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들 생일이다. 2000년 11월 4일, 아들은 출산 예정일을 3주씩이나 땡겨서 태어났다. 첫아이를 수술해서 낳았기 때문에 둘째도 수술하기로 했는데 쭉~ 진료를 받던 의사가 미국으로 연수를 가야 한다며 다른 의사에게 낳던지 아님 땡겨 낳으라고 했다. 예정일이 삼주씩이나 남았는데...  

막달에 독감까지 걸려 한 달 가까이 골골대고 있던 나는 낯선 의사가 싫어서 담당 의사의 권유대로 출산일을 잡았다. 그렇게 의사의 스케줄이 우리 아들의 출생 운명을 바꿔버렸다. 3.1킬로그램, 55센티의 키로 태어난 아들은 유아기 내내 몸이 약했고 행동 발달마저 심하게 늦어서 3주나 땡겨 낳은 죄책감에 시달리게 했다. 

거기다가 삼칠일이 지나면서 벌긋벌긋 조짐이 보이던 태열(병원에서는 아토피라고 함)이 심해져 온몸에서 진물이 줄줄 흘렀다. 그 모습이 기가 막히고 안쓰러워 사진조차 찍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울 아들 백일 때까지 찍은 사진이 몇 장 없음. 그런 아들 때문에 젖을 먹이려고 안고 앉아서 '엄마가 잘못했어, 미안해.' 하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진물이 흐르는 아이를 보며 난 그때 아들이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다. 휴~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것을 안고 서울에 있는 대학 병원을 일주일에 한 번씩 들락거렸다. 하지만 너무 어린 것에게 약을 먹이는 것이 내키지 않아 약을 방 한구석에 치워놓고 아토피나 태열에 좋다는 민간 처방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약효가 있다고 소문난 약수터의 물을 길어다 식수는 물론 목욕까지 시키기를 10개월, 아들의 피부는 어느새 새햐얗게 보들보들하게 변해 있었다. 그 약수 덕인지는 몰라도 지금도 우리 가족 중 아들의 피부가 가장 뽀~얗다.  

이렇게 지극 정성을 들인 아들은 자라면서 엄마에게 더 넓고 거친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시시때때로 애를 쓴다. ㅜㅜ 고럴 땐 정~말 밉지만 한글도 제대로 못 떼고 학교에 들어간 녀석이 책 보는 걸 가장 좋은 취미로 알고, 시험 공부 같은 거 특별히 안 해도 평균 90점 이상 받아오고, 놀이터에 나가서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놀 줄도 아니 11살짜리에게 무엇을 더 바라랴 싶다.  

근데 오늘도 저녁 먹고 누나가 생일 선물로 준 손난로가 불량품이라며 한바탕 울고불고 난리를 친 아들. 생일인데 참으려다가 교양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는 이놈 저놈 하며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부모 교육에 대화법 교육까지 수료한 엄마건만... 화를 삭이고는 화장실에 갔는데 거울에 "엄마, 죄송해요."라고 써 놓았다. 아우, 정말 미워할 수 없는 아들... 

"아들아, 생일 진짜 축하한다. 아까 네가 화를 너무 많이 내서 아들 낳은 거 후회할 것 같다고 한 말 취소할게. 아들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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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11-05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모나 생일 축하해요

소나무집 2010-11-05 21:25   좋아요 0 | URL
네, 고마워요.

프레이야 2010-11-05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숨에 읽었어요.
여자들 아이 낳은 이야기는 어딜 가나 구구절절하지만
소나무집님 아들 이야기는 또 남다르네요.
고생하셨군요. 소나무집님의 정성으로 제일 뽀얀 피부도 갖게 된 아들~
생일 축하해요~~~~

소나무집 2010-11-05 21:28   좋아요 0 | URL
친정엄마께서 너희들 키운 이야기하려면 책으로 몇 권이라는 말을 종종 하셨는데 그때는 그냥 우스개로 알아들었거든요. 근데 제가 엄마가 되어 보니 그 마음 알겠더라구요. 특히나 아들 키우는 건 딸보다 이야기가 몇 배 더 많아요.

