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디즈니랜드에서 다음 가기로 한 곳은 그랜드캐년이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지도를 보던 남편이 애너하임에서 동쪽으로 세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을 들렀다 가자고 했다. 이 공원에 들르면 조금(?) 돌아가야 하지만 그래도 저녁 먹을 시간이면 그랜드 캐년에 도착할 거라는 계산. 요때만 해도 이게 얼마나 무모한 계산인지 몰랐다.

지도를 보고 미국 여행을 하다 보면 이 '조금'에 늘 놀라곤 한다. 지도상 거리로 보면 한두 시간이면 갈 것 같은데 네다섯 시간을 가야 했다. 그래서 여행하면서 미국 땅이 얼마나 넓은지 실감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워낙 넓은 땅을 줄여서 지도로 만들다 보니 축척의 감이 우리랑은 다른 듯했다. 우리가 여행하면서 들고 다닌 지도가 미국 서부 전도, 각 주의 지도, 국립공원 지도 등 작은 가방으로 하나였다. 처음엔 영어로 쓰여진 글자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남편이 어디 지났느냐고 물어봐도 모르쇠로 일관했는데 나중엔 안 되겠다 싶어 열심히 들여다봤다. 그랬더니 이틀쯤 지나니까 영어로 된 미국 지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국의 도로 시설은 우리나라만큼 친절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도로표지판으로도 도착 지점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이 가능하고, 지루할 만하면 나오는 휴게소에 들러 얼마든지 먹고 비우고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도로 표지판이 하도 띄엄띄엄 있어서 어쩌다 표지판을 놓치면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길을 잃을 때마다 불친절한 미국 도로표지판 욕을 엄청 해대곤 했다. 그리고 휴게소라는 것도 우리랑은 완전히 개념이 달라서 식당이 아닌 숙소 위주의 휴게소였다. 그나마도 어찌나 가끔씩 있는지 휴게소 찾다가 아이들에게 노상 방뇨를 시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좋은 건 고속도로(프리웨이) 통행료가 없다는 거. 통행료를 안 받으니까 그 정도 관리밖에 안 하는 건지 원...  

어쨌거나 출발할 때는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아이들은 전날 밤 늦게까지 놀았기 때문에 차를 타자마자 곯아떨어졌고, 남편과 나는 창밖으로 펼쳐지는 낯선 풍경들을 즐기며 밀린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수다 떨다 표지판을 놓치는 바람에 길을 물어보려고 왔던 길을 한 시간이나 되돌아가 가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4월인데 멀리 보이는 산 꼭대기엔 눈이 하얗다. 하지만 비가 내리지 않는 사막 지대라서 산에 나무 한 그루 없이 삭막하다. 


가는 도중에 만난 풍력 발전 시설이다. 바람이 많아서 그런지 제주도에서 본 적이 있는 풍력 발전소 시설이 엄청 많았다.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은 모하비 사막에 있어서 내내 황량한 풍경만 보다 저런 모습을 보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 자체가 장관이었다. 


드디어 첫번째 국립공원인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비지터 센터(Visitor Center) 도착. 매표소보다 먼저 비지터 센터에 들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비지터 센터는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탐방 안내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인데 하는 일이 아주 다양했다.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은 1994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니 100 년 이상 된 국립공원이 즐비한 미국에서 역사가 아주 짧은 공원 중 한 곳이다.    



비지터 센터 앞에는 작은 선인장 정원이 있었는데 모두 처음 보는 선인장 종류였다.


비지터 센터 내부에는 공원 내에서 볼 수 있는 식물과 동물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트래킹 코스에 대한 안내를 해주고 있었다. 트래킹을 하려면 하루 시간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우리는 차만 타고 통과하기로 했다. 


비지터 센터의 규모만 보아도 사람들이 많이 안 오는 공원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소박했다. 다음에 가는 그랜드 캐년 비지터 센터랑 비교하면 문간방 수준이라고나 할까.

  이게 바로 조슈아 트리. 조슈아 트리는 1851년 여행중인 몰몬교도가 발견했는데 나무의 모습이 마치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여호수아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조슈아 트리(Joshua Tree)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큰 나무는 키가 9 미터까지 자라기도 하고, 별로 안 튼튼하게 생긴 것과 달리 천 년을 사는 나무도 있다고 해서 헐~ 했다.



도대체 나무 같지 않은데 나무라고 하네 그랴! 이 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뿌연 사막의 느낌이랑 너무나 비슷하다 싶을 정도로 삭막했다. 푸른 잎도 멀리서 보면 솔잎처럼 생겼는데 가까이 가서 만져보니 선인장처럼 단단한 가시였다. 찔리면 꽤나 아플 듯.  

나무 기둥도 바나나나무처럼 껍질이 층층이 벗겨지게 생겼는데 천 년을 살 수도 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막에 살고 있는 동물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기 때문에 사막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한다. 죽어서 넘어져 있는 나무를 보니 속이 텅 비어 있었다. 헤집어 보진 않았지만 그 속에 작은 생물들이 많이 살고 있는 듯.


사람들이 팔을 벌린 모습이랑 비슷한가?  우리 아이들은 <몬스터주식회사>에 나오는 털북숭이 설리반을 닮은 나무라고 했다. 


