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시댁에서 보내는 추석은 하루가 언제 끝날까 싶을 정도로 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작은할머니댁에 가서 차례를 지내고 설거지까지 끝낸 후 육촌집에 들러 또 차례를 지내고, 시댁에 와서 우리 차례상을 준비하면 12시 무렵 차례꾼(?)들이 오신다.  

그렇게 여러 집을 오가며 차례를 지내고 늦은 점심을 먹고 나면 남정네들은 다시 종손집으로 차례를 지내러 가고...   섬이다 보니 집안 사람들이 이렇게 아침부터 모여서 하루 종일 돌아가며 차례를 지내는 게 육지 사람인 내 눈에는 그저 신기할 뿐. 

그리고 형님네 가족이 서귀포 친정으로 간 사이 우리 식구보다 더 많은, 손 하나 까닥하지 않는 이모님네 가족이 와서 저녁을 먹고 떠나면 설거지는 고스란히 내 몫인 하루. 평소엔 할 일이 없어서 느릿느릿 천천히 정말 게으르게 살아도 되는 시댁이지만 명절날만은 길~게 하루를 보내곤 한다. 

평화가 찾아온 다음 날 형님네를 성산포에서 만나 우도에 다녀왔다. 시부모님은 평생을 제주에서 사셨는데도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며 우도 여행에 동행하셨다. 제주시에 있는 시댁에서 성산포까지는 1시간 정도 걸렸는데 남편은 바다 타령을 하던 마누라 생각을 했는지 곧게 뻗은 길 다 놔두고 해변도로만 따라서 달렸다. 

10시 배를 타려고 했는데 막상 성산포항에 도착해보니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데만 한 시간은 보낸 것 같다. 몇 년 전 유람선을 타고 우도를 한 바퀴 돈 적은 있는데 직접 섬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살짝 기대가 되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유람선을 타는 것보다 직접 우도에 들어가는 것이 비용도 싸고 여행하는 맛도 난다.(배삯 -> 성수기 어른 왕복 5,500원, 자동차 15인 이하 4,000원)

배 안에서 바라본 우도. 소가 누워 있는 모습과 닮아서 우도(牛島)라는데 난 잘 모르겠더라. 내가 아는 소랑은 안 닮아서... 성산포에서 배를 타고 15분밖에 걸리지 않는 우도. 이곳에 사람이 드나든 건 조선 숙종 때 국유 목장이 설치되면서부터지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2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우도봉에 올라가다 바라본 성산 일출봉. 우도와 성산 일출봉의 거리를 짐작해볼 만하다.

 긴 추석 연휴 덕분에 여행길에 나선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우도봉 올라가는 길은 날도 시원하고, 어디서나 제주 특유의 맑으면서도 푸른 바다가 보이고, 별로 가파르지도 않으니 얘나 어른이나 걷기도 딱 좋았다.    

제주에 오면 늘 한두 곳 정도 여행을 하니 그닥 설레거나 감격스러운 마음까지 들지는 않지만 이렇게 자주 제주를 들락거리면서 느긋하게 여행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제주 남자를 만나서 사는 보람이로구나 싶기도 하다. 

우도는 푸른 빛으로 뒤덮여 있어 풍요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척박한 땅이다. 농사도 기껏 땅콩이나 마늘 정도만 된다고 했다. 아주버님이 극찬을 하며 사준 땅콩은 육지 땅콩의 삼분의 일 정도 크기여서 난 먹기에도 애처로웠다.  

가운데 보이는 야트막한 오름은 무덤으로 뒤덮여 있어 이 작은 섬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땅임을 알려준다. 제주의 무덤은 네모난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처음 보았을 때는 그것도 참 신기했는데...

할아버지와 함께한 손자 손녀 다섯 명.  우도봉에서 내려와 간 곳은 동안경굴(東岸鯨窟)이다. 콧구멍 동굴이라고도 부르는데 한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래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단다.  

층층이 화산재가 퇴적된 바위(응회암) 단면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런 화산섬의 특징 때문에 제주도 전체가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될 예정이라고 한다. 남편이 지질공원 자문위원이어서 주워들은 이야기는 많은데 정확하게 기억나는 게 없으니...

 우리집 부녀가 밟고 가는 검은색 모래가 정말 신기하다. 이런 색깔의 모래는 처음 보았다.

 제주 사람들은 이 모래를 검멀레라고 부르는데 바로 응회암이 부서져서 생긴 것이다.

 이 동굴은 썰물 때만 들어가 볼 수 있다는데 마침 우리가 간 시간에는 입구를 열어놓고 있었다. 바위 틈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어둑한 동굴에서 바다를 내다볼 수 있는데 사방이 트인 바다와는 또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누구나 들어서면 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앞뒤로 딱 고래 한 마리가 들어와 누워 있을 만한 공간이었는데 이 동굴에서 음악회도 열렸다고 한다.

