의 지구와 나아가 우주시대를 준비하는 자세를 생각한다.

 

  중학1학년 권장

  트리나 폴러스 / 하서 / 외국창작

  스테디셀러. 성인이 되는 과정에 있는 사춘기 학생들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이다. 개인의 변혁, 사회의 변혁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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