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밥 공주 창비아동문고 249
이은정 지음, 정문주 그림 / 창비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밥다운 밥은 학교 급식 시간에만 먹게 되니 소나기처럼 한꺼번에 많이 먹어서 '소나기밥'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아이, 친구들이 돼지라고 놀려도 꿋꿋하게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말을 날려 단방에 아이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어버리는 아이... 매일 소나기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 이 아이의 실제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공주'다. 그래서 실제 공주의 삶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주인공의 일상이 더 안쓰럽게 다가온다.

공주는 분명 존재하지만 주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6학년 아이의 모습은 아니기 때문에 솔직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엄마는 집을 떠난 지 오래 되었고, 알콜 중독자 아빠는 딸한테 말도 안 하고 재활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곰팡이만 무성한 지하 셋방에 홀로 남은 공주가 살아갈 세상이 어떠 하리라는 건 말 안해도 알 만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의 분위기는 결코 암울하지 않다.  

구석진 지하 셋방에 살고 있어서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공주의 삶을 환한 세상으로 이끌어낸 작가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살펴보니 창비 좋은어린이책 고학년 부문 대상을 탄 작품이라서 이은정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낯설다. 하지만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유머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인물을 그려낼 줄 아는 신인 작가에게서 무한한 힘이 느껴진다. 문득 공선옥이라는 작가와 궤를 같이 한다는 느낌도 든다. 앞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볼 동화 작가 한 명이 늘어난 셈이다.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5학년 딸아이가 내린 결론은 '재미있어요'였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사는 공주의 이야기 중 어떤 부분이 우리 아이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딸아이는 장롱 밑에서 굴러 다니는 동전까지 다 찾아내도 전재산이 560원밖에 안 되는 공주가 맛있는 게 잔뜩 들어 있는 팽여사네 장바구니를 훔친 걸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도둑질하고도 끝까지 모른 척할 수도 있었는데 고백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갚았기 때문에 공주는 나쁜 아이가 아니란다.  

그래, 딸아이의 말이 맞다. 공주는 아무것도 모르는 배만 고픈 아이가 아니었다. 공주의 의식 속에 가득한 죄책감은 훔친 재료로 만든 음식에서는 맛을 느낄 수 없게 만들었고, 아무리 먹어도 채울 수 없는 허기를 만들어냈다. 결국 급체를 하고 대문 앞에 쓰러진 공주는 팽여사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다녀오면서 자신이 장바구니를 훔쳤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만다. 공주가 목을 죄어오는 고통을 이겨내며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공포감을 조성하면서 범인을 찾아다니는 주인집 아저씨나 마트에 가서 잃어버린 물건을 두 배로 되찾아오는 팽여사의 코메디 같은 이기심이 미워서 공주가 아무 말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거늘... 하지만 팽여사도 주인집 아저씨도 힘겹지만 바르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공주를 곁에 두고 삼겹살이 목에 넘어가지 않는 선한 이웃이다. 그 이웃들이 내미는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손길 덕분에 아빠를 기다리는 공주의 하루하루가 덜 힘겨울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가난하고 아픈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이 새록새록 자라났으면 좋겠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09-06-09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고학년부분 대상이라면 무척 궁금해지네요. 요즘은 정말 재미난 책들이 가득한 것같아요

소나무집 2009-06-11 13:44   좋아요 0 | URL
정말 지지리도 궁색한 아이의 이야기인데 재미있게 읽었어요.

순오기 2009-06-11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비 평가단도 하시나요?
창비 독후감 대회도 있던데 읽은 책이 두어 권 밖에 없더라고요.ㅜㅜ
창비 좋은 어린이책도 고학년 저학년이 나누어졌네요.^^

소나무집 2009-06-12 15:48   좋아요 0 | URL
어린이책만요. 책이 아주 가끔씩만 와서 좋아요.
이미 쓴 책이 많아서 독후감 대회라고 또 쓰기도 그래요.

희망찬샘 2009-06-26 0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후감 대회 때문에 님께 땡스투 누르고 저도 책 한 권 샀습니다. 아이들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 저는 그런데 왜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아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갈까요? 제가 바로 몇 걸음 학교를 옮겼는데, 그 몇 걸음 사이에 그런 아이들 여럿인 동네와 전혀 관계없는 아이들이 함께 공존하네요. 그 현실이 가끔 서글퍼질 때가 있어요.

소나무집 2009-06-26 08:47   좋아요 0 | URL
제가 사는 동네도 시골이다 보니 공주 같은 아이들 만나기는 해요. 하지만 교실에서는 만나는 친구들끼리는 서로의 사정을 다 알고 지내는 것 같지는 않더라구요.
제가 드림스타트에서 독서지도 자원봉사를 하는데 거기서 만나는 아이들도 오랫동안 방치되었거나 공부에서 손을 놓은 경우가 많아서 선생님이 열성을 못 따라와서 속이 상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