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부터 제주에서 시부모님이 올라와 계셔서 4강을 들으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강의를 맡으신 분이 문학평론가 정현기 교수님이라는 사실 때문에 아침을 먹으면서 시어머니께 양해를 구했고, 부랴부랴 토지학교로  달려갔다. 정현기 교수님의 유명세를 알고 있었기에 가까이에서 뵙고 강의를 꼭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댁이 있는 광주에서 새벽 차를 타고 와서 사우나에 잠깐 들렀다며 몹시 피곤하다고 하셨지만 강의를 하는 두 시간 동안 피곤한 기색은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열정적이셨다. 교수님은 전두환 시절 작가의 사위인 김지하 시인을 두 달간 숨겨준 죄로 해직당했다가 1988년에 복직하셨는데 그 일로 박경리 선생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후 교수님은 박경리 선생을 어머니처럼 스승처럼 모셨다고.    


복직 후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계시면서 <토지>에 대한 연구는 물론 <토지>를 연구하는 후학들도 많이 배출하셨다.

강의 내내 MBC에서 촬영을 하고 있어서 교수님의 유명세를 더 느낄 수 있었다.  

정현기 교수님은 <토지, 약육강식의 소설 세계사 읽기>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셨는데, 현 정부와 미국 추종자들에 대한 비판에 얼마나 속이 후련했는지 모른다. 그런 강의는 하루 종일 들어도 신이 날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요즘의 한나라당은 일진회보다 더 하다고 해서 수강생들 모두 통감을 하며 웃었다. 교수님은 당시 시대 설명을 하면서 안중근과 윤동주, 염상섭 등의 이야기를 길게 하셨고, 이인직 같은 이는 문학적 첩자라고 일갈하셨다. 일본 정치 학교를 졸업한 이인직을 신소설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코미디란다.

<토지>가 시작된 1897년 무렵은 세계적으로 힘센 나라가 힘이 약한 나라를 주워삼키려는 야욕으로 가득한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대였다. <토지>가 시작되기 백여 년 전부터 서양은 산업혁명에 의해 사람의 삶이 바뀌고 있었는데 기계 덕에 소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생산된 물건들을 팔 시장이 필요해지자 제국주의라는 괴물이 탄생하게 된 것. 일부 재산가들이 만들어낸 지구 전제를 싹쓸이하려는 생산 체제는 지구를 몸살을 앓게 만들었고, <토지> 탄생의 배경 또한 거기에 있다고 교수님은 해석을 하셨다. 

한마디로 <토지>는 문명이라는 이름의 재앙이 한국에 달려든 모습을 보여주려고 시작된 소설이라는 것이다. <토지>는 힘이 약한 조선이 일본에게 먹혀 들어가는 과정을 민중들의 삶을 통해 세세히 보여주고 있으며, 제국주의란 남을 이용해서 나만 잘 살아보겠다는 더러운 심보인데, 소설 <토지> 속에는 그 시대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5대째 부를 이어오던 평사리 최부자집이 왜놈의 상징인 조준구에게 망하지만 용정에서 곡물 장사로 돈을 번 최서희가 다시 평사리로 돌아오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속엔 제국주의로 인해 망한 최부자집이 있고, 다시 자본주의 방식으로 성공해서 집안을 일으키는 최서희가 있다. 교수님은 제국주의, 자본주의, 세계화, 글로벌리제이션은 식민주의의 다른 말이라며 언어의 포장에 속지 말라는 당부도 하셨다. 

<토지> 속에서 선생이 보여주고 있는 여러 삶의 모습은 그들의 삶을 통해 얽어매고 옥죄며 이래라 저래라 하는 더러운 제국주의 계급 의식을 한데 묶어 그것들이 모두 없애버려야 할 것이라는 속뜻을 담고 있다. 사실 내가 몇 년 전 <토지>를 읽을 때는 스토리만 따라가며 읽기에도 바빠 이런 속뜻까지 헤아릴 생각조차 못했다. <토지>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또 불끈 솟는다. 


강의를 마치고 교수님과 함께. 강의를 듣는 내내 느낀 것은 정현기 교수님은 박경리 선생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분이라는 것이었다. 정릉 집을 팔아 원주로 오실 때 집 사고 남은 돈 500만원을 주시며 빚을 갚으라 한 이야기, 박경리 선생의 단구동 집을 드나들며 서쪽으로 창이 난 부엌 밥상에 앉아 곰국을 먹던 이야기 등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셨다.  (5월 1일 강의)


4강의 조별 활동은 원주, 박경리, 토지,박경리 문학공원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넣어 마음대로 글쓰기였다. 우리 조에서는 시를 써서 일등을 먹었다.  



소설 <토지>를 읽고 박경리 선생을 흠모했네!/남 몰래 그리워하다 박경리문학공원에 오게 되었네!/소설 <토지>를 내 마음에 담고 나니 원주를 떠날 수가 없네!

 *** 정현기 교수님의 토지론을 엿볼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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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5-09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좋은 강의 들으셨네요. 부럽다....저도 토지 다시 읽고 싶어요.
근데 소나무집은 누구실까???

소나무집 2010-05-10 09:03   좋아요 0 | URL
작품을 알고 읽는 것과 모르고 읽는 것에는 많이 차이가 있음을 새삼 느끼고 있어요. 교수님 뒤에~

세실 2010-05-20 21:21   좋아요 0 | URL
아 맨 아래 발표하시는 분? 참 단아하세요.

같은하늘 2010-05-11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정말 부러워요. 전 소나무집님 바로 보이는데요~~ㅎㅎ

소나무집 2010-05-12 14:46   좋아요 0 | URL
저도 정말 좋은 강의 듣고 있어서 행복해요. 바로 알아보셨군요.^^

꿈꾸는섬 2010-05-12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새 4강이네요.ㅎㅎ

소나무집 2010-05-13 09:15   좋아요 0 | URL
지난 주 토욜에 5강 수업도 했어요.
이번 주 안에 5강도 올리야 할텐데...

순오기 2010-05-13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원주로 간 건 정말 복이에요~ 부러워라!!
정현기 교수님 강의는 어제 MBC에 나올까요?

소나무집 2010-05-13 09:36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유일하게 마음을 줄 수 있는 곳이랍니다. mbc에서 어떤 프로그램에 내보려고 찍어갔는지는 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