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남편 덕분에 미국 여행을 가게 되었다. 남편은 미국 가기 전부터 함께 가자고 권유했지만 난 '그럴 돈이 어디 있냐'며 단칼에 잘라버렸다. 남편의 경비야 회사에서 나오지만 우리 세 식구 비용은 고스란히 내 부담인데 세 사람 비행기표 값만 해도 우와! 소리가 저절로 나올 판이었으니 난 미국 여행에 아무런 미련도 아쉬움도 없었다. 내 팔자에 미국 여행은 무슨 하면서.

여행 결심하기. 그런데 미국에 간 남편이 전화를 할 때마다 나를 꼬셨다. 돈 생각 하지 말고 무조건 들어 오라고 했다. 이런 기회가 또 오겠냐, 나중에 돈 모아 봐야 쓸 데 따로 있다, 늙어서 여행하는 것보다 젊어서 여행하는 게 더 남는다, 등등. 작년 가을 아파트 중도금이랑 세금이랑 맞추느라고 정말 여윳돈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형편이어서 내 머리 속이 더 복잡했다. 하지만 끈질긴 남편의 "돈보다 중요한 것들 운운~~ " 에 넘어가서 적금 미리 땡겨 받았다 생각하고 확~ 가기로 결정을 했다. 이렇게 결심하는 데만 한 달 정도는 걸렸던 것 같다. 

여행을 위해 할 일들. 결심을 하고 나니 할 일이 마구 마구 생겼다. 비행기표 예매, 여권 만들기, 비자 신청, 여행지 공부하기... 해외 여행이라고는 신혼 여행으로 사이판 다녀온 게 전부다. 그러고 보니 사이판도 미국이네. 사실 신혼 여행은 여행사에서 알아서 일처리 다 해주었으니 그냥 잘 따라다닌 기억밖에는 없다. 그나마 그때 만들었던 여권마저 연장 기한을 넘기는 바람에 말소되었으니 다시 만들어야 하고. 

비행기 표 예매하기. 남편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당연히 남편의 몫이었고, 난 따라다니기만 했을 것이다. 결혼하고 12년, 지금까지 밖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일은 대부분 남편이 처리했기에 비행기 표 하나 예매하는 데 그렇게 많은 정보와 에너지를 쏟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직항이냐 경유냐, 왕복이냐 편도냐, 출발 시간이 언제냐, 어떤 항공사냐, 몇 개월짜리냐, 며칠 전 예매냐에 따라 비행기표의 가격이 두 배가 될 수도 반값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출발할 때 이미 끊어놓은 남편의 티켓까지 우리 일정에 맞춰서 변경하는 임무까지 수행하다 보니 티켓 결정하고 예매하는 데 일주일 이상 걸렸다. 수많은 나의 전화에 늘 친절하게 응대해준 *항공사 직원이 너무 고맙다. 

여권 만들기. 제일 먼저 여권을 만들어야 했는데, 봄방학 때 3박 4일 다녀간 친구네 접대에 피곤했는지 입술이 부르트고 뽀류지가 나서 사진을 못 찍었다. 그거 대충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다 보니 여권 신청이 늦어지고 말았다. 완도군청 민원실에 신청한 지 11일 만에 여권이 나왔다. 다른 동네에서는 신청하면 금방 나온다는데 이곳은 항상 완도 타임 플러스를 해야 한다. 아마 다른 지역보다 4~5일은 더 걸린 듯하다. 작년부터 전자 여권으로 바뀌었는데 유효 기간이 어른은 10년, 어린이는 5년이다. 비용은 어른 55,000원, 어린이 47,000원. 어린이 여권을 만들 때는 읍사무소(동사무소)에서 뗀 기본증명서랑 가족관계증명서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 

전자 비자 신청하기. 남편은 미국 정부의 초정으로 가는 거라서 미국 대사관에 가서 인터뷰를 하고는 정식 비자를 받았다. 하지만 작년부터 미국도 무비자 관광이 가능하다고 해서 우리는 당연 여권하고 비행기표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처럼 생각하고 비행기 타러 갔다가 미국 못 간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한다. 미국 전자비자 신청 사이트(https://esta.cbp.dhs.gov/esta/esta.html?_flowExecutionKey=_c62135A55-C286-5BC4-5164-1B5038A7520A_k92295272-FD9F-4754-FE70-7654E9EA3962)에 들어가서 전자 비자를 신청해서 미리 허가를 받은 사람만이 미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고맙게도 한국어 서비스를 해주고 있어서 무사히 전자 비자를 신청했고, '허가 승인(Response)'을 받았다. 혹시 잘못 입력해서 거부당할까 봐 얼마나 벌벌 떨었는지... 하지만 해보니 별 거 아니었다. 여행사에서 대행해주면 수수료를 따로 받는다고 하니 돈 벌었다. 