마녀고양이 2010-11-05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드님 생일 축하드려요!

저희 딸 코알라두 2000년 생이라, 같은 용띠 맞네요. ^^
코알라도 2.9kg 밖에 안 되어 작았는뎅.
빨리 커서 좀 아쉽기도 해요..
요즘 껴안으면서 언제까지 이럴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든답니다.

피부가 뽀얀 아들이라니,, 아유 부러워요!

소나무집 2010-11-05 21:30   좋아요 0 | URL
네 , 고마워요. 맞아요. 아이들은 발리 크고 엄마들은 늙어가고...
저도 시간만 나면 아이들을 안아줘요.

꿈꾸는섬 2010-11-05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며 제 마음이 다 짠해요. 우리 아이들 낳던때가 생각나네요.ㅎㅎ
생일 축하해요.^^

소나무집 2010-11-05 21:31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잘못되면 모두 엄마 탓인 것만 같더라구요.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하구요. 님은 어떤 사연이 있을지 궁금해요.

무스탕 2010-11-05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하나 적어보니 더 이쁘시죠? ^^
아드님 새일 축하합니다~

소나무집 2010-11-05 21:32   좋아요 0 | URL
적을 게 더 많았는데 쓰다가 졸려서 많이 생략했어요.^^

순오기 2010-11-05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눈물이 막 날려는 찰나에 거울에 쓴 "엄마, 죄송해요!'를 보고 뿜었어요.
정말 미워할 수 없는 아들~~~ ㅋㅋㅋ
우리 모두 아들 딸, 낳은 거 후회하지 맙시다!!^^

소나무집 2010-11-05 21:37   좋아요 0 | URL
아이들 잠든 뒤에 나와서 이 글 올려놓고 보니까 포스트잇에 쪽지글도 써 놓았더라구요.
죄송하다. 앞으로는 절대 안 그러겠다 뭐 그런 얘기.. 그런 쪽지 받은 거 11년 만에 처음이었어요.
하루도 안 되어 언제 그런 말 했냐는 듯해지겠지만 글씨 한 자 쓰는 것도 싫어하는 아들인지라 감격스러워서 잠이 안 오데요. ㅋㅋ

울보 2010-11-05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인사드립니다,,
그 아드님이 엄마의 마음을 잘 알고 있을거란 마음이드네요,,
엄마들은 가끔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랄때가 있는것 같아요 저도 그렇군요,
그래도 저렇게 멋지게 사과 할 줄도 알고 아드님이 참 의젓하게네 우리딸도 저 나이가 되면 저렇게 해줄까요,,ㅎㅎ
지났지만 힘들게 아이 낳느라 고생하셨구,,힘들게 태어난 아드님이 건강하게 언제나 행복하기를,,

소나무집 2010-11-06 14:17   좋아요 0 | URL
울보님, 반가워요.
엄마 마음이야 알고 있지만 아는 만큼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니 늘 시끌벅적이지요 뭐. 저는 워낙 아들에게 바라는 게 없다 보니 조런 것 하나에도 그냥 마구마구 감동하게 됩니다.

마노아 2010-11-05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합니다. 어쩐지 함께 감사하고픈 마음이 들었어요. 진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소나무집 2010-11-06 14:19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저는 아들이 어찌 되는 줄 알고 백일이 될 때까지는 정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았더랍니다.

엘리자베스 2010-11-05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리 생일이라고 소문 좀 내시지...
늦었지만 생일 축하한다고 센스쟁이 아들에게 꼭 전해 주세요~~

소나무집 2010-11-06 14:20   좋아요 0 | URL
네, 꼭 전해 줄게요.
생일을 3일 동안 축하해주었다는거... 2일 날 아빠가 내려와서 아이스크림 케익 사주면서부터...