물기 하나 없이 바스락거리는 모래 바닥에서 식물들이 자랄 수 있다는 게 신기한데, 바닥엔 하얗게 노랗게 꽃을 피운 작은 야생화들이 가득했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그냥 쌩하니 지나쳤다면 결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생명들이었다.    


이 공원엔 조슈아 트리뿐만 아니라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금이 간 화강암 바위들이 곳곳에 있었다. 바람이라도 세게 부는 날 와락 부서지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위태위태한 바위도 많았다.  


조슈아 트리 국립 공원의 명물인 해골 바위. 멀리서 보면 정말 이마가 넓은 해골처럼 생겼다. 쑥 들어간 눈이며 콧구멍까지... 주변에 있는 식물들은 모두 사막 식물답게 잎이 뾰족뾰족... 한곳에 시선을 두고 한참 서 있으니까 따뜻한 바위 위로 도마뱀이 들락거리는 것도 보였다. 


사실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은 신기하기는 했지만 아름답지는 않았다. 늘 푸른 산에 익숙해 있던 한국 아줌마의 눈에는 그저 삭막했을 뿐이다. 하지만 메마른 자연 속에 서 있다 보면 한 번도 마주해 본 적 없는 가슴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이곤 했다. 그리고 가진 것이 적다고 투덜댔던 나의 삶이 참으로 풍요롭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새삼 고마워졌다.  

만약에 세상 살기가 너무 각박해서 죽음을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으로 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정감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어 보이는 조슈아 트리, 메마른 모래와 부서진 바위 틈에서 자라는 생명들을 보는 순간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되살아날 것만 같다.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지역을 지나 끝없이 이어지던 황량한 들판. 집 하나, 차 하나 발견할 수 없는 길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바람에 이러다 우리 굶어 죽는 건 아닌가 공포감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 옛날에는 이런 곳에서 길을 잃으면 물도 먹을 것도 없어서 구조되지 못하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구나 싶었다. 이런 풍경의 길을 세 시간 이상 달리다 만난 프리웨이가 사막에서 만나 오아시스처럼 반가웠다. 



길을 잃은 줄 알았다가 만난 프리웨이가 정말 너무나 고마웠다. 믿지도 않는 하느님, 감사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의 목적지인 그랜드 캐년 근처 작은 도시인 윌리엄스까지 가는 데도 세 시간이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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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6-20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게 조슈아 트리군요.
그것앞의 노란 야생화와 대조적이면서도 잘 어울려 보여요.
그렇게저렇게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겠죠.
저무는 프리웨이를 비롯해 풍경들이 멋져요.

소나무집 2009-06-21 14:55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 보는 나무라서 참 신기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같으면 저런 곳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할까 싶은 생각까지 들더군요. 저는 늘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을 하는데 저곳을 지날 때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까 더 무섭더라구요.

씩씩하니 2009-06-22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오늘도 님 덕분에 미국여행....아!나는 언제나~~~
거문도 잘 다녀왔어요...백도도...
날씨가 좋아서 맘껏 보고 듣고 했어요...절벽 하나,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에까지 이야기들이 다 담겨있어서...ㅋㅋ 한편 재밌고 경이롭다해야할까...
귀에 붙인 멀미약에 취해서 거문도 도착했을 때 다리가 휘청거려서 직원들이 엄청 웃었어요~~ㅎㅎㅎ 님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소나무집 2009-06-22 11:40   좋아요 0 | URL
잘 다녀오셨군요.
미국 여행은 고생길이에요. 운전을 넘 많이 해야 돼서...
운전 안 하는 여행사 패키지는 쫓기듯 여행해야 되니 재미없구...

꿈꾸는섬 2009-06-23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져요.. 모래 위에 곱게 핀 노란 꽃, 인상적이에요.^^

소나무집 2009-06-23 08:38   좋아요 0 | URL
오히려 사진으로 보니까 멋진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멋지다 싶진 않았어요. 저렇게 피어 있는 야생화도 몸을 숙이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이에게만 허락되는 아름다움이었어요. 저절로 몸을 낮추게 되는 곳. 그래서 자신을 들여다 보게 되는 곳요.

CANO 2009-11-19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강영숙의 소설 '양털 모자'에 조슈아 트리가 나오길래 무엇인지 찾다가 들릅니다ㅎㅎ 가슴 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셨다니.. 왠지 소설의 내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덕분에 궁금증을 풀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소나무집 2009-11-21 09:40   좋아요 0 | URL
여기까지 검색이 되는군요.
찾아와주셔서 감사!!!

아래미 2009-12-26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몰몬 교도가 조슈아 트리를 발견한 것이 1951년이 아니라, 아마 1851년일 겁니다. 브리검 영이 솔트 레이크에 온게 1846년 무렵이고, 그 이후 몰몬들이 유타 주변을 탐험합니다.
제가 가본 미국 고속도로의 휴게소는 식당도 여관도 없고, 단지 화장실하고 야외 식탁 뿐이더군요. 먹거나 자거나 기름 넣으려면, 고속도로 출구로 나가면 있더군요.
저도 이번에 조슈아 트리 국립 공원 가려고 하는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소나무집 2009-12-27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851년이 맞아요. 좋은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