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하나면 되겠니? 신나는 책읽기 26
배유안 지음, 남주현 그림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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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초정리 편지>를 읽고 홀딱 반해버린 배유안 작가의 책이라서 무지 반가웠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도 나와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냈구나 싶은 마음에 내내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할머니와 부뚜막, 콩과 맷돌, 지네와 개미 등은 모두 나의 어린 시절과 친숙한 것들이다. 

친정집에서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콩농사를 짓는다. 초중학교를 다닐 때 호미를 들고 엄마를 따라 나가 콩밭을 맸던 기억, 그때 신작로를 따라 집에 가는 아이들이 보일라치면 창피한 마음에 얼른 콩밭에 엎드려 숨곤 했던 기억, 마당에 널어놓은 콩을 도리깨로 쳐서 타작하던 일도 생각나고...  

은이네 할머니가 개미들에게 콩을 나누어 주었듯 친정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가을걷이를 한 후에 친척들이 오면 꼭 흰콩, 검은콩을 종류별로 나누어 주신다. 고생하며 농사 지은 걸 알기 때문에 주지 말라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한결같다. "나누어 먹는 재미가 돈을 버는 재미보다 더 크단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를 보고 배운 덕인지 나도 뭔가가 생기면 자꾸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가 나누면 그걸 받은 사람도 나누고 싶어지고... 나눔의 과정은 콩 하나가 콩 백 개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꼭 닮았다.

콩농사를 많이 지었으니 당연히 두부도 많이 해 먹었다. 이 책에 나온 은이네처럼 맷돌에 콩을 갈았는데 맏딸인 나는 초등 4학년 무렵부터는 엄마 혹은 할머니와 그 일을 함께 해야만 했다. 그 시절엔 두부를 하려고 콩 불리는 것만 보이면 정말 너무너무 싫었다. 동네에서 가장 넓은 우리집 마당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는데 그 마당에서 노는 소리를 들으면서 서너 시간씩 맷돌에 콩을 갈아야 했으니 힘도 들고 놀고도 싶었단 말이지...  

지금도 친정에 가면 엄마는 굽은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두부를 하신다. 두부를 하는 일이 손이 많이 가고 수고스러워 하지 말라고 해도 아들 딸이 간다고 하면 여전히 두부를 해서 내놓으신다. 자식들 맛나게 먹는 걸 보면 힘든 것도 다 잊고 행복한 모양이다. 옛날처럼 맷돌에 두부를 갈지는 않지만 불을 때서 가마솥에 두부를 끓이고 콩물을 자루에 부어 짜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간수를 넣어 휘휘 저으면 순두부가 몽글몽글 만들어지는데 마당에 서서 먹는 따끈한 순두부의 맛은 어떤 산해진미에 비할 바가 못된다.  

눈에 보이는 동네 사람이라도 있으면 불러서 막걸리 한 잔에 두부 한 모 썰어서 함께 먹는 일도 빼놓을 수가 없다. 인심이 넉넉한 덕인지 지금도 우리 친정집 마당은 동네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날이 많다. 이렇게 콩이라는 곡식은 사람의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준다. 은이 할머니의 말처럼 콩 한 알이 콩 백 개가 된다는 말은 콩농사 짓는 집에서 자란 내가 직접 체험한 일이다. 콩 덕분에 얻은 사람들의 마음은 콩 백 개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콩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로 나오는 지네마저 껴안게 만든다. 은이 할머니는 두부를 할 때마다 개미에게 콩 하나면 되겠니? 콩 두 개면 되겠니? 하면서 콩을 나누어 주는데 어느 날 지네에게 물린 후 앓아눕게 된다. 은이는 개미를 따라 들어간 개미구멍에서 지네를 혼내주고 할머니의 기운을 되찾아 온다는 게 이 책의 줄거리다. 이웃에 사는 개미가 콩을 얻어오는 걸 보고 지네도 콩을 얻고 싶은데 주변머리 없는 녀석이 할머니를 꽉 물어버린 것이다.   

지네와 은이네가 콩 덕분에 화해를 하게 되니 콩이라는 곡식은 만병통치약 같다. 이웃에게 나누어주면 내 것이 줄어드는 것 같지만 사실은 더 많은 것이 생긴다는 걸 은연중에 알려주는 책이다. 엄마가 유치원생이나 저학년 아이들에게 천천히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빠른 전개나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재미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듬이 실린 짧은 문장으로 된 이야기라서 혼자서 읽을 때보다 소리내어 읽을 때 더 느낌이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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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6-24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넘 궁금한 이야기네요

소나무집 2010-06-24 11:51   좋아요 0 | URL
이야기 속에 깊은 뜻이 있는 책이에요. 그런데 우리 딸은 그닥 재미가 없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