같은하늘 2010-11-06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산에 대한 사연이라면 참............
늦었지만 생일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소나무집 2010-11-06 14:22   좋아요 0 | URL
엄마가 된 사연들 누구나 구구절절할 것 같아요. 엄마가 된다는 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면서 가장 힘든 일이기도 해요.그죠?
 

어제 딸아이가 경주로 2박 3일 수학 여행을 갔다. 남편은 서울에 있으니 아들과 단 둘. 아들과 좀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눈치 빠르고 야무진 누나에 비하면 융통성도 없고 고집 센 아들 녀석 덕분에 우리 집은 늘 시끌시끌하다. 엄마가 뭐라고 하면 한마디도 지지 않으니 아들과 엄마의 화딱지가 하늘을 찌르는 날이 많다. 거기다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엄마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하는 사고를 일으킨다.  

3주쯤 전엔 놀이터에서 축구를 하다가 한 학년 형에게 눈치코치 없이 대들다가 한 대 맞은 것이 눈텡이가 밤텡이가 되고 얼굴 반쪽이 시커멓게 멍이 들어서 들어왔다. 병원으로 달려가서 눈검사하고 난리법석을 떤 생각을 하면 지금도 휴~  멍 덕분에 학교에서 스타가 됐다고 자랑하던 어이없는 울 아들...  

맨날 투닥거리는 이 아들이 난 그래도 참 예쁘다. 아들이 아니었다면 난 세상의 반쪽밖에 몰랐을 거라는 생각에 고맙기도 하다. 누나가 없는 동안 아들을 행복하게 해줘서 엄마는 누나만 예뻐한다는 생각을 고쳐주고 싶은 마음에 '누나 몰래'를 강조하며 데이트를 하자고 했더니 신이 나서 매달렸다.   

첫날 저녁은 박경리문학공원 산책하고 들어와서 한 이불 속에 누워 서로에게 그림책 한 권씩 읽어주기를 했다. 오랜만에 책을 읽어주니까 실감이 안 나게 읽는다는 아들의 지청구를 들어가며.

둘째날은 저녁으로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니 피자도 치킨도 아닌 알탕~ 웬 알탕? 자기는 알탕을 좋아하는데 원주에 와서 한번도 못 먹었단다. 그래서 집 근처 일식집에 가서는 알탕을 시키니 엄청나게 큰 뚝배기에 한 가득. 난 먹다 먹다 남겼는데 아들은 그 많은 걸 배불러 소리도 안 하고 먹어서 신기~ 

밥을 먹고는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방가? 방가! 영화 제목만 듣고 싫다더니 극장에 가서는 혼자 웃고 난리 치던 아들. 11세인 울 아들 12세 관람가인 이 영화를 보다가 좀 걸리는 장면, 즉 방가방가랑 장미가 분위기 좀 잡으려고 하면 어색했는지 "엄마, 졸려요." 요렇게 말하면서 눈 감는 센스를 보여주기도 하고~   

(이 영화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고 10시가 넘은 시간, 둘이 팔짱을 끼고는 신나게 떠들면서 왔다. 집에 돌아온 아들, 오늘 할 일을 하나도 안 했다 싶은지, "수학 공부할까요?" 하길래 "아니, 이젠 잘 시간이야." 그래서 아주 행복한 기분으로 잠든 아들. 

"아들아, 행복했니? 엄마도 행복했단다." 이렇게 행복하려고 생각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 걸 그동안 아들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 준 것이 미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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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10-22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아들이 한살만 더 먹었어도 저 영화 같이 보러가는건데...(제 아이는 방년 10살이라서요 ^^)
아들이 오늘 엄마를 독차지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요.

소나무집 2010-10-22 09:31   좋아요 0 | URL
좀 심한 욕 시리즈들이 나오긴 하는데 그닥 듣기 거북하진 않았어요. 울 아들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아이들도 부모네랑 와서 함께 보던걸요.