걱정거리. 4월 13일에 출발하니 아직 한참 남았지만 걱정이 많다. 그중 가장 큰 걱정이 미국 LA 공항 입국 심사다. 방학이 아닌데 아이들 데리고 입국하다 의심받아서 거부당한 사례가 많다고 한다. 눌러 앉아서 학교를 다니거나 영어를 배우는 한국 아이들이 많아서 특히 의심을 받는다는데, 나야 찔리는 거 하나도 없지만 혹시 질문 받았을 때 '남편이 와 있어서 어쩌구 ~ ' 하면서 좔좔 말할 영어 실력이 안 되니 걱정이다. 

고마운 남편.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정말 배우는 게 너무 많다. 가끔은 남편이 아쉽기도 했지만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하게 살아왔는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글을 빌어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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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3-24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잘 되었네요 그래요 이번 기회에 온 가족이 함께 미국여행을 하니 얼마나 좋아요.
멋져요. 님
리뷰도 아주 자세해서 미국 여행 준비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겠어요

소나무집 2009-03-25 09:20   좋아요 0 | URL
좋긴 한데 처음 하는 여행이라 걱정도 많답니다.

프레이야 2009-03-24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부러워요^^

소나무집 2009-03-25 09:21   좋아요 0 | URL
님은 해외 여행 많이 다니시잖아요.
다음 여행지는 미국으로...

무해한모리군 2009-03-24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히 잘 다녀오세요 ^^

소나무집 2009-03-25 09:21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전호인 2009-03-24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되셨네요.
너무 두려워 하실 것 없습니다.
거기도 사람사는 세상이니 말이 않되도 바디랭귀지도 있는 데요 뭐.ㅎㅎ
철저히 준비하셔서 즐거운 여행될 수 있도록 하세요.
아자아자. ^*^
얼래리 꼴래리 소나무님이 신랑보러 간데요.

소나무집 2009-03-25 09:23   좋아요 0 | URL
참내 전호인님도 얼래리 꼴래니라니요...
남편 그늘에 묻혀 산 세월이 길어서 제가 뭐든 알아서 하려니 두렵네요.
즐거운 여행 하려고 요즘 열공중이에요.
미국이 보일려고 해요.

무스탕 2009-03-24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곡차곡 준비 잘 마치고 비행기 띄우기만 하면 되는군요 ^^
아이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거에요.
얼마나 머물다 오실건가요? +_+

소나무집 2009-03-25 09:26   좋아요 0 | URL
사실 5학년인 딸내미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영어도 네가 더 잘하니까 입국 심사 때 대답할 말 알아서 준비하라고 했어요.
4월 13일에 나가서 5월 1일 들어와요. 그러니까 한 18일 정도 되나 봐요.

라로 2009-03-25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엘에이로 먼저 가시는군요~.^^
넘 걱정마시고 잘 다녀오세요~.^^
4월 13일이면 얼마남지 않았네요~.
엘에이에 있는 제 딸아이가 보고싶어지네요~.흑

소나무집 2009-03-25 09:28   좋아요 0 | URL
라스베가스로 하려다 남편 일정을 변경하는 게 쉽지 않아서 LA로 바꿨어요. 덕분에 LA 구경도 하게 생겼네요.

순오기 2009-03-29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직접 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고 깨닫는 것도 많지요~~ ^^
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 돈만 있으면 되는 세상이라지만 돈이 있어도 못하는 사람 많아요. 님의 미국행은 정말 남편 잘 만난 덕이네요. 부러워요~~~ ^.~

소나무집 2009-04-02 14:31   좋아요 0 | URL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다하다 보니 여행의 참맛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결단을 잘 못 내리는 성격인데 이런 땐 남편이 도움이 돼요.
뒷생각 안 하는 사람이라 일단 확 질러버리거든요.
순오기 님, 진짜 돈 없는데도 미국 가는 걸 보면 돈이 아니라 생각의 차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요.