 눅눅하고 미끌미끌한 동굴 안에 있는 바위들이 연한 보라색을 띠고 있는 것도 신기했다. 

동안경굴에서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식당도 대목이라 30분을 기다리라고 했다. 그냥 기다리느니 근처를 한 바퀴 돌고 오자며 간 곳이 우도랑 다리로 연결된 비양도. 협재해수욕장 앞에 있는 비양도와 섬이름이 같다.

 완전히 시커먼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돌섬이었는데 아이들은 여기서 보말(고동의 제주말)을 한 바가지나 잡았다. 집에 와서 삶아 먹었는데 어찌나 살이 통통하고 맛있는지 순식간에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우도를 한 바퀴 샥~ 돌고 마지막으로 간 곳은 홍조단괴해빈 해수욕장. 단괴는 퇴적암 속에서 특정 성분이 모여서 단단해진 덩어리, 홍조단괴는 홍조 식물이 핵을 중심으로 자라면서 조류나 파도 때문에 구르기를 반복하면서 생기는 돌덩이라고.  

어렵고도 생소한 이름만큼이나 독특한 곳이었다. 멀리서 보면 하얀 빛깔의 모래 같은데 가까이 가서 보니 모래가 아니었다. 8센티 이상 큰 것도 많았다는데 지금은 부서져서 이런 모습. 예전에는 산호 모래로 알려져 있어 우도에 가는 사람들마다 신기하다며 집어들고 나왔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지금은 절대 반출 금지라고. 

 이 썰렁한 바닷가에서 때를 잊은 강씨네 아이들 다섯은 모래를 파다가 물속에 들어가 풍덩풍덩 수영을 하며 놀았다.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말이지. 형님네나 우리나 아이들을 모두 야생으로 키우 있는 탓이여!!!

해변 둑에 앉아 손주들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님과 아버님. 다정하게 앉아 있는 두 분 모습도 아름답지만 이제 보니 시어머니의 빨간 양말도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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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9-30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차례상 차리랴 설거지 하시랴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병 안나셨어요?
근데 우도 정말 좋죠? 저흰 애들이 어려서 우도봉엔 못 올라갔어요. 다음에 다시 가봐야겠어요. 참 정겹고 좋네요.^^

소나무집 2010-10-01 00:47   좋아요 0 | URL
병은 안 났는데 연휴가 길다 보니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우도는 작아서 좋고, 신기해서 좋고, 한 곳에 여러 가지가 있어서 좋은 그런 섬이었어요.

순오기 2010-10-01 0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도 남자를 만난 님이 부러워지는 순간~~~ 부러우면 지는거라지만, 그냥 져버릴래요.ㅋㅋ
애들은 야생으로 키워야 해요. 어머님의 빨간 양말~ 압권이에요.^^
님 덕분에 완도에 이어 우도 구경도 잘 했어요~ 전화도 반가웠고요!

소나무집 2010-10-02 06:56   좋아요 0 | URL
제주 남자랑 살아서 좋은 점도 있지만 어려운 점도 많아요.^^ 언제 한 번 그런 얘기도 써볼까요?

2010-10-01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2 0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1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2 0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0-10-01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와~~~ 풍경이 너무나 멋져요.
시댁이 제주라 참 좋으시겠요.^^
우도의 깨끗한 백사장과 바닷물이 생각나요. 벌써 오래전이에요.

소나무집 2010-10-02 07:11   좋아요 0 | URL
그죠? 님도 다녀오신 적이 있군요. 정말 멋지죠? 우도는 신기한 곳이 참 많더라구요. 제주가 시댁이라 좋은 점도 있지만 교통비가 너무 많아 들어요.ㅜㅜ

엘리자베스 2010-10-02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굴음악회...생각만해도 멋있네요.
어머님 빨간양말 정말 귀여우세요 ㅋㅋ
저도 가끔 시댁이나 친정에 가면 저런 종류의 총천연색 양말을 얻어 신을때가 있답니다.
어머니들은 기본적으로 색깔양말을 구비해 놓고 계시는 듯 해요 ㅋㅋ

소나무집 2010-10-03 22:19   좋아요 0 | URL
동굴 음악회 반응이 좋았다고 그러더라구요. 울 시엄니도 시장 같은데서 산 색깔과 무늬가 야릇한 발목 양말 주신 적이 있는데 친정엄미 갖다 드렸어요.^^

치유 2010-10-08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아름다워서 막 환성이 터지네요..
제주 남자 만나서 할수 있는 여행ㅋㅋㅋ넘 부럽기만해요..
제주의 시원스런 바람과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리는듯 좋고,다정스런 부모님 모습도 참 좋아요.

소나무집 2010-10-12 16:22   좋아요 0 | URL
시부모님 평소 집에서는 다정스런 모습 볼 수 없음. 각자 일에 바빠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