꿈꾸는섬 2010-10-22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나 몰래...데이트...아드님이랑 소나무집님이랑 모두 행복하셨겠어요.
방가방가는 남자 아이들이 재미있어할 것 같아요.^^

소나무집 2010-10-25 08:55   좋아요 0 | URL
네, 행복했어요. 근데 아들 수련회 갔을 때는 딸이랑 비밀 데이트 같은 건 안 하게 되더라구요.

치유 2010-10-22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운 아들램과 행복한 데이트, 눈에 그 모스들이 선하네요..
참 잘했어요.^^_

소나무집 2010-10-25 08:55   좋아요 0 | URL
뭐든지 잘 속아주는 순진한 울 아들 땜에 더 행복했답니다.

마녀고양이 2010-10-22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소나무님. 첨 뵙습니다.
아는 분 서재 타고 왔는데, 글을 읽다보니 11살 이라는 문구에 와닿았답니다.
저희 딸이 11살이거든요.
데이트 즐거우셨겠어요. 방가방가는 혼자 보려 했는데, 딸아이랑 봐도 될까요?

이쁜 서재 잘 구경합니다. 종종 놀러오겠습니다.

소나무집 2010-10-25 08:57   좋아요 0 | URL
아,네, 저도 반가워요.
열한 살 아들과 딸은 천지 차이랍니다. 딸이 11살일 때는 다 컸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아들은 어림없어요. 방가방가는 따님이랑 봐도 괜찮아요. 욕이 좀 많이 나오지만 그냥 패스하면 됩니다.

순오기 2010-10-23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드님과의 몰래 데이트 즐거웠군요. 가끔은 이런 분위기도 연출하며 살아야 하는데...
방가방가 12세 관람가지만 부모가 동행하면 괜찮아요~ 영화보다 현실은 더하니까 외국인노동자의 현실을 아는 것도 좋아요. 모든이에게 강추합니다~

소나무집 2010-10-25 08:58   좋아요 0 | URL
그죠? 강추하고 싶은 영화죠? 제목만 좀더 근사하게 붙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결코 가벼운 영화가 아닌데 넘 가벼워 보여서 땡기지 않게 만들어요.

프레이야 2010-10-23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이랑 방가방가도 보고 알탕도 배불리 드시고 좋으시겠어요.^^
전 아들이 없어서 세상의 반밖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이성을 알아야 세상의 나머지 반도 아는 거라고 하던게 말에요.
전 아들 가진 부모 마음은 잘 모르겠지요. 아마?ㅎㅎ

소나무집 2010-10-25 09:06   좋아요 0 | URL
네, 오랜만에 좋았어요. 아들 녀석이랑은 맨날 투닥거리고 싸우거든요.
조용 조용히 커주는 딸에 비하면 아들은 질풍노도에, 천둥번개예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늘 가슴 졸인다니까요. ㅜㅜ

같은하늘 2010-11-02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나몰래 데이트한 아드님 마음이 정말 행복했겠지요.
전 동생만 이뻐한다고 생각하는 큰넘과 데이트를 한번 해주어야 할것 같은데, 마음처럼 쉽지가 않아요.^^

소나무집 2010-11-05 00:56   좋아요 0 | URL
울 아들 아직도 비밀 데이트 누나한테 들킬까 봐 노심초사해요.ㅋㅋ
 

금요일 딸아이 포함 친구들 다섯을 데리고 원주시의회 견학을 다녀왔다. 수업중 직업인 인터뷰가 있는데 딸아이는 제가 아는 시의원(용정순 의원)이 있다며 정치인 인터뷰를 추천했단다.   

시의회에 도착해서 앞서 걸어가는 다섯 여자 아이들의 옷차림을 보니 우리 딸 빼고 넷이 모두 얼룩얼룩한 일명 곰팡이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런 바지가 유행인 줄은 알았지만 내 눈엔 그닥 예뻐 보이지 않았기에 사줄 생각도 안 했다. 

집에 와서 너도 그런 바지 입고 싶으냐고 물어보니 "당연하지~"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인데 엄마 성향 때문에 입고 싶다는 말도 못했구나 싶은 마음에 하나 사주기로 결정.

그리하여 토요일 오후 바지를 사러 갔는데 요것도 아니요, 조것도 아니요, 열 개 이상의 가게를 들르다 마지막 집에서 마음에 드는 바지를 고르긴 골랐다. 그런데 문제는 사이즈~ 

제 사이즈인 15호를 입어본 딸이 통이 너무 크단다. 워낙 허벅지에 살이 없으니 약간 여유가 있어 보이긴 했지만 내 눈엔 스키니가 틀림없었다. 올해 입고 내년까지 입으면 되겠군. 가격도 만만치 않으니...

하지만 딸아이는 허벅지와 종아리에 딱 달라붙는 바지가 입고 싶었던 모양이다. 입이 나와서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바지만 바라보며 30여 분을 꼿꼿이 서 있던 딸, 주인 아줌마가 그럼 한 칫수 작은 걸 입어볼래?  

그래서 13호를 입어보니 종아리와 허벅지는 붙는데 길이가 발목... 키가 쑥쑥 크는 중인데 내년엔 도저히 못 입을 것 같은 길이감. 두 사이즈의 옷을 번갈아 입어보던 딸, 결국 13호를  선택해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엄마는 너무 지쳐서 저녁할 마음도 상실한 채 거실에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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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010-10-18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도 얼마전에 곰팡이 바지 사줬는데... 그런데 울 딸도 워낙 마른터라 스키니를 입어도 폼이 안난답니다.
엄마 허벅지 살 좀 떼어가라고 했더니 그걸 지금 농담이라고...하는 표정으로 저를 보더라구요.쩝~
에구~~ 이제는 농담도 딸 눈치보면서 해야 하니 원...

소나무집 2010-10-19 08:53   좋아요 0 | URL
우리 학교 다닐 때도 곰팡이 바지가 유행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일명 날라리라 불리는 친구 한둘이 입었지요. 제 주변에 락스에 담가서 물빼는 친구도 있었어요.^^ 그 친구는 지금도 여전히 멋쟁이일 듯...

BRINY 2010-10-18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여자아이는 어릴 때부터 자기가 옷을 고르는 행복이 어느 정도는 허용되었으면 좋겠어요. 전 대학 졸업하고나서야 겨우 제가 번 돈으로 제 옷 사기 시작했거든요. 그 전까지는 제 스타일이란 게 없었어요.

소나무집 2010-10-19 08:50   좋아요 0 | URL
6학년이 되면서부터는 티셔츠 하나 엄마 마음대로 못 고르게 하네요.^^ 엄마보다 훨~씬 감각이 있어서 제 옷 고를 때도 늘 물어보게 돼요.

전호인 2010-10-18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따님과의 쇼핑에 지친 소나무님의 힘든 얼굴이 보여요.
울 딸래미의 취향도 워낙 다양해서 옆지기가 심란해 합디다.
한참 중딩 사춘기인지라......

소나무집 2010-10-19 08:57   좋아요 0 | URL
어떤 때 그런 모습이 예쁘기도 하고 어떤 땐 되게 밉기도 하고 그래요.^^ 아이들이 자라느라고 그러겠죠? 다음엔 아빠랑 나가서 옷 사보라고 해야겠어요. 이런 모습을 직접 본 후 아빠의 반응은 어떨지 궁금해요. ㅎㅎ

전호인 2010-10-21 13:39   좋아요 0 | URL
우리 아이들은 돈으로 달라던데요.
친구들과 같이 알아서 쇼핑하겠다면서......
저요, 절대 안갑니다.
특히 옷 살때는 옆지기랑도 안가요
제 성격이 마음에 들면 즉석에서 걍 사버리는 스타일인데 어휴 여자분들은 살것처럼하면서 매장을 다 돌아다닌 후 다시 처음에 있던 곳에 와서 사드라구요. 따라 다니는 것이 느무느무 힘들어요.ㅠㅠ

소나무집 2010-10-22 09:24   좋아요 0 | URL
살 것처럼 하면서 매장을 다 돌아다닌 후 다시 처음에 있던 곳에 와서 사 드라구요. --> 요 대목에서 공감의 웃음. 안 그러면 왠지 손해 볼 것 같은 여자들의 마음이라지요. 여자들도 남편이 옆에 있으면 신경 쓰이긴 마찬가지.^^

꿈꾸는섬 2010-10-22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이들 취향은 엄마들과 다르죠.ㅎㅎ
곰팡이 바지 저도 별로인데...그리고 자라고 있으니 좀 넉넉한 걸 사면 좋은데 아이들은 엄마 마음을 모르죠.ㅎㅎ

소나무집 2010-10-25 09:03   좋아요 0 | URL
엄마 취향이 아니어도 친구들이 입으면 입혀줘야 되는 것 같아요. 안 그러면 슬쩍 왕따가 되는 것 같더라구요.
 

아침에 일어나서 내다보니 또 비가 내린다. 정말 지겹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오늘 오후 출발하는 비행기 타고 제주 시댁에 가야 하는데 말이다. 이러다 두 달 전부터 예매해둔 비행기가 취소라도 되면 어쩌나 걱정이다.

요즘 정말 비가 싫다. 아니 밉다. 연이어 서해안을 휩쓴 태풍에 친정집 농사가 반은 망가졌다. 주말마다 일이 겹쳐 가보지도 못하고 있다가 지난 주말에 잠깐 다녀왔다. 집 주변을 둘러싼 숲의 소나무는 수십 그루가 아직 넘어진 채 그대로였고, 고추나무는 벌써 누렇게 죽어가고, 콩은 영글 새가 없어 그냥 쭉정이로 말라가고 있었다. 마당가에 대추나무 감나무도 휑~하기만 했다.

올해 칠십으로 한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친정아버지는 평생 이런 태풍은 처음이라 하셨다. 늘 낙천적인 덕에 "가을에 추수할 게 없으니 한가해서 좋다."고 하셨지만 얼마나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셨을까 싶다. 봄 내내 여름 내내 들인 정성을 단 며칠새 다 잃으셨으니...  

사위와 소주 한 잔 하면서 "사는 게 다 그렇지.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고..." 하며 허허 웃으셨지만 더 허옇게 변한 머리에 검게 탄 얼굴이 도드라져 마음이 아팠다.  

비야, 이제 제발 그만 와라~ 나 오늘 시댁에 꼭 가야 하거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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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5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30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0-09-26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도 가을하늘은 맑았죠?
아이들이 참 좋아했을듯. 저에겐 오늘 딱 하루 남은 연휴. 아쉬워요^*^

소나무집 2010-09-30 23:52   좋아요 0 | URL
늘 제주에 가면 비가 오곤 했는데 이번에 쾌청이었어요.

꿈꾸는섬 2010-09-26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석 잘 쇠셨어요?
제주도 잘 다녀오셨나 모르겠네요. 추석전날 중부지방 비가 너무 많이 내렸다고 들었어요.

소나무집 2010-09-30 23:53   좋아요 0 | URL
신기하게도 비 많이 올 때 원주를 떠났는데 하늘 높이 올라가자마자 바로 햇볕은 쨍쨍이더라구요.

순오기 2010-09-29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태풍이 친정 농사를 망쳐 놓았군요.ㅜㅜ
친정 부모님 땀흘린 수고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네ㅜㅜ

소나무집 2010-09-30 23:54   좋아요 0 | URL
네, 부모님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파요.

2010-09-30 0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9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유 2010-09-29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님께서 시댁 잘 다녀오신 덕분에 우리가 오늘 낮에 고등어 잘구워먹었어요..^^&

친정아버님의 너털 웃음이 가슴 찡합니다.
그노고를 알아주는 따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실거에요.

소나무집 2010-09-30 23:54   좋아요 0 | URL
저도 늘 감사합니당!
 

운전 독립을 했다. 지난 봄 남편 없이는 운전을 못한다는 글을 쓰고 일주일이 안 되어 운전 독립을 했다. 4월 2일 날짜 기억. 독립을 위한 첫 행선지는 도서관이었다. 남편 없는 토요일 도서관에 갈 일이 생겨서 택시 타자고 했더니 아이들이 무조건 "엄마 차!"를 외쳤다. 엄마는 할 수 있다며 차키를 들고 뛰어나간 아이들을 따라 얼떨결을 운전석에 앉았고 도서관까지 가서 무사히 주차를 하고는 운전 독립을 외쳤다. 

초보운전을 뗐다. 노란색 초보운전 딱지를 붙인 채 늘 다녀서 익숙한 동네만 뱅글뱅글  다니던 나는 한 달이 지날 무렵 남편의 충고를 받아들여 초보운전 딱지를 뗐다. 운전에 자신이 생겨서가 아니라 자꾸 위험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앞에서 깜빡이도 켜지 않고 불쑥 끼어들고 추월해가고, 신호등 앞에서 조금만 머뭇대면 경적을 울리던 차들. 초보니까 좀 봐주고 챙겨줄 줄 알았는데 익숙한 운전자들에게 초보는 방해꾼인 듯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초보운전을 떼고 나니 오히려 마음 졸일 일이 줄어서 참내!

신호등과 차선 바꾸기가 어려웠다. 운전을 시작할 때 가장 겁이 났던 것은 신호등. 특히 직선이 아니라 좀 삐닥하게 생긴 사거리나 오거리에서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저것이 내 신호인지 아리송~ 앞차가 있으면 대충 따라갔지만 앞차가 없으면 꾸물대다가 뒤차의 경적 소리를 들으며 슬금슬금 출발~ 그리고 어렸웠던 건 차선 바꾸기. 차선을 바꿀 수 없어서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는 초보들의 경험을 듣곤 했는데 역시나 나도 어려웠다. 사이드미러를 보지 않고 차선을 바꾸려다 빵빵빵~ 간발의 차이로 앞서가는 차와 부딪칠 뻔한 경험을 두어 번하고는 사이드미러를 철처히 보는 습관을 들였다. 

앞만 보고 달렸다. 두어 달은 정말 앞만 보고 갔다. 사이드미러나 백미러 같은 걸 볼 여유가 없었다. 그동안 남편이 옆에 앉아 지시하는 대로 운전을 하다가 내 의지대로 운전을 하려니 늘 초긴장 상태. 그래서 아이들이 뒤에 앉아서 떠들기라도 하면 정신이 사나워서 "조용히 해!"를 외쳤고, 운전하면서 대화를 나눈다는 건 꿈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석 달째가 되자 사이드랑 백미러도 보였고, 주변 풍경도 눈에 들어왔고, 어느날부턴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배꽃님 덕분에 시외로. 내 차로 가면 35분이면 되는 치악산 근처 마을을 일주일에 두 번씩 갔는데 독립을 하고도 1시간 이상 걸리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어느 날 배꽃님에게 전화를 했더니 "넌 충분히 갈 수 있어!" 이러는 게 아닌가.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처음 시외로 가는 운전대를 잡았다. 내내 배꽃님의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지만 30분이 3시간은 되는 듯했다. 제한 속도 60킬로를 지키며 가는 내 뒤를 바짝 따라붙는 대형 차들 때문에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던 기억~ 지금도 뒤에서 큰 차가 따라오면 여전히 식은땀이 난다.  

운전 독립한 지 6개월째. 8월부터는 원주에서 가장 오지라고 하는 곳을 일주일에 두 번씩 가는데 처음엔 한숨만 나왔다. 동네 운전도 버벅대고, 가본 적이 없는 길은 절대 사양하는 내가 1시간 거리의 그곳을 갈 수 있을까? 더구나 양안치고개, 소리재고개 등 S자 코스로만 이루어진 이름난 고개들을 넘어가야 하는데... 그리고 비는 왜 그리도 많이 오는지... 하지만 첫날 딱 한 번 남편과 동행한 후 두 달째 잘 넘어다니고 있다. 꼬불꼬불한 그 산을 넘어갈 땐 '저 아래로 굴러떨어지면...' 이런 생각이 들어 얼마나 힘을 주는지 늘 다리와 목이 뻐끈뻐끈하다. 그래도 지금은 뒤에서 큰 화물차들이 바짝 붙으면 비켜주면서 내 페이스대로 가는 여유도 생겼다.

배꽃님네 놀러가다. 운전을 하면서 가장 좋은 일은 배꽃님네 집에 놀러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택시 타면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에 그녀가 살고 있었지만 배꽃님이 아무리 놀러오라고 해도 쉽게 나서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운전을 하고 한 번 가본 그녀의 집은 정말 가까웠다. "차 마시러 갈게~" 하고 나서면 찻물이 끓는 동안 도착할 수 있었으니.

그래도 운전은 어렵지만. 운전을 하고 들어오면 피곤해서 누워 있곤 한다. 운전하는 동안 늘 조마조마하고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서서 주차를 할 때까지 긴장을 하니 몇 배로 더 피곤한 듯싶다. 20년 동안 운전을 한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게 운전이라고 하지만 난 그 무엇보다도 어렵다. 운전을 하러 나설 때면 심호흡을 하고, 후진 주차도 어렵고, 아직 밤운전은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기계 앞에만 서면 소심해지는 내가 그 큰(?) 기계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고,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고, 일을 하러 다닐 수 있다는 게 참으로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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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9-17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무면허 아줌마는 저런 감정에 공감할 수 없어 오직 박수만 쳐드려요!!
장하십니다~~~~~ 원주 토지모임 번개쳐도 되겠어요.^^

소나무집 2010-09-18 07:08   좋아요 0 | URL
님도 면허 따세요. 해보니 할 만해요.
원주에 진짜 오실 건가요? 배꽃님은 긴장이 된대요.^^

토토랑 2010-09-17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오 축하드려요~ 저두 빨랑 운전 독립을 해야 하는데.. 요원하기만 하네요 ㅜ.ㅜ

소나무집 2010-09-18 07:09   좋아요 0 | URL
아직 독립을 못 하셨나 보네요. 저는 그 마음 천배 만배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슬슬 해보니 할 만해요.

BRINY 2010-09-17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대단하십니다. (운전면허 갱신하러 가서, 몇종이에요? 하고 질문받았을 때 대답을 못한 1인이 접니다 ㅎㅎㅎ)

소나무집 2010-09-18 07:11   좋아요 0 | URL
ㅋㅋㅋ 웃음부터 나오네요. 사실 저도 그렇게 될 뻔했거든요. 남편이랑 떨어져 사니까 운전이 늘 아쉬웠어요. 그래서 지금은 주말에 남편이 일이 생겨서 못 내려온다고 해도 흥~

꿈꾸는섬 2010-09-17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소나무집님^^ 이제 슬슬 자신감이 붙을거에요.^^ 힘내세요.^^

소나무집 2010-09-18 07:12   좋아요 0 | URL
그래도 늘 조심조심하려고 해요. 자신감이 살살 붙을 때 사고날 수 있다고 들 해서요. 고마워요.

전호인 2010-09-19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부터는 안전운전하세염.
너무 위축돼서 운전하다기 보다는 자신감있게 하는 것이 더 편합니다.
위축되다보면 판단이 흐려지거든요.
안전운전하세요^^

소나무집 2010-09-21 08:18   좋아요 0 | URL
네~. 이젠 위축되는 단계는 벗